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5. 29. 00:53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막 지났다. 엄혹했던 군사독재 시절 주로 활동한 장일순 선생의 일화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글은 거의 없다. 자신의 글 때문에 엉뚱한 사람들이 곤혹당하는 걸 바라지 않았기에 몇 편의 연설문과 대담, 그리고 일화만 남았다는데, 그 일화를 보면 선생의 삶과 생각은 무척 평화로웠을 게 틀림없다. 좁쌀 한 알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선생이 생활협동조합운동을 시작한 건 자연스러웠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남과 나를 어찌 나눌 수 있겠는가. 남과 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세상에서 평화는 깃들 수 있으리라.


언젠가 북유럽 도시를 방문했을 적, 대낮임에도 자동차마다 전조등을 켜고 다니는 걸 보았다. 여름이라 낮 시간이 길 텐데, 의아해 물었더니, 전조등을 켜면 자전거와 부딪힐 가능성을 30% 이상 낮추기 때문이라고 가이드는 답했다. 자동차가 하도 천천히 다녀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였는데, 자동차 도로 사이에 안전 분리대가 없어도 자전거 이용하는 시민들이 많은 건 자동차의 속도가 낮고 전조등을 켜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자전거를 이용하는 이는 내 가족이나 이웃이다. 나도 차를 두면 당연히 자전거를 이용한다. 사정상 자동차를 탄 운전자가 더욱 조심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준법투쟁이란 게 무서운가 보다. 지하철이나 버스 운전사들이 준법투쟁에 돌입하면 단속하겠다고 경찰이 으름장을 놓은 적 있다. 정해진 공간에 세워 손님들이 내리고 탈 시간을 규정대로 제공해야 당연한데, 불법이라는 겐가? 불법보다 반항이므로 단속하겠다는 의지일 텐데, 괘씸죄에 걸리는 반항의 대상은 누구인가? 공권력? 버스회사나 지하철공사? 배차간격을 바투 붙인 이유는 회사의 이윤과 긴밀하다. 경찰은 회사의 이해를 대변해 단속할 따름이다. 자동차와 운전사 고용을 늘려 배차간격을 조절한다면 준법투쟁이 사라질 텐데, 그러지 않으니 사고 확률은 높아진다. 한 차례의 사고는 챙겨둔 이윤을 일거에 사라지게 할지 모른다.


최근 광역버스 탑승하던 직장인들의 지각 사태가 속출했다. 고속도로에서 승객은 반드시 좌석 안전벨트를 매도록 안내해야한다는 규정은 출퇴근 시간이면 관행으로 외면되었지만, 단속을 지레짐작한 회사가 세월호 참사 이후 정원 외 승차를 금지한 까닭이었다. 출퇴근 시간에 좌석보다 많은 승객을 싣는 일은 광역버스의 일상이다. 버스를 늘려야했지만 외면해온 건 단순히 이윤 때문이리라. 버스와 운전기사를 늘리면 화사는 이윤을 얼마나 잃을까? 운전사 파업 때마다 적자를 하소연하던 버스회사는 버스와 고용을 늘리려면 요금을 올려야 한다고 아우성칠까?


일본에서 고철보다 약간 높은 가격으로 구입한 해운회사 청해진의 세월호는 온갖 불법이 자행되며 운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사의 이익을 배려한 지난 정권의 규제완화만이 참사의 원인은 아니었다. 무리한 구조변경과 규정을 무시한 화물적재 그리고 안전 장비와 훈련 미비는 단속되지 않았다. 훈련을 위한 예산이 접대 예산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라기보다 늘 그래왔기에 새삼스럽게 단속할 사항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가정으로 묵인해온 관행이 규제완화에 힘입어 더욱 버젓해졌을 것이다. 침몰 징후가 뚜렷해도, 침몰하는 중이어도, 침몰 이후에도, 해난 구조까지 민영화한 정부와 해경은 관행처럼 해운회사의 이윤에 충실했다. 해경의 보도자료에 의존한 언론마저도.


규정에 따라 승객과 화물을 싣고 운행한다면 청해진은 진정 손해를 볼까? 제주항로를 독점한 청해진은 이용료를 올려야 한다고 진작 주장했을까? 규정보다 서너 배의 화물을 얼렁뚱땅 실어야 고철에 가까운 배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요금이 적었던 걸까? 그렇다면 당초 당국에 의해 책정된 요금은 불법 관행을 조장한 셈이다. 끔찍한 참사를 유인한 꼴인데, 언론들이 보도한 청해진의 부당행위 크기와 범위를 미루어보면 세월호의 적자 내용이 사실에 부합할 거로 믿기 어렵다. 투명하지 않은 해운회사는 청해진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접대에 관례처럼 응해왔을 관계당국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회사 경영과 당국의 관리 감독이 투명했다면 우리의 선박 이용 요금은 합리적으로 책정되었을 것이다. 1993년 위도 페리호 참사 이후 해운업계의 불투명한 관행을 바로잡았다면 고철 선박을 수입하지 않아도, 화물을 과적하지 않아도, 승무원을 저임금으로 착취하지 않아도, 요금을 올리지 않아도, 해운회사는 적자 나지 않고 승무원은 친절하게 임무에 충실하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발생한 사고가 참상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불합리한 경영을 바로잡을 수 있는 장치와 수단이 회사 안팎에 준비돼 있었다면 이런 글을 쓸 이유도 없었을 게 틀림없다.


세월호 참상은 청해진해운에서 그치지 않는다. 결박하지 않고 화물을 과적하던 연안 여객선들이 갑자기 규정을 지키느라 허둥댄다는데, 육지에서 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비행기 이륙 방향을 바꾸며 허가한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의 붕괴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123층으로 세우기 위해 파낸 지반이 가라앉는다는 건데, 관련 회사와 정부는 분명한 근거 제시 없이 안전만 되뇐다. 부산 고리핵발전소 1호는 사고뭉치였지만 세월호 참사로 언론의 초점이 몰릴 때 정부가 슬며시 가동 연장을 허가했다. 그 핵발전소의 반경 30킬로미터 안에 320만 명이 산다.


안산에 사는 노동자에게 몇 차례 강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이가 그 중에 있다. 단원고에서 교생실습을 한 큰애의 친구는 힘든 나날을 지낸다고 한다. “큰애를 부산외국어대학교에 보냈다면 코롱 미우나리주트 강당의 눈덩이에 파묻히고, 작은애가 단원고에 다닌다면 나는 팽목항에 있을 거라며 날마다 108배를 한 가정주부가 있다. 도처에 세월호가 있으니 예외를 확신할 사람은 없다.


장일순 선생이 좁쌀 한 알에 우주가 있다고 일찍이 말했듯, 세상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혼자 잘 살 수 없다. 내 가족과 이웃의 건강을 먼저 생각했다면 이번 참사는 없었다. 행복은 생태계의 뭇 이웃과 이어져 있다는 진리를 무시한 이번 대가는 너무 참혹했다. (작은책, 20146월호)

동요풀님 보고 싶네요. 말북이에요. 몇달만에 들어와보곤 이 글을 만나네요. 풀꽃세상에도 올리고 싶어 인사드립니다. 최근에는 무위당 20주기 행사를 조금 거들어 보름간의 행사를 잘 마쳤지요. 주말에는 선정회의가 원주에서 있습니다. 그래도 지키고는 있어야 할 풀꽃세상의 정체성인 듯 싶어서요. 제대로 이어줄 이들이 생겨나겠지요. 올해 가기 전에 함께 만날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군요. 건강하세요.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4. 4. 25. 10:45


 나이 들면 눈물샘도 마른다는데, 열흘이 지났어도 세월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울컥 솟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운이 지독하게 나빴던 그 젊디젊은 생명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고 운이 좋아 건강하게 자란 내 집의 아이들에게 고맙기 그지없다. 자신의 잘잘못과 아무 관계없이, 앞으로 하루하루가 안전할지 자신할 수 없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던 시절은 예측이 가능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사람이 만든 선박과 교량과 건물과 핵발전소만이 아니다. 지금은 자연의 흐름도 예측 가능하지 않다. 이를 어쩌나.


세월호 사고는 아무리 생각하도 어처구니없다. 비슷한 사고가 도대체 몇 번인가.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장비나 매뉴얼은 진작 마련해놓았지만 번번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고나 재해를 바라보는 시각에 근원적 변화가 없는 이유는 뭘까. 물에 내보내는 부모의 마음으로 선박을 관리 운영해야 할 선사는 왜 비슷한 사고를 반복할까? 탐욕이다. 통제해야 할 기관도 비슷하다. 이익의 독점을 추구하든 권력 획득이나 유지를 추동하든, 자연의 결을 파괴한 탐욕 때문이다. 자연을 버린 우리는 재난을 자초했다.


핵발전소의 관리부서에서 오래 근무한 이는 안전시설과 장비를 설치 운영하고 구입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제외하면 전기요금은 무척 내려갈 수 있다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전에 주장했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가정으로 늘어놓은 주장을 그는 요즘도 계속하고 있을까? 은퇴 후 핵발전소 관련 업체에서 일한다면 바뀌지 않았을지 모른다. 기술로 재난을 극복할 것으로 여전히 세뇌되었기 때문이리라. 위험한 합리화가 아닐 수 없다.


백화점 같은 다중이용시설에 불이 난다면 사람들은 허겁지겁 비상구를 찾을 텐데, 거기에는 물건이 잔뜩 쌓여있다. 지금 도심의 여느 다중이용 건물은 아니 그런가? 사람들이 모로 다녀야 할 정도로 통로에 물건을 내놓은 지하상가는 어떤가? 1995년 일본의 옴진리교처럼 독가스 테러가 있거나, 누전으로 2003년 대구 지하철처럼 불이 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상하기 두렵다. 재난 대비 장비는 마련되었어도 물건이 가득한 통로에서 매뉴얼은 작동되기 어려울 것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지역과 일본, 그리고 지구촌에 안겨주었다. 자연이 만든 리아스식 해안을 지나치게 개발하자 재난은 규모가 커졌고, 피해는 한순간에 밀려들었다. 하지만 일본은 제방의 높이를 더 높일 뿐이다. 우리는 어떤가. 영화 해운대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지진과 쓰나미가 없다며 갯벌을 매립하고 핵발전소를 증설하지 않던가. 지구온난화는 해수면만 상승하게 만들지 않는다. 100년 전보다 섭씨 0.7도 오른 바다는 태풍과 해일을 더욱 위협적으로 늘렸다. 자연의 결을 잃은 우리는 언제까지나 예외일 수 있을까?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오만을 전제로 세계 최악으로 밀집시키는 우리 핵발전소는 어떨까? 고리핵발전소는 징후가 흉흉해도 재가동을 허용했다. ‘세월호침몰로 온 귀와 눈이 진도 앞바다로 쏠린 틈을 노렸다. 그런 자세로 관리 운영하는데, “가만히 앉아전기를 소비해야하는 우리는 내내 안전할 수 있을까?


조력발전은 어떤가. 짓고자하는 자본과 이해관계 없는 학자들은 많은 위험 요인을 지적하건만 밀어붙이려는 사람들은 안전을 덮어놓고 장담한다. 가로림만이 태초 이래 막아주던 해일은 조력발전소가 생긴 뒤 잔잔해질까? 온난화된 이후에도 살아가야 하는 후손에게 참극을 안길 가능성은 높은데, 강화도 조력발전 계획은 아직 공식 폐기되지 않았다.


단원고등학교에 교생 실습을 다녀온 친구가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아이가 걱정한다. 누구의 무슨 기준으로 미개하든 길들어졌든,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월호 사고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자연의 결을 파괴한 탐욕은 지구온난화로 이어졌는데 우리는 아직도 근원적 반성과 행동이 없다. 사고의 잘잘못과 처벌 수위를 따지는 데에서 그칠 수 없다. 충분히 잘 살고 있는 우리네 삶이 후손에까지 지속될 수 있는지 살피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호일보, 2014.4.25.)

또 놀러올꼐용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