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3. 10. 25. 13:22

 

토요일 오후 여의도 63빌딩에 갈 기회가 있었다. 꼭대기 전망 공간에 아는 이가 그림을 전시했고, 그 전시회에 초대된 건데, 시간이 남아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식당가와 찻집, 옷과 장신구를 파는 상점, 아이맥스 영화관과 수족관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아이 손을 잡은 젊은 부부와 연인들이 붐비고, 중간에 놓인 의자마다 입에 무엇을 연실 넣으며 이야기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일행을 만나 올라간 전시회장은 여의도를 조망하는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넘치니 심혈을 기울여 그렸을 작품에 신경을 쓰기 좀처럼 어려웠다.


나이 때문인가. 잠시 눈을 떼기만 해도 놓칠 장면이 변화무쌍한 도시의 휘황찬란함은 웬만해서 피하고 싶다. 나만 보라고 저마다 형형색색 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치지만 그런 공간에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사람 구경만 실컷 할 뿐, 금방 지친다. 63빌딩이 그랬다. 초대한 작가에게 송구스럽게 서둘러 빠져나가야 했지만 지평선이 가없이 펼쳐지는 몽골의 초원은 달랐다. 보이는 풍경은 단조로워서, 드넓은 초원과 나지막한 산, 시야의 절반을 차지하는 파란 하늘, 초원 멀리 점점이 박힌 가축들, 하늘을 조용히 선회하는 맹금류가 전부였지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은 볼수록 장엄했다.


갯벌이 한없이 펼쳐지던 인천은 시방, 마천루 흉내 내는 초고층 빌딩들이 저마다 화려함을 뽐내지만, 얼마 전까지 지평선과 수평선이 교차하던 곳이었다. 더 새롭고 더 높은 빌딩이 들어서자마자 눈길에서 멀어지는 휘황찬란함은 없어도, 기러기 울어 예는 구만리 하늘이 드넓은 갯벌과 더불어 시야에 방해 없이 펼쳐졌다. 서편 하늘과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노을을 상기된 얼굴로 말없이 바라보며 쉽게 발길을 옮기지 못했던 인천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갯벌이 매립돼 건물 숲 아래로 사라진 뒤에 여유를 잃었다. 서울과 잇는 고속도로가 3개나 있어도 막힌다고 불만이다. 아파트 값이 싸다고, 학력이 떨어진다고 아우성이다.


올해 13회를 맞는 인천소래포구축제소래를 노래하자라는 주제로 지난 18일부터 3일 동안 화려하고 떠들썩하게 펼쳐졌다. 옛 군영에서 시진을 찍고 자전거를 타며 꽃게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이 추가된 축제는 꽃게 낚고 전어 잡는 체험, 서해안 풍어제와 안성바우덕이 공연, 그리고 다문화공연 마당으로 성황리에 이어졌지만 참가하지 않았다. 인파에 부딪히기 싫은 성격 탓에 더욱 떠들썩해진 분위기가 살갑지 않았던 건데, 갯벌과 염전이 거의 사라진 소래의 하늘을 즐비한 고층 아파트가 가로막았다. 이맘때 특히 붉은 노을을 조용히 바라볼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는지 모른다.


지난 14일 오전, 인천시장은 소래습지생태공원과 시흥갯골습지가 펼쳐진 남동구와 시흥시의 단체장을 만나 시흥갯골과 소래습지생태공원 공동관리를 위한 협약식을 가졌다. 국내 최대 해양 습지의 올바른 관리와 지속가능한 생태관광지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연구 기반이 지자체의 협조로 만들어졌는데 의의가 큰 협약이었다. 협약식에 참가한 일행은 작은 배에 나누어 타고 시흥갯골수로를 30여 분 천천히 돌아보았다. 겨울철새가 본격적으로 내려앉지 않은 갯골은 붉은 염생식물과 무성한 갈대가 펼쳐지는 굽이굽이 습지로 이어지는데, 중간 중간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경관을 다소 어지럽혔지만 여전히 한가하고 자연스러웠다.


젊었던 시절, 석양 배경 실루엣으로 염부들의 작업을 작품에 남기겠다고 카메라를 들고 찾았던 소래의 염전과 일대 습지는 지금 없다. 그 대신, 서양 잔디를 입힌 골프장이 개장을 서두르고, 넓은 공원에 기족과 연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하는 시민들에게 자연스런 경관을 고즈넉하게 선사하는 소래와 시흥 습지는 떠들썩하게 번쩍거려 불안하게 만드는 도심의 휘황찬란한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 사람이 정착하기 전부터 드넓었던 갯벌이 이제 흔적으로 남았어도 인천의 오랜 문화와 역사를 조금이라도 느끼게 한다.


     소래와 시흥에 가련하게 남은 갯벌과 습지만이라도 찾는 시민 뿐 아니라 철새를 위해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보전했으면 좋겠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만끽할 수 있도록. (기호일보, 2013.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