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8. 7. 00:27

 

서양인, 특히 미국인들은 우리나라 젊은이의 체형을 부러워한다고 한다. 늘씬한 8등신이라기보다 몸에 군살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그를 위해 밥을 덜 먹거나 피트니스클럽에 등록해 꾸준히 운동하는 이가 적지 않지만 그건 서구의 여느 나라도 마찬가지다. 왜 한국인은 서양인보다 날씬한 편일까. 음식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굶주림에 지친 어린이가 불룩 튀어나온 배를 부여잡고 쓰러져 죽어가는 지역의 시각으로 지독한 역설이지만 서구의 많은 국가에서 비만이 가난의 상징으로 바뀐 지 오래 되었다. 피트니스클럽에 등록하거나 다이어트에 돌입할 시간과 돈이 없기 때문이기 이전에 눈과 코를 자극하는 저렴한 음식이 지천에 널려있는 까닭일 텐데, 가난한 이에게 비만을 일으키는 요인은 음식의 양보다 질과 관련이 있다. 먹는 이와 땅의 건강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재배하는지, 무슨 가축을 어떻게 사육해 어떤 방식으로 가공했는지 전혀 모르는 음식에 도덕은 깃들 틈이 없다. 이웃과 나누는 ‘밥’이라기보다 요란한 광고를 앞세우고 나 몰라라 파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량에 양심은 대체로 절연되었다.

 

어느 한쪽에선 차려낸 음식의 40퍼센트 정도를 버리고 어느 한쪽은 한 국자의 음식도 접시에 나눌 수 없는 지구촌의 현실은 식량에 얽힌 역설을 발판으로 한다.

 

 

1. 지역을 떠난 식량

 

평화(平和)는 공평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사람은 예로부터 자신이 속한 마을에서 재배하는 농산물로 밥을 지어 먹었다.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가져오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나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제 마을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농산물을 즐겨 먹는 자는 그렇지 못한 자에 비해 지위가 우월하다. 농사는 이웃과 함께 땀 흘리며 상부상조하며 짓는다. 마을에서 함께 농사지은 이웃이 서로 나누는 농작물은 갈등을 일으킬 리 없지만 먼 마을의 낯선 농산물은 그렇지 않다. 재배하는 데 누구의 노력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알 수 없는 농산물은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다.

 

1) 지역에 따라 다양한 식량

 

가공식품에 익숙해진 요즘, 농작물이 식량의 원천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사람이 농작물을 재배한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사람은 진화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대부분의 세월을 자연에서 먹을거리를 사냥하거나 수집해 해결했다. 경작이 지금부터 대략 1만 5백 년 전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다이아몬드(2005)는 무수한 식물과 동물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사람의 울타리 안에서 재배하거나 사육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나머지는 길들이기 대단히 어려웠다는 거다.

 

오래 전 아프리카를 떠난 사람은 요즘 하와이와 이스터 섬까지 퍼졌지만 대부분 농사를 지어 식량을 구한다. 지역에 따라 독특한 농산물이 없지 않지만 재배하는 종류는 엇비슷한데 겉보기 같아도 지역에 따라 품종의 차이는 있다. 지역에 따라 쌀과 콩의 종류가 다르고 소와 돼지 품종이 다르다. 선조에게 물려받은 종자의 품종, 그리고 경작과 사육 기술을 환경에 맞게 개량하면서 다채로워진 결과다. 일반적으로 다른 지역의 농작물을 맛볼 기회가 거의 없는 사람들은 지역의 식량에 만족했을 것이다.

 

해마다 비슷한 수확을 기대하지만 어쩌다 뜻하지 않은 흉작이 오는 경우도 있다. 그때는 이웃과 식량을 나눠 해결했을 테지만 식솔이 늘거나 수확량이 줄어든다면 마을의 이웃 일부가 새로운 경작지를 찾아 떠났을 것이다. 그런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마을은 늘 자급자족했고 이웃의 식성도 대체로 비슷했을 것이다. 한데 높은 산이나 넓은 강, 바다로 분리된 지역은 환경이 사뭇 다르다. 따라서 재배하거나 사육하는 농작물과 가축의 종류가 다를 수 있다. 재배하는 농작물이 다른 산마을과 들마을과 갯마을도 식성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 형성된 식성은 문화가 되었는데, 문화는 차이일 뿐 우열일 수 없다.

 

2) 식량의 상품화

 

옥수수의 원산지인 멕시코에서 주민의 오랜 주식은 또르띨라다. 옥수수를 갈아 반죽해 둥글게 펴서 화덕에 구은 또르띨라에 취향에 따라 으깬 풋고추나 양파나 토마토를 얹고 말아 먹거나 여유가 있다면 볶은 고기를 넣기도 한다. 가축을 사육하고 옥수수와 각종 채소를 재배하는 농부라면 식구의 밥상을 차리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거의 없을 것이다. 화덕은 물려받았고 땔감은 주변에서 구할 테니 식구 수에 맞게 그릇 몇 가지만 구하면 충분했다.

 

1990년 미국과 캐나다와 멕시코 사이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산 옥수수가 물밀듯 들어오면서 값싼 또르띨라가 조리하는 수고를 덜자 주민들은 화덕을 버리는데 그치지 않은 것이다. 싫든 좋든 화폐 경제권으로 편입된 것인데, 일단 편입되자 돈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자급자족할 때 요긴했던 정도의 돈으로 쪼들릴 수밖에 없는 농민은 돈벌이를 위한 농작물을 ‘상품’으로, 다시 말해 ‘농산품’으로 심어야했고 그것도 모자라면 더 많은 돈을 위해 미국의 공장이 몰려 있는 국경도시로 옮겨야 했다.

 

멕시코에 제한된 사정일 리 없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여러 차례 추진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도시의 공장에 농민을 보내야 했듯, 어느 나라나 산업사회 초기에는 농촌의 인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었다. 이른바 향도이촌(向都移村)이다. 정부는 노동자가 된 농민이 낮은 임금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농산품의 가격을 통제했고, 젊은이가 대거 빠져나간 농촌은 농촌대로 돈벌이를 위해 상품가치가 높은 농산품을 집중 재배하게 되었다. 그런 농업은 경쟁을 부추겼고 경쟁은 이웃과 지역을 넘어 국가 사이로 번졌다.

 

청송군과 영양군의 고추는 순창군과 경쟁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중국에서 값싸게 들어오는 고추와 생존권을 놓고 경쟁한다. 가공식품은 더하다. 영국이 수입하는 치즈는 영국에서 수출하는 치즈와 경쟁한다.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쇠고기는 미국산만이 아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들어오지만 캐나다의 쇠고기도 한우와 경쟁을 선언하고 있다. 다른 나라도 엇비슷한 사정이다. 농수축산물이 경쟁 상품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이익은 생산자나 소비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대부분 기업과 관련 자본에 돌아간다(보베 외, 2002).

 

 

2. 다양성을 잃은 농업

 

추석이면 굳이 승용차로 꽉 막힌 고속도로를 뚫고 고향에 다녀오는 이가 있다. 귀경길에 나설 때마다 부모는 트렁크에 하나 가득 수확한 한해 농작물을 가지가지 실어준다는 게 아닌가. 가격이 얼마 되지 않아도 자식들에 대한 부모님의 애틋한 정성을 몸으로 느낄 뿐 아니라 그 농작물로 밥 지어 먹을 때마다 고향 땅의 정취에 흠뻑 젖을 수 있다고 그는 고마워한다. 돈벌이를 위해 한두 가지 농산품만 심는 농촌이라면 언감생심 생각할 수 없는 호강이 아닐 수 없다.

 

1) 씨앗 주권이 사라지다

 

멀지 않은 과거, 적어도 농부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갈무리해둔 씨앗은 절대 먹지 않았지만 더 많은 수확을 보장한다는 씨앗을 종묘상에서 일괄 구입하는 요즘, 사정이 달라졌다. 수확한 농산품을 전량 시장에 내놓아야 하고 그렇게 하여 벌어들인 돈을 쥐고 끼니때마다 슈퍼마켓 식품 코너를 기웃거려야 한다. 내 땅에서 내가 농사지은 ‘농작물’은 팔아야 할 ‘농산품’이므로 먹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 거다. 농촌은 시방 늙었다. 여러 농산물을 재배하기 벅찬 농촌에서 ‘환금작물’, 다시 말해 돈이 될 농산품만 한둘 심는 일은 이제 이상스럽지 않다. 이른바 ‘소품종 다량생산’의 ‘단작’이다.

 

한 농산품만 재배하면 생태계가 단순해져 환경변화에 대한 완충력이 줄어든다. 홍수와 가뭄 피해는 물론, 해충의 피해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식물이 몰려있으니 해충은 급속히 늘어나는데 해충을 구제하는 천적이 없으니 상품가치를 잃고 싶지 않은 농부는 살충제로 해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단일 작물이 요구하는 영양분이 금방 부족해지니 농부는 비료를 뿌려야하는데 그 비료는 잡초까지 불러들인다. 살충제의 편의에 익숙해진 농부는 제초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환금작물의 씨앗은 자급자족할 때 뿌렸던 씨앗과 여러모로 다르다. 종묘상에게 구입해야 하는 씨앗은 다수확에 맞게 육종한 까닭에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좁다. 따라서 다수확을 기대하려면 씨앗이 요구하는 조건을 잘 맞춰야 한다. 맞지 않으면 수확이 보잘것없게 된다. 마을의 어른에게 물어 재배해도 소용없다. 종자회사에서 권고하는 매뉴얼을 참조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매뉴얼대로 농사지어도 실패했을 경우 종묘상이나 종자회사에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경제 논리로 보아, 수확량이 늘면 시장에서 가격은 떨어진다. 내 수확량이 늘어나는 대신 다른 농부는 형편없어야 큰돈을 차지할 텐데, 그러려면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 투자가 절실하게 된다는 거다.

 

1960년대 초 세상에 등장한 녹색혁명은 단작을 세계화했다. 다양한 씨앗을 여기저기 심던 농촌은 녹색혁명 품종의 씨앗에 맞게 농토를 획일적으로 다듬었고 씨앗이 요구하는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를 적기에 적량 살포해야하는 농부는 관개농업에 의존하게 되었다. 가격이 떨어지는 걸 막고 싶은 농부는 농산품을 구입하는 정부 또는 상인의 권고에 따라 재배 면적을 줄여야 했고 지역에 따라 농산품의 종류를제한하게 되었다. 이른바 ‘비교우위 농업’이 권장된 것이다.

 

비교우위 농업은 지역을 넘어 국가 단위로 넓어졌다. 고추와 마늘 주산지가 감자와 배추 주산지와 일치하지 않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옥수수와 콩은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옥수수와 콩만이 아니다. 어느새 우리나라는 식량의 4분의3을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대신 멀쩡한 농토에 공장을 지어 외화를 벌어들인다. 우리만이 아니다. 국제미작연구소가 있을 정도로 쌀농사의 적지인 필리핀도 농토에 공장을 지었다. 그런데 벌어들이는 외화보다 국제 곡물의 수입 부담이 크자 식량 위기가 심화되었고 사회혼란을 피할 수 없었다(벨로, 2010).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에 기대 자국의 식량기지를 없앤 혹독한 대가를 치룬 것인데, 국제 농산품 재고가 모자라는 시기가 온다면 우리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녹색혁명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화학농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땅이 황폐화된 것이다. 이제 농부는 감산을 피하기 위해 농약과 비료를 뿌린다. 그러자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기업이 감언이설로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특정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농산물이므로 그 제초제를 뿌려도 끄떡없을 것이니 제초제로 잡초를 모두 죽인 농토에서 우리가 개발한 콩과 유채와 같은 농산품을 심으라고 세계의 농부들을 유혹하고 나선 것이다. 살충 효과를 가진 유전자조작 면화나 옥수수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씨앗은 오래지 않아 부작용을 드러냈다. 씨앗에 포함된 조작된 유전자가 주위의 엉뚱한 식물로 옮겨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사료로 먹는 가축이나 심지어 사람에게 예측 못한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김은진, 2009).

 

이제 다수확 품종을 심는 농촌은 씨앗을 갈무리할 필요가 없다. 아니 하면 안 된다. 계약 위반이므로 적발되면 적지 않은 벌금을 물어야 한다. 종자기업이 통폐합되면서 농부는 그 나라 농촌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계 기업의 씨앗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주권을 잃은 것이다.

 

2) 다국적기업 등장

 

비교우위 농업은 다국적기업의 전횡을 낳았다. 막대하게 수확한 농산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팔 수 없는 농부는 결국 다국적기업에 넘기게 되고, 다국적기업은 농산품의 국제교역에 주도권을 차지하고 말았다. 그들이 농산품의 구입과 판매 시의 가격을 통제하는 만큼, 생산자나 소비자는 다국적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다국적기업들은 서로 경쟁한다. 통폐합해 규모를 키우는 다국적기업은 농산품 생산과 가공, 운송에 적극 개입할 뿐 아니라 관련 산업을 수직 계열화했다. 농산품과 사료, 축산과 육가공을 지배하는데 그치지 않고 국제 교역에 주도권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다국적기업에 좌지우지되는 국제 곡물은 이제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 상품이 소비자에게 인도되기도 전에 대금을 주고받는 선물거래는 소문에 민감하다. 수출국의 흉작 소식은 재고와 관계없이 가격을 치솟게 만드는 것이다.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국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오른 가격으로 식량을 구입해야 한다. 외화가 부족하다면 폭동을 감당해야 할지 모르는데, 투자자의 이익에 우선해야 하는 다국적기업은 생산자와 소비자, 외화가 없어 굶주리는 지역의 사정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3) 공장식 축산업의 등장

 

다수확 품종을 집중 재배하면서 남아도는 농산품을 사료로 가공하면서 축산업이 거대하게 변했다. 방목하던 목장은 거의 사라지고, 그 자리를 공장식 축산업이 차지한 것이다. 공장식 축산도 가축을 다수확 품종으로 획일화시켰다. 소, 돼지, 양, 닭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좁아지고, 그 만큼 사육 환경이 획일화되었다. 이제 모든 가축은 예측 가능한 시간 내에 몸집이 어느 이상 늘어나야 한다. 그를 위해 유전자조작 옥수수와 콩을 가공한 사료를 먹이며 성장호르몬을 주입한다. 그래야 어려도 덩치가 커지는 가축을 빨리 도살해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좁은 사육장에 유전자가 단순한 가축을 밀집시켜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에 질병이 창궐하면 순식간에 퍼질 수 있다. 따라서 항생제를 사전에 처방하는 농부는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 상처를 입히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서로 쪼지 못하도록 병아리의 뾰족한 부리를 진작 뭉툭하게 자르거나 서로 물어뜯지 못하도록 돼지의 꼬리를 잘라내는 것이다. 그렇듯, 공장식 축산에서 가축의 생명은 종중되지 않고 오로지 상품으로 취급될 따름이다.

 

가축들은 습성에 맞지 않는 사료에 의존하면서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지만 그 전에 도살할 테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문제는 인수공통 질병이 인간에게 만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류독감을 비롯해 구제역과 수족구병 만이 아니다. 영국에서 시작돼 세계를 긴장시키는 광우병도 공장식 축산이 원인을 제공했다.

 

4) 문화를 잃은 식량

 

요즘 돼지고기는 세계가 똑같다. 미국산 삼겹살이 우리 삼겹살과 맛이 같다. 품종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계란도 우유도 마찬가지고 쇠고기와 닭고기도 그렇다. 농산품만이 아니다. 그 가공식품도 세계가 똑같다. 식재료와 식단 뿐 아니라 조리방법까지 세계가 공통인 까닭에 다국적기업이 공급하는 패스트푸드는 물론이다. 식성의 세계화라기보다 음식에 깃든 문화마저 상품으로 획일화된 것이다.

 

슈퍼마켓에 전시된 수많은 가공식품의 상표는 제각각이지만 재료는 엇비슷하다. 쇠고기는 옥수수의 가공식품이고 계란과 소시지도 마찬가지라고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마이클 폴란(2008)은 주장한다. 그 뿐이 아니다. 설탕을 대신하는 당분으로 옥수수가 가공돼 음료수에 들어간 이후, 비만 인구가 세계적으로 급증했다. 옥수수 덕분에 값싼 육류가 흔해지고 칼로리가 높은 음료수를 거푸 마시면서 여유가 없는 계층의 몸이 불어난 것이다. 이제 서구사회에서 비만은 가난의 상징이 되었다. 식량에 칼로리는 지나치게 높지만 필수 영양소가 부족하게 되면서 성인병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소아비만과 소아당뇨병도 전에 없이 늘었다.

 

 

3. 황폐화된 식량 환경

 

최근 미국과 유럽은 꿀벌이 사라진다고 아우성이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그리 밝지 않다. 꿀벌이 사라지면 사람은 많은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 어쩌면 생존이 어려워질 수 있다. 꿀벌의 집단이 붕괴하는 현상은 사람의 욕심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많은 꿀을 빨리 모으는 품종을 양봉농가에 집중 보급한 결과,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좁아진 꿀벌은 면역력이 떨어지고 환경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벌통 관리에 애를 먹는 양봉농가가 애벌레에 알을 낳는 응애의 공격을 차단하고자 살충제를 뿌렸건만 살충제가 오히려 꿀벌을 공격하게 되었는데 피해는 거기에서 그친 게 아니다. 가루수정을 위해 꿀벌을 필요로 하는 아몬드 농업이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대하게 밀집되면서 꿀벌 집단 붕괴 현상이 커진 것으로 제이콥슨(2009)은 주장한다. 많은 아몬드를 빨리 여는 나무를 넓은 면적에 획일적으로 심자 꽃이 피는 2주일 동안 미국은 물론 유럽의 꿀벌까지 총동원해야 했는데, 그때 질병을 공유한 벌들이 가루수정을 마치고 다시 퍼져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수입하는 세계 아몬드 수요의 80퍼센트를 캘리포니아에서 떠맡고 있다.

 

1) 전용되는 식량기지

 

우리 정부는 농토 확보 명분으로 매립한 새만금 일원의 갯벌을 다시 도시로 개발하려고 한다. 개발로 사라지는 농토를 대신하겠다던 그 갯벌은 수많은 어패류의 산란장일 뿐 아니라 자연스런 식량보고였지만 대부분 사라졌다. 칼로리와 영양분은 물론이고 가격으로 볼 때 육지의 어떤 농토보다 경제적 가치가 높지만 한시적 개발 이익을 위해 선조가 물려준 갯벌을 매립하고 만 것이다. 막대한 플랑크톤의 탄소동화작용으로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지구온난화를 예방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상승된 해수면을 타고 넘어오는 파고를 완충하는 조간대를 우리는 당대에 잃었다. 후손의 생명은 그만큼 위협받을 것이다.

 

바다와 같던 중국의 황하가 갈수기에 마르는 것은 농토를 도시와 공업단지로 전용하면서 강물을 돌렸기 때문이다. 어디 황하 만이랴. 식량기지를 개발하는 곳은 우리나라와 중국뿐이 아니다. 이제 화학농업의 한계가 드러나는데 세계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다. 앞으로 늘어난 세계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할지 걱정스러운 상황에서 외채에 시달리는 국가는 기존 농토에 헐값으로 수출되는 화훼작물이나 기호식품을 재배한다.

 

2) 석유위기 앞의 농업

 

지금은 석유 농업이다. 화학비료는 물론이고 살충제와 제초제도 석유를 가공해 만든다. 기계화된 현대농업은 석유 없이 파종, 경작, 수확, 건조, 운반이 불가능하다. 1000칼로리의 옥수수를 수확하려면 그 10배의 석유를 쏟아야 하고, 그렇게 재배한 옥수수를 10킬로그램 먹여야 쇠고기 1킬로그램을 겨우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고기로 배불리면 그 10배의 옥수수를 소비하는 셈이고 다시 그 10배의 석유를 낭비하는 꼴이다.

 

최근 석유위기를 극복하려는 수단의 일환으로 바이오연료를 공급하려는 정책이 지구촌의 일각에서 섣불리 추진되고 있다. 옥수수나 사탕수수로 디젤과 에탄올을 정제하겠다는 건데, 그를 위해 소비되는 석유는 둘째 치고, 자동차 한 대에 주유하는데 들어가는 에탄올은 한 사람이 1년 소비할 곡물을 가공해야 한다고 환경운동가는 주장한다(마슬린, 2010: 141). 지구온난화를 대비해 도시에 ‘농장건물’을 짓겠다는 사람도 있다. 에너지 효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LED와 태양빛을 실내로 끌어들여 농산품을 수경재배하겠다는 계획이 그것이다(경향신문, 2009.7.1). 뉴욕 맨해튼에서 경제성 있다는 농장빌딩을 우리나라에 추진하고 있는데 과연 타당할까. 제안자는 30층 높이의 건물을 짓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도 물론이고 수경재배를 위해 들어가는 화학물질도 에너지 투입 없이 공급될 수 없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땅에 뿌리 내리지 않은 농산품이 먹는 이에게 장차 안전할지 함부로 짐작할 수 없다.

 

3) 식품 첨가물의 확산

 

다국적기업의 거대한 화물선에 실려 오대양과 육대주를 장시간 누벼야하는 농산품은 중간에 상하면 상품가치를 잃는다. 따라서 수확 후 농약 살포는 필수적이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공장식으로 밀집시켜 사육하는 가축처럼 바다나 호수에서 양식하는 어류도 항생제와 호르몬을 비롯한 많은 화학약품을 투여한다. 또한 한 번 가공하면 오래 유통시켜야 하는 가공식품은 맛과 색이 변하지 않은 상태로 상품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수많은 화학약품을 첨가하고 세계 곳곳에 지점을 확보한 패스트푸드 역시 동일한 맛과 향을 유지하려고 합성 첨가물을 넣는다.

 

넨시 드빌(2008)은 “슈퍼마켓이 우리를 죽인다!”고 경고하고 안병준(2005)은 “아이에게 과자 대신 차라리 담배를 주는 게 낫다.”고 어처구니없어 한다. 아토피는 오염된 대기만 원인이 아니다. 우리 몸의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식품 속의 첨가물과 무관하지 않다. 한 사람이 평생 320킬로그램을 섭취한다고 야마모토 히로토(2006)가 주장하는 화학물질이 그것이다.

 

4) 음식 쓰레기, 해양오염, 그리고 남획

 

늘어나는 음식 쓰레기는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바다에 버려 해양오염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데, 어장의 물고기들이 허겁지겁 버리는 그 쓰레기를 먹기도 한다. 결국 우리 식탁에 오를 물고기들이다. 미국은 음식 쓰레기가 전체 쓰레기의 40퍼센트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미국이나 우리나 단지 유통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건드리지 않은 멀쩡한 식품이 쓰레기로 둔갑하기도 한다. 버리는 식품으로 굶주리는 세계의 인구를 충분히 먹일 수 있는 양이다.

 

남획으로 인한 해양어류의 고갈은 양식업의 규모를 키우고 있으나 그로 인한 해안의 파괴는 쓰나미의 피해를 키울 뿐 아니라 어족자원 보전에도 역행한다. 많은 양식장이 어패류의 산란장을 파괴하고 들어서는데, 항생제에 찌들거나 세균에 감염된 오폐수가 걷잡을 수 없게 배출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와 캐나다 일원의 생명공학 연구소에서 비정상적으로 덩치를 키운 유전자조작 어류의 양식을 연구하고 있다. 만일 그런 어류가 양식장을 빠져나가 조작된 유전자를 퍼뜨릴 경우 어떤 생태적 피해가 확산될까. 사전에 그 규모를 파악할 수 없을 뿐더러 대책을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5)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

 

지난 100년 동안 섭씨 0.7도 정도 상승한 지구촌의 기온은 태풍과 허리케인의 강도와 횟수를 늘렸고 경작지를 메마르게 했을 뿐 아니라 사막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세계 평균보다 정도가 심해 1.4도 높아진 우리나라의 해역은 이미 아열대화 되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보라문어와 같은 난대성 어류가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명태와 대구와 같은 한대성 어류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해초가 우거졌던 바위에 백화현상이 두드러지게 늘어나는데, 육지도 마찬가지다. 감나무의 남방한계선이 북상하면서 사과의 재배지가 높은 위도로 점차 옮겨가고 있다.

 

온난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열대과일을 재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농작물의 경작은 기온만이 변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온난화되면서 토양미생물의 종류와 분포 상황이 바뀌고 강우의 양과 시기가 변하면 당장 기존의 농작물부터 잃게 될 테지만 그렇다고 아열대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조건이 쉽게 조성될 리 없다. 열대과일은커녕 식량위기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사막화도 걱정이다. 많은 예산과 인력으로 나무를 심고 초지를 조성하는 중국도 내몽고 일원에 확산되는 사막화를 진정시키지 못하는데 몽골의 사정은 더욱 열악한 실정이다. 앞으로 사막화되는 초원은 가축 방목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해양 곳곳의 어장 역시 전에 없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해수 이동이 변하기 때문인데 그 뿐이 아니다. 다수확 품종 위주의 지나친 품종개량으로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줄어든 농산품이 온난화된 기후에 견딜 수 없다면 내일의 식량 사정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4. 다시 지역으로

 

기아 인구가 많은 아프리카라고 해서 기름진 경작지가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은 외채가 국가를 짓누르고 해외 기업이 경작지를 독차지하는 탓에 굶주린다. 부정한 정권에 제공된 외채였고 그 외채에 대한 이자를 어느 정도 챙겼다면 이제 탕감할 때가 되었다고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 출신인 지글러(2008)는 주장한다. 굶주리는 지역에 그때그때 식량을 공급하는 자선은 한시적 대책에 불과하다. 지글러의 주장처럼 떳떳하지 못한 외채였다면 탕감하여 수출용 농산품 재배에 매달리는 일이 줄어들도록 배려해야 하고, 동시에 자신의 땅에서 평화롭게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안을 모색하는 편이 근본적으로 바람직할 것이다. 지역의 식량을 지역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식량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어야 평화가 유지된다. 그를 위해 식량은 안보가 아닌 주권 차원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윤을 앞세우는 기업이라면 모를까, 제 나라의 사정이 어두워져도 식량을 수출하는 국가는 드물다. 다국적기업이라면 국제시장에 식량이 부족할 때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안정된 식량을 확보하려면 각국 정부는 식량기지를 해외에 마련하기보다 국내에 자급자족이 가능한 농토를 확보하는 게 안정적이다. 바로 ‘식량주권’이다.

 

식량이 무기 또는 투기화 된 마당에 축적한 외화로 식량을 수입하려는 자세는 석유위기가 멀지 않은 시대의 대안일 수 없다. 분배의 불균형이 있는 세계 식량은 위기의 경계에 있을지언정 뿐 모자라지 않는다. 위기는 위험과 기화를 동시에 제공한다. 우리는 위기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이때, 예측할 수 없는 환경변화에 최대한 견딜 수 있도록 농산물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그를 위해 지역은 제철 제 고장 농산물로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다품종 소량 생산의 가능성을 타진해야 하고 그를 전제로 농토를 확보해야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자면 농사에 종사하는 인구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할 텐데 당장 어렵다면 지역의 자치단체는 유럽과 일본처럼 도시 근교에 텃밭을 조성해 분양하는 방법을 선행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안전한 식량은 자신이 농사지은 농작물이나 사육한 가축이지만 당장 그럴 여건이 안 된다면 신뢰할 수 있는 이가 생산했거나 키운 농산물이나 축산물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신뢰할 수 있는 생산자를 알지 못한다면 그런 농산물을 판매하는 상점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서구의 유기농 마켓이나 우리나라의 생활협동조합이 그런 상점의 예가 된다. 생활협동조합의 소비자 조합원이 되어 생산자 조합원이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업으로 힘겹게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내놓은 제철 제 고장의 농산물과 축산물을 흔쾌히 구입하며 가족과 밥을 지어 먹는다면 땅도 살리고 농민도 살리고 나와 가족의 내일도 살릴 수 있다. 가격이 비싼 만큼 넘치지 않게 구입해 다 먹는다면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고 비만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

 

진정한 유기농산물의 자격은 제철 제 고장에서 생산해야 얻을 수 있다. 운송 과정에서 많은 석유를 소비한 수입 농산물은 유기농산물의 자격을 잃는다. 유기농 커피와 같은 기호식품이나 운송 과정에서 농약을 뿌리지 않은 유기농 열대과일은 먹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 다만 아직 피할 수 없다면 생산자의 권리를 수용한 ‘공정무역’ 농산물을 구입하는 편이 바람직하리라. 폴란(2009)은 ‘음식’을 먹으라고 권한다. 상품이 아니라 음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덧붙여 음식 쓰레기를 되도록 줄이고 몸이 비대해지지 않도록 과식을 삼가하고 주로 채식을 하자라고 제안한다. 아무래도 가축을 공장식으로 사육하는 과정에서 식량이 낭비되고 물과 에너지가 과소비되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인심과 환경이 지금보다 좋았던 시절, 우리 조상의 식성이다. 우리나 세계나 자연스런 식단에 언제나 답이 있다. (방송대 교재, <세계의 정치와 경제> 중, 2010년 12월 발행 예정)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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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준. 2005.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국일미디어.

Bello, Walden. 김기근 옮김. 2010. <그 많던 쌀과 옥수수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더숲.

Bové, José, François Dufour. 2002. 홍세화 옮김.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울력.

Deville, Nancy. 이강훈 옮김. 2008. <슈퍼마켓이 우리를 죽인다>. 기린원.

Diamond, Jared. 김진준 옮김. 2001. <총ㆍ균ㆍ쇠>. 문학사상.

Hiroto, Yamamoto. 손성애 옮김. 2006. <오염된 몸, 320킬로그램의 공포>. 여성신문사.

Jacobsen, Rowan. 노태복 옮김. 2009.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 에코리브르.

Maslin, Mark. 조홍섭 옮김, 2010. <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 한겨레출판.

Pollan, Michael. 조윤정 옮김. 2008. <잡식동물의 딜레마>. 다른세상.

Pollan, Michael. 조윤정 옮김. 2009. <행복한 밥상>. 다른세상.

Ziegler, Jean. 양영란 옮김. 2008. <탐욕의 시대>. 갈라파고스.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2. 17. 12:31

 

도심을 지나는 고속도로에는 시간에 따라 막히는 구간이 거의 정해져 있다. 각오를 하고 천천히 지나다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챙 넓은 모자에 마스크로 얼굴 가린 사람들. 훔친 카드로 현금 찾으러 현금인출기 앞에 모습을 드러낸 범죄자 같은 행색으로 뻥튀기나 오징어를 파는 그들은 햇볕과 매연을 극도로 경계하는데, 소용 있을까 싶다. 차가 막히는 틈에 장사한다지만 돈 받고 물건을 건네면서 거스름돈을 내주려 이리저리 뛰는 그들이 오히려 도로를 막히게 하는 건 아닐까. 어쩌다 순찰대가 보이면 차선을 가로질러 꽁지 빠지게 달아나는 그들의 건강은 내내 괜찮을지.

 

고속도로와 접속되는 도로 한쪽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좌판이 있다. 신호대기하는 자동차를 상대로 바나나를 파는데,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가 1루에서 사용하는 야구 글러브를 두개 엎어놓은 듯 커다란 바나나 한 송이가 오전에 3천원, 오후면 2천원이다. 한 송이만 사도 온 가족이 실컷 먹을 것 같은 바나나. 멀지 않았던 과거, 선망의 대상이었다. 1980년대 초, 생태조사를 위해 제주도로 간 대학원생은 호주머니와 한참 상의를 한 후 달랑 한 쪽을 사서 일행과 나누어먹었다. 대학 등록금이 지금의 10분의1도 되지 않았던 당시 5백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산 바나나는 제주도의 한 온실에서 재배한 것이었다.

 

1980년대 말, 그 대학원생은 미국에 갈 일이 있었다. 부자나라라 그런가. 그리 고급도 아닌 호텔의 로비에 바나나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마음대로 방에 가져가도 된다는 게 아닌가. 주위 눈치도 살펴야하니 딱 한 송이만 가져갔는데, 호텔을 옮길 때까지 시커멓게 변한 바나나를 몇 쪽 먹지도 못했다. 맛난 음식 먹을 일 많은 일정 중에 바나나에 미처 손이 가지 않았던 거다. 그 후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도 바나나가 흔해졌다. 흔해서 그런 건 아닌데, 웬만큼 배고프지 않으면 식품매장에 쌓인 바나나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참 좋은 식품임에 틀림없지만 좀 찜찜하다. 생산지에서 먼 길 수송되는 과정에 흥건히 뿌렸을 농약이 과육에도 스몄을 것 같다.

 

다년생 풀에서 재배하는 만큼 과일이라기보다 채소에 가까운 바나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농장에서 껍질이 파란 상태에서 출하돼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우리 고속도로 입구에 잔뜩 포개져 있을 정도로 흔하지만 전문가는 멸종위기를 점친다. 품종이 지나치게 단순해 변화된 환경에서 여전히 재배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거다. 너나 할 것 없이 다수확 품종만을 심어 곳곳에 널렸어도 지구온난화로 재배 환경이 바뀌면 일거에 사라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정도로 유전적 다양성이 협애해진 요즘의 바나나는 머지않아 다시 선망의 대상으로 바뀔지 모른다.

 

사탕수수와 담배가 여전히 유명한 쿠바는 한때 그 사탕수수와 담배 때문에 굶주려야 했다. 몇 가지 안 되는 품종을 획일적으로 광활하게 심는 ‘단작’(單作, monoculture)이 원인이었다. 비옥한 땅의 끝에서 끝까지 사탕수수와 담배를 심은 쿠바의 농장을 소유했던 미국의 농업 자본은 지금부터 50년 전 아바나에 입성한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이끌던 혁명군에 쫓겨 혼비백산 탈출하기 바빴고, 쉽게 돌아오리라 믿었지만 미국에 주저앉아야 했다. 독재정권의 착취에 진저리를 친 민중이었기에 혁명세력에 대한 지지가 워낙 단단해 막강한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반군의 몇 차례 침입도 소용이 없었지만, 경제 사정이 이내 호전되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턱밑을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묶어두려는 소련에서 사탕수수와 담배를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구입했던 거다.

 

그런 소련이 무너지자 미국은 재빨리 경제 봉쇄에 나섰고 판로가 막힌 사탕수수와 담배를 식량 대용으로 쓸 수 없는 쿠바는 굶주림을 한동안 감내해야 했다. 오로지 사탕수수와 담배만을 재배하다 호되게 혼난 쿠바는 지금 대부분의 식량을 자급자족한다. 아바나 곳곳에 유기농장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면서 건강도 자존심도 회복되었다고 한다.

 

호주에도 사탕수수를 끝 간 데 없이 심었다. 호주에 원래 사탕수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사탕수수 잎을 갉아먹는 해충이 있을 리 없지만 나타났다. 천지사방이 사탕수수로 가득하니 어떤 풍뎅이가 건드려 보았을 거고, 달짝지근한 게 먹을 만하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중간 중간에 다른 작물을 심었다면 풍뎅이는 그렇게 늘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청정한 습기가 보전되었다면 개구리가 풍뎅이를 먹으며 늘었을 테고, 개구리를 잡아먹으려 다가온 뱀과 족제비도 풍뎅이를 조절했겠지만 오로지 사탕수수만 심은 관계로 한 번 맛들인 풍뎅이는 사탕수수밭에서 제 세상을 만끽했던 게다.

 

풍뎅이가 눈에 띄게 늘자 살충제를 뿌렸던 농장주는 해마다 보강시킨 살충제도 소용없게 된 순간을 맞아야 했다. 알을 많이 낳는 풍뎅이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독성을 이겨내고 있었던 거였다. 독성을 갱신한 살충제는 엉뚱하게 남았던 개구리를 몰아냈고, 개구리를 먹던 다른 동물도 쫓아냈으니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농장주는 하와이의 수수두꺼비를 들여오기로 했다. 과연 덩치가 축구공 반 만한 그 두꺼비는 풍뎅이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고 걱정은 드디어 물 건너가는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데에서 그만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엔 호주에 천적이 없는 수수두꺼비가 막대하게 늘어나는 게 아닌가.

 

경사가 심한 하와이에서 엉금엉금 기는 습성을 지닌 수수두꺼비는 평지인 호주에 오자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사탕수수밭에서 풍뎅이를 원 없이 잡아먹으며 집단을 키운 그 두꺼비는 떼를 이뤄 움직이는데, 멀리서 보면 땅이 들썩이는 듯해, 보는 이를 섬뜩하게 만들 정도였다. 풍뎅이로 양이 차지 않자 토종 곤충과 희귀한 개구리까지 먹어치우는 바람에 여간 골칫거리가 아닌 수수두꺼비를 주목하지 않던 언론은 악어가 죽자 난리를 쳤다. 당국은 뭐하냐는 거였다. 처음 보는 통통한 두꺼비를 냉큼 삼킨 호주 특산 크로커다일 악어가 수수두꺼비의 피부 독에 중독돼 자빠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하는 수 없어 수수두꺼비 두 마리에 생맥주 한 컵을 경품으로 내놓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아무리 할일 없는 주당이라도, 일단 취하면 더 잡으려들지 않았던 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당국은 유전자조작 기술로 불임유전자를 삽입해 멸종으로 유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글쎄, 농작물에 대한 유전자조작도 대단히 어려운데, 수수두꺼비에 대한 유전자조작이 쉬울지 알 수 없지만, 만일 성공한다면 그 뒤가 더 걱정일 수 있다. 조작된 유전자가 악어에 삽입된다면? 수수두꺼비를 회피해야 한다는 각인이 악어의 뇌리에 박히지 않는다면 사탕수수를 끝 간 데 없이 심도록 허용한 호주 당국은 악어마저 멸종될 우려를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어디 악어에서 그치겠는가.

 

청송과 영양에서 오래 생산해 유명해진 청양고추는 청양에도 심지만 회사에서 구입해야 하는 씨앗의 유전자는 극히 단순해졌다. 고추를 비롯해 우리나라에 심는 대부분의 채소 씨앗의 사정이 그렇다. 유전적 다양성을 상실한 씨앗을 넓게 심은 농부는 로또하는 기분이 들겠다. 수확이 모 아니면 도이기 때문이다. 모든 조건이 좋았는데 수확을 앞두고 질병이 돌면 일거에 못쓰게 되는 마술.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비닐하우스에 심으면 탈이 없지만 비용이 들어가 원가가 상승한다. 다른 농토에 질병이 돌고 나만 괜찮아야 로또에 당첨될 수 있는데, 운이 좋을 때는 그리 많지 않다.

 

유전자가 단순한 씨앗은 한꺼번에 꽃피고 열매를 맺으니 그때 농부는 몹시 바빠야 한다. 때를 놓치면 허탕이니 인건비가 적지 않게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일본에 거액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하우스용 딸기가 그렇다. 스페인에서 재배하는 유럽의 가지가 그렇다. 그렇게 ‘소품종 다량생산’으로 수확한 가지를 보조금 받아 원가를 낮춘 다음에 수출하면서 사단이 났다. 지역 특산 가지들이 자국 시장에서 추풍낙엽처럼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한데, 지역 농부들의 파산을 부른 소품종 다량생산은 인큐베이터처럼 재배 환경을 통제하는 거대한 비닐하우스에서 싹틀 뿐이다. 지구온난화로 환경이 바뀌면 사라질 가능성이 지역의 가지에 비해 현저히 높다. 유전적 다양성을 상실한 씨앗이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원시림 지대를 흐르는 커다란 강은 물이 항상 많고 맑아 그냥 떠 마실 수 있다. 아니 있었다. 아마존 숲을 끝 간 데 없이 불태워 콩을 심기 전까지 그랬다. 아직 공식적으로 유전자조작 콩은 아니라지만 분명한 건, 그 콩의 유전적 다양성도 매우 낮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재배 방식은 제한적일 테고, 살충제와 제초제가 적지 않게 들어갈 게 틀림없다. 원시림에서 사냥하며 식솔 먹였던 터전에 광활한 콩 농장이 들어서자 원주민은 사냥감만 잃은 게 아니다. 마실 물마저 말라버렸다. 웅덩이에 고인 물에는 비행기에서 살포한 농약이 뿌옇게 스몄는데 등에 업힌 아이와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은 목마르다 아까부터 보채니 엄마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흙탕을 가라앉힌 물통에서 뿌연 물을 한 컵 떠 주자 허겁지겁 마시는 아이들. 그들은 전에 없던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속절없이 죽고, 미국을 제친 브라질은 세계 최대 콩 수출 국가로 화려하게 등극했다.

 

옥수수가 원산지인 멕시코에서 원주민의 주식은 당연히 옥수수다. 옥수수를 갈아 반죽한 또르띨라를 화덕에 만두피처럼 둥글게 구워, 다진 풋고추와 잘게 자른 양파와 으깬 토마토를 넣고 말아서 먹는다. 그 3가지를 멕시칸소스라고 말하는데, 멕시코 국기는 초록색과 흰색과 붉은색으로 구성돼 있다. 멕시코에 일찍이 옥수수가 없었다면 마야도 잉카도 찬란한 문명을 꽃피울 수 없었다. 멕시코 원주민은 개구리를 신격화한다. 개구리가 있는 곳에 물이 있을 거고, 물이 있다면 옥수수를 재배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멕시코 원주민들은 옥수수를 가축에 함부로 먹이지 않는다. 성스러운 곡물이기 때문이다.

 

옥수수에 포함되는 탄소는 다른 곡물의 탄소와 동위원소가 다르다. 학자들은 탄소동위원소를 측정해 옥수수 섭취량을 국가 별로 비교한다. 아침에 우유를 부어 먹는 옥수수 가공식품 이외에 식단에 자주 옥수수 요리를 올리지 않는 미국인을 멕시코인과 비교했더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쓴 마이클 폴란이 “걸어 다니는 콘칩”이라고 해야 할 지경으로 미국인이 옥수수를 많이 먹는다는 게 아닌가. 원인은 음료수에 들어가는 옥수수 시럽과 고기였다. 미국에서 사육하는 대부분의 가축은 옥수수 사료를 먹는다. 그것도 유전자가 조작된 걸로.

 

하늘에서 보아도 끝이 없는 밭에서 걷은 옥수수의 양은 실로 막대한데 대부분 가축사료로, 일부가 시럽으로 가공되고 일부는 수출된다. 과학자의 성과로 옥수수 시럽의 당도가 설탕보다 높아지면서 가격까지 저렴해지자 코카콜라를 필두로 옥수수 시럽으로 설탕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이제 대부분의 음료수는 옥수수 시럽으로 단맛을 낸다. 그렇게 기업 수익을 늘린 음료수는 비만을 부추기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미국을 비롯한 북중미와 유럽의 많은 국가가 그렇다. 일회용 1리터 용기를 구입하면 대형 매장의 문을 나서기 전까지 몇 번이고 리필이 가능한 까닭에 가난한 이가 선택하게 된다. 옥수수는 고기의 값도 크게 낮췄다. 원료를 궁금하게 하는 다진 고기는 싱싱한 채소보다 가격이 쌀 뿐 아니라 갈증마저 부추긴다. 서구의 비만은 역설적으로 가난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민족 대 이동 현상이 전국에서 연출되는 추석, 혼자 사는 어떤 이는 반드시 차를 몰고 고향에 간다. 시골의 부모님이 이런저런 농산물을 잔뜩 싸주기 때문에 열차를 이용할 수 없다고 너스레떠는데, 멀지 않았던 과거, 우리 농촌이 다 그랬다. 이른바 ‘다품종 소량생산’이다. 지난 가을에 갈무리한 온갖 채소와 곡식의 씨앗을 여기저기에 심어 계절에 따라 다양한 풍미를 맛볼 수 있게 하는 다품종 소량생산은 해충 피해를 최소화할 뿐 아니라 가족의 영양을 높였고 무엇보다 자급을 가능하게 했다는 게 자랑이었다. 환경이 변해 어떤 곡식의 소출이 줄면 다른 곡식이 잘 돼 벌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곡식도 품종에 따라 심는 장소도 날짜가 달랐다. 50의 나이에 철학교수를 그만둔 초보 농사꾼인 윤구병은 《잡초는 없다》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한다. 할머니에게 콩 심는 시기를 물으니 “그 손 펴봐!” “그건 감꽃 필 때 심고, 저쪽 손!” “그건 감꽃 질 때 심는 거여.” 했다는 거다. 오랜 개성을 간직한 삼라만상의 생명에 곡식과 잡초가 따로 나누어질 리 없다는 걸 윤구병은 깨닫는다. 미안한 마음으로 곡식만 골라 심지만 개성을 배려하면 몸도 마음도 생태계도 건강하다는 걸 배웠다.

 

단작은 씨앗과 지역의 문화와 개성을 무시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 토지의 환경이 다르건만 단작은 오로지 그 씨앗에 맞는 경작 조건을 요구한다. 만일 유전적 다양성의 폭까지 좁다면 경작 방식은 더욱 협애해지고, 유전자마저 조작했다면 환경변화에 극도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씨앗은 동네 어른이나 선배의 충고를 배척한다. 종자회사의 매뉴얼을 잘 살펴야 로또에 당첨될 자격을 허용할 따름이다.

 

단작은 지구온난화를 맞을 후손에게 부메랑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바뀐 경작 환경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단작의 유혹에 길들어 조상이 다채롭게 물려준 전통 씨앗들을 잃어버리지 않았던가. 늦기 전에 획일적 편의에 길들여진 타성을 다양성으로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개성이다. 농작물에 국한하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사이언스올, 2009년 2월 3번 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