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7. 6. 1. 18:14
 


여름날 심신 산골에 들어가면 시원하다. 계곡의 물도 시원하지만 우거진 나무의 잎사귀가 만든 그늘에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땀을 식혀주니 더욱 시원하다. 거기에 하나 더. 그늘에서 듣는 흰배지빠귀와 검은등뻐꾸기의 소리는 무더위를 잊게 한다.

 

얼마 전 인왕산에 오르니 꾀꼬리와 뻐꾸기가 울고, 날이 저물 무렵 검은등뻐꾸기와 흰배지빠귀 소리가 들린다. 대도시 인근에 모처럼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들리는 소쩍새와 호랑지빠귀 소리는 피로에 지친 도시인의 심사를 달래는 듯하다. 저 소리를 도시 가까이에서 들을 수 없을까. 5분 걸어 반가운 이웃 만날 수 있는 녹지에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이웃 사이에 갈등은 줄어들 텐데. 얼굴 빤히 본다고 무섭게 노려보기보다 통성명하며 반기는 이웃이 늘어날 텐데.

 

60년대 인천 주변의 지붕 낮은 집은 키 큰 참중나무로 둘러싸였고, 저녁 무렵 참중나무에 깃든 참새들이 새벽에 재재거려 단잠을 깨웠다. 요즘 참중나무와 지붕 낮은 집은 모습을 감추었고 참새도 드물지만, 입주한지 십여 년이 지난 아파트 단지에 직박구리가 찾아온다. 도로와 인접한 아파트 단지에 심은 일본잎갈나무와 보행자도로의 느티나무 가로수가 제법 높게 자랐고, 해 뜰 녘 찾아와 “삐이요 삐이요 삐 삐 힝요 히이요” 상쾌한 아침을 연다.

 

가까운 거리는 걷는 게 중년의 건강에 좋다. 아직 뜨겁지 않은 아침, 일본잎갈나무와 느티나무가 만든 녹색 터널을 걸으면 기분도 상쾌하다. 오늘도 그렇게 아침을 걷는데 아상하다. 어제 비를 뿌렸나? 보도블록엔 흩어진 물방울 자국이 이상스럽게 녹색 터널 아래에만 떨어져 있다. 보도블록에는 왜 없는 걸까. 아하. 나무에 살충제를 뿌린 모양이구나. 갑자기 기침이 나오려 한다.

 

며칠 전에 마스크를 착용한 인부들이 자기 머리 위로 살충제를 뿌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 나무 아래를 지날 엄두가 나지 않아 차도로 들어가 하마터면 택시에 부딪힐 뻔 했는데, 그 작업반이 어제 우리 아파트 단지를 지난 모양이다. 그 인부들은 괜찮을까. 그러고 보니 오늘 새벽에는 직박구리가 울지 않았다. 녹색 터널을 걸어 지날 때면 보행자를 무서워 않던 직박구리를 서너 마리 만나곤 했는데 보이지 않는다. 살충제를 피해 날아간 걸까.

 

몇 년 전, 독일의 도시를 걸을 때, 도심 곳곳의 자투리녹지마다 부리가 붉고 몸이 검은 지빠귀 닮은 새를 만났다. 생김새보다 울음소리가 참 예뻤던 그 새를 보고 우리 도시의 삭막함을 한탄했는데, 동네에서 직박구리를 보아 얼마나 반가웠던가. 한데 살충제라니. 이 도시는 사람과 애완동물 이외에 다른 동물의 접근을 거부해야 하나. 사람은 생태계의 이웃을 손님으로 맞을 수 없어야 하는 것인가.

 

도시에서 새를 만나려면 곤충의 애벌레가 약간은 남아 있어야 한다. 한데 물보다 끈적끈적한 살충제는 한동안 애벌레를 죽일 것이다. 이솝우화에서, 황새에게 접시로 음식을 내준 여우와 여우에게 호리병으로 음식을 대접한 황새는 화해하지 못했다. 자신만 아는 사람은 언제 생태계의 이웃과 화해하려 할까. 끈적끈적한 농약은 인부와 보행자의 폐를 파고들었을 것이다. 성경은 대접을 받으려면 남을 대접하라고 일렀건만, 살충제라니. 정떨어지는 대접을 받은 자연은 우리에게 어떤 대접을 준비할까. 걱정이다. (인천e뉴스, 2007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