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1. 1. 6. 23:36

 

맛있는 식품법혁명, 송기호 지음, 김영사, 2010.

 

 

담배꽁초를 불려 시커멓게 된 물을 커피와 섞어 판 다방 주인이 검찰에 구속된 사건이 1970년대에 있었다. 이른바 꽁피라 했던 그 커피는 공업용 색소로 붉게 염색한 톱밥과 섞인 고춧가루로 이어졌고 변색한 식용유가 들어간 섞은 참기름, 물엿을 넣은 벌꿀, 싸구려 술을 섞은 고급양주로 거듭 변신해왔다. 요즘은 전처럼 고약한 식품 사건은 드문 듯한데, 사라진 건 아닐 터.

 

불량식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직무유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언론에 실린다. 식품과 의약품의 안전을 관리, 감독할 뿐 아니라 연구를 병행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국민의 삶의 질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향상시키겠다는 슬로건을 앞세우는데, 정작 시민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위상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식당이나 작은 규모 사업체의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성과와 무관하게, 거대 식품회사의 관행은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장하는 이중적 태도를 연출하기 때문이다. 색소나 방부제와 같은 첨가물의 사용을 제한하기보다 기준치 이하라며 용인하는 행정에서 그치지 않는다. 성분과 원산지를 허술하게 표시해서 소비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일이 조장되기까지 한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사용한 식품에 대한 표시제가 시행되자마자 식품의약품안전청은 6개월의 경과기간을 설정했다. 소비자를 위한 행정은 분명히 아니었는데, 가공 식품에 표시된 농산물의 원산지는 애매하게 외국산이다. ‘미국산으로 표기하면 유전자 조작이라는 걸 소비자들이 알아차릴까 노심초사한 걸까. 식품 안전에 관심이 많은 시민단체나 전문가가 아니라면 식품회사를 눈물겹게 배려하는 법 조항들을 도저히 눈치 채지 못한다. 그래서 식품 관련법들을 주목해온 송기호 변호사가 다시 나섰다. 소비자들이 행동하지 않아도 관계당국이 자진해서 제도를 개선할 리 없기 때문이리라.

 

발암 가능성이 있는 세척제를 학교 급식 시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목록을 확인한 순간부터 5년 동안, 정부에 모두 124차례 행정정보 공개를 청구해 문서들을 어렵사리 구한 송기호는 소비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식품회사의 편의와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식품법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소비자의 건강을 위한 듯 보이는 식품 관련법들은 거룩한 총론과 달리 각론과 그 하위의 고시와 지침들에 기업을 위한 온갖 배려를 어김없이 끼워넣었다는 걸 들춰낸다. 힘이 없는 식당이나 작은 가게를 텔레비전 카메라를 대동하고 급습하듯 들어가 혁혁한 전과를 올리는 관계 당국이 왜 커다란 식품회사에 무력하기만 한지, 맛있는 식품법혁명을 읽으면 무릎을 치며 알게 된다.

 

집요한 정보 청구와 민원 제기로 학교급식 식기세척에 호흡기 화상 물질의 사용을 막아내는데 성공했지만 정작 발암 가능한 물질을 빼지 못한 송기호는 아이들의 건강보다 자동식기세척기 쪽을 향해 미소짓는 법의 맨얼굴을 보았다고 한탄한다. 그뿐인가. 환경부 장관은 생수회사를 감쌌다. 법률에 이라는 글자 하나를 슬며시 집어넣어 발암 물질인 브론산염이 생성될 수 있다고 세계보건기구가 경고한 생수 오존처리 기술을 생수업체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인데, 환경부는 한술 더 떴다. 생수병 겉면에 처리방법을 표시할 의무마저 면제해준 것이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무시하는 처사는 유착을 의심하게 하는데, 소비자들은 합법의 피해를 피할 수단이 없다.

 

쌀을 먹으면 정신장애가 올까. 미국에서 막대하게 수입한 밀을 소비해야 하자 박정희 군사정권은 어용학자를 동원했다. 주식인 쌀을 폄훼한 뒤 분식 장려운동에 나서면서 혼식도 요구한 것이다. 그때 학교 주변에 분식집이 들어섰고 담임교사는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해야 했다. 학생들은 검사 전에 친구의 도시락에서 콩을 빌려야 했고. 알코올에 물을 타는 방식은 술을 모독하건만 그런 희석식 소주를 버젓이, 게다가 사카린이나 아스파탐과 같은 합성 감미료까지 넣을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법이 허락했다. 우리나라에 알코올 중독자가 많은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고 간파하는 송기호는 천일염을 식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식품법을 이해하지 않는다. 우리가 오래 먹어왔던 천일염은 여러 자연 성분을 포함하므로 정제소금이 일으키는 건강의 문제를 완충해왔건만 법은 그렇다.

 

오미자, 대추, 결명자와 같이 우리 산하의 많은 자연 열매들이 커피에 밀려 기호식품의 가치가 인정되지 않았던 일, 서양 약사법 때문에 우리 산천의 온갖 약재가 천대받는 일, 유전자 조작 식품을 안전하다고 심의한 일, 그리고 조리사를 천대하고 영양사를 우대하게 된 일 역시 소비자보다 생산자, 개인보다 기업을 배려하는 법률에 의거할 텐데, 그 배경에는 조선인을 비위생적인 집단으로 매도하면서 일제의 식품회사를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조선통독부가 제정한 식품법이 있다고 송기호는 주장한다. 현재 일본은 임기가 보장된 민간위원들이 식품안전을 공개리에 심의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니다. 국무총리와 장관이 당연히 포함된 상태에서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연구소 연구원와 기업인, 그리고 약간의 학자들이 모여 비공개로 심의한다. 개선한 일본과 구태의연한 우리의 차이다.

 

안전성이 결코 검증되지 않은 유전자 조작 식품을 인정하면서 전통적으로 먹어온 식품을 인정하지 않는 법률은 식품에 합성 색소를 넣고 가축에 항생제와 호르몬을 투여하며 심지어 어류 양식장에 포르마린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만 많은 이가 현실적으로 즐기는 개고기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송기호는 어떤 혁명을 꿈꾸는 걸까. 식량 자급률이 26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데 어떤 관료나 정치인도, 내놓으라 하는 어떤 지식인도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농작물과 식품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유일한 변호사일지 모르는 송기호는 책 제목을 하필 맛있는 식품법혁명이라 했다. 법이라면 고개부터 돌리는 독자에게 식품법의 실상을 들춰낸 그는 자식을 둔 소비자의 행동을 부추기려 책을 썼는지 모른다. 각성한 소비자의 행동만이 식품 관련법을 바꿀 거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와다음, 20113-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