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5. 9. 25. 22:17
 

강원도 고성에 송지호해수욕장이 있다. 경포대해수욕장보다 규모가 작아 피서철에도 그리 소란스럽지 않은 그 해수욕장은 개발의 손때가 덜한 석호 송지호를 곁에 두어 특히 아름답다. 그 송지호와 바다를 연결하는 작은 하천에는 작은 민물조개, 재첩이 산다.


“재첩국 사이소!”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을 이야기하던 어른들은 피난민이 몰려사는 동네에 새벽녘 울려퍼지던 부산 아지매들의 구성진 가락을 기억한다. 겨울밤 동네 어귀를 돌아다니던 “찹싸알떡, 메밀묵!” 가락처럼. 가난한 피난민의 민생고를 너끈히 해결해주던 낙동강의 하구의 재첩이 하구언 공사 이후 자취를 감추면서 섬진강이 그 명맥을 이어받고, 어느덧 재첩국이 섬진강 특산물로 자리잡았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섬진강 역시 남획과 오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모래와 진흙이 적당히 섞인 강 하구는 조수간만에 따라 민물과 바다물이 하루에 두 번 교차한다. 학자들은 그런 곳을 ‘기수역’이라고 말하는데, 그런 지역은 많은 생물을 받아들인다. 봄철 알 낳으러 바다로 나가는 뱀장어와 가을철 알 낳으러 들어오는 연어무리가 해마다 교차하고, 바다와 강에서 여러 물고기들이 알 낳으러 모여든다. 한강에는 황복과 종어가 산란을 했고, 동해로 빠져나가는 작은 하천에는 가시고기가 산란춤을 춘다. 송지호의 작은 하천에도 가시고기가 산란춤을 추는데, 그 향연장 바닥에는 재첩이 은둔한다.


한강 이남의 하천에 살던 재첩이 수온이 찬 송지호 하천에 살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대나무와 감의 북한계선이 강릉에서 점점 북쪽으로 연장돼 올라가는 현상과 다르지 않을 것인데, 반가운 것은 송지호는 아직 오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속초시의 청초호나 영랑호와 같은 석호들이 개발 소용돌이에 치어 제 모습을 잃었지만 찾는 이 드문 송지호는 석호 특유의 자연스런 정취를 간직한다. 큰길과 연결되지 않아 접근이 어렵고, 경관을 야릇하게 독점하는 러브호텔이나 먹자판 식당들도 보이지 않는다. 덕분에 알려지기 무섭게 사라질지 모르는 재첩은 작은 하천을 지킬 수 있다.


메치오닌을 비롯한 다양한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타우린과 비타민이 듬뿍 담긴 재첩은 동의보감에서 보증하는 보양식을 안내한다. 눈을 맑게 하고 간 기능을 개선시켜주는 재첩은 위장을 편안하게 이끌고 당을 조절하며 소변을 맑게 해준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몸의 열을 내리게 하고 기를 북돋우며 황달을 치유할 뿐 아니라 다른 음식과 함께 먹을 때 부작용이 전혀 없어 쇠약한 사람은 물론 건강한 사람들에게 탁월한 영양을 제공한다고 평가한다. 무엇보다 음주 후 숙취제거에 뛰어나 해장국으로 그만인 재첩, 그런 소문을 듣고 몰려오는 사람들을 모두 충족할 수 있을까.


산란 전인 5월에서 6월까지 잡아야 맛도 행도 뛰어난 재첩은 최근 메뉴를 다양화한다. 단순한 해장국에서 탈피, 자신의 부가가치를 한껏 높인다. 부추, 달래와 함께 덮밥을 만들어 고추장에 비비거나 부추와 함께 재첩전을 만들어 먹는데, 전문가들은 비타민 에이를 보충해주는 부추는 재첩과 음식궁합이 잘 맞는다고 한다. 회로 먹는 경우도 있다지만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기생충 때문에 끓여먹어야 안전하다. 대여섯 시간 충분히 해감한 재첩을 물 없이 20분 정도 끓이면 육수가 빠져나오는데, 그렇게 받은 국물은 간을 위한 약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그런 재첩, 섬진강에서 내내 안녕할 수 있을까.


요즘 재첩은 굳이 섬진강에 가지 않아도 쉽게 만난다. 그러니 안녕할 리 없다. 멀리서 찾아온 미식가를 위해 물안경 쓴 아낙들이 허리 숙여 호미로 긁어모을 때, 섬진강의 재첩은 평방미터 당 천 마리 이상 보전될 수 있었다. 지속 가능한 소득을 위해 주민들은 남획을 자제했고 1,5센티미터 미만인 어린 재첩은 내일을 위해 잡지 않았다. 하지만 판로가 확산되면서 외지인들이 불법 어선을 끌고 들어오자 사정이 바뀌고 말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커다란 어구로 바닥을 마구잡이로 훑어내면서 어린 재첩까지 싹 쓸어가는 것은 물론, 재첩의 산란장을 파괴하는 바람에 주민들은 멸종 위기를 호소할 지경이다.


강이 조금만 오염돼도 살아갈 수 없는 재첩은 자연산은 섬진강이 거의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공급이 달리는 요즘, 중국에서 수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맛과 영양에서 차이나고 호수에서 잡아오는 까닭에 중국산은 부영양화가 염려된다. 섬진강 재첩은 아직 건강하다지만 현지에서 채취해 먹지 않는 한 소비자들은 안심할 수 없다. 중국산을 국산으로 속이는 경우만이 아니다. 종패를 뿌리는 양식장이 밀집된 광양만은 제철소를 비롯한 숫한 공장에서 배출하는 폐수가 흘려든다.


19번 도로에서 곁눈질한 섬진강의 모래는 아직 아름답다. 강을 따라 굽이굽이 남도의 정취를 안내하던 19번 도로가 4차선 직선으로 확대되면 섬진강의 아름다움도 위기를 맞을 것이다. 개발로 사람과 자동차를 불러들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조심스럽던 섬진강의 모래와 자갈채취도 개발을 위해 확대될 것이다. 섬진강에 기대 살고 있는 재첩은 낙동강 재첩처럼 내일을 확신하지 못한다.


깨끗한 하천에 살 수 있는 재첩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불러들인 사례를 한 지역 언론은 희망으로 소개한다. 10년 전에만 해도 악취가 진동했던 김해시의 한 하천이 그냥 떠 마실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해진 것은 주민들의 눈물겨운 실천이었다. 상수도 보호를 위한 개발제한구역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주민들은 하천을 살려내기로 결의한다. 세제 안 쓰기와 오․폐수 안 버리기에 이어 하천 주변에 정화능력이 뛰어난 미나리와 수초를 꾸준히 심자, 가제와 재첩이 사는 기적을 일구어냈다는 것이다.


송지호는 아직 자연스럽다. 개발의 마수가 다가오지 않아 가슴 쓸어내지 않을 수 있다. 재첩도 가시고기도 건강하게 은둔할 수 있어 여간 다행이 아니지만 언제까지 보호될 수 있을까. 재첩은 인간의 간을 위해 진화된 동물은 아니지만, 욕심 사나운 인간들은 자신의 간이 왜 허약해졌는지 깨닫지 못한다. 재첩도 인간의 간도 자연도, 재생능력이 뛰어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새삼 부산 아지매가 뽑던 가락이 듣고 싶어진다. (물푸레골에서, 2005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