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1. 1. 11:59

 

구름 사이에 창백한 초승달이 모습을 간간이 드러내는 겨울밤. 먼 길을 재촉하는 무사의 귀를 “푸우 호오 오오, 푸우 호오 오오.” 바람에 흔들리듯 스치는 저 소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인적 없는 산길에서 신경이 곤두선 무사는 돌연 불안해진다. 무엇이 홀리려는 것인가. 달그락 달그락, 이번엔 발치에서 따라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없는데 빨리 걸으면 빨리, 천천히 걸으면 천천히. 칼을 획 뽑아들면 조용하다 칼집에 넣으면 영락없이 따라오는 이 자는 사람인가, 귀신인가. 뺨을 애는 바람은 매서운데, 나뭇가지 사이에서 아까부터 들려오는 “푸우 호오 오오, 푸우 호오 오오” 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긴긴 겨울밤, 두툼한 이불에 모여든 손자들에게 할머니는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조무래기들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죽는데, 할머니는 우리를 보며 빙긋이 웃는다. 달그락 소리는 허리에 찬 칼이 무사가 걸을 때마다 칼집과 부딪혀 난 거고 그치지 않은 “푸우 호오 오오, 푸우 호오 오오” 소리는 부엉이가 겨우내 짝 찾는 울음이라는 거다. 문풍지 밖에서 당장 귀신이라도 들어올 듯 긴장한 손자들이 이내 다른 이야기 해달라고 졸라대던 1960년대보다 한참 전, 우리나라의 강산에 부엉이가 많았나보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다.

 

땅의 제왕이라면 호랑이, 하늘의 제왕이라면 독수리. 그렇게 배웠지만 호랑이는 동물원이나 곡마단에 더 많고, 어쩌다 날아와 썩은 고기를 탐하는 독수리는 영 제왕답지 않다. 표범이나 늑대의 흔적도 찾기 어려워진 강산에 삵이나 오소리가 호랑이의 빈자리를 인간 몰래 힐끔 힐끔 기웃거릴 텐데, 지금도 밤하늘은 수리부엉이가 지배한다. 인적이 드문 벼랑에 둥지를 치곤 이따금 야심한 농가에 소리 소문 없이 찾아가 닭이나 토끼를 잡아가는 수리부엉이는 좁아졌을지언정 아직 자신의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밤하늘의 제왕은 예나 지금이나 수리부엉이다.

 

시커먼 눈썹 같은 귀깃을 정수리 위로 추켜올린 수리부엉이는 우리나라 텃새 가운데 덩치가 가장 커, 몸길이가 66센티미터가 넘고 무게는 3킬로그램 가까우며 날개를 펴면 그 길이가 2미터에 이른다. 하트 모양으로 평편한 얼굴은 주황색 홍채가 빛나는 커다란 눈, 그리고 또렷한 콧구멍부터 크게 구부러지는 시커먼 부리와 멋진 조화를 이뤄 광채를 띈다. 먹물이 묻은 듯 점점이 시커먼 갈색 깃털로 목에서 이마, 턱에서 등을 거칠게 덮고, 가는 갈색 가로 띠를 가진 연갈색 깃털로 가슴과 배를 포근하게 감싼 수리부엉이는 수평으로 뻗은 굵은 나뭇가지에 곧추앉아 고개를 270도 이상 두리번거리다 목표물을 똑바로 응시하는 능력을 시시때때로 과시한다.

 

넓게 열리는 동공은 희미한 빛에 정확하게 반응하고 솟은 귀는 칠흑 같은 밤에도 모든 방향의 소리를 받아들이는 수리부엉이는 과연 밤하늘의 제왕답다. 맴돌던 하늘에서 시속 300킬로미터로 내려와 먹이를 낚아채는 매와 달리 시속 30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암흑 속의 유령처럼 슬그머니 다가와 잡아채는데, 내장까지 파고드는 단단한 발톱이 피부를 뚫을 때까지 먹이 동물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그 비밀은 커다란 날갯짓에도 공기 저항을 최대로 줄이는 빗과 같은 깃털 끝과 얼굴을 스치는 공기를 귀로 모으는 깃털의 흐름에 있다. 대신 대낮에는 최대로 펼친 홍채로 동공을 좁혀도 눈이 부신지 행동이 둔해진다.

 

1960년대만 해도 동물원의 공간이 모자랄 만큼 생포되었던 수리부엉이는 요즘 통 보기 어렵다. 짐작하듯 원인은 농약이다. 살충제를 뿌리자 곤충이 사라졌고, 곤충과 더불어 개구리와 뱀과 족제비가 농촌에서 자취를 감췄다. 제초제를 뿌리자 토끼와 같은 초식동물도 사라졌다. 모두 수리부엉이의 먹잇감이다. 그렇다고 가파른 산기슭에 둥지를 정하는 수리부엉이가 쉽게 줄어드는 건 아니다. 같은 품종의 나무를 획일적으로 심은 숲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곤충을 없애려 헬기로 뿌린 살충제가 산 속의 먹이를 몰아낸 상태에서 전국 동시에 공급된 쥐약이 결정타가 되었다. 수리부엉이는 제 새끼들을 우리 강산 어디에서도 키울 수 없었던 거다.

 

수리부엉이가 우는 마을에 쥐가 없었다는데, 이제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1982년 정부는 뒤늦게 천연기념물 324호로 지정하고 나섰지만 줄어든 수리부엉이는 여간해서 회복되지 않았다. 전기로 말린 알곡을 저온창고에 보관하는 요즘은 농촌에도 쥐가 끓지 않는다. 얼마 남지 않은 수리부엉이도 먹성 좋은 새끼들을 키워야 한다. 청각과 후각을 살려 양계장으로 돌진했고, 덩치 큰 짐승의 느닷없는 공격에 놀라 비닐하우스 구석으로 몰린 닭이 수백에서 수천 마리로 뒤엉켜 죽는 아비규환이 발생한 것이다. 닭 한 마리를 움켜쥔 수리부엉이는 빠져나갈 틈을 찾지 못한 채 아침을 맞고, 참혹해진 양계장에서 부리부리한 눈을 껌뻑이는 천연기념물을 일그러져 바라보는 농부는 응징은커녕 피해보상도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1월에 짝을 지어 3월 이전에 두세 개의 알을 낳고, 4월에 부화된 새끼들을 이른 여름까지 먹이는 수리부엉이 부부는 일편담심의 모범으로 알려진다. 짝짓기 계절은 물론, 다 자란 새끼들이 둥지를 떠나도 교미가 계속되는 수리부엉이는 한쪽에 변고가 생기지 않는다면 평생 헤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독극물에 중독된 암컷이 죽자 수컷이 새끼를 남긴 채 둥지를 떠난 사건이 파주에서 발생한 모양인데, 부부애가 끔찍한 수리부엉이는 부화 7주된 새끼들은 둥지에서 내보낸다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사냥하지 못해 허기진 어린 수리부엉이는 사람에게 쉽게 잡히거나 삵이나 오소리에 희생될 것이다.

 

커다란 눈이 선량해 보이는지, 사람들은 다치거나 지친 수리부엉이를 적극적으로 구조해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그렇다면 국민 정서를 반영해야 할 정부는 수리부엉이 때문에 죽은 닭에 상응하는 보상을 농가에 배려할 의무가 있다. 최근 한 언론은 서울 복판의 고층빌딩 간판 위에 웅크린 수리부엉이를 주목했는데, 오죽하면 도심까지 날아왔을까. 1988년 미국 법원은 서식지 보호를 위해 시민들이 대신 고발한 소송에서 점박이올빼미의 손을 들어주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만큼, 우리도 수리부엉이에 닥친 비극에 눈을 떠야 한다. 파주 수리부엉이 가족 참극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분별없는 개발은 이제 멈춰야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