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9. 7. 12:36

 

언제부턴지 기상이변이 일상화되었다. 장마에 이은 정체전선과 극지성호우가 중부지방을 푹 젖게 만들 때, 가로등 아래 울어젖히던 매미들은 비 내리는 밤에도 절박하게 울어댔는데,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기울어진 자전축은 이맘때 태양 직사광선의 각도를 비스듬하게 기울이니 북태평양고기압이 여전히 확장돼도 아침저녁으로 선선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아파트단지의 그악스럽던 매미도 귀뚜라미에 바통을 넘겼다.

 

지난 추석, 과일 가격이 유난히 요동쳤다. 여름 뙤약볕에 탄소동화작용이 한창이어야 할 과일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 상태에서 태풍이 엄습했을 뿐 아니라 4대강 주변의 비닐하우스에 빗물이 들어차 많은 농가가 출하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4대강 사업 완공 후 대형 보에 물이 가득차면 지하수가 흥건할 수면 아래의 농토는 과일농사를 포기해야겠지만,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도 예측 못할 정도로 기상이변을 심화시키는 지구온난화는 어떤 농작물을 심어야 안정적인 수확을 보장할지 도무지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들지 않던가.

 

사실 우리나라의 추석은 과일과 곡식들이 갈무리될 시기보다 대체로 빠르다. 정도가 더했던 올해는 햅쌀과 과일을 추석 차례상에 올리기 어렵게 했는데, 잔뜩 흐렸던 날씨도 한몫했다. 중산층도 감히 손대기 무섭게 가격이 높은 과일이 백화점에 없던 건 아니지만 그건 식물성장호르몬에 이은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의 과한 살포 없이 불가능한 고에너지 수확물이었다. 햇살이 좋았다면 더욱 우람했을 과일들을 추석 임박해 한꺼번에 출하하느라 트럭운전기사는 대목에도 며칠을 기다려야 했으니, 예년보다 작아도 가격이 오른 과일은 운전기사와 소비자들을 울며 겨자 먹게 했다. 그 직후 갑자기 늘어난 출하량은 농약 뒤집어쓰며 힘겹게 재배한 농민마저 울게 만들었다. 가격이 푹 떨어진 거다.

 

원인을 기상이변으로 돌리면 간단하지만, 기상이변의 원인이 에너지를 과다 소비한 자신이라는 걸 반성해야 하는 우리는 안정된 내일을 생각하는 근본 대책을 더 생각해야 한다. 재작년보다 작년이, 작년보다 올해의 날씨가 변덕스러웠다면 내년 이후는 올해보다 심각해질 텐데, 앞으로 올해 이상 갈무리의 양과 질에 따라 과일의 공급과 가격이 요동친다면 생산자는 물론이고 소비자들도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럴 때 나온 대통령의 대책 없는 발언은 생산자와 소비자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자급도 못하는 주제를 망각하고, ? 우리 농업을 수출산업으로 성장시키자고?

 

추석을 일주일 앞둔 96,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국 농업인 한마음 전진대회에서 식품산업과 하나 되어 생명공학과 만난 우리 농업이 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한다면 중국과 같은 신흥대국에 수출해 큰돈을 버는 역사가 멀지않다!” 가슴벅차한 대통령은 전문과 책임을 갖는 관광과 체험과 예술과 문화가 융합된 농업으로 발전하자외쳤다는 게 아닌가. 누가 작성한 원고인지 모르지만, 돈보다 생명을 담보해야 하는 농사를 전혀 모르거나 알려든 적도 없는 자의 황당한 미사여구가 아닐 수 없는데, 화답한 걸까. 어떤 재벌언론은 한가롭지만 한해 수천만 원을 벌어들이는 20대 대졸 농부의 장밋빛 투자농업을 가소롭게 소개했다. 그 신기루 같은 20대가 30, 40대 이후에 어떻게 될지 예상하지 않은 채, 농업을 블루오션이라 부추겼다. 이미 투기가 된 농업이 증권회사에 상장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겐가.

 

심화되는 기상이변으로 어떤 농작물을 어떻게 심어야 안정된 갈무리와 수입이 보장될지 종잡지 못하는 우리 농업은 유전자를 조작하는 생명공학으로 절대 회복되지 못한다. 농작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더욱 단순하게 만드는 유전자 조작은 막대한 시설 투자와 석유 낭비 없는 농업을 기상이변의 재물로 만들지 않던가. 성공을 무책임하게 약속하는 고부가가치 농산물 수출은 일부 투자농민의 부를 잠시 늘리겠지만 땅의 안정적 생산력을 해칠 뿐더러 이 땅에서 자식을 키워야 하는 장삼이사에 고통을 심각하게 안겨줄 수밖에 없다. 26퍼센트에 불과한 자급률이 더욱 곤두박질칠 게 아닌가.

 

대안은 농작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자연스런 농업의 회복이다. 농약과 석유 과소비 없이 아예 불가능한 소품종 다량생산이 아니라 땀과 신념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제철 유기농업이다. 그래야만 기상이변을 이겨낸다. 지구가 자전축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공전하는 한, 계절은 지속된다. 기상이변도 그 범위 내에서 요동칠 테니, 우리는 계절에 순응하는 전통 농업을 반드시 보전해야 한다. 그를 위해 소비자는 달면 삼키고 아니면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는 왕 같은 태도를 지양하고, 자식이 살아갈 땅을 살리며 어렵게 농사짓는 생산자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당연히 생활협동조합이 아름다운 가교를 계속 자청해야 할 테고. (푸른생협 소식지, 2011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