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8. 5. 6. 18:55

 

4월 중순 절정인 벚꽃이 언젠가부터 꽃봉오리를 서둘러 펼치자 상춘객들의 맘이 급해졌는데, 올해는 특이했다. 유난히 혹독했던 겨울을 이었으니 늦겠다 싶던 봄볕이 4월 초순 별안간 따뜻해지자 벚나무와 산수유가 꽃봉오리를 급히 펼쳤는데, 아뿔싸 눈이 내린 게 아닌가. 태양 입사각이 커진 만큼 때 아닌 눈이야 금방 녹았어도 부담스럽게 서늘했고, 상춘객은 패딩점퍼를 꺼내야 했다.


4월 날씨가 다시 따사로워져도 여름을 느낄 정도는 아닌데, 딸기는 끝물이 되었다. 방울토마토에 자리를 내주고 구석으로 밀린 딸기는 떨이용이다. 그렇다고 딸기가 시장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정밀한 냉동기술이 널리 보급된 요즘, 사시사철 맛볼 수 있다. 기상이변과 과학기술은 계절을 종잡을 수 없게 만들었지만 딸기는 요즘 철모르는 과채소가 되었다. 딸기뿐인가? 방울토마토도 마찬가진데 멀지 않은 과거, 딸기는 5월부터 제 계절을 시작했다.


남은 딸기 먹어치우는 현충일 농촌 답사여행을 이젠 대학가에서 볼 수 없다. 딸기를 걷어내고 포도농사에 들어가는 농부도 요즘 없다. 딸기가 비닐하우스로 들어가면서 포도농사와 분리되었다. 비닐하우스의 딸기는 대부분 흙을 버렸다. 수경재배다. 선택한 종자에 최적의 온기와 빛을 공급하면서 뿌리를 적시는 물에 적량 적시의 영양분을 제공하는 장치에 의존하는 농부가 식물성장촉진제를 추가한다면 계란만큼 커다란 딸기를 수확할 수 있다. 그런 딸기는 참외처럼 속이 비기도 한다.


바둑계에 나타나 세상을 놀라게 한 인공지능이 가전제품을 넘어 농업까지 파고들려나 보다. 언론이 인공지능 기술을 탑재한 농업을 취재하는 시절이 되었는데, ‘스마트팜이라고 소개한다. 미래 산업으로 떠올라야 하는 만큼 스마트 농업은 촌스럽다 여기나 본데, 최첨단 기계항공공학의 센서를 농작물에 부착하는 스마트팜은 삽이나 호미를 거세한다. 햇볕에 그을린 농부도 퇴출할지 모른다. 시장에 출하해도 좋을 만큼 잘 익은 딸기를 자동으로 잘라 크기 별로 분리해 포장하는 기술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손길 투박한 농부보다 동작 재빠른 종업원이 어울릴 법하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총아로 등극할 스마트팜은 필요한 물과 영양분을 적시 적량 공급하므로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관련 과학자는 자부한다.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는 물론이고 인건비까지 줄이면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거라 덧붙이지만 스마트팜이 창출할 인력은 농민과 거리가 멀다. 최첨단 농업이 지향하는 몇 안 되는 인력은 빅데이터 분석과 정밀산업이겠지. 개개 농민이 주도할 수 없는 4차산업혁명은 농업마저 대기업에 종속시킬 텐데, 스마트팜에 투자가 지속된다면 농업도 공업처럼 경쟁으로 치달을 게 틀림없다. 자본의 경쟁으로 신선한 농산물을 싼 값에 공급받을 소비자는 마냥 반겨야 할까?


유럽의 소비자들은 신선한 채소와 과일의 절반 이상을 스페인 알메리아의 비닐하우스에서 공급받는다. 신선할 뿐 아니라 가격도 저렴하니 같은 농산물을 생산하던 자국 농민들이 속절없이 쇠퇴하는 걸 목도해야 했을 것이다. 경쟁에서 밀린 자국의 농업 기반이 허물어진 이후 유럽의 소비자에게 선택의 여지는 좁다. 넓은 도로나 비행기로 대규모로 투하되는 농산물에 싫든 좋든 의존해야 한다. 소규모로 다양하게 재배하던 고유 품종이 사라졌으니 맛과 요리 방법이 단순화된다. 지방 특유의 향취와 식단은 잊힌다.


아프리카와 유럽을 직선거리 5km로 잇는 지브롤터 해협은 수심이 깊고 물살이 거세다. 목숨을 걸고 그 해협을 건너 스페인으로 들어온 아프리카인은 수확을 앞둔 알메리아 비닐하우스에서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일이 단순한 만큼 수입이 일천하고 몸은 힘겹다. 정해진 온도와 습도, 일정한 영양분에 최적인 유전자를 가진 농산물로 가득한 비니하우스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데, 열매는 한꺼번에 열린다. 신선도를 유지하는 상태로 경쟁 농장보다 먼저 수확해 유럽 전역으로 공급하려면 농부? 아니 삯일꾼은 곯는다. 알메리아의 농산물이 무차별로 공급되는 지역의 농민들이 뒤를 이어 굶주린다.


20115월 독일 함부르크는 어떤 항생제도 완치하지 못하는 슈퍼 박테리아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함부르크에서 파급된 슈퍼 박테리아 공포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돼 1200여 감염이 발생했고 11명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원인은 알메리아에서 수입한 오이, 토마토, 상추와 같은 신선 농산물이었다. 물이 문제였다고 나중에 밝혀졌다. 덥고 건조한 알메리아는 지하수에 의존하지만 비닐하우스 면적이 320제곱km에 달하니 공급에 한계가 있었다. 하는 수없이 하수를 정화했지만 농장의 경쟁은 부주의로 이어졌고, 슈퍼 박테리아가 번지는 결과를 피하지 못한 것인데, 스마트팜은 그럴 리 없을까?


요즘 전통시장은 살아 있는 닭을 손님 앞에서 잡아 털을 벗기고 내놓지 않는다. 법으로 금지돼 있다. 죽이는 과정이 혐오스럽고 비위생적이기에 금지했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살아 있는 닭을 옮기는 과정에서 조류독감이 번질 수 있기에 엄격하게 제한할 텐데, 깨끗하게 냉장한 닭보다 요리된 닭고기에 익숙해진 소비자도 살아 있는 닭을 외면할 게 분명하다. 아파트 위주인 도시에서 산닭을 어떻게 요리한다는 겐가.


이미 어느 정도 스마트화 된 상태인 거대 농장의 닭은 어떤가? 충분히 위생적일까? 분명한 것은 마당의 닭이 밀폐된 거대한 양계장 안으로 들어간 이후, 조류독감이 세계적으로 폭발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조류독감으로 수천마리를 살처분할 때, 유기적인 방법으로 사육한 작은 규모의 농가는 조류독감에서 상당히 자유로울 수 있었다. 유기적인 축산을 고집하는 미국 폴리페이스 농장의 조엘 샐러틴은 분명히 밝힌다. 다국적기업의 농장보다 훨씬 깨끗하다는 걸 과학적으로 공식 확인하면서 풍미가 살아 있는 만큼 소비자 만족이 높기에 제 가격을 받을 수 있다며 강조한다.


흔해빠진 바나나가 사실상 멸종위기다. 양판점의 식품매장은 물론이고 길가의 과일노점마다 사시사철 쌓아놓지만 유전적 다양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많은 열매를 빠른 시일 안에 주렁주렁 매다는 종자를 세계의 모든 농장에서 획일적으로 재배하면서 그만 곰팡이에 약해지고 만 것이다. 세계 곳곳 농장의 바나나는 한 그루나 다름없다. 유전자가 완벽하게 같은 까닭에 퍼지는 곰팡이에 속수무책이다. 곰팡이 감염의 징후가 나타나면 다국적 기업의 지배에 있는 농장은 재배 중인 모든 바나나를 불태운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견되면 최대 반경 3km의 양계장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하는 공장식 축산과 다르지 않다.


조류독감이 빈번한 양계장과 마찬가지로 곰팡이에 취약한 바나나도 과학기술을 접목한 일종의 스마트팜이다. 거대 자본이 경쟁적으로 투자하는 스마트팜은 이윤추구가 최우선이다. 생산성을 높이려는 스마트팜은 농작물과 축산물의 유전자를 극도로 단순화한 상태에서 생산조건을 획일화하고 공정을 자동화하는 까닭에 일자리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막대한 이윤일 독점하려는 스마트팜 자본은 미래 산업 여부와 관계없이 농민과 농촌을 철저히 배제할 것이다. 거대한 투자와 이윤의 독점을 추구하는 산업은 농업이든 아니든, 석유의 지원 없이 존속이 아예 불가능한데, 석유는 2005년 전후에 고갈을 예고한 바 있다. 스마트팜은 스마트하지 않은 이유가 그러하다. (작은책, 2018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