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7. 1. 8. 14:38
 

『생태발자국』, 마티스 웨커네이걸ㆍ윌리엄 리스 지음, 이유진ㆍ류상운 옮김


국내에서 이름이 알려진 어떤 학자는 환경단체 회원에게 연말 메일을 보냈는데, 의례적 인사 뒤에 경제가 발전해야 환경이 좋아진다고 강조한다. 새해 한 중앙 일간지가 크게 소개한 프랑스의 학자도 비슷하게 주장하고, 『회의적 환경주의자』와 『비판적 환경주의자』를 쓴 국내외의 학자도 그렇게 언급한다. 과연 경제적으로 잘 살아야 환경이 좋아질까.

 

대리석 초고층 빌딩으로 장식된 도시는 마소의 똥이 마을에 흩어져 있는 지역에 비해 환경이 좋은 것일까. 지금부터 한 세대 전, 온갖 새가 지저귀고 개구리가 흔했던 시절, 초여름의 논밭은 거름 냄새로 진동을 했다. 환경이 나쁜 것일까. 자리끼가 꽁꽁 얼던 시절, 하늘은 언제나 파랬고 책가방 내던지고 나가 놀던 아이들은 간장독처럼 얼지 않았는데, 냉장고가 커진 요즘, 음식쓰레기가 지천이다. 에어컨과 중앙난방으로 여름이 겨울 같고 겨울이 여름 같은 요즘, 선행학습으로 지친 아이들은 감기와 왕따가 두렵다. 경제 성장의 진면목이다.

 

돈으로 산 포장 쓰레기는 금방 사라진다. 없어진 것일까. 내 쓰레기를 동생 방에 힘으로 밀어 넣으면 내 방은 바로 깨끗해진다. 내 쓰레기를 시골로, 남의 나라로, 후손에게 떠넘기면 그들은 만족해할까. 더글러스 러미스는 경제개발이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건 아니라고 하는데. 아침에 먹은 밥과 반찬은 내 땀으로 재배한 농작물이 아니다. 내 옷도, 집도, 지식도 내 의지와 무관하다. 사용하는 도구는 그저 켜고 끌 뿐, 고장 나면 고칠 수 없을 뿐더러 작동원리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노예가 내 뒤에 있는 것일까.

 

쓰나미가 휩쓴 남아시아 국가의 GNP는 잠깐 상승했다. 복구하는데 들어간 예산 덕분이다. 경제 발전으로 생긴 조류독감, 아토피, 자폐, 파괴된 자연을 치유하는데 들어가는 예산도 GNP에 계상되니 소득 2만 달러도 마냥 축하할 일은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이웃도 후손도 생태계도 배려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지표는 있나. 토빈세는 무역으로 인한 지역 불균형을 해소할지 모르지만 인간의 비빌 언덕인 생태계 파괴에는 묵묵부답이다.

 

탐욕의 한계를 일러주는 ‘생태발자국’이다. 생태발자국은 경제, 발전, GNP로 요약하는 일련의 개발을 위해 반드시 제공, 또는 희생해야 하는 자연, 다시 말해 생태계의 흔적을 지표로 생산해낸다. 『생태발자국』의 저자는 내일을 위한 오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생태발자국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걸 공들여 설명한다. 경제학을 잘 몰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생태발자국』을 읽으면 쇠고기 1킬로그램을 위한 곡물 10킬로그램, 곡물 1칼로리 생산을 위한 10칼로리 이상의 화석 에너지가 내포하는 문제를 인식하게 한다.

 

하늘이 파랗고 이웃이 다정했던 시절, 생태계는 건강했고 인간은 행복했다. 너무 많은 땅과 노예를 착취하는 요즘의 일상을 반성하게 하는데 생태발자국은 유효하다. 선물은 받을 때보다 줄 때가 더 행복하다. 어떤 선물을 후손에게 배려해야 할까. 스스로 가난해지면서 행복한 삶이다. 『생태발자국』은 그 인식론적 입문서다. (아침독서, 2007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