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5. 9. 1. 14:30
 


《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

게리 폴 나브한, 스티븐 트림블 지음, 김선영 옮김, 그물코 2003년



“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 하고 중산층에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자연은 무슨, 아이들은 그저 학원 많은 8학군에서 키우고 가끔 자연에 나가면 되지!”하는 반응이 주류 아닐까. 하지만 돈벌이에 바쁜 현대인들이 자식 손잡고 자연에 나갈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텔레비전이 역할을 대신한다. 심야에 이따금 편성하는 자연 다큐멘터리보다 황금대 시간에 천박한 멘트로 시종일관하는 애완동물 중심 프로그램이 대개 그렇다.

 

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 고등학교 때 만난 시골 출신 친구를 보면 자연은 내면을 깊게 해준다는 느낌이 든다. 친구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에 결코 가볍게 대응하지 않고 눈앞의 말초현상에 마음을 얼른 빼앗기지 않는다. 족대 들고 버들붕어 잡을 때만 남다른 것이 아니다. 공부도 도시 깍쟁이에 비해 쳐지지 않았고 성적도 꾸준했다. 인간성까지 좋은 그를 보면 아이 때 자연에서 자라는 게 좋겠다 싶다.

 

야생 씨앗의 수집과 보존에 관심이 많은 농업생태학자와 자연주의 저술자이자 사진작가가 나누어 쓴 《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는 아이 눈높이에서 자연을 바라볼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어른에게 당부한다. 자연의 품에 스스로 안기고 사유할 수 있어야 아이다울 수 있다고, 제 아이에 대한 교육과 그 성과에 조급한 부모들에게 조언한다. 자연에 대한 감성은 어른이 참견할 성격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에서 감성을 배우지 못한 도시 어린이들을 보자. 텔레비전에서 본대로 물개는 코로 공을 돌려야하고, 새 둥지에서 알을 삼키는 누룩뱀은 때려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인 없는 고양이에 비비탄 발사하고 천원이면 살 수 있는 병아리는 옥상에서 떨어뜨려 보고 싶다. 개가 더 진화되었다고 믿었다가 텔레비전에서 애완용 돼지를 보면 돼지가 더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농촌 경험이 없다보니 개구리는 해부용으로, 등줄쥐는 병을 옮겨 해롭다고 믿는다.

 

아이들에게 자연 다큐멘터리 시청을 강권하는 부모들은 동물원에서 걷다 지친 아이 손목을 잡고 이것 보자, 저것도 보아야지 성화다. 어쩌다 철새도래지를 찾아가서는 멀리 흩어진 가창오리와 큰고니가 제 아이의 눈에 잘 보이지 않아 불만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부모의 마음과 다른 태도를 보인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개미가 들락거리는 구멍들을 몇 시간 들여다보거나 물장난 흙장난으로 시간보내길 원한다. 자연에서 이야기를 찾고 감성을 느끼는 방식은 개성이고 우열이 없건만, 부모는 조급해한다.

 

《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를 쓴 저자들은 아이들을 자연에서 자라게 하지 못할 바에 가끔 학교도 빼먹으며 데리고 가, 자연에 그냥 놔두자고 권한다. 밤에 개구리, 새벽에 온갖 새소리를 듣고, 풀 뜯는 소에 다가가며, 나무나 바위틈에서 생각에 잠기게 두면 저절로 산과 들과 강이 전해주는 감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한 환경단체에서 맨발 체육대회를 열었더니 회원들은 잠시 어린이가 되더라고 귀띔한다. 《아이들은 왜 자연에서 자라야 하는가》는 회색도시에서 삭막해진 자식을 순박하게 키우고 싶은 어른들을 위한 책이 아닐까. (발간 예정 서평집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