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3. 9. 14. 01:47


지난 8일 오전 11, 일요일을 맞은 초중고 학생 100여 명이 송도11공구 갯벌 근처에 모였다. 흔히 저어새 섬이라고 말하는 남동산업단지 유수지 내의 작은 섬이 가깝게 보이는 소나무 숲에서 저어새를 연구하는 이기섭 박사의 설명을 들은 학생들이었다.


주걱과 비슷하게 생긴 주둥이를 갯벌에 넣어 쉬쉬 젖는 저어새는 어떤 생태적 습성을 가졌는지, 사람이 보이지 않는 서해 외딴섬을 찾던 저어새가 왜 냄새나고 시끄러운 산업공단의 유수지까지 날아온 건지, 어린 새는 왜 다쳤고 어떻게 구조해 풀어주게 되었는지 박사님의 친절한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알에서 깨어난 지 100일 만에 자연으로 돌아가는 저어새를 환송했다. 내년에 다시 만나길 희망하면서.


작은 섬을 하얗게 덮었던 저어새들은 지금 갯벌로 모두 나갔다. 어미의 보살핌을 받던 새끼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겨울을 지낼 남쪽바다로 떠날 준비에 여념이 없다. 나는 방법과 먹이를 찾는 요령을 익힌 터라, 어미아비에 의존할 단계는 지났다. 하지만 천적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직은 잘 모를 것이다. 그들이 옹기종기 모여 쉬고 있는 갯벌은 고배율 망원경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떨어져 있다. 발목에 가락지를 낀 저어새는 이기섭 박사의 도움으로 상자에서 조심스레 나와 어리둥절 한발 한발 천천히 내딛었다. 바닷물이 들고나는 갯벌에 작은 섬에서 태어난 무리가 있다. 그들이 받아주었을까.


전 세계에서 300마리까지 위축된 저어새가 2700마리 정도로 늘어난 데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만과 일본의 전문가,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들의 정성이 주효했다. 그중 50여 쌍의 저어새가 100여 마리의 새끼를 낳아 기르는 남동산업단지의 저어새도 마찬가지다. 저어새들이 오기 전에 둥지 재료를 마련해놓고 떠날 때까지 모니터링을 한다. 하지만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다. 악취와 소음이 가득한 작은 섬에 대를 이어 둥지를 치는 이유는 둥지 재료 때문이 아니다. 주위 갯벌에 천적이 없고 먹이가 부족하지 않은 까닭이다.


유수지의 작은 섬을 날아오른 저어새들은 인근 송도신도시에 병풍처럼 불쑥 솟아오른 고층아파트를 넘지 못한다. 아파트 군집을 피해 송도11공구 갯벌로 나간 어미들은 새끼에게 줄 먹이를 가져오지만 그 갯벌은 현재 매립중이다. 5년 전 작은 무리가가 찾아왔지만 재작년과 작년에 찾는 개체가 늘어난 건 남동산단유수지를 고향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테지만, 무엇보다 갯벌에서 먹이를 쉽게 구했던 덕분이었는데, 올해는 녹록치 않다. 작은 섬에 찾아온 개체의 수는 올해도 여전했지만 성체로 독립한 새끼는 늘지 않았다. 8일 방생된 저어새는 내년에 인천을 찾아올까. 지금 동료와 열심히 먹이를 먹고 있다면 기대하고 싶다.


저어새 방생행사를 마련한 인천의 환경단체와 교사들은 걱정이 크다. 2014년 아시안 장애인경기대회의 상징 동물로 저어새를 선정했으면서 인천시는 정작 대부분의 저어새들이 먹이를 구하는 갯벌을 보전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방 맹렬하게 매립되는 11공구 갯벌이 그곳인데, 11공구의 중장비를 피해 마지못해 날아가는 인천대교 인근 6.11제곱킬로미터 면적의 갯벌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철새들을 위해 2009년 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을 뿐, 보전활동도 관련 예산도 계획도 없이 그저 방치된다. 그 갯벌에서 유수지의 작은 섬은 꽤 멀다. 그 사이는 온갖 건물로 복잡하다. 저어새에게 살갑지 못하다.


세계자연보호연맹(ICUN)이 적색목록으로 지정해 보호하는 저어새만이 아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멸종위기종 검은머리갈매기와 다양한 도요새와 물떼새, 그리고 오리 종류들이 겨울마다 찾는 갯벌은 송도신도시, 나아가 인천의 자랑거리다. 여전히 인천의 상징이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재두루미는 철근시멘트로 제조돼 숭의로타리에 어설프게 박혀 있지만, 저어새는 스스로 찾아와 도시 한가운데 둥지를 쳤다. 다른 나라의 도시들은 상징 동물의 건강한 서식을 위해 생태계를 보전할 뿐 아니라 시민의식을 고취하려 다양한 정책을 펼친다. 문화자산이 아닌가. 갯벌을 매립해 텅텅 비는 건물을 더 짓는 인천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두루미를 이어 저어새마저 인천을 외면하는 건 아닐까. (기호일보, 2013.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