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9. 5. 2. 13:27

 

언제부턴가 기온이 롤로코스트를 탄 듯, 숨 가쁘다. 기상이변과 집중호우는 일상사가 되었고 기상관측 이래 최고 기온은 이미 식상해졌다. 그렇게 더워져도 평균 기온과 강수량에 큰 차이는 없는 건 롤로코스트가 그만큼 심하기 때문인데, 안락한 공간에서 비슷한 뉴스를 하도 많이 보아 그런지 시민들은 시큰둥해한다. 지독한 강수량에도 끄떡없는 아파트에서 도시인에게 가뭄이나 홍수는 피부에서 멀지 않던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칠갑이 된 도시는 억수 같은 빗물도 내리자마자 사라지게 만들고 대형 댐과 연결된 배수펌프장은 재해를 외면하면서 일인당 하루에 한 차례의 샤워를 보장할 따름이다.

 

경험된 사실을 토대로 발생빈도를 정확히 예측하는 과학기술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인구가 집중된 도시를 안전한 공간으로 배려한다. 홍수와 가뭄은 물론이고 지진이나 태풍, 혹한과 혹서를 충실히 방어한다.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자동차 사고나 화재, 전쟁과 폭력, 그리고 질병에 대처하는 능력도 높다. 농수축산물을 조금도 재배하고나 키우지 않아도 가까운 곳에 충분히 모아두어 시민들은 손만 내밀면 원하는 양을 챙길 수 있다. 물론 그만한 경제적 여유와 지위가 보장되어야 순조롭지만. 반면 사회적 약자에게 그 혜택은 멀고 자연재해는 그만큼 편중된다. 그나마 떡고물이라도 챙길 수 있는 도시는 덜하지만 시골로 들어갈수록 피해는 가중된다. 언론으로 구경하는 자연재해를 보라.

 

자연재해든 인간이 저지르는 피해든, 가장 먼저 가장 직접적으로 당하는 시골은 식민지다. 굶주림까지 농산물 재배 지역에서 더욱 극심해진 오늘날의 역설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착취할 자원이 식민지에 남아 있을 때에 유효한 것인데, 앞으로 어떨까. 지위가 높은 세력에 의해 촉발되고 심화된 지구온난화는 식민지의 사정도 전 같지 않다는 걸 경고한다. 지천이 바싹 마르면 아무리 커다란 댐도 담을 물이 없어진다. 바싹 마른 지천에 억수 같은 강수가 밀려들면 본류는 오염되어 강바닥은 올라가며 도시를 보호하던 둑은 위험해진다. 바닥이 높아지는 댐은 기능을 잃고 도시도 물 사정이 원활하지 못하게 된다. 흥청거리는 식민지 경영은 머지않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시의 구조를 자연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 수원지가 보전되지 않으면 수도꼭지도 안정적일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그를 위해 도시는 가능한 수단을 다해 물, 식량, 에너지 들을 자급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기 위해 구조를 바꾸는데 진력을 다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자연이 보내는 작금의 경고는 여유가 많지 않다는 걸 누차 강조했다. 식민지를 처참하게 만든 지구온난화는 머지않아 도시를 공격할 테고,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도시인들이 식상해하는 기상관측 이래 최대의 더위, 롤로코스트 타는 기온, 강수량의 경고는 멀지 않았음을 웅변한다.

 

작년 가을부터 계속된 갈증이 이어지더니 지난 4월 20일, 절기 상 곡우에 단비가 내렸다. 기상학자들은 전국에 내린 비의 경제적 가치를 4천 634억 원에 달한다고 계산했다고 언론은 전한다. 어떻게 그리 정확한 계산이 나왔는지 감탄하는 건 그들의 몫일 테고, 전국의 댐과 저수지를 채운 물, 산불발생 확률과 미세먼지 농도를 크게 낮춰 억은 효과들을 추산했다는데, 계량화하지 못한 항목까지 찾아 추가한다면 비의 경제적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지만 공허하다. 자연의 경고를 외면하면서 슈퍼컴퓨터 다루는 솜씨를 자랑하려는 기득권의 자세에서 내일이 몹시 불안하기 때문이다.

 

도로와 주차장을 좁혀 자전거와 보행자의 공간을 넓히고, 재개발 터에 주변 생태계에서 유입되는 동식물이 다채롭게 서식하는 숲과 저수지를 우선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들이 지향하는 ‘생물서식공간’, 다시 말해 ‘비오톱’(Biotop)이다. 그들은 도시의 완성을 녹지로 본다. 녹지가 충만한 도시는 자연과 인위적 재해를 최대한 완충할 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쾌적한 정주권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정주의식이 뿌리내린 도시일수록 범죄는 적고 이웃 사이에 우애가 깊다. 강호순 사건과 같은 이른바 사이코패스 현상은 발붙이기 어렵다.

 

그를 위해 승용차보다 대중교통,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우선되고 곳곳에 마련된 자투리녹지와 연결된 보행자도로는 숲과 저수지가 조성된 공원과 연결될 필요가 있다. 가족과 이웃에게 휴식은 물론 청소년에게 교육의 장소로 활용될 수 있다. 지붕에 빗물 회수와 햇빛발전장치를 달고 훼손된 그린벨트에 체육시설을 빙자한 골프장을 만들기보다 텃밭을 조성해 분양한다면 얼굴을 마주하는 이웃은 우정과 환대로 희로애락을 나누며 서로 도울 것이다.

 

도시에 숲을 만드는 거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사회적 약자를 착취했던 관행이 자신에게 족쇄로 돌아온 지금, 탐욕스러웠던 관행을 반성하고 도시를 자급자족의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려 노력하는 거다. 도시에 약탈당해온 시골, 인간에서 생존권을 빼앗기는 생태계, 현세대를 편의를 위해 생존기반이 약탈당하는 후손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일 뿐 아니라 도시를 살아가는 현 세대 시민의 생존을 위한 고육책이다. 뿌리 내리는 정주공간으로 도시가 개과천선하는 길, 바로 거기에 있다. (야곱의 우물, 2009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