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8. 6. 5. 16:47
 

요즘은 가끔 커피를 마신다. 《자원전쟁》에서 저자들이 밝힌 18세기 스웨던 국왕 구스타프 3세의 실험 결과가 유혹했다. 독이 있을 거라 믿은 당시 국왕은 사형수로 실험을 했다고 한다. 한 명은 커피를 다른 한 명은 녹차를 마시게 했는데, 실험을 담당한 의사 두 명이 먼저 죽고 국왕이 늙어 사망한 다음, 녹차를 마신 사형수가 83세로 장수를 누렸다고 한다. 커피 마신 사형수는 언제 죽었는지 기록이 없을 정도라는 게 아닌가.


커피는 첨가물이 없는 원두여야 한다. 아무 커피나 마시는 것도 아니다.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커피만 허용한다. 몸 때문만은 아니다. 이웃과 마시는 커피가 원두를 생산하는 지역의 땅과 삶을 살리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길 바라는 마음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공정무역으로 들어온 갈색 설탕은 조금 섞을 수 있겠다.


최근 세계의 기업은 생산자와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무역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른바 ‘공정무역’이다. 미성년자를 착취한 제품의 판매를 거부하고 농약에 오염된 농작물을 배제하는 옥스팜이나 보디숍은 물론이고, 크고 작은 유통업체가 공정무역을 주도하는 가운데 다국적기업들도 동참하고 있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이 들어간 가공식품을 판매했다 비난받은 네슬레는 유럽시장에서 유전자조작 농산물이 없는 식품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거듭났으며 그런 현상은 대형 슈퍼체인으로 확산되었다고 2000년 서울 아셈회의에 참석한 유럽 그린피스 대원이 밝힌 바 있다.


인터넷이 세계로 열린 요즘은 이미지가 기업에게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제품의 질에서 큰 차별이 보이지 않는 국제시장에서 이미지는 기업의 생존에 강력한 영향을 주지 않던가. 노예노동이나 아동학대를 배격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정무역에 적극 참여하는 기업은 높아진 이미지를 홍보하며 살아남으려 무던히 애를 쓴다. 공정무역은 사원의 자부심으로 연결된다. 연봉보다 이미지를 직장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젊은이가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시민의 인식이 꽤 높아졌다. 이럴 때 광우병을 걱정하게 하는 쇠고기를 버젓이 진열하거나 보전가치가 높은 생태계에 골프장을 지으려는 기업은 실추된 이미지를 여간해서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유전자조작 옥수수로 가공한 시럽을 넣지 않겠다고 선언하거나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골프장 부지의 생태계를 보전하겠다고 발표한다면, 그 기업은 긍정적 이미지를 내일까지 이을 게 틀림없다.


더욱 첨예해지는 경쟁시대를 맞아,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무엇일까. 금수강산이 무너지는 우리나라에 유전자조작 옥수수가 수입되었고, 30개월이 넘는 미국산 쇠고기마저 통관을 기다리는 마당이다. 오늘의 소비자는 내일, 어떤 기업을 기억할까. (경향신문, 6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