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8. 7. 00:27

 

서양인, 특히 미국인들은 우리나라 젊은이의 체형을 부러워한다고 한다. 늘씬한 8등신이라기보다 몸에 군살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그를 위해 밥을 덜 먹거나 피트니스클럽에 등록해 꾸준히 운동하는 이가 적지 않지만 그건 서구의 여느 나라도 마찬가지다. 왜 한국인은 서양인보다 날씬한 편일까. 음식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굶주림에 지친 어린이가 불룩 튀어나온 배를 부여잡고 쓰러져 죽어가는 지역의 시각으로 지독한 역설이지만 서구의 많은 국가에서 비만이 가난의 상징으로 바뀐 지 오래 되었다. 피트니스클럽에 등록하거나 다이어트에 돌입할 시간과 돈이 없기 때문이기 이전에 눈과 코를 자극하는 저렴한 음식이 지천에 널려있는 까닭일 텐데, 가난한 이에게 비만을 일으키는 요인은 음식의 양보다 질과 관련이 있다. 먹는 이와 땅의 건강을 도외시하기 때문이다.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재배하는지, 무슨 가축을 어떻게 사육해 어떤 방식으로 가공했는지 전혀 모르는 음식에 도덕은 깃들 틈이 없다. 이웃과 나누는 ‘밥’이라기보다 요란한 광고를 앞세우고 나 몰라라 파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량에 양심은 대체로 절연되었다.

 

어느 한쪽에선 차려낸 음식의 40퍼센트 정도를 버리고 어느 한쪽은 한 국자의 음식도 접시에 나눌 수 없는 지구촌의 현실은 식량에 얽힌 역설을 발판으로 한다.

 

 

1. 지역을 떠난 식량

 

평화(平和)는 공평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사람은 예로부터 자신이 속한 마을에서 재배하는 농산물로 밥을 지어 먹었다.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가져오려면 어느 정도의 돈이나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제 마을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농산물을 즐겨 먹는 자는 그렇지 못한 자에 비해 지위가 우월하다. 농사는 이웃과 함께 땀 흘리며 상부상조하며 짓는다. 마을에서 함께 농사지은 이웃이 서로 나누는 농작물은 갈등을 일으킬 리 없지만 먼 마을의 낯선 농산물은 그렇지 않다. 재배하는 데 누구의 노력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알 수 없는 농산물은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다.

 

1) 지역에 따라 다양한 식량

 

가공식품에 익숙해진 요즘, 농작물이 식량의 원천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사람이 농작물을 재배한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사람은 진화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대부분의 세월을 자연에서 먹을거리를 사냥하거나 수집해 해결했다. 경작이 지금부터 대략 1만 5백 년 전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다이아몬드(2005)는 무수한 식물과 동물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사람의 울타리 안에서 재배하거나 사육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나머지는 길들이기 대단히 어려웠다는 거다.

 

오래 전 아프리카를 떠난 사람은 요즘 하와이와 이스터 섬까지 퍼졌지만 대부분 농사를 지어 식량을 구한다. 지역에 따라 독특한 농산물이 없지 않지만 재배하는 종류는 엇비슷한데 겉보기 같아도 지역에 따라 품종의 차이는 있다. 지역에 따라 쌀과 콩의 종류가 다르고 소와 돼지 품종이 다르다. 선조에게 물려받은 종자의 품종, 그리고 경작과 사육 기술을 환경에 맞게 개량하면서 다채로워진 결과다. 일반적으로 다른 지역의 농작물을 맛볼 기회가 거의 없는 사람들은 지역의 식량에 만족했을 것이다.

 

해마다 비슷한 수확을 기대하지만 어쩌다 뜻하지 않은 흉작이 오는 경우도 있다. 그때는 이웃과 식량을 나눠 해결했을 테지만 식솔이 늘거나 수확량이 줄어든다면 마을의 이웃 일부가 새로운 경작지를 찾아 떠났을 것이다. 그런 사정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마을은 늘 자급자족했고 이웃의 식성도 대체로 비슷했을 것이다. 한데 높은 산이나 넓은 강, 바다로 분리된 지역은 환경이 사뭇 다르다. 따라서 재배하거나 사육하는 농작물과 가축의 종류가 다를 수 있다. 재배하는 농작물이 다른 산마을과 들마을과 갯마을도 식성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 형성된 식성은 문화가 되었는데, 문화는 차이일 뿐 우열일 수 없다.

 

2) 식량의 상품화

 

옥수수의 원산지인 멕시코에서 주민의 오랜 주식은 또르띨라다. 옥수수를 갈아 반죽해 둥글게 펴서 화덕에 구은 또르띨라에 취향에 따라 으깬 풋고추나 양파나 토마토를 얹고 말아 먹거나 여유가 있다면 볶은 고기를 넣기도 한다. 가축을 사육하고 옥수수와 각종 채소를 재배하는 농부라면 식구의 밥상을 차리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거의 없을 것이다. 화덕은 물려받았고 땔감은 주변에서 구할 테니 식구 수에 맞게 그릇 몇 가지만 구하면 충분했다.

 

1990년 미국과 캐나다와 멕시코 사이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산 옥수수가 물밀듯 들어오면서 값싼 또르띨라가 조리하는 수고를 덜자 주민들은 화덕을 버리는데 그치지 않은 것이다. 싫든 좋든 화폐 경제권으로 편입된 것인데, 일단 편입되자 돈이 더 필요하게 되었다. 자급자족할 때 요긴했던 정도의 돈으로 쪼들릴 수밖에 없는 농민은 돈벌이를 위한 농작물을 ‘상품’으로, 다시 말해 ‘농산품’으로 심어야했고 그것도 모자라면 더 많은 돈을 위해 미국의 공장이 몰려 있는 국경도시로 옮겨야 했다.

 

멕시코에 제한된 사정일 리 없다.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여러 차례 추진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도시의 공장에 농민을 보내야 했듯, 어느 나라나 산업사회 초기에는 농촌의 인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었다. 이른바 향도이촌(向都移村)이다. 정부는 노동자가 된 농민이 낮은 임금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농산품의 가격을 통제했고, 젊은이가 대거 빠져나간 농촌은 농촌대로 돈벌이를 위해 상품가치가 높은 농산품을 집중 재배하게 되었다. 그런 농업은 경쟁을 부추겼고 경쟁은 이웃과 지역을 넘어 국가 사이로 번졌다.

 

청송군과 영양군의 고추는 순창군과 경쟁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중국에서 값싸게 들어오는 고추와 생존권을 놓고 경쟁한다. 가공식품은 더하다. 영국이 수입하는 치즈는 영국에서 수출하는 치즈와 경쟁한다.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쇠고기는 미국산만이 아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들어오지만 캐나다의 쇠고기도 한우와 경쟁을 선언하고 있다. 다른 나라도 엇비슷한 사정이다. 농수축산물이 경쟁 상품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이익은 생산자나 소비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대부분 기업과 관련 자본에 돌아간다(보베 외, 2002).

 

 

2. 다양성을 잃은 농업

 

추석이면 굳이 승용차로 꽉 막힌 고속도로를 뚫고 고향에 다녀오는 이가 있다. 귀경길에 나설 때마다 부모는 트렁크에 하나 가득 수확한 한해 농작물을 가지가지 실어준다는 게 아닌가. 가격이 얼마 되지 않아도 자식들에 대한 부모님의 애틋한 정성을 몸으로 느낄 뿐 아니라 그 농작물로 밥 지어 먹을 때마다 고향 땅의 정취에 흠뻑 젖을 수 있다고 그는 고마워한다. 돈벌이를 위해 한두 가지 농산품만 심는 농촌이라면 언감생심 생각할 수 없는 호강이 아닐 수 없다.

 

1) 씨앗 주권이 사라지다

 

멀지 않은 과거, 적어도 농부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갈무리해둔 씨앗은 절대 먹지 않았지만 더 많은 수확을 보장한다는 씨앗을 종묘상에서 일괄 구입하는 요즘, 사정이 달라졌다. 수확한 농산품을 전량 시장에 내놓아야 하고 그렇게 하여 벌어들인 돈을 쥐고 끼니때마다 슈퍼마켓 식품 코너를 기웃거려야 한다. 내 땅에서 내가 농사지은 ‘농작물’은 팔아야 할 ‘농산품’이므로 먹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 거다. 농촌은 시방 늙었다. 여러 농산물을 재배하기 벅찬 농촌에서 ‘환금작물’, 다시 말해 돈이 될 농산품만 한둘 심는 일은 이제 이상스럽지 않다. 이른바 ‘소품종 다량생산’의 ‘단작’이다.

 

한 농산품만 재배하면 생태계가 단순해져 환경변화에 대한 완충력이 줄어든다. 홍수와 가뭄 피해는 물론, 해충의 피해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식물이 몰려있으니 해충은 급속히 늘어나는데 해충을 구제하는 천적이 없으니 상품가치를 잃고 싶지 않은 농부는 살충제로 해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단일 작물이 요구하는 영양분이 금방 부족해지니 농부는 비료를 뿌려야하는데 그 비료는 잡초까지 불러들인다. 살충제의 편의에 익숙해진 농부는 제초제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환금작물의 씨앗은 자급자족할 때 뿌렸던 씨앗과 여러모로 다르다. 종묘상에게 구입해야 하는 씨앗은 다수확에 맞게 육종한 까닭에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좁다. 따라서 다수확을 기대하려면 씨앗이 요구하는 조건을 잘 맞춰야 한다. 맞지 않으면 수확이 보잘것없게 된다. 마을의 어른에게 물어 재배해도 소용없다. 종자회사에서 권고하는 매뉴얼을 참조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매뉴얼대로 농사지어도 실패했을 경우 종묘상이나 종자회사에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런데 경제 논리로 보아, 수확량이 늘면 시장에서 가격은 떨어진다. 내 수확량이 늘어나는 대신 다른 농부는 형편없어야 큰돈을 차지할 텐데, 그러려면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 투자가 절실하게 된다는 거다.

 

1960년대 초 세상에 등장한 녹색혁명은 단작을 세계화했다. 다양한 씨앗을 여기저기 심던 농촌은 녹색혁명 품종의 씨앗에 맞게 농토를 획일적으로 다듬었고 씨앗이 요구하는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를 적기에 적량 살포해야하는 농부는 관개농업에 의존하게 되었다. 가격이 떨어지는 걸 막고 싶은 농부는 농산품을 구입하는 정부 또는 상인의 권고에 따라 재배 면적을 줄여야 했고 지역에 따라 농산품의 종류를제한하게 되었다. 이른바 ‘비교우위 농업’이 권장된 것이다.

 

비교우위 농업은 지역을 넘어 국가 단위로 넓어졌다. 고추와 마늘 주산지가 감자와 배추 주산지와 일치하지 않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옥수수와 콩은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옥수수와 콩만이 아니다. 어느새 우리나라는 식량의 4분의3을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대신 멀쩡한 농토에 공장을 지어 외화를 벌어들인다. 우리만이 아니다. 국제미작연구소가 있을 정도로 쌀농사의 적지인 필리핀도 농토에 공장을 지었다. 그런데 벌어들이는 외화보다 국제 곡물의 수입 부담이 크자 식량 위기가 심화되었고 사회혼란을 피할 수 없었다(벨로, 2010).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에 기대 자국의 식량기지를 없앤 혹독한 대가를 치룬 것인데, 국제 농산품 재고가 모자라는 시기가 온다면 우리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녹색혁명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화학농업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땅이 황폐화된 것이다. 이제 농부는 감산을 피하기 위해 농약과 비료를 뿌린다. 그러자 몬산토와 같은 다국적기업이 감언이설로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특정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농산물이므로 그 제초제를 뿌려도 끄떡없을 것이니 제초제로 잡초를 모두 죽인 농토에서 우리가 개발한 콩과 유채와 같은 농산품을 심으라고 세계의 농부들을 유혹하고 나선 것이다. 살충 효과를 가진 유전자조작 면화나 옥수수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씨앗은 오래지 않아 부작용을 드러냈다. 씨앗에 포함된 조작된 유전자가 주위의 엉뚱한 식물로 옮겨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사료로 먹는 가축이나 심지어 사람에게 예측 못한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김은진, 2009).

 

이제 다수확 품종을 심는 농촌은 씨앗을 갈무리할 필요가 없다. 아니 하면 안 된다. 계약 위반이므로 적발되면 적지 않은 벌금을 물어야 한다. 종자기업이 통폐합되면서 농부는 그 나라 농촌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계 기업의 씨앗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주권을 잃은 것이다.

 

2) 다국적기업 등장

 

비교우위 농업은 다국적기업의 전횡을 낳았다. 막대하게 수확한 농산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팔 수 없는 농부는 결국 다국적기업에 넘기게 되고, 다국적기업은 농산품의 국제교역에 주도권을 차지하고 말았다. 그들이 농산품의 구입과 판매 시의 가격을 통제하는 만큼, 생산자나 소비자는 다국적기업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다국적기업들은 서로 경쟁한다. 통폐합해 규모를 키우는 다국적기업은 농산품 생산과 가공, 운송에 적극 개입할 뿐 아니라 관련 산업을 수직 계열화했다. 농산품과 사료, 축산과 육가공을 지배하는데 그치지 않고 국제 교역에 주도권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다국적기업에 좌지우지되는 국제 곡물은 이제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 상품이 소비자에게 인도되기도 전에 대금을 주고받는 선물거래는 소문에 민감하다. 수출국의 흉작 소식은 재고와 관계없이 가격을 치솟게 만드는 것이다.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국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오른 가격으로 식량을 구입해야 한다. 외화가 부족하다면 폭동을 감당해야 할지 모르는데, 투자자의 이익에 우선해야 하는 다국적기업은 생산자와 소비자, 외화가 없어 굶주리는 지역의 사정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3) 공장식 축산업의 등장

 

다수확 품종을 집중 재배하면서 남아도는 농산품을 사료로 가공하면서 축산업이 거대하게 변했다. 방목하던 목장은 거의 사라지고, 그 자리를 공장식 축산업이 차지한 것이다. 공장식 축산도 가축을 다수확 품종으로 획일화시켰다. 소, 돼지, 양, 닭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좁아지고, 그 만큼 사육 환경이 획일화되었다. 이제 모든 가축은 예측 가능한 시간 내에 몸집이 어느 이상 늘어나야 한다. 그를 위해 유전자조작 옥수수와 콩을 가공한 사료를 먹이며 성장호르몬을 주입한다. 그래야 어려도 덩치가 커지는 가축을 빨리 도살해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좁은 사육장에 유전자가 단순한 가축을 밀집시켜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에 질병이 창궐하면 순식간에 퍼질 수 있다. 따라서 항생제를 사전에 처방하는 농부는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 상처를 입히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서로 쪼지 못하도록 병아리의 뾰족한 부리를 진작 뭉툭하게 자르거나 서로 물어뜯지 못하도록 돼지의 꼬리를 잘라내는 것이다. 그렇듯, 공장식 축산에서 가축의 생명은 종중되지 않고 오로지 상품으로 취급될 따름이다.

 

가축들은 습성에 맞지 않는 사료에 의존하면서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지만 그 전에 도살할 테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문제는 인수공통 질병이 인간에게 만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류독감을 비롯해 구제역과 수족구병 만이 아니다. 영국에서 시작돼 세계를 긴장시키는 광우병도 공장식 축산이 원인을 제공했다.

 

4) 문화를 잃은 식량

 

요즘 돼지고기는 세계가 똑같다. 미국산 삼겹살이 우리 삼겹살과 맛이 같다. 품종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계란도 우유도 마찬가지고 쇠고기와 닭고기도 그렇다. 농산품만이 아니다. 그 가공식품도 세계가 똑같다. 식재료와 식단 뿐 아니라 조리방법까지 세계가 공통인 까닭에 다국적기업이 공급하는 패스트푸드는 물론이다. 식성의 세계화라기보다 음식에 깃든 문화마저 상품으로 획일화된 것이다.

 

슈퍼마켓에 전시된 수많은 가공식품의 상표는 제각각이지만 재료는 엇비슷하다. 쇠고기는 옥수수의 가공식품이고 계란과 소시지도 마찬가지라고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마이클 폴란(2008)은 주장한다. 그 뿐이 아니다. 설탕을 대신하는 당분으로 옥수수가 가공돼 음료수에 들어간 이후, 비만 인구가 세계적으로 급증했다. 옥수수 덕분에 값싼 육류가 흔해지고 칼로리가 높은 음료수를 거푸 마시면서 여유가 없는 계층의 몸이 불어난 것이다. 이제 서구사회에서 비만은 가난의 상징이 되었다. 식량에 칼로리는 지나치게 높지만 필수 영양소가 부족하게 되면서 성인병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소아비만과 소아당뇨병도 전에 없이 늘었다.

 

 

3. 황폐화된 식량 환경

 

최근 미국과 유럽은 꿀벌이 사라진다고 아우성이다. 우리나라의 사정도 그리 밝지 않다. 꿀벌이 사라지면 사람은 많은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 어쩌면 생존이 어려워질 수 있다. 꿀벌의 집단이 붕괴하는 현상은 사람의 욕심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많은 꿀을 빨리 모으는 품종을 양봉농가에 집중 보급한 결과,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좁아진 꿀벌은 면역력이 떨어지고 환경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벌통 관리에 애를 먹는 양봉농가가 애벌레에 알을 낳는 응애의 공격을 차단하고자 살충제를 뿌렸건만 살충제가 오히려 꿀벌을 공격하게 되었는데 피해는 거기에서 그친 게 아니다. 가루수정을 위해 꿀벌을 필요로 하는 아몬드 농업이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대하게 밀집되면서 꿀벌 집단 붕괴 현상이 커진 것으로 제이콥슨(2009)은 주장한다. 많은 아몬드를 빨리 여는 나무를 넓은 면적에 획일적으로 심자 꽃이 피는 2주일 동안 미국은 물론 유럽의 꿀벌까지 총동원해야 했는데, 그때 질병을 공유한 벌들이 가루수정을 마치고 다시 퍼져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수입하는 세계 아몬드 수요의 80퍼센트를 캘리포니아에서 떠맡고 있다.

 

1) 전용되는 식량기지

 

우리 정부는 농토 확보 명분으로 매립한 새만금 일원의 갯벌을 다시 도시로 개발하려고 한다. 개발로 사라지는 농토를 대신하겠다던 그 갯벌은 수많은 어패류의 산란장일 뿐 아니라 자연스런 식량보고였지만 대부분 사라졌다. 칼로리와 영양분은 물론이고 가격으로 볼 때 육지의 어떤 농토보다 경제적 가치가 높지만 한시적 개발 이익을 위해 선조가 물려준 갯벌을 매립하고 만 것이다. 막대한 플랑크톤의 탄소동화작용으로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지구온난화를 예방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상승된 해수면을 타고 넘어오는 파고를 완충하는 조간대를 우리는 당대에 잃었다. 후손의 생명은 그만큼 위협받을 것이다.

 

바다와 같던 중국의 황하가 갈수기에 마르는 것은 농토를 도시와 공업단지로 전용하면서 강물을 돌렸기 때문이다. 어디 황하 만이랴. 식량기지를 개발하는 곳은 우리나라와 중국뿐이 아니다. 이제 화학농업의 한계가 드러나는데 세계 인구는 급격히 증가했다. 앞으로 늘어난 세계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할지 걱정스러운 상황에서 외채에 시달리는 국가는 기존 농토에 헐값으로 수출되는 화훼작물이나 기호식품을 재배한다.

 

2) 석유위기 앞의 농업

 

지금은 석유 농업이다. 화학비료는 물론이고 살충제와 제초제도 석유를 가공해 만든다. 기계화된 현대농업은 석유 없이 파종, 경작, 수확, 건조, 운반이 불가능하다. 1000칼로리의 옥수수를 수확하려면 그 10배의 석유를 쏟아야 하고, 그렇게 재배한 옥수수를 10킬로그램 먹여야 쇠고기 1킬로그램을 겨우 얻을 수 있다. 따라서 고기로 배불리면 그 10배의 옥수수를 소비하는 셈이고 다시 그 10배의 석유를 낭비하는 꼴이다.

 

최근 석유위기를 극복하려는 수단의 일환으로 바이오연료를 공급하려는 정책이 지구촌의 일각에서 섣불리 추진되고 있다. 옥수수나 사탕수수로 디젤과 에탄올을 정제하겠다는 건데, 그를 위해 소비되는 석유는 둘째 치고, 자동차 한 대에 주유하는데 들어가는 에탄올은 한 사람이 1년 소비할 곡물을 가공해야 한다고 환경운동가는 주장한다(마슬린, 2010: 141). 지구온난화를 대비해 도시에 ‘농장건물’을 짓겠다는 사람도 있다. 에너지 효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LED와 태양빛을 실내로 끌어들여 농산품을 수경재배하겠다는 계획이 그것이다(경향신문, 2009.7.1). 뉴욕 맨해튼에서 경제성 있다는 농장빌딩을 우리나라에 추진하고 있는데 과연 타당할까. 제안자는 30층 높이의 건물을 짓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도 물론이고 수경재배를 위해 들어가는 화학물질도 에너지 투입 없이 공급될 수 없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땅에 뿌리 내리지 않은 농산품이 먹는 이에게 장차 안전할지 함부로 짐작할 수 없다.

 

3) 식품 첨가물의 확산

 

다국적기업의 거대한 화물선에 실려 오대양과 육대주를 장시간 누벼야하는 농산품은 중간에 상하면 상품가치를 잃는다. 따라서 수확 후 농약 살포는 필수적이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공장식으로 밀집시켜 사육하는 가축처럼 바다나 호수에서 양식하는 어류도 항생제와 호르몬을 비롯한 많은 화학약품을 투여한다. 또한 한 번 가공하면 오래 유통시켜야 하는 가공식품은 맛과 색이 변하지 않은 상태로 상품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수많은 화학약품을 첨가하고 세계 곳곳에 지점을 확보한 패스트푸드 역시 동일한 맛과 향을 유지하려고 합성 첨가물을 넣는다.

 

넨시 드빌(2008)은 “슈퍼마켓이 우리를 죽인다!”고 경고하고 안병준(2005)은 “아이에게 과자 대신 차라리 담배를 주는 게 낫다.”고 어처구니없어 한다. 아토피는 오염된 대기만 원인이 아니다. 우리 몸의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식품 속의 첨가물과 무관하지 않다. 한 사람이 평생 320킬로그램을 섭취한다고 야마모토 히로토(2006)가 주장하는 화학물질이 그것이다.

 

4) 음식 쓰레기, 해양오염, 그리고 남획

 

늘어나는 음식 쓰레기는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바다에 버려 해양오염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데, 어장의 물고기들이 허겁지겁 버리는 그 쓰레기를 먹기도 한다. 결국 우리 식탁에 오를 물고기들이다. 미국은 음식 쓰레기가 전체 쓰레기의 40퍼센트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미국이나 우리나 단지 유통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건드리지 않은 멀쩡한 식품이 쓰레기로 둔갑하기도 한다. 버리는 식품으로 굶주리는 세계의 인구를 충분히 먹일 수 있는 양이다.

 

남획으로 인한 해양어류의 고갈은 양식업의 규모를 키우고 있으나 그로 인한 해안의 파괴는 쓰나미의 피해를 키울 뿐 아니라 어족자원 보전에도 역행한다. 많은 양식장이 어패류의 산란장을 파괴하고 들어서는데, 항생제에 찌들거나 세균에 감염된 오폐수가 걷잡을 수 없게 배출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와 캐나다 일원의 생명공학 연구소에서 비정상적으로 덩치를 키운 유전자조작 어류의 양식을 연구하고 있다. 만일 그런 어류가 양식장을 빠져나가 조작된 유전자를 퍼뜨릴 경우 어떤 생태적 피해가 확산될까. 사전에 그 규모를 파악할 수 없을 뿐더러 대책을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5)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

 

지난 100년 동안 섭씨 0.7도 정도 상승한 지구촌의 기온은 태풍과 허리케인의 강도와 횟수를 늘렸고 경작지를 메마르게 했을 뿐 아니라 사막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세계 평균보다 정도가 심해 1.4도 높아진 우리나라의 해역은 이미 아열대화 되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보라문어와 같은 난대성 어류가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명태와 대구와 같은 한대성 어류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해초가 우거졌던 바위에 백화현상이 두드러지게 늘어나는데, 육지도 마찬가지다. 감나무의 남방한계선이 북상하면서 사과의 재배지가 높은 위도로 점차 옮겨가고 있다.

 

온난화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열대과일을 재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농작물의 경작은 기온만이 변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온난화되면서 토양미생물의 종류와 분포 상황이 바뀌고 강우의 양과 시기가 변하면 당장 기존의 농작물부터 잃게 될 테지만 그렇다고 아열대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조건이 쉽게 조성될 리 없다. 열대과일은커녕 식량위기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사막화도 걱정이다. 많은 예산과 인력으로 나무를 심고 초지를 조성하는 중국도 내몽고 일원에 확산되는 사막화를 진정시키지 못하는데 몽골의 사정은 더욱 열악한 실정이다. 앞으로 사막화되는 초원은 가축 방목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해양 곳곳의 어장 역시 전에 없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해수 이동이 변하기 때문인데 그 뿐이 아니다. 다수확 품종 위주의 지나친 품종개량으로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줄어든 농산품이 온난화된 기후에 견딜 수 없다면 내일의 식량 사정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4. 다시 지역으로

 

기아 인구가 많은 아프리카라고 해서 기름진 경작지가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은 외채가 국가를 짓누르고 해외 기업이 경작지를 독차지하는 탓에 굶주린다. 부정한 정권에 제공된 외채였고 그 외채에 대한 이자를 어느 정도 챙겼다면 이제 탕감할 때가 되었다고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 출신인 지글러(2008)는 주장한다. 굶주리는 지역에 그때그때 식량을 공급하는 자선은 한시적 대책에 불과하다. 지글러의 주장처럼 떳떳하지 못한 외채였다면 탕감하여 수출용 농산품 재배에 매달리는 일이 줄어들도록 배려해야 하고, 동시에 자신의 땅에서 평화롭게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안을 모색하는 편이 근본적으로 바람직할 것이다. 지역의 식량을 지역에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식량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어야 평화가 유지된다. 그를 위해 식량은 안보가 아닌 주권 차원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윤을 앞세우는 기업이라면 모를까, 제 나라의 사정이 어두워져도 식량을 수출하는 국가는 드물다. 다국적기업이라면 국제시장에 식량이 부족할 때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안정된 식량을 확보하려면 각국 정부는 식량기지를 해외에 마련하기보다 국내에 자급자족이 가능한 농토를 확보하는 게 안정적이다. 바로 ‘식량주권’이다.

 

식량이 무기 또는 투기화 된 마당에 축적한 외화로 식량을 수입하려는 자세는 석유위기가 멀지 않은 시대의 대안일 수 없다. 분배의 불균형이 있는 세계 식량은 위기의 경계에 있을지언정 뿐 모자라지 않는다. 위기는 위험과 기화를 동시에 제공한다. 우리는 위기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이때, 예측할 수 없는 환경변화에 최대한 견딜 수 있도록 농산물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을 복원할 필요가 있다. 그를 위해 지역은 제철 제 고장 농산물로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다품종 소량 생산의 가능성을 타진해야 하고 그를 전제로 농토를 확보해야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자면 농사에 종사하는 인구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할 텐데 당장 어렵다면 지역의 자치단체는 유럽과 일본처럼 도시 근교에 텃밭을 조성해 분양하는 방법을 선행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안전한 식량은 자신이 농사지은 농작물이나 사육한 가축이지만 당장 그럴 여건이 안 된다면 신뢰할 수 있는 이가 생산했거나 키운 농산물이나 축산물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신뢰할 수 있는 생산자를 알지 못한다면 그런 농산물을 판매하는 상점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서구의 유기농 마켓이나 우리나라의 생활협동조합이 그런 상점의 예가 된다. 생활협동조합의 소비자 조합원이 되어 생산자 조합원이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업으로 힘겹게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내놓은 제철 제 고장의 농산물과 축산물을 흔쾌히 구입하며 가족과 밥을 지어 먹는다면 땅도 살리고 농민도 살리고 나와 가족의 내일도 살릴 수 있다. 가격이 비싼 만큼 넘치지 않게 구입해 다 먹는다면 쓰레기가 발생하지 않고 비만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

 

진정한 유기농산물의 자격은 제철 제 고장에서 생산해야 얻을 수 있다. 운송 과정에서 많은 석유를 소비한 수입 농산물은 유기농산물의 자격을 잃는다. 유기농 커피와 같은 기호식품이나 운송 과정에서 농약을 뿌리지 않은 유기농 열대과일은 먹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다. 다만 아직 피할 수 없다면 생산자의 권리를 수용한 ‘공정무역’ 농산물을 구입하는 편이 바람직하리라. 폴란(2009)은 ‘음식’을 먹으라고 권한다. 상품이 아니라 음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덧붙여 음식 쓰레기를 되도록 줄이고 몸이 비대해지지 않도록 과식을 삼가하고 주로 채식을 하자라고 제안한다. 아무래도 가축을 공장식으로 사육하는 과정에서 식량이 낭비되고 물과 에너지가 과소비되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인심과 환경이 지금보다 좋았던 시절, 우리 조상의 식성이다. 우리나 세계나 자연스런 식단에 언제나 답이 있다. (방송대 교재, <세계의 정치와 경제> 중, 2010년 12월 발행 예정)

 

 

참고문헌

 

김은진. 2009. <유전자조작 밥상을 치워라>. 도솔.

안병준. 2005.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국일미디어.

Bello, Walden. 김기근 옮김. 2010. <그 많던 쌀과 옥수수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더숲.

Bové, José, François Dufour. 2002. 홍세화 옮김. <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울력.

Deville, Nancy. 이강훈 옮김. 2008. <슈퍼마켓이 우리를 죽인다>. 기린원.

Diamond, Jared. 김진준 옮김. 2001. <총ㆍ균ㆍ쇠>. 문학사상.

Hiroto, Yamamoto. 손성애 옮김. 2006. <오염된 몸, 320킬로그램의 공포>. 여성신문사.

Jacobsen, Rowan. 노태복 옮김. 2009.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 에코리브르.

Maslin, Mark. 조홍섭 옮김, 2010. <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 한겨레출판.

Pollan, Michael. 조윤정 옮김. 2008. <잡식동물의 딜레마>. 다른세상.

Pollan, Michael. 조윤정 옮김. 2009. <행복한 밥상>. 다른세상.

Ziegler, Jean. 양영란 옮김. 2008. <탐욕의 시대>. 갈라파고스.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7. 15. 12:22

 

150년 전 미국의 재야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모든 동물은 체온 유지를 위해 식(밥)과 주(집)만이 필요한데 사람은 의(옷)까지 요구한다고 말했다. 사람에게 털이 없기 때문일 텐데, 동물 중에 주마저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그저 추워지면 후손에게 생을 넘겨주고 마는 곤충들이 그렇다. 번식기 이외의 새들도 딱히 집이라 할 만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소로우는 척추동물을 생각했나보다. 한데, 의식주 중 모든 동물이 피할 수 없는 필수 요소가 있다. 짐작하듯, 식이다. 밥을 먹지 않으면 아무도 살아갈 수 없다.

 

사람의 많은 욕구 중에서 식욕이 가장 원초적이다. 군종장교도 고된 훈련으로 허기지면 평소에 사병에게 나누어주던 배급 건빵을 슬쩍 숨긴다지 않던가. 금욕이나 명예욕도 배가 고프지 않을 때 한하는 이야기일 텐데 요즘 우린 배고픈 고통을 모른다. 도처에 먹을거리가 넘치니 굳이 챙기지 않아도 굶을 이유가 없고 극구 사양하지 않으면 거북해진 위장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가 많다. 노인들이 회고하는 어릴 적 ‘보릿고개’를 예로 들지 않아도 과거에 굶주림이 일상이었다던데, 역사상 먹을거리가 가장 풍족한 이른 21세기. 하지만 전문가들은 21세기에 심각한 식량 위기가 닥칠 것으로 전망한다.

 

요즘 어디를 둘러보아도 먹을거리는 넘친다. 거리에 나가면 비만이 눈에 띄게 늘었다. 어린이 비만이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고, 많은 사람들이 적게 먹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입맛을 없애는 약을 판매하기도 하고 심지어 위장을 잘라내는 수술도 낯설지 않다. 명절이나 생일상에 조금 올라오던 고기와 계절을 앞당긴 과일이 식품매장을 가득 채웠고 주차장이 완비된 식당마다 임금님과 진시황이 부럽지 않은 식단을 앞다투어 선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갑작스런 풍요는 지구촌에서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다. 한쪽의 영양실조와 기아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데 다른 쪽은 살을 빼려고 시간과 돈을 퍼붓는다. 그에 들어가는 돈이면 지구촌의 기아를 해결하고도 남는다고 한다. 먹을거리가 남아돌아도 배고픈 인구는 늘어만 가는 현실에서 역설적인 현상은 풍요로운 지역에서 비만은 가난의 상징이라는 거다. 누구나 지적할 수 있는 분배와 균형의 왜곡일 텐데, 앞으로 분배할 식량 자체가 줄어들면 어떤 혼란과 비극이 연출될 수 있을까. 그 위기의 시험대를 안고 있는 21세기. 누군가 말한다. 위기(危機)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걱정하는 지구온난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위험의 원인일 것이다. 바다는 이미 아열대화가 진행돼 명태와 대구와 같은 한대어종은 자취를 감췄고 온대어종인 오징어가 풍어를 이룬다. 문제는 우리가 먹지 않는 보라문어를 비롯한 아열대와 열대어류가 속속 올라올 뿐 아니라 어업을 방해하고 어부를 위험에 빠뜨리는 아무르불가사리나 노무라입깃해파리들이 떼를 이뤄 출몰한다는 거다. 수온이 변한 바다에 해조류가 달라붙지 않는 백화현상이 만연되고 해조류가 없는 바다에서 먹이와 알 낳을 장소를 찾지 못하는 물고기들이 사라지는 현상은 이제 일상이 되었건만 대형 선단을 동원하여 알을 가진 생선까지 싹 쓸어 잡는 자본의 남획은 그칠 줄 모른다.

 

육지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품종의 사과나무가 남쪽 지방에서 통 자라지 못한다. 예전에 어림도 없던 강원도 홍천에 심어야 제대로 된 수확을 얻을 수 있다. 감나무 북방한계선은 자꾸 올라가 이제 북한 지역에서 감을 가져와야 할 날이 멀지 않았다. 어떤 이는 우리도 열대과일이나 작물을 심자고 제안하지만 농작물 재배 환경은 간단하게 변하는 게 아니다. 보수적인 식습관 때문만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익숙해진 음식을 간단히 포기할 사람은 흔치 않을 테지만 그보다 농작물이 싹터 열매 맺는 때까지 영향을 주고받는 생태계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결코 사람이 재현할 수 없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했을 때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할 것이다. 태평양에 흩어진 작은 국가들의 농토에 바닷물이 침입하기 시작했고 국가 재난을 선포한 투발루는 전 국민의 이주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지경에 빠졌는데, 온실가스는 좀처럼 줄어들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지구온난화 극복의 시나리오로 잘 알려진 영국의 ‘스턴 보고서’는 현재에도 늘어나는 온실가스를 당장 줄일 수 없으니 2015년에 최대가 된 이후 해마다 1퍼센트 씩 줄이자고 제안한다. 2050년에 지금보다 평균 3도 오르는 정도에서 멈출 것으로 기대하면서.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3도 상승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3도 이상으로 오르면 상승효과가 가속돼 6도까지 오르는 걸 막기 어렵다고 분석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에 이르면 인류는 물론이고 지구촌의 생물 대부분이 멸종하게 될 것으로 시나리오는 예측한다.

 

요즘과 같은 추세로 더워지면 5년 이내에 여름철 북극권의 얼음이 다 녹을 것으로 예측하는 학자들은 지금보다 3도가 오르면 아마존이 사막으로 변하고 호주가 타버리며 도시는 거대한 태풍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하는데, 그린란드도 완전히 녹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면 해수면은 7미터 이상 상승할 테니 주로 해안에 분포하는 세계의 곡창지대는 버림받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온실가스 배출을 당장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을 때 벌어질 수 있는 21세기의 재앙을 수천 명의 기후학자들이 그리 연구해 냈다.

 

기계화된 농토에 일제히 심는 농작물의 씨앗은 과거의 것과 완전히 다르다. 불과 얼마 전까지 농부들은 이듬해에 심을 씨앗을 겨우내 엄격히 보관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기업에서 다수확품종의 씨앗을 산다. 다른 기업의 씨앗보다 소출이 늘어야 내년에 수입을 늘릴 수 있는 까닭에 종자회사들은 연구개발 경쟁에 치열하고, 그럴수록 씨앗이 가지고 있던 유전적 다양성의 폭은 줄어들게 된다. 일손이 크게 줄어든 농촌에서 값비싼 기계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농사꾼들은 수지를 맞추려면 몇 안 되는 품종의 농작물을 넓은 농토에 획일적으로 심는데 그런 농산물은 씨앗이 요구하는 조건을 잘 맞추지 못하면 수확이 기대 이하로 떨어진다. 따라서 종자회사가 지시하는 대로 화학비료나 농약을 그때그때 뿌리며 재배 환경을 유지해야 한다. 외상으로 구입한 농기계와 씨앗 비용을 갚고 식구를 건사하려니 다른 도리가 없다. 한데 온난화되는 지구의 환경은 점점 안정을 잃어가고 있다.

 

소출은 늘었어도 품종이 단순해진 농작물은 자급자족과 관계없이 오로지 상품이 되었다. 농부들은 수확한, 아니 수확도 하기 전의 농산물을 전부 거래처에 팔아넘기고 자신이 먹을 농산물을 따로 구입해야 한다. 수확한 농작물을 조금씩 팔기 귀찮고 보관비용도 만만치 않으니 커다란 창고를 가진 기업에 팔게 되는데, 지역과 국가, 국제 간 거래에 따라 농작물을 농민에게 구입하는 기업의 규모는 차이가 크다. 농산물의 국제 거래를 독과점하는 다국적기업은 자급 기반을 잃은 국가에 군림할 정도로 영향력이 지대하다.

 

막대한 규모의 창고와 운송 능력 가진 다국적기업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농산물을 파는데, 그 과정에서 투기가 개입한다. 세계 경제 상황에 따라 요동치는 원유가격이 생산량과 관계없듯, 국제 곡물 가격이 오르내리는 현상도 투기자본 때문인데, 가난한 국가는 남아도는 농산물을 충분히 구입하지 못한다. 한데 선박으로 오랜 시간 운송하는 농작물은 도중에 상하지 않도록 농약을 집중 살포해야 하고 비행기로 나르는 농작물은 가격이 지나치게 높으니 아무나 먹지 못한다. 그런데 유전적 다양성은 폭이 줄어든 농작물은 환경변화에 매우 취약하다. 멸종 가능성이 점쳐질 정도다.

 

농토가 사라진다. 해수면 상승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자에 의한 각종 개발과 분별없는 산업화로 농작물 재배 공간이 거듭 줄어들거나 오염되고 있다. 농토가 도시에 잠식되는 사례는 신도기 개발 열기에 휩싸인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가 공통이고 생산성이 아주 뛰어난 갯벌을 매립하는 행위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사례다. 대규모 산림벌채로 목장이나 농장을 만든 후 토양이 황폐된 아마존이 있고 대형 댐으로 드넓은 농토가 수몰되는 인도와 같은 국가도 있다. 지구온난화에 의한 사막화로 목초지가 메말라가는 중국과 몽골도 21세기를 걱정해야 한다. 겉보기 멀쩡한 농토도 과다한 농약 사용과 대기오염으로 인한 산성비 전에 없이 부실해졌다.

 

최근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꿀벌이 사라져 걱정이 태산이다. 아직 그 구체적인 실태가 파악되지 않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닐 텐데, 대기오염과 과다한 농약이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지나친 인공 증식으로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상태에서 꿀벌의 개체군이 지나치게 늘어난 현상에 주목한다.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현저히 좁아진 꿀벌 집단에 천적인 응애가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벌통이 경작지를 따라 국내는 물론 세계를 오고가는 현실이 아닌가. 겨우내 비닐하우스 용 꿀벌을 수입하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일 텐데, 어떻게 계산했는지 모르지만,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지면 4년 내에 사람도 견디기 어렵다고 예측했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의 인구는 세계 최하의 출산율 덕택에 머지않아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지만 세계의 인구는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 분쟁과 벌목과 사막화로 농토가 황폐해지고 마실 물이 오염되었으며 수출작물에 자급 기반을 빼앗긴 국가 위주로 늘어난다. 아이가 자꾸 죽어가는 탓에 더 낳자 배고픈 인구가 더욱 늘어나는, 역설이라기보다 인지상정이 지배하는 지역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사회적 약자, 다시 말해 남성보다 여성, 어른보다 어린이나 노인들이 먼저 굶주린 뒤 병에 걸리고, 치료와 영양공급의 순위에서 밀려나는 여자 아이와 할머니부터 희생되는데 그 수가 해마다 2천만 이상을 헤아린다. 그들도 먹어야 살 수 있다. 먹을거리에 얽힌 21세기의 풍속도가 시방 이렇다. (사이언스올, 2009년 7월 셋째 주)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2. 5. 01:27

 

결혼과 출산 연령이 점점 늦어지고 있다. 1980년대 이전, 30대에 접어든 총각에게 흔히 붙이던 접두어 ‘노’(老)자는 사라진지 오래다. 서른이 지나도 결혼을 미루는 여성을 고집스럽다거나 성격이 특이할 것처럼 수군대는 사람도 거의 볼 수 없다. 아무리 보수적인 부모라도 결혼을 약속한 이성이 있다면 늘어가는 자녀의 나이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 것 같고, 본인의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비혼(非婚)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사회에 짙다. 그만큼 세상은 바꿨다.

 

그리 되는데 과학기술의 힘이 컸다. 낳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것이다. 요즘은 아이의 출생을 고의로 늦게 신고하는 부모는 찾기 어렵다.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야 동네잔치 벌였던 시절에서 뱃속 아기의 성장까지 손금처럼 들여다보는 세상으로 바뀐 요즘, 탯줄을 자르면서 시작되는 각종 예방접종은 자라는 과정마다 정확하게 처방된다. 과학기술이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친절하게 견인하니 뜻하지 않은 사고나 질병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방금 태어난 아기도 노인이 될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갈 것이다.

 

출산 연령은 왜 늦어지는 걸까. 그 방면에 과문해 합리적 해석을 내놓을 재간이 없지만, 굳이 추정하자면, 산모의 나이와 관계없이 아이가 독립할 때까지 잘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무시할 수 없을 성 싶다. 경쟁사회에서 처지지 않도록 제 아이를 애지중지 키우는데 들어갈 비용에 엄두가 나지 않거나 이제까지 자신에게 투자한 정신과 경제적 비용을 돌이켜보면 비로소 얻은 알토란같은 자신만의 시간을 아기 키우는데 소비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작용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가. 아이를 나중에 낳으려는 신혼부부도 아이 하나로 만족하는 부부도 적지 않다.

 

몇 년 전, 모자보건학회는 이른바 ‘123운동’을 홍보하고 나섰다. “결혼 1년 내에 임신을 해서 2명의 아이를 30세 이전에 낳아 잘 기르자!”는 123운동은 결혼과 출산을 당기고 고령화사회와 인구 감소를 예방하자는 취지였다. 가족보건복지협회에서 내건 표어는 자극적이었다. “엄마! 아빠! 혼자는 싫어요!” 그런 홍보물에 호응할 청춘남녀가 얼마나 될지 통계자료를 입수하지 못해 알 수 없지만, 네티즌의 반응은 지극히 냉소적이었다. “포스터를 만들고 운동을 선동해 많은 이들을 꾀어내기 전에 현실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르는 충고는 점잖은 편에 속한다. “결혼 1년 이내 임신을 해서 2명의 아이를 30세 이전에 낳는다면 나이 40이 되기 전에 파산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정부는 고령화사회를 걱정한다. 해법은 역시 아이를 더 낳자는 건데, 국토 면적에 비해 우리나라의 인구가 많다는 건 부정하지 않을 정부로서 좀 느닷없다 싶다. 고령화사회라는 용어가 익숙해지기 얼마 전까지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아이의 병원비는 보험 혜택에서 제외시키는 것도 모자라 정관시술에 응하면 예비군 동원훈련을 면제해주던 정부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로 바꿨고, 그에 화답한 방송국은 아이 하나로 행복해하는 드라마를 연실 편성하지 않았던가. 외동딸과 함께 사는 ‘순풍산부인과’ 원장도 자손은 외손녀 ‘미달’이 뿐이었다.

 

인파가 많은 역 광장에 ‘인구시계’를 세워놓고 경각심을 불어넣던 정부는 14세부터 65세까지로 상정하는 ‘생산인구’의 비율이 줄어드는데 위기감을 보인다. 2008년 통계청은 65세 이상 노인이 우리 인구의 10퍼센트인 500만을 돌파해 이미 고령화사회에 접어들었음을 밝혔다. 이런 추세로 2026년이면 20퍼센트가 65세 이상의 노인인 초고령사회로 들어갈 것이라 추산한다. 참고로, 전체 인구의 7퍼센트 이상이 65세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퍼센트 이상이면 고령사회, 20퍼센트가 넘으면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초고령사회가 되면 노인 1명을 부양하는데 생산인구 3명이 동원돼, 개개인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국가 성장률도 떨어진다고 전문가는 분석한다.

 

14세 이하를 생산인구에서 빼는 건 이해할 수 있는데, 65세 이상까지 제외하는 건 서글픈 일이다. 넘치는 힘과 패기로 생산 현장에서 비지땀 흘리기 어려울지라도 경륜으로 젊은이를 이끄는 일은 당장 가능하고, 정책적 고려가 뒷받침된다면 의지가 있는 노인에게 배려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리라 여기는 까닭이다. 젊은이의 일자리도 모자라는 판에 노인의 일자리를 어떻게 만드느냐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20대의 절반이 백수라는 ‘이태백’이 90퍼센트가 백수라는 ‘이구백’으로 악화된 세상에서 아이를 더 낳으라는 권고는 과연 합리적인가. 비록 사정이 여의치 않은 현실이지만 아기가 성장했을 때 종사할 일자리를 지금부터 확실히 준비할 것이므로 염려하지 말라고 장담하려한다면, 같은 논리로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추세에 맞게 노인의 일자리도 마련해야 옳을 것이다. 안정된 사회에서 경륜은 사장시킬 수 없는 사회적 자산이 아닌가.

 

인구학자들은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바뀌는 시간이 유래가 없이 빨라, 일자리는커녕 노인의 복지체계를 정비할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라고 지적한다. 프랑스가 154년, 미국이 94년, 일본이 36년인데 우리는 26년에 불과할 거로 예상하지만 사실 그 속도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 정부의 의지대로 가구당 1.13명에 불과한 우리의 출산율을 높인다면 초고령사회로 들어가는 시간은 조금 연장되겠지만, 인구밀도와 노인의 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을 테니 후손의 부담은 더욱 누적될 것이다. 늘어나는 인구의 생활기반 확보를 위해 농토와 녹지는 더욱 협소해지고 식량 확보를 위한 외화 부담도 불어날 것이다. 눈앞의 경제와 GNP 성장을 위한 출산 장려는 근시안적 처방이다. 멀지 않은 후손에게 못할 짓을 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인구가 현재 증가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감소할 것으로 통계청은 예견한다. 대략 4900만에 이를 인구는 2018년을 정점으로 하향곡선을 그린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시간이 얼마 없지만 서둘러야할 과제를 잊으면 안 된다. 노인의 일자리 확보와 우리 인구가 먹을 식량을 내 땅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세계 인구의 증가 추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세계 식량 생산이 늘어나지 않는 시점에 식량 자급을 위한 노력은 안보보다 주권, 주권보다 생존의 차원에서 양보할 수 없는 일이다. 기회를 놓친다면 우리도 굶주림에 휩싸일 수 있다. 지구온난화가 빚을 기상이변과 곡창지대의 사막화로 필연적으로 줄어들 잉여 농산물이 지금처럼 투기자본에 장악된다면 국제 곡물의 시세는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중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도를 포함해 공식적으로 13억인 중국의 인구도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한 증가하는데, 중국의 고령화 추세가 만만치 않다. 우리보다 빠를 것으로 전문가는 예측한다. 고령화사회를 걱정하는 중국이 한 자녀 낳기 정책을 폐기한다면 장차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시골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자녀를 하나 이상 낳을 수 없도록 엄격히 제한해온 중국에서 변화가 벌써 일었다. 벌금을 내고 아이를 더 낳기 시작한 인민의 식단이 점차 고급화돼 가는 것이다. 월드워치연구소 이사장인 레스터 브라운은 산업화 이후 외화 보유가 많은 중국인의 식단에 고기가 늘어나면서 발생할 세계적 식량 위기를 걱정하는데, 걱정은 현실이 되어간다. 우리나라에 많은 식재료를 수출하는 중국은 이미 식량 순수입국이 된 마당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누가 먹여 살릴 것인가》를 쓴 레스터 브라운은 21세기 첫 사분기 이내에 세계 식량 위기가 현실화될 것으로 예견했다. 어마어마한 외화보유고를 털어 미국을 비롯한 국가의 잉여 농산물을 모조리 수입하면 중국은 배를 곯지 않을 것이지만 다른 나라는 심각하게 대비해야할 것이라고 경고하는데, 지구온난화 변수를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은 그는 ‘다른 나라’에 일본을 거명했다. 일본보다 식량 자급률이 낮은 우리나라는 안심할 수 없다. 이권으로만 움직이지 않는 국제사회에서 잉여 농산물이 태부족해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 식량을 확보하지 못한 이웃 국가는 남아도는 국가에 어떤 신호를 보내려들까. 그 이웃 국가의 군사력이 강하다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계 인구는 어느새 70억을 바라본다. 영국의 맬서스가 유명한 ‘인구론’을 썼던 200여 년 전보다 5배 이상,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맬서스주의자들이 ‘인구폭탄론’을 들고나왔을 때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그런데도 요즘 지구촌에 인구 이야기는 크게 들리지 않는다. 먹을 게 충분하지만 골고루 돌아가지 못해 굶주리는 이가 많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국제사회는 경각심이 약하다. 오히려 자국에 만연하는 비만을 더 걱정하는데, 분명한 건 굶주림과 마찬가지로 비만도 가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농기계가 개량되고 비료 투입이 활발해지면서 맬서스 시절보다 늘어난 인구는 그럭저럭 먹고 살았고 농약과 농기계로 다수확품종을 심는 녹색혁명으로 오늘의 세계 식량은 분명히 늘어났지만 지구촌의 생태계는 엉망이 되었다. 농약과 농기계를 동원해 몇 가지의 농산물을 다량으로 생산하면서 막대한 석유를 소비하자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는 대기권에 늘어났다. 저장 기간을 늘이고 맛과 향을 유지하기 위해 가공식품에 첨가물과 방부제를 경쟁적으로 넣으면서 식품의 질은 형편없어졌다. 가난하므로 일을 더해야하는 부유한 지역의 사람들은 칼로리는 많아도 영양분이 부족한 패스트푸드에 의존해야 할 때가 많다. 그뿐이 아니다. 잉여 농산물이 사료로 전용되는 과정에서 가축의 본성은 억압되고, 쏟아지는 가축 분뇨로 인한 토양과 수질과 대기오염은 심화되며, 그로인해 악화되는 가축의 질병이 사람의 건강을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생태계 파괴의 대가로 증가한 식량은 결국 가난한 지역의 배고픈 인구와 부유한 지역의 비만 인구를 늘린 셈이다.

 

죽는 아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아이를 더 낳으려는 현상은 인지상정이다. 가계를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분쟁으로 난민이 양산되면서 농토마저 유린되는 아프리카, 그리고 대규모 화학농법과 축산으로 발생하는 수인성전염병과 생태계 파괴가 빚는 풍토병이 만연되는 남아메리카와 아시아의 가난한 지역에 한정되는 현상이 아니다. 멀지 않았던 과거에 우리도 그랬고, 유럽도 그랬다. 아이가 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일 이상 확실한 산아제한 정책은 없다. 그를 위해 분쟁과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의 원인을 제거할 용의가 있는 국제사회는 무엇보다 자국에서 양질의 식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가난한 지역의 인구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배고픈 인구가 늘어나는 원인은 자급기반의 상실이고, 자급기반의 상실은 남의 나라로 운송될 환금작물을 제 농토에 대량으로 심는 플랜트 농업이 발단이다. 플랜트 농업은 부채상환이 원인이고 부채의 상당 부분은 자급기반을 파괴하는 개발을 위해 도입한 외화가 발단이었다. 장 지글러와 같은 유엔 인권위원회 위원의 주장처럼 그와 같은 개발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외채를 받는 쪽과 주는 쪽 모두 부조리가 많았다면, 국제사회는 가난한 국가의 외채상환을 위해 성의를 다할 의무가 있다. 유엔식량기구가 부유한 지역의 국가들에게 호소하는 부채탕감이다. 세계 인구의 안정과 생태계 보전을 도모하는 외채탕감은 궁극적으로 부유한 국가의 인구 안정을 위한 대책이기도 하다.

 

젊은이를 향한 한 광고는 “아버지는 인생을 즐기라고 말씀하셨다!”며 신용카드 사용을 부추긴다. 인생을 흥청거리며 즐기려면 결혼 연령이 늦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 그와 별도로, 평균수명이 짧은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인구의 비율이 높다. 사람은 대체로 손자나 손녀가 결혼하기 전에 수명이 마무리되는데, 그런 경향이 인구의 안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문제는 인구와 식량의 엇박자다. 안정된 인구에 미칠 재앙은 식량이 부족해진 이후에 치명적으로 닥칠 텐데, 현재 누구도 그 사태에 대한 현명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큰 걱정이다.

 

일반적으로 생태계의 동식물은 자신의 환경이 열악해졌을 때 번식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인다. 남획으로 개체수가 줄어드는 참치의 짝짓기 시기가 그래서 빨라졌고 대기오염이 심한 남산의 소나무에 솔방울이 그래서 많다고 생태학자는 주장한다. 최근 남아에 비해 여아의 출생 빈도가 오히려 높아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환경호르몬 확산이 빚은 부작용이라면 차라리 다행인데, 전에 없었던 자연의 신호에 괜스레 불안해진다. (사이언스올, 2009년 2월 첫째 주)

노인부양 때문에 출산을 장려한다면 인구는 계속 늘어나야 한다는 논리가 되겠네요.
75세 노인도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게 더 나을 듯 합니다. 꼭 땅파고 등짐지는
것만이 일자리는 아닐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