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8. 26. 10:45

 

‘신종플루’ 감염자 가운데 10대와 20대의 젊은이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소식이 들린다. 물론 대부분은 금방 회복되었지만 일반적으로 면역력이 높은 젊은이가 더 감염된다는 사실은 의외다. 전염력이 아무리 높아도 분명히 독감인데, 가을마다 보건소에 줄을 서는 노인보다 젊은이에 신종플루가 집중되는 이유가 뭘까. 활동력이 높을 뿐 아니라 집단생활이 많기 때문이라면 예방 대책 세우기가 한결 편할 텐데, 유달리 신종플루에 대한 면역이 약한 거라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시 김치와 무슨 관련은 없을까.

 

치명적 호흡기 질환으로 밝혀진 ‘사스’로 중국이 혼란에 빠졌을 때, 한국인에게 유난히 사스 감염률이 낮은 이유로 일부 과학자는 김치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거론한 적 있다. 이후 그 과학적 타당성을 얼마나 심도 있게 연구했는지, 있다면 그 결과 어떤지, 우리는 여전히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최근 중국의 고급식당에서 손님상에 김치를 올려놓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우리 젊은이들은 장년층보다 김치를 훨씬 덜 먹는다는 것이며 김치가 먹는 이의 면역력을 증강시킨다는 사실이다.

 

외식산업이 발달된 타국에서 한국인보다 현지인이 훨씬 많은 한식당에 가면 기분이 뿌듯해진다. 함께 앉은 한국인이 권하는 음식을 먹으며 “원더풀!”을 연발하는 현지인의 모습은 이제 보는 이를 민망하게 만들 따름이고, 현지인끼리 자리 잡고 능숙하든 서툴든 수저를 사용하며 김치를 곁들인 한식을 먹는 모습이라야 진정성을 엿보이게 한다. 불고기와 갈비에서 김치와 떡으로 이어진 우리 음식의 세계화는 정부의 적극적 지원으로 점차 그 폭을 넓히고 있다. 얼마 전에는 떡볶기의 세계화를 위해, 요리와 시식에 참여한 외국인의 의견을 모으려는 행사 진행자의 모습이 텔레비전 전파를 타기도 했다.

 

해외에서 높아진 내 음식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별도로, 정작 내 나라 안에서 감지하게 되는 우리 음식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대개의 고급식당은 양식이나 일식과 중식이 메뉴의 중심을 차지하고, 가격대가 다소 높은 한정식이라도 전통의 나물이나 전을 선보이기보다 양식에 가까운 음식이 식탁에 올라오기도 한다. 손이 많이 가는 까닭에 인건비를 아끼려는 의도라기보다 주변에서 재료를 쉽게 구하지 못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먹는 음식의 약 4분의3은 수입에 의존하는데, 쌀을 빼면 5퍼센트에 불과한 실정이 아닌가. 내 땅에서 재배한 농산물이라야 맛과 향이 살아날 텐데, 그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니 한정식까지 전통의 맛과 멋을 잃었는지 모른다.

 

요즘 우리나라는 쌀 재고가 쌓여 걱정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쌀이 현재 67만 톤, 거기에 올 가을에 수매할 37만 톤을 추가하면 100만 톤이 넘는 쌀을 비축하게 되어 관리 예산이 3000억 원 이상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거기에는 민간부분의 비축량과 관리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재고가 넘치면서 가격이 하락하자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가지만 획기적인 대책은 기대하기 어렵다. 쌀라면을 먹겠다는 대통령의 발언 이후 지방자치단체마다 재고를 줄이려는 고육지책이 제시돼, 공공시설의 집단급식에 사용한다거나 떡이나 빵과 같은 가공식품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 비슷비슷하게 발표되고 어떤 언론은 쌀 막걸리에 우리 쌀 사용을 제안하지만 그런다고 소비가 갑자기 늘어나는 건 아니다.

 

쌀 재고가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소비가 줄어든다는 것일 게다. 1995년 1인당 100킬로그램 이상 먹은 쌀을 2008년에는 75킬로그램 소비할 정도로 그쳤다. 그렇다고 영양 상태까지 줄어든 건 아니다. 오히려 비만 인구가 심각하게 늘어났다. 까닭은 쌀 이외의 음식이 지천이기 때문인데, 쌀 소비 감소와 재고 증가를 충분히 예견하고 있던 정부는 이제 와서 쌀을 가공하는 식품의 종류를 늘리고 그 품질을 개선하는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나서지만, 이미 밀가루와 그 가공식품, 그리고 과일과 고기와 낙농제품에 익숙해진 시민들이 식성을 바꿀지 모를 일이다. 한데 쌀 소비량이 증가한다면 새로운 문제가 고개를 들 가능성이 높다.

 

쌀 과자와 쌀 라면, 밥으로 고기를 감싼 햄버거와 쌀 반죽에 토핑을 얹는 피자를 적극 판매해 쌀 소비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다른 음식의 소비량이 줄어들 터. 농산물을 수입하거나 수입 농산물을 가공하는 산업은 새로 발생하는 어려움을 하소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농산물 수입 규모가 쌀 재고량에 비해 훨씬 클 테니. 그만큼 우리의 수입 농산물 의존은 심각하기만 한데, 해외의 농산물은 언제까지 우리 식탁의 풍성함을 보장할 수 있을까. 해마다 막대한 잉여 농산물을 생산하는 미국의 농경지는 지구온난화와 에너지 위기에 취약할 것으로 기후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가운데 미국은 자국의 잉여 농산물을 바이오디젤 연료로 전용하려는 계획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이미 식량 순 수입국이 된 중국의 사정도 전 같지 않다. 수입 농산물이 한계에 부딪힐 날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소비량이 줄어드는 상황에도 우리는 200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최소 시장접근(MMA) 의무’로 2014년까지 쌀을 수입하기로 약속했다. 그 물량은 해마다 2만 톤 씩 늘어나게 돼 있어, 2008년 29만 톤에서 올해 31만 톤, 2014년 이후에는 40만 톤을 넘길 예정이다. 그에 상응해 정부는 농가 수매량을 해마다 3만 톤 씩 줄였고, 올해는 고작 37만 톤을 수매할 예정이건만 그 와중에도 쌀 생산량은 늘었다. 하지만 재배 면적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얼마 전 통계청은 우리나라에서 현재 벼농사 짓는 92만4471헥타르는 작년보다 1.2퍼센트 줄은 면적이고 2001년보다 14.6퍼센트, 재배 면적이 가장 넓었던 1987년보다 26.8퍼센트나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20배 이상 줄어드는 실정이라고 한다.

 

정부 수매량이 줄어드는 상황에도 생산량과 수입 물량이 증가하는 까닭에 농가들은 쌀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고, 버티기 어렵다고 느끼는 농가에서 논을 포기하는 현상에서 쌀 재배 면적 감소의 원인을 찾는 통계청은 각종 개발로 형질이 변경돼 논 자체가 사라진 현상도 아울러 주목했다. 쌀 생산량은 국내든 해외든 일정하지 않다. 최근의 재고 증가는 어쩌면 일시적인 현상일지 모른다. 자연환경 조건에 따라 풍작이었던 논이 이듬해에 흉작에 머무는 경우는 비일비재하건만 우리 농토는 해마다 줄어들기만 한다. 휴경이라면 차라리 다행인데, 용도를 변경해 도시로 공장으로 바뀌니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수입물량의 변동과 생산량 감소를 대비해 유엔 산하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적어도 2달 분 식량을 비축할 것을 각국 정부에 권장하는데, 우리는 논 앞의 쌀 재고량이 많다는 점만 걱정하고 있다. 한가롭다. 국민이 섭취하는 영양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쌀 이외의 농산물은 재고량이 충분할까.

 

식탁 위의 밥보다 반찬을 더 많이 먹는 세상에서 오로지 쌀만이 걱정의 전부일 수 없다. 논보다 먼저 개발돼 사라지는 경작자가 바로 밭인데, 밭에서 재배하는 농작물도 결코 안정적이 아니다. 내 땅에서 생산하는 농작물에 한계가 있다면, 자부심과 관계없이 전통 음식은 후대로 제대로 이어지기 어렵다. 조상이 물려준 음식문화는 변질되고 만다. 이미 우리 사회가 그렇게 가는 중이고, 김치를 거부하는 우리 젊은이 사이에 신종플루가 잘 퍼지는 이유가 새삼 궁금해질 지경인데, 확실한 것은 자급기반을 잃어가는 식량은 우리 내일의 주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이언스올, 2009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