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8. 26. 10:48

 

멕시코 농민의 오랜 주식은 옥수수다. 그들은 옥수수를 갈아 반죽해 만두피처럼 둥글게 구운 또르띨라에 일명 ‘멕시칸소스’라 하는 으깬 고추, 양파, 토마토를 넣고, 취향에 따라 고기나 채소를 더 넣어 둥글게 말거나 반으로 접어 먹는다. 얼마 전까지 자신이 재배한 옥수수를 갈고 반죽해 화덕에 구웠던 멕시코 농가는 밥상 차리는데 들어가는 돈이 거의 없었다. 멕시칸소스는 물론이고 고기나 채소도 모두 집에서 키우거나 따는 거다. 가끔 잔치할 때 이웃에게 사거나 얻어오는 가축이 있지만 그들도 내게 얻어가는 게 있으니 큰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씨앗 영업사원의 말을 듣자니, 재배한 옥수수를 모두 시장에 넘기고 또르띨라를 사먹는 게 훨씬 경제적일 거라 믿어야 했다. 옥수수를 팔아 생기는 돈의 일부로 씨앗을 사면 가을에 받은 종자를 겨우내 보관해야 하는 수고에서 벗어날 수 있고, 곧 부자가 되리라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웬걸!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는 어긋나기만 했다. 옥수수를 파는 농가가 늘어나면서 받는 돈은 점점 줄어들지 않던가. 설상가상으로 또르틸라를 독점적으로 파는 기업에서 가격을 슬금슬금 올리니 밥상 차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부담스러워졌다. 소출이 늘어난다는 품종의 씨앗을 구입할 때 수확한 옥수수를 모두 팔겠다고 회사와 계약했으니 식구가 먹을 옥수수는 시장에서 사와야 한다. 게다가 화덕을 없애버린 마당이니 갈무리한 옥수수를 남겨도 구울 방법이 없다.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미국 산 옥수수의 가격이 훨씬 낮게 수입되자 또르틸라 회사는 멕시코 농민이 재배하는 옥수수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돈이 없으면 밥도 해먹지 못하게 되자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농민들은 농토를 버리고 도시의 막노동 빈민으로 전락했는데, 이번엔 미국산 옥수수 값이 크게 오르는 게 아닌가. 옥수수를 바이오디젤 연료로 전환하면서 미국 곡물상이 멕시코에 수출하는 물량을 대폭 줄였기 때문이었다.

 

식량 기반이 허약하진 이후 수입 곡물의 가격이 오르자 가난한 계층은 속수무책으로 굶주릴 수밖에 없었던 현상, 멕시코에서 그치지 않는다. 개별 가족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곡식을 심어 가족과 자급자족하는 농부에게 밥상 차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쌀 사고 반찬거리 사야하는 주부는 장바구니 물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쌀이나 채소가 아니라 아예 밥이나 반찬을 사야한다면 이야기는 더욱 달라진다. 가공 과정에서 들어간 비용이 추가될 뿐 아니라 누가 어떻게 가공했는지 알 수 없는 까닭에 안전을 확신하기도 어렵다.

 

또르틸라와 달리 우리의 밥은 대기업에서 독점하지 않으니 가격이 쉽사리 오르지 않겠지만, 밥을 사먹기 위해 밥솥과 조리 도구를 부엌에서 없앴다면 나는 나와 내 가족이 누려야 할 밥상에 대한 권리를 남에게 내준 것과 다르지 않다. 종속된 거다. 내 나라의 밥상은 어떤가. 쌀은 자급한다지만 반찬거리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밥상의 안전과 안정을 잃었다. 공산품을 팔아 벌어들인 외화로 해외에서 구입한다지만 한계가 있고, 지구온난화는 머지않아 그 한계를 더욱 명백하게 만들 게 틀림없다.

 

오랫동안 유력한 쌀 수출국이던 필리핀이 최근 폭동에 휘말린 적 있다. 시중에 쌀이 없어 굶주릴 수밖에 없는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국제미작연구소가 있을 정도로 벼를 생산하는데 이상적인 환경을 가진 필리핀에 쌀이 모자라게 된 연유는 무엇이던가. 식량 기반을 없앤 데 따른 부메랑이었다. 쌀을 생산하기보다 수입하는 편이 경제적이라고 판단한 정책에 의해 농지가 다른 용도로 개발되었는데 그만 수입쌀의 가격이 느닷없이 오르는 것이다. 정부가 양성한 이른바 ‘똑똑한 딜러’도 소용이 없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똑똑한 딜러보다 더 약삭빠른 투기꾼들이 국제 쌀 가격을 쥐락펴락하는데 도저히 대처할 수 없었고, 시장에 쌀이 부족해지자 결국 폭동이 일어난 거다.

 

식량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정부와 기업은 흔히 ‘식량안보’를 강조한다. 식량 부족이 심각해지면 사회혼란이 생길 뿐 아니라 급기야 국민들의 국외 탈출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안보 차원으로 식량을 확보하려는 다짐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한데 이상하다. 식량안보를 생각한다면 자국의 농토를 보전하고 부족한 면적을 서둘러 확보해야 마땅할 텐데, 엉뚱하게도 똑똑한 딜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수확하기 전의 곡식을 미리 사고파는 이른바 ‘선물거래’는 투기로 변질되기 십상이니 국제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곡식을 사올 수 있는 똑똑한 딜러가 필요하다는 논리인데, 식량 기반이 허약한 국가의 딜러는 신기루일 수밖에 없다. 공급보다 수요가 많을수록 투기가 기승을 부리는 국제 곡물시장에서 딜러는 똑똑해도 무용지물이다.

 

식량안보를 위해 외국에 자국의 식량기지를 확보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른바 ‘플랜트 농업’이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그리고 아시아에 잘 사는 나라가 운영하는 플랜트 농업이 그 나라의 땅과 주민에 심각한 착취가 된다는 건 이미 상식인데, 우리도 그 대열에 동참하겠다는 겐가. ‘신식민주의’나 ‘토지약탈’이라는 국제 시민단체와 여론의 비난 따위는 한쪽 귀로 흘려버린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남의 나라 숲을 파괴하거나 곡창지대를 독차지해 내 나라 국민을 먹이려는 충정은 국내외의 저항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부분 독재정권의 비호 속에 계약이 이루어지는 플랜트 농업은 쿠데타나 내전과 같은 정세 변화에 따라 번복되기 일쑤가 아닌가. 플랜트 농업을 믿고 자국의 농업기반을 없앤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식량 부족 현상을 자초할 수 있다.

 

항구적인 식량안보를 생각한다면 식량은 자국의 농업 기반에서 자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식량주권’이다. 자급자족 기반을 확보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는 건데, 우리 사정은 시방 불안하기 짝이 없다. 개발로 사라지는 농경지를 만회할 뿐 아니라 통일 이후를 대비하는 농업기지로 활용하겠다던 새만금은 이미 개발로 방향을 선회했다. 2만8천 헥타르에 달하는 새만금은 농경지를 30퍼센트로 줄였는데, 줄어든 농경지는 식량자급과 거리가 먼 수출용 화훼단지로 사용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농경지 확보를 위해 20여 년 전에 매립한 인천 경서동은 경제자유지역으로 바뀐 뒤 목하 개발이 한창이다. 새만금이나 경서동은 갯벌이었고, 우리나라 갯벌은 칼로리로 계산할 때 생산성이 논의 10배에 달하고 가격으로도 3배 이상이라고 해양학자는 근거를 바탕으로 주장했다. 갯벌이 매립되는 중이거나 매립 예정된 지역은 우리 서해안과 남해안을 따라 한두 군데가 아니다. 반사적 이익을 위해 천혜의 식량자원을 당대에 모두 매립해 개발하겠다니 우리의 식량주권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국제식량농업기구의 ‘세계 쌀 무역에 관한 2006년 동향과 2007년 전망치’를 분석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06년 현재 세계 쌀 수출량이 4퍼센트인 120만 톤 감소되고 있다고 전했다. 연구자는 태풍이나 엘니뇨와 같은 기상이변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기상이변을 빈발하게 하는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는 한, 국제 교역 물량은 계속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시방 쌀 재고가 많다고 아우성치지만 국제 추이로 보아 그런 고민은 시효가 짧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 지속적인 수입은 불가능하고 수출용 화훼단지는 본질을 외면하며 유전자조작 농작물은 터무니없다. 기존 농경지에 대한 개발행위부터 당장 중단해야 옳지 않을까.

 

고기를 삼간다면 식량자급률이 높아진다. 고기를 수입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으로 곡식을 더 사올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땅의 가축 대부분도 수입 사료에 의존한다. 사료 수입만 중단해도 우리 식량 자급률은 50퍼센트 가까이 오른다. 따라서 고기와 사료의 수입을 최대한 억제하는 한편, 곡식 이외의 사료를 내 땅에서 자급하는 방안을 연구해낸다면 식량 자급률은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한데 그 정도의 노력만으로 우리의 식량주권이 확보될 리 만무하다. 경작지에 비해 인구가 현저히 많은 마당이므로 수입은 불가피한데, 변덕스런 국제 곡물시장보다 안정적인 식량기지를 확보하기 위해 국제 공조를 민주적으로 공정하게 모색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한시적으로.

 

식구(食口)는 밥을 함께 먹는 이다. 평화(平和)는 공평(平)하게 밥(禾)을 먹는 행위(口)를 말한다. 식구들의 평화롭게 밥 먹을 수 있는 내일을 위해, 내 땅에서 식량의 자급 기반을 확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늦기 전에 찾아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식량주권은커녕 식량안보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사이언스올, 2009년 8월)

앞으로는 술자리에서 고기안주 먹는 걸 자제해야 할 까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