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9. 14. 11:02

 

“그 많던 쌀과 옥수수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우리나라의 이야기는 아니니 당장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식량의 국제 거래 가격이 치솟았던 2006년에서 2008년 사이에 불거진 지구촌의 위기를 필리핀의 사회학자 월든 벨로가 그렇게 빗댔다. 식량전쟁을 둘러싼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꾸준히 고발하는 그는 위의 제목으로 책을 펴내 각국은 늦기 전에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년 전 국제 곡물 가격의 폭등은 최빈국들을 고통에 몰아넣었고 농토를 빼앗긴 민중은 무작정 굶주릴 수 없었는데, 대책에 미온적이던 정부는 거리에 나와 식량과 농지의 확보를 요구하는 자국민을 폭도로 몰며 무차별적으로 진압, 수십 명이 목숨을 잃은 비극이 발생했다. 국제미작연구소가 있을 만큼 쌀 재배환경이 우수했던 필리핀도 예외가 아니고 옥수수 원산지인 멕시코도 마찬가지였는데, 굶주림은 사회적 약자에 편중됐다. 남성보다 여성, 어른보다 어린이나 노인에게 집중돼 여아와 할머니들이 주로 희생되었다.

 

2년이 지난 올 여름, 거대한 산불로 더 뜨거웠던 러시아가 밀 수출금지 조치를 올해 말에서 내년 수확 이후로 연장했다. 러시아뿐이 아니다. 작황이 줄어든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도 러시아의 조치를 뒤따를 태세다. 그 여파는 당장 2년 전의 폭동이 재현될 조짐으로 이어졌다. 모잠비크 정부가 빵 값을 30퍼센트 올리겠다고 발표하자 마음 급해진 시민들이 식료품점을 탈취하는 소동을 일으켰고,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수백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국제사회는 대책 마련을 위해 부산을 떨지만, 러시아는 금수조치를 풀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회복되자마자 흉작이 온 이유를 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서둘러 분석하는데, 거기에 다른 요인을 더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중국 남부와 파키스탄 펀자브의 곡창지대, 그리고 북한 압록강 연변의 농토처럼 지구온난화를 원인으로 이해해야 하는 수해가 참혹했지만, 그 전에 농토는 물론이고 농토로 활용할 수 있는 땅마저 크게 줄었다. 개발 때문이지만 보전된 농토도 자급과 거리가 멀었다. 부자 나라의 기호식품을 위해 헌납해야 했거나 심지어 제 농토에서 충분히 수확하고 굶주려야 하는 일도 발생한다.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했던 장 지글러가 진저리치듯, 그 이유는 가혹한 외채에 있다. 세계은행이나 아이엠에프와 같은 국제 투기자본이 빌려준 돈으로 댐이나 고속도로를 개발하면 이익은 일부 특권층이 독점하지만 농토가 수몰 또는 잠식된 농부는 굶주려야 한다. 그뿐인가. 외채의 원금과 이자를 상환을 위해 정부는 수출작물을 강요한다.

 

녹색혁명은 기대 이상의 식량 증산을 한동안 가져왔지만 세계 인구를 급증하게 했다. 정부 보조금을 휩쓸어가는 다국적기업의 수완으로 헐값의 잉여식량을 먼 지역까지 대량으로 수송하자 비만 인구만 늘어난 게 아니었다. 구호식량은 역설적으로 배고픈 인구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기아로 죽는 인구보다 굶주린 상태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의 수가 많은 건 기초 의약품 덕분인데, 빈국들은 자급자족 기반을 확보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얼마 안 되는 농토에서 수확량을 보전하려 애쓰지만 현혹되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녹색혁명이 일러준 화학농법, 다시 말해 자본과 석유 없이 도전할 수 없는 산업적 화학농업이므로 댐이 필요할 뿐 아니라 농기계를 써야 한다. 석유를 가공해 얻는 화학비료와 농약은 토양 생태계를 괴멸시켜 땅을 딱딱하게 만들지 않던가.

 

요즘 화학농업은 소출을 늘리지 못한다. 미생물과 지렁이를 잃은 땅은 기름진 표토와 자생력을 잃었으니 화학비료와 농약을 더 많이 뿌려야 유지할 수 있는데, 경작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농부는 ‘환금작물’, 다시 말해 돈벌이를 위한 다수확품종을 심으려 한다. 하지만 한두 품종의 작물은 해충과 잡초를 끊임없이 끌어들이니 농약의 양은 날로 늘어나게 되고, 해충과 잡초의 내성이 강화되니 농약의 독성은 독해지기만 한다. 이제 흉작을 피하려면 더욱 혹독한 화학농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다국적 종자기업에서 구입하는 그런 씨앗은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무척 좁아 환경변화에 무기력한 게 보통이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우치하시 가츠토는 ‘FEC 자급권’을 설파한다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은 귀띔한다. “식량(Food)과 에너지(Energy)와 돌봄(Care)은 자유무역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각 나라와 지역사회의 자급능력이나 자주적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제안”이라는 것이다. 그 세 가지를 모두 자급하는 국가는 요사이 극히 드문데,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식량 사장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문제가 심각해진 밀과 마찬가지로 옥수수와 콩도 몇 국가에서 생산을 독점한다. 돈이 많든 적든, 주곡은 그나마 자국에서 어느 정도 확보하려 노력하지만 불가항력이고, 견과류와 육류는 언감생심이다. 먹지 않아도 당장 생명에 지장이 없는 과일이나 기호식품은 물론, 채소까지 해외에 의존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수입 식량을 황제 부럽지 않게 먹든, 구호식량으로 입에 풀칠만 하든, 소비자는 식량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국제곡물 가격은 점점 불안해진다. 지구온난화가 야기한 엘니뇨와 라니냐는 차라리 애교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비웃는 투기세력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1996년 세계의 생산량이 3퍼센트 줄어들자 곡물 가격이 갑자기 두 배 앙등한 이유는 투기자본이 제공했다. 수확량 10퍼센트 변동이 30퍼센트 가격 변동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전문가들이 ‘가격 탄력성’이라 말하는데, 탄력성이 유난히 큰 식량은 대개 시카고에서 선물로 거래한다. 돈을 직접 교환하는 외환거래나 물건을 놓고 벌이는 미술품 경매와 달리 예측할 수 없는 수확량을 근거로 거래하니 가격은 소문에 따라 춤을 추지 않을 수 없다.

투기자본의 돈벌이와 관계없이 사료값 인상으로 고기값이 오를 테고, 가공식품도 덩달아 값을 올릴 것이다.

 

금수조치를 단행한 러시아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정부는 자국이 생산한 식량을 국내에 우선 공급하려 애쓰지만 다국적기업과 계약을 맺은 농장주의 생각은 다르다. 수출 이익이 크다면 다국적기업에 곡물을 넘기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2008년 카자흐스탄은 자국의 밀에 수출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해야 했고, 같은 해 중국과 우크라이나도 수출세를 대폭 올렸다. 국제 곡물상이나 거대 농장주는 최빈국에 대한 분배보다 이윤에 관심이 큰데, 돈이 충분한 국가라면 국제 선물시장을 노크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는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그렇듯 수출관세는 식량의 무기화와 무관하지 않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에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곡물수출 금지를 단행하자 비롯된 ‘식량무기’라는 말은 소련 해체 후 쿠바 경제봉쇄 때 재현되었다. 그렇다면 썩을 정도로 남아도는 쌀을 굶주리는 북한에 한사코 제공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태도는 식량무기와 관계없는지 생각해볼 문젠데, 특정 국가 사이에 배타적 무역 특혜를 베푼다는 자유무역협정, 다시 말해 FTA는 식량 무기화를 더욱 무섭게 만들 수 있다. 망하지 않을 만큼 받는 보조금으로 생산한 막대한 잉여 농산물을 특정 국가에 헐값으로 수출하면 그 나라 농업기반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자본이 국가를 고발할 수 있는 이른바 ‘투자자 직접 소송제’를 반드시 요구하는 미국과 맺는 FTA는 무너진 농업기반을 돌이키기 어렵게 한다. 정부의 규제나 지원 때문에 손해를 입었다며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할 경우, 개별 정부가 승소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북중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된 이후 미국의 잉여 농산물이 마구 들어가자 옥수수로 자급하던 멕시코의 농업기반은 초토화되었다. 뼈 빠지게 농사짓느니 미국계 공장에 취직해 달러를 벌어 가족과 밥 사먹는 게 경제적이라 믿게 만들었는데, 착각이라는 게 금세 드러난 것이다. ‘노동 유연성’라는 아리송한 언어로 치장했지만 해고가 자유로워진 자본은 임금을 거듭 낮추는데, 바이오디젤이나 에탄올로 가공하는 게 이익이 크다고 계산하는 곡물상이 수출량을 대폭 줄이자 옥수수 가격이 치솟은 게 아닌가. 농토가 사라진 상황에서 저임금에 허덕이거나 해고된 멕시코인은 자국에서 난민이 되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세계무역기구는 식량을 상품목록에서 예외로 인정하지 않는다. 2003년 세계적 휴양도시인 멕시코 칸쿤에 모인 세계무역기구의 각료들은 농민들의 진입을 막은 철망 위에서 이경해 열사가 자결한 소식을 들어야 했다. 이경해 열사는 식량 무기화를 막으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타국에서 마지막 남은 목소리를 외친 것이었다.

 

세계 식량 무역을 틀어쥔 몇 안 되는 곡물상의 대표 격인 카길은 제재 기능을 가진 세계무역기구의 규정을 입안했다. 다국적기업인 카길은 국적이 없지만 미국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미국의 이익에 우선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잉여식량을 독과점하며 수출하는 국제 곡물상 간부는 미 정부의 고위 공직자 자리를 돌고 돈다. 이른바 ‘회전문 현상’이다. 따라서 수출관세를 매겨 곡물가격이 올라도 다국적기업의 이윤은 줄어들지 않고 가난한 국가는 굶주릴 수밖에 없으며 돈이 있어도 곡물상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수입국은 수출국에 복종을 맹세해야 할지 모른다. 잉여 농산물의 언제까지나 안정될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4분의1을 차지하는 미국에도 예외가 아닌데.

 

윌리엄 엥달은 1970년대 미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의 발언, “석유를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 국가들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식량을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 인민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를 돌이키며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거의 없는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파괴의 씨앗이라고 경계했다. 다국적기업이 독점 공급하는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피하지 못한다면 인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전 조지는 부자나라의 호의호식을 연장하려면 세계 인구를 3분의1 이상 줄여야하는데, 그때 식량 무기화가 주효할 것으로 섬뜩하게 예고했다. 그러므로 식량의 4분의3을 수입해야 하는 우리는 생존을 위해 다국적기업에 고개 숙이고 수출국에 충성을 맹세해야 할까.

 

돈이 아무리 많아도 먹을 게 없으면 굶어야 한다. 스페인 지배 하의 남미 포토시에서 부자들도 한 때 쥐를 잡아먹어야 했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식량 자급부터 독립이 시작된다고 했다. 식량은 안보 차원에서 수입하는 상품일 수 없다. 주권 차원에서 생산기반을 확보해야 하고, 소비자는 무던한 생산자에게 고맙고 미안해해야 옳다. 쿠바는 미국의 철두철미한 경제봉쇄를 도시농업으로 극복할 수 있었으니 식량 수출국과 다국적기업에 굴종할 수 없는 국가의 시민들은 식량주권 회복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기상이변을 속출하게 하는 지구온난화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거듭 경고하는 이때. (시조, 2010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