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3. 2. 26. 17:40


올 설 고향 길도 붐볐다. 연휴 기간이 길지 않았어도 경찰이 정체 구간의 갓길 통행을 유연하게 풀고, 스마트폰을 활용한 운전자들이 출발 시간을 분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뉴스 진행자의 설명이 있었다. 교통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해주는 첨단기기의 도움이 컸다는 건데, 어쩌면 고향으로 가는 자동차의 수가 줄었을지 모른다.


최근 명절에 도시에 남는 이가 늘고 있다. ‘고향이라는 감상이 그리 사무치지 않은 청년은 물론, 부모를 도시로 모셔온 장년들도 굳이 먼 길 고생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가 봐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고향이 오히려 서먹서먹한 이가 시간이 갈수록 늘지 않던가. 게다가 요사이 추세인 납골당은 대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고, 가깝게 살아도 살갑게 지낼 기회가 적었던 친지들을 꼭 명절에 고향에 가서 만나야 할 이유는 그다지 없다.


혼자 사는 어떤 이는 고속버스나 열차를 예매해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는 길을 굳이 승용차를 가지고 간다. 자식들 생각하고 한해 재배한 농작물을 나누어주는 꼬부랑 모친의 즐거움을 마다할 수 없노라는 게 그 이유인데, 그이는 요즘 귀경인파 중 예외에 속한다. 시골 농촌에 남은 농부들이 예전 같이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은가. 나이 들어 힘이 모자라기 때문만이 아니다. 도와줄 이웃이 마을에 없으니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은 포기한지 오래다.


잘 팔리는 한두 가지 농작물만 논밭에 획일적으로 심다 보니 기계화하거나 아예 영농 전문기업에 맡긴다. 노인 내외를 위한 텃밭 농작물은 단출하므로 자식들이 찾아오면 읍내로 나가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아야 한다. 손님이라도 오면 면 소재지의 식당을 예약해야 한다. 그러니 자식과 나눌 농작물이 있을 수 없다. 명절에 찾아온 손주가 밭에 자라는 무라도 하나 뽑으려 하면 놀라 막는다. 야박하기 때문이 아니다. 밭떼기로 계약한 상품이기 때문이라기보다 상인이 몽땅 가져갈 농작물에 농약이 배어 있는 까닭이다.


도시인들도 흔히 자신을 농민의 자식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퇴색되어 간다. 길던 짧던, 자신이 농촌에서 농사짓던 경험을 가진 이는 물론이고, 부모가 농사짓는 모습을 본 기억을 가진 이가 점점 드물어지지 않던가. 농촌을 떠난 사람들이 몰려서 사는 도시에 인구가 넘친 지 오래라서 농촌에 아기 울음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층간소음이 살인과 방화로 이어지는 도시에서 산후조리원 외에 아기 울음소리 들리지 않지만 농약으로 새소리와 개구리 소리가 사라진 농촌에 아기의 출현은 어색해지고 말았다.


요즘 농촌에 아기들이 안전하게 놀 시설은 물론, 공간도 함께 놀 또래도 없다. 아기를 낳을 젊은 부부가 드물고, 아이가 자라 다닐 유치원과 학원이 없거나 지나치게 멀다. 대도시 또는 대도시를 지향하는 중소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대부분의 아이에게 농민의 지식이라는 말, 부모도 시큰둥한 마당인데 실감날 리 없다. 아이가 장년이 되면 제 부모를 기억하며 차례야 지내겠지만, 굳이 귀성길과 귀경길을 붐비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농촌에 5일장은 자취를 감췄다. 대부분 자급자족하고 이따금 자기 고장에서 나오지 않는 농작물이나 해산물을 구하거나 새로 나온 농구를 보러 대장간으로 나설 일이 없지 않은가. 커피 전문점에 밀려 도시에서 자취를 감춘 다방이 한 집 걸러 문을 연 면 소재지까지 퍼진 건 아니지만, 요즘 웬만한 읍 소재지에 가면 거대한 덩치를 과시하는 대형 마트가 승용차들을 연실 빨아들인다.


농민들은 자신이 생산하는 농작물마저 마트에서 구입해야 한다. 수확하자마자 상인에게 팔아넘기므로 텃밭이 없다면 하루하루 저녁 준비도 식품매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역 특산물도 지역에서 구입하기 어렵다. 상인이 수거한 농작물을 재분배하는 대형 물류센터는 지역을 따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농촌 지역의 마트나 도시의 마트나 파는 농작물은 비슷하다. 여느 마트마다 수입농산물이 넘치고 가공식품이 널렸다. 그러니 식단이 지역의 기후 조건이나 문화와 관계없이, 식성은 어디나 엇비슷하다.


이제 농촌이 필요 없는 세상이 도시에 제조될지 모른다. 도시 텃밭이 유행처럼 생기기 때문이 아니다. 시민들이 틈틈이 식구와 먹을 푸성귀를 심어 조금씩 뜯어먹는 텃밭은 농촌의 가치를 높이면 높이지 불필요하게 만들지 않는다. 땅과 땀의 가치를 비로소 인식하는 도시인들이 농민에게 고마워하게 되지만 대형 마트에 쌓인 농작물은 그런 가치를 소비자에게 알려주지 못한다. 깔끔하게 다듬은 식품의 재료에 불과하므로 가격이 저렴하면 그저 인기를 끈다. 그 점을 간파한 기업이 제빵에 이어 농업으로 파고들 태세다.


도시 인근에 대규모 온실을 짓는 대기업이 등장했다. 30층 높이의 철근콘크리트 수직농장도 솟아오를 날도 멀지 않았다. 땅을 배제한 온실과 수직농장은 허리 높이 작업대에 뿌리를 펼치는 농작물을 시시때때로 수확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본과 과학기술이 안내하는 수경재배다. 도시에서 가까울 뿐 아니라 실내에서 재배하는 만큼 병충해를 막을 수 있고 파종과 수확에 계절과 장소가 장애일 수 없다. 기계화로 인건비를 최소화하는 까닭에 수입 농산물은 물론 지역 농산물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을 거로 예견한다. 다만 그런 농장에 전통 농부는 필요 없을 것이다. 관리직 사원과 시간제 노동자가 고용될 뿐.


태양과 LED조명으로 탄소동화작용을 하고 과학기술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도시의 농장, 아니 공장은 아무리 정교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관리할지라도 생태계 안에서 진화해온 식물의 성장을 완전히 흉내 낼 수 없다. 수확한 식물을 선택할 사밖에 없는 이에게 균형 있는 영양은 물론 건강을 장기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석유 공급이 제한된다면 가동이 불가능할 그런 농장은 도시의 확장과 집중에 기생할 수밖에 없다. 판촉을 위한 현란한 광고 능력을 가진 자본이 아니라면 투자를 망설이겠지만, 땅과 더불어 농촌과 농민을 잃은 도시의 소비자들은 피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농사에 비닐 사용을 한사코 거부하는 농부가 있다. 귀농한 그는 땅을 벗어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유기농업은 물론이고, 농작물이나 농부나 겨울에는 쉬어야한다고 믿는다. 멀지 않은 과거까지 우리 조상이 살아왔던 방식이다. 이웃은 물론이고 생태계의 삼라만상이 살아서 도움을 주고받던 시절의 농업이었다. 그 시절, 집 떠난 이는 고향을 그리워했고, 명절이면 반드시 찾아왔다. 생명체가 가진 건강한 귀소본능이다. 삶의 정서와 뿌리가 내린 자신의 땅이므로.


     농작물이든 사람이든 땅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건강할 수 없다. 우리는 시방 건강한가. 다행히 명절이면 고향을 찾는 인파가 붐빈다. 희망이 남았다는 증거이겠으나 그 시효는 충분하지 않다. 돈이 만들어내는 신기루, 그 이기적 탐욕에서 서둘러 벗어날 궁리가 필요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각해지는 징후가 더 흉흉해지기 전에. (지금여기, 2013226일, "마트에서 농작물을 구입하는 농민"으로 게재)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2. 22. 12:31

 

유럽에서 마주오던 트럭이 충돌했다. 서로 이웃 나라를 향해 출발한 트럭이었는데, 쏟아낸 화물은 똑같은 농작물이었다. 자국의 농산물을 나라 안에서 자급한다면 그런 일이 생길 리 없는데, 제 나라 농산물로 자급하지 않고 같은 농산물을 굳이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무슨 속사정이 있겠지만, 그런 부합리가 유럽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지방의 오랜 날씨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농산물은 일찍이 지역에서 자급했다. 남은 농산물을 이웃 지역에 내다 파는 일이야 더러 있어도 국가 사이에 수출입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는데, 무역 상품이 된 요즘 농산물은 지역을 잃었다. 음식 문화와 식생활과 입맛까지 세계가 표준화되면서 농산물까지 획일화되었고, 다양성을 잃은 농산물은 다량 생산하는 공산품으로 전락했다. 농산물마저 돈벌이를 위한 상품이 되면서 한 국가의 식량 자급률은 큰 의미를 잃었다. 식량은 요즘 모자라서 수입하는 게 아니다. 선점하기 위해 투기한다. 어찌되든, 돈만 넉넉하면 식량 자급률은 신경 쓸 일 아니라지만, 식량 주권도 그럴까.

 

젖소의 수송아지 가격이 헐값이라고 아우성이다. 우유를 생산하지 못하는 젖소 수컷은 송아지 때부터 고기용 육우로 사육하는데, 다 자란 육우의 가격이 내다 팔 정도로 키우는데 들어가는 사료의 가격보다 훨씬 낮아 그런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일각에서 정부의 수급 예측 실패를 탓하지만, 남보다 우유를 더 생산하려는 경쟁이 빚은 과잉 생산도 한몫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이웃 농장보다 양질의 우유를 더 생산해야 하지 않은가. 우리 농가가 전적으로 의존하는 수입 사료는 가격을 낮추지 않는다. 사료 재료인 곡물의 생산비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인데, 농부는 저렴한 국내 사료를 찾지 못한다.

 

재료를 수출입하는 세상에서 국내산 여부가 애매해진 요즘, 국내산 사료가 소개되었다. 20095월 농촌진흥청은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청보리를 활용하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수입 사료 가격의 앙등으로 고통을 받는 축산농가의 어려움을 해소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것이다. 청보리 사료를 사용할 경우 몸무게가 빨리 늘고 육질이 개선돼 소 한 마리 당 764천원의 소득증가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 농촌진흥청은 앞으로 사료를 자급하는 한편, 수출산업으로 성장시킬 것을 약속했는데 현실은 어떤가.

 

사료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죽어갈 정도로 소를 굶기는 농부가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축산업은 자포자기인데, 국내의 청보리 사료 제조업체는 농촌진흥청의 포부와 다른 생각에 젖어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자국의 목초를 기피하는 일본 농민에게 수출하려 고민한다는 게 아닌가. 우리 농가에 파는 가격의 두 배 이상이라는데, 유혹받지 않을 기업이 몇이나 될까. 청보리 사료업체 대표는 청보리 재배 농가의 소득향상을 배려한 고육지책인 양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는 기업인일 따름이다. 그의 귀에 축산농가의 고통 소리, 그의 눈에 굶주리는 가축의 모습은 들어오지 않는다.

 

2010년 혹독한 가뭄이 든 러시아는 밀 수출에 관세를 매겼다. 수출보다 국내에 파는 편이 이익이도록 러시아 정부가 조치를 취한 것인데, 덕분에 러시아는 굶주리는 민중의 수를 대폭 줄일 수 있었지만 엉뚱하게 러시아 밀을 저렴하게 수입하던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자국인이 굶주리든 말든, 수출하는 편이 더 이익이면 기업주는 냉정하게 판로를 바꾼다. 밀이든 청보리 사료든 관계없다. 콩과 옥수수, 감자와 바나나, 고기와 올리브, 예외가 없다. 돈을 향해 판로를 바꾸는 기업은 돈 없는 자를 철저히 외면한다. 자동차와 반도체가 잘 나가는 우리나라는 걱정 따위는 잊어도 될까.

 

정부 보조금을 받은 미국 옥수수가 헐값에 수출되면서 옥수수 원산지인 멕시코는 자급 기반을 포기해야 했다. 미국과 FTA를 맺은 지금은 어떤가. 옥수수를 바이오 연료로 가공하는 기업이 정부 보조금 덕분으로 늘어나면서 미국계 국제 곡물상은 수익이 많은 바이오 연료에 판매량을 늘렸다. 그러자 연이은 옥수수 가격 앙등을 견딜 수 없는 멕시코 민중은 폭동을 일으켜야 했다. 멕시코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었는데 지구온난화가 갈수록 심화되는 요즘, 미국의 옥수수 농장은 언제까지 풍작을 약속할 수 있을까. 화학비료와 농약 없으면 재배가 불가능한 미국의 광활한 농장은 가뭄에 아주 취약하다. 옥수수만이 아니다. 콩과 밀도 걱정인데, 겨우내 내린 눈이 상수원인 캘리포니아에 겨울비가 늘어나면서 포도와 아몬드 수확도 전 같지 않다.

 

세금이 면제된 농업용 기름 가격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면서 농부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겨울철 방울토마토와 딸기를 포기한다고 최근 언론이 전했다. 작년에 비해 20퍼센트가 올랐기 때문이라는데, 세계 산유량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이상, 농업용 면세유 가격이 내년이라고 낮아질 가능성은 없다. 이미 전문가는 세계 석유 생산량이 감소 추세로 바뀌었다고 분석하는 마당이다. 생산보다 소비가 늘면 가격은 오른다. 석유는 투기 자본이 지배하고, 중국과 인도와 브라질의 석유 소비는 블랙홀이나 다름없다. 유럽과 미국의 경기가 둔화되더라도 석유 가격은 결코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점치는 전문가는 석유 가격이 치솟을 시대를 서둘러 대비하라고 각국에 충고한다.

 

제철을 포기하고 제 고장까지 잃은 획일적인 농작물은 석유 없이 다량생산이 불가능하다. 대형 콤바인이나 트랙터를 사용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화학비료와 농약도 석유로 가공해 얻는다.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려면 거대한 선박을 동원해야 한다. 석유 가격이 계속 오르는 한, 해외에서 재배한 그런 농작물을 값싸게 다량으로 수입할 수 있는 날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식량 자급률이 26퍼센트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쌀을 빼면 5퍼센트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변화 추이에 따라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이 요동친다. 일찍이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식량을 자급할 때부터 진정한 독립이라고 주장했는데, 우리나라는 독립국인가. 돈 없는 식량 안보는 쉽지 않은 세상에서 국제 석유는 가격이 오르기만 하는데, 우리는 과연 식량 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가.

 

이미 지구촌의 많은 국가들이 수출관세로 곡물 수출 금지로 돌아서고 있다. 투기 자본이 개입하는 세계 농작물과 가공식품은 가격을 내릴 줄 모르는데, 입맛이 고급화된 인구가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크게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식품 물가 상승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우리는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정부든 기업이든, 농경지를 매립해 아파트와 공단을 짓느라고 성화다. 우리 농산물을 수출하라고 성화다. 제정신인가. 3월은 농사를 시작하는 계절이고, 올해는 흑룡의 해다. 용은 농경사회의 상징이고 흑룡은 큰비를 의미한다는데, 징후가 더 흉흉해지지 전에 정신을 차려야 옳지 않겠나. 남은 시간은 이미 충분하지 않은데. (작은책, 2012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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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5. 18. 00:30

 

선학지하철 역에서 버스종합터미널 방향으로 걸으면 오른편 길가에 비닐하우스 여러 동을 엮은 화원들이 나오고 조금 더 걸으면 인천 시내에서 얼마 남지 않은 농토가 제법 넓게 펼쳐진다. 올해 이맘때면 밭이랑에 검은 비닐멀칭이 덮이고 고추와 상추 묘가 심겨야 할 텐데, 올봄의 날씨가 하도 수상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개발 신호가 나와 그런지 조용하기만 하다. 어느새 도시 한 복판이 된 농토라서 땅값이 여간 아닐 테니 금싸라기 땅이다. 농사 이외의 개발행위가 제한된 지역이 아니라면 농사 수입으로 세금을 감당하지 못하겠지. 개발 압력이 매우 드셀 지역이라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겠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개발이 예정된 모양이다. 고추 묘를 심었던 밭 한가운데 대책위원회 펼침막을 붙인 작은 비닐하우스가 새로 섰고 그 안에 접이식 의자와 탁상이 놓여 있지 않은가. 주민 동의 없는 토지수용을 결사반대한다는 결의를 담은 위원회 사무실은 찾는 이 거의 없이 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데, 주민들은 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것 같지 않다. 보상 조건을 조율하려는 의지로 보인다. 여기에도 아파트가 들어설 건가. 도시의 여백 한 군데가 또 사라지겠군. 시민들은 얼마나 답답해질까. 개발보다 수지가 작다고 이렇듯 도시의 농토를 없애버리면 정작 시민과 후손 들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 농촌의 땅값도 전 같지 않다. 농지를 구입한 귀농인은 농산물로 융자금의 이자도 나오지 않는다던데, 수입농산물이 더욱 늘어야 하나.

 

지난 3월 21일 정부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전망 2010’ 보고서에 의거, 현 추세라면 10년 뒤에 우리 농지가 목표치 이하로 줄어들 수 있어 ‘식량안보’에 빨간 불이 들어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27퍼센트인 식량 자급률을 30퍼센트로 끌어올리려면 최소한 165만 헥타르의 농지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2008년 기준 176만 헥타르였던 농지가 10년 뒤에 17만2천 헥타르가 줄어 목표치에 미달한다고 한국농촌경제연구소가 전망했다는 거다. 도로와 같은 사회간접시설과 세종시, 기업과 혁신도시의 부지에 대규모로 편입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하는 정부는 개발이 거의 마무리되고 사회간접시설의 기반도 충분히 확보한 만큼 당분간 농지 전용은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다행인긴 한데 정부는 갯벌 매립지의 일부가 농지로 활용될 것이라는 기대도 덧붙였다.

 

언뜻 정부가 우리의 고질적인 식량 사정과 농지 부족을 걱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마음이 흔쾌하지 않다. 30퍼센트의 식량자급도 채우지 못하면서 농지보전 운운하다니. 자급 30퍼센트 이하가 되면 빨갈 불이 켜지는 식량안보는 무슨 이유로 30퍼센트가 넘으면 괜찮아진다는 걸까. 현재 우리가 먹는 식량의 70퍼센트 이상을 가깝거나 먼 외국에서 거대한 배나 비행기로 크거나 작은 돈을 부담하며 운반해야 한다. 그런데, 수입 양이 69퍼센트 이하면 안전하고 71퍼센트 이상이면 비상이 걸리는 이유에 대한 납득 가능한 설명은 없다. “식량 자급률 목표치를 높인다면 식량안보를 위한 최소 농지 확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고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편 농촌경제연구원의 담당 연구위원은 “농지를 최대한 보전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집행돼야 할 것”이라고 희망사항을 전했지만 우리 정부는 경각심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30퍼센트 미만의 식량 자급률은 내일을 대비해 진정 참을 수 있는 수준일까. 분명한 것은 국제사회에 식량 부족을 해마다 호소하는 북한의 식량 자급률이 우리보다 월등하다는 건데, 우리는 언제까지 북한보다 사정이 나을 수 있을까. 필요한 식량을 보유한 외화로 언제든 충분히 구입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알량한 30퍼센트 자급률로 식량안보를 확신하게 만든 걸까. 그런 가정은 수출국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할 텐데, 지구온난화가 견인하는 지구촌의 사정은 이미 전 같지 않다. 자국 사정이 불안해도 남의 나라에 제 식량을 흔쾌히 퍼줄 국가가 과연 몇이나 될까. 경작지의 사막화는 더욱 광범위해지고, 지나친 화학농법은 세계 식량의 생산량을 점점 감축시키는 실정이다. 그 뿐인가. 화학비료와 농약의 가격을 끌어 올릴 석유위기는 농작물 운송과 보관 비용을 상승시키면서 국제 식량 가격과 연동될 텐데, 수입으로 확보하려는 우리의 ‘식량 안보론’은 지나치게 한가로운 게 아닐까.

 

아무리 많은 돈으로 협상하려 해도 유권자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국가의 지도자라면 모자라는 자국의 식량을 남의 나라로 넘기지 않을 것이다. 거대 창고를 소유하는 기업은 은근히 수출하려 들지 모르지만 그 나라 정부가 말릴 게다. 평소 남는 밀을 수출하던 카자흐스탄은 몇 년 전, 기상악화로 생산량이 줄자 긴급 수출관세로 해외 반출을 억제한 바 있다. 그러자 선물 거래로 곡물 가격을 조절하는 투기세력의 준동으로 국제 밀 가격이 일제히 수직상승했는데, 우리의 외환은 언제나 쾌청한가. 외국의 투기자본이 물러서는 순간 갑자기 쪼들려지는 우리의 구조에서 70퍼센트가 넘는 식량의 해외 의존은 내일을 걱정스럽게 한다. 최근 의식 있는 세계의 농업 활동가들은 ‘식량안보’가 아닌 ‘식량주권’을 제창한다. 식량기지를 주권 차원에서 자국 내에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를 말하는 거다.

 

정부는 갯벌 매립으로 확보될 농지가 있다는 점을 덧붙였지만 그 정도의 면적은 식량주권에 턱없이 모자라지만, 갯벌이 가진 식량 기지 가치는 매립으로 사라졌다는 점을 상기하지 못했다. 우리 해양연구소는 10여 년 전, 육지의 농지로 효율이 가장 높은 논과 비교할 때 갯벌에서 생산되는 어패류는 칼로리로 10배, 가격으로 3배 이상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지 않았던가. 통일을 대비해 농지를 확보하겠다는 둥, 개발로 사라지는 농지만큼 보전할 것이라는 둥, 약속을 남발했던 정부의 새만금 간척공사는 대부분의 부지를 역시나 개발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농번기가 따로 없고 특별한 장비나 기술이 없어도 우리 밥상을 풍요롭게 보장해준 갯벌은 식량주권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를 가장 효율적으로 억제한다. 게다가 더워진 바다에서 전에 없이 빈번해진 너울성 파고를 육지에 도달하기 전에 완충해준다. 지구온난화 시대에 더욱 소중한 갯벌을 매립하고 식량안보 운운하다니. 손바닥만큼 남은 갯벌마저 매립하지 못해 안달하는 인천 역시 단기 수익을 위해 내일의 삶을 저당한 선조였다는 후손은 원망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수도권의 과밀화 억제를 위해 지방도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하지만 마냥 반길 수는 없는 지점이 있다. 기업도시, 혁신도시 그리고 세종시 들을 위해 멀쩡한 농지를 반드시 매립해야했나. 기존 주거공간을 얼마든지 보완할 여지는 없었나. 그나마 이제 농지 훼손이 당분간 없을 거라 확인해주니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지방자치단체마다 ‘보금자리 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그린벨트 개발행위는 농지 파괴와 무관한가. 어지럽게 흩어진 비닐하우스는 시민들이 주로 먹는 잎채소를 재배한다. 비닐하우스가 지저분하다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깨끗하게 개선하면 된다. 잎채소는 우수한 식량이다. 수입 잎채소에 번번이 기준치 이상의 농약이 검출되는 마당에 정부는 ‘4대강 사업’의 일환이라며 우리 유기농의 역사이자 산실인 팔당마저 파괴하려 든다. 자전거도로와 위락시설을 위해 유기농산물 단지를 파괴하려는 정부의 행위는 식량주권의 차원에서 용인될 수 있을까.

 

지금 눈이 있다면 ‘4대강 사업’ 현장을 환경운동가들과 둘러보고 귀가 있다면 그 처참한 결과가 후손에 미칠 악영향을 생태학자와 수리학자, 그리고 인문학자 들에게 들어볼 필요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권을 탐하는 게 아니라 후손의 내일을 걱정한다. 강물을 정화할 뿐 아니라 밀물고기의 산란장이 되는 바닥의 모래와 자갈은 배가 다닐 정도의 깊이인 최소 6미터 이상 준설되고 있다. 그로 인해 드러난 처참한 광경은 이 나라의 생태계는 물론이고 역사와 문화의 종말을 연상케 한다. 심각한 건 작업자들이 과로로 쓰러질 지경으로 밤새 퍼올린 토사가 인근 농지에 막대하게 쌓인다는 거다. 미국 기준치보다 높은 중금속과 독성물질이 농축된 토사를 정화 처리 없이 6미터 이상의 높이로 농지에 안정장치 없이 쌓아 놓기만 한다면 식량주권은 물론, 정부가 되뇌는 식량주권에도 역행할 게 분명하다. 우리는 시방 선조가 온전히 물려준 4대강과 주변의 풍요로운 농지를 치명적으로 손상시키는 생태적 범죄, 후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우리의 농지는 10년 뒤에 부족해지는 게 아니다. 현시점에서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다고 보아야 옳을 지경이다. 식량주권의 확보를 위해 식량기지를 확보하려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기존 농지의 절대보전은 물론이지만 활용할 수 있는 농지 자원을 세심하게 살펴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 골프장이나 목장으로 사용하는 부지를 건강한 농토로 전용하는 방안도 연구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갯벌 매립의 중단은 물론이고 기존 간척지라도 둑을 헐어 갯벌을 복원하는 일도 멀지 않은 내일 다급해질 게 틀림없다. 아무튼, 당장 후손의 안전한 생존을 위해 농지 회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올봄의 날씨가 유난히 추워 제대로 농촌은 씨앗을 제대로 뿌리지 못했고, 냉해를 입은 과수원에 꿀벌이 찾지 않았다는데, 이렇듯 기상이변이 심화되는 이때, 농지의 확보처럼 시급한 일은 없을 것이다. 10년 뒤를 걱정할 만큼 절대 한가롭지 않다는 거다. (인천in, 2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