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9. 27. 01:55

    갈무리 계절이 다가오는데

 

가을장마도 기세를 잃어가려는 모양이다. 한여름 뙤약볕을 예고하는 여름 장마를 강수량으로 능가하더니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서늘하고 파란 하늘이 조금씩 높아진다. 거푸 올라왔던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았던 과일들은 머지않아 당도를 높일 것이고 들판의 벼들은 알곡에 영양분을 저장하며 황금빛 고개를 숙이기 시작할 것이다. 세상은 바야흐로 갈무리하는 계절로 접어든다.


우리 주식은 누가 뭐라 해도 쌀이다. 도정해 쌀로 변할 벼가 너른 황금빛 들판에 일제히 고개를 숙인 모습은, 논을 일군 농부가 아니라도 보는 이를 뿌듯하게 만든다. 전국의 논에서 수확한 벼는 우리가 먹는 쌀을 넉넉히 베푼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밥의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리 고된 육체노동자라 해도 커다란 주발 넘치게 밥을 담지 않는다. 반찬이 많아 그런지,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공기사발이면 충분하다 여긴다.


대략 한 세대 전, 주발에 봉긋하게 담았던 밥이 공기 사발로 줄었으므로 일인당 요즘의 쌀 소비는 틀림없이 감소했다. 그렇다고 전국의 논 면적이 줄어들었든 건 아닐 것이다. 인구가 늘었으므로. 아직 우리 논은 주곡의 자급을 만족시키므로 다행스럽지만 사발 가득 밥을 먹겠다는 사람들이 예전처럼 늘어나면 당장 쌀이 부족해질 수 있다. 요즘 세상에 줄어든 논을 다시 확대하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므로. 정부는 부랴부랴 쌀을 수입하려 할 것인데, 다른 용도로 개발한 땅을 논으로 환원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시간도 적지 않겠지만 일할 농부도 쉽게 나타날 성 싶지 않다.


자급하건만 우리나라는 쌀을 수입해야 한다. 그렇게 하겠다고 지난 정권에서 대외적으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수입하는 쌀은 대체로 품질에 불신을 받는다. 가정의 소비자들은 거의 찾지 않는데도 수입을 줄이지 못하므로 저렴한 식당의 김밥이나 거리에서 파는 떡의 재료가 되었을지 모르는데, 정작 우리 쌀은 정부 창고에서 남아돌아 해를 넘기기 일쑤다. 재고량이 늘고 관리의 어려움을 걱정하던 정부는 맹독성 농약인 에피흄으로 훈증해 저장기간을 늘리려 하고, 오래된 쌀을 병사의 식탁에 올린다. 남는 쌀을 식량 부족으로 고통을 받는 북한에 지원하고, 내일의 나라를 건강하게 끌어가야 할 우리 젊은이에게 신선한 쌀을 제공하자는 사회 일각의 청원이 없지 않건만, 현 정부의 귀에 그리 대수롭게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오히려 불경하게도, 쌀을 사료로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보통 밥공기를 다 채우지 않는 우리는 예전에 비해 체구가 크고 체력도 좋다. 당연히 요즘 사람들은 쌀만으로 배를 채우지 않는다. 밥보다 양이 많은 두세 가지 이상의 반찬과 찌개나 국을 놓아야 밥상 구성이 완결된다고 믿는 경향이 어느 틈에 자리잡았다. 논을 줄인 우리가 밭이라고 보전했을 리 없다. 아니, 밭은 개발을 위해 준비되기라도 한 듯 마구 개발했다. 먼저 논을 밭으로 바꾼 뒤, 개발한 땅이 어디 한두 군데인가. 밥을 제외한 음식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농작물은 어디에서 가져오나. 생활협동조합만을 이용하는 조합원도 짐작하듯, 당연히 수입이다.


주식보다 훨씬 많이 먹는 게 부식인데, 부식의 재료가 되는 농작물의 종류는 무궁하다. 반찬거리만 수입하는 게 아니다. 밥에 넣는 잡곡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그 양은 무려 우리가 먹는 양의 95퍼센트가 넘는다. 수입하는 국가는 다양하지만 많은 곡식과 육류는 주로 미국에, 채소는 중국에 의존한다. 돈을 제때 약속한 만큼 지불하므로 이제까지 수입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앞으로 어떨까. 중국과 미국이 언제까지나 우리 밭작물의 부족분을 채워줄 수 있을까. 수출은 국가의 통제를 받는 기업이 맡는데, 기업은 이윤에 따라 움직인다. 농산물 수출은 대개 다국적기업이지만 다국적이라 해도 통제를 받는 국가는 따로 있는 게 보통이다. 이윤이 보장되면 다국적기업은 자국의 공익에 관계없이 수출과 수입에 열 올리지만, 국가가 이윤을 제한한다면, 수출입은 즉각 중단될 것이다.


주요 농산물 수출국들은 농작물을 우리에게 앞으로도 순순히 내줄 수 있을까. 인구가 전에 없이 늘어난 중국은 현재 식량 순 수입국이다. 수출하는 양보다 수입하는 농작물이 더 많다는 뜻이다. 자국의 농산물 중에서 돈이 될 만한 건 기업이 알아서 수출해왔고, 대신 외국에서 값싼 농작물을 수입해왔다는 건데, 그런 현상은 중국에 식량을 값싸게 수출할 국가들이 남아 있을 때까지 유효할 것이다. 중국이 수입하는 농작물은 우리도 수입한다. 대체로 같은 나라, 거의 미국에서 수입한다. 공업화로 농토가 계속 잠식되는 중국은 소득이 늘어나면서 식성이 서구화되어 농작물 소비가 전에 없이 늘었다. 공업화로 농업용수가 오염되는 중국이지만, 엄청난 인구는 예전부터 이웃에게 넉넉히 베푸는 걸 좋아했다. 그들이 수입하는 농작물의 양은 앞으로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구온난화 때문일까. 최근 미국 농작물 작황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가뭄 때문이라는데, 미국의 가뭄은 어제오늘의 사정이 아니다. 올해 그 정도가 유난스러웠을지 모르나, 지구온난화가 느닷없는 일이 아니듯, 미국의 가뭄이 뜻밖은 아니다. 따라서 내년 이후에도 가뭄이 계속될 수 있다는 건데, 누적된 가뭄은 미국의 흉작을 고착화시킬 수 있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빗물의 양에 비해 농경지가 넓다. 빗물이 최근 줄어들면서 의존하는 지하수의 양이 늘어나고 있어 고갈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진다. 옥수수를 비롯한 곡물을 주로 생산하는 미 대륙의 중부는 지나친 관정으로 막대했던 오갈랄라 대수층이 크게 줄었다고 아우성이다.


문제는 석유다. 석유 가격 계속 저렴하다면 양수기를 동원해 더 깊은 지하수를 퍼올릴 수 있으니 걱정할 게 없지만, 사정이 전 같지 않다. 석유 수출 국가의 공식 발표는 없지만, 소비량보다 생산량이 늘어난 정황을 더는 숨길 수 없는 상황에 돌입했다. 석유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미국은 앞으로 저렴한 농산물을 예전처럼 수출할 수 없는 처지로 바뀔 수 있다. 국제 석유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이 없는 가운데, 가뭄은 더욱 혹독해지는 현실을 감안해야하기 때문이다. 그 뿐이 아니다. 재정적자에 휘둘리는 미국 정부는 자국의 농업 분야에 지급하는 보조금을 삭감할지 모른다. 파산을 면할 만큼 농부에게 쥐어주는 보조금 뿐 아니라 수출을 주도하는 다국적기업이 챙겨가는 막대한 보조금도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미국산 농산물의 가격은 그만큼 오를 것이다.


미국의 사정은 당장 미국 농산물을 수입하는 국가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가까운 예를 보자. 올해는 다시 세계 2위 밀 수출 국가의 반열에 올랐다던데, 작년 여름, 러시아와 인근 국가들은 자급을 위해 밀 수출을 금지했다. 수출로 얻는 이익이 큰 기업은 내국인이 굶든 말든 수출하려하지만 국가에서 수출관세를 요구하는 까닭에 포기해야 했는데, 상처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러시아 밀을 수입하지 못하자 세네갈에서 폭동이 일어난 거다. 옥수수 원산지인 멕시코가 북중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물밀 듯 들어오는 값 싼 미국산 옥수수에 자급 구조가 깨지자 역시 폭동이 일어났다. 아들 부시 정권 시절이다. 석유를 바이오 연료로 상당량 가공하면서 옥수수의 멕시코 수출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내일은 안전할 수 있을까.


막대한 달러를 보유하는 중국은 미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사며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의 재정을 지탱해준다. 시카고 선물시장에 투기자본의 개입하면서 국제 곡물의 가격은 소문에 의해 요동치기 일쑤이므로, 미국의 흉작 소식은 가격 상승을 부채질할 게 틀림없지만, 달러를 쏟아낼 중국은 미국 곡물을 수입하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설사 혹독한 가뭄으로 미국이 농작물 수출관세를 매긴다 해도, 중국은 미 정부를 압박할 수 있으며, 설사 수입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드넓은 농토가 남아 있는 만큼 자국 내에서 헤쳐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농토의 대부분을 석유 없이 가동 불가능한 공업단지와 주택단지와 사무용 공간으로 바꾼 우리는 견딜 수 있을까. 미국산 농산물을 수입하지 못해도, 4명 중 3명이 굶주려야 할 지경인 식량 자급률 26퍼센트를 우리는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에 춤을 추는 세계 농작물 시장은 안정된 상태가 아니다. 가장 안정된 기반을 가진 미국이 전 같지 않건만, 우린 여전히 농토를 갈아엎는다. 광대한 신도시와 연구단지로 거듭 바꾼다. 논보다 생산성이 높은 갯벌과 그 갯벌을 메워 농토를 조성하겠다는 매립지들이 광속으로 사라진다. 바둑판처럼 달리는 고속도로와 고속화도로가 농토를 짓밟으며 누빈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고 식량 해외 의존도는 치솟는 와중에 음식쓰레기는 해마다 20조 원 어치에 달한다고 한다. 가히 엽기적인 무책임이다. 후손이 볼 때,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우리나라는 후보자마다 내일의 설계에 거품을 무는데, 농업에 대한 언급은 아무리 귀를 쫑긋해도 들리지 않는다. 유권자의 경각심도 미미하니 선거 쟁점이 되지 못한다. 마음 뿌듯하게 하는 황금벌판을 보아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푸른두레생협, 201210월호)

쌀이 남아돈다고 하는데 쌀값은 계속 오르기만 하네요. ㅡ.ㅡ;;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10. 10. 00:57

 

미국 금융가에서 세계로 확산되는 시민 99퍼센트의 집회는 탐욕스런 자본 1퍼센트에 분노의 함성을 쏟아낸다. 경쟁을 앞세우는 신자유주의 물결은 얇아지는 중산층까지 빈곤층으로 내몬다. 소득을 일방적으로 편취하는 1퍼센트에 의해 99퍼센트가 수렁으로 빠지는 기현상은 더욱 거친 경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경쟁을 부추겨 이익을 가로채려는 세력의 유혹에서 자유로운 시장, 다시 말해 협동조합의 가치를 다시 되새겨야 한다. 분노의 물결을 넘어 이행해야 할 행동이다.

 

비교우위를 앞세우는 무역자유화는 결국 가진 자의 이윤에 충성하는데,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은 ‘FTA’라는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으로 전이되고 있다. 체급이 전혀 다른 미국과 FTA협정에 나선 우리나라는 곧 실행될 모양이다. 세계의 정치와 무역에 관한 의혹을 폭로해 유명해진 위키리크스한미FTA협정에 참여한 우리 고위 관료의 어처구니없는 비화를 공개했다. 협상에서 미국 요구에 응해 우리의 국회와 시민사회를 설득하겠다고 상대측에 약속했다는 게 아닌가. 그쯤 되면 우리 협상단은 차라리 미국인이거나 미국에 맹종하는 하수인이었던 셈인데, 그로 인해 이미 위축돼버린 우리 농업은 설 땅마저 잃게 생겼다.

 

공산품 수출을 위해 희생시킨 우리의 농업은 지금도 비참해 식량 자급률이 26퍼센트에 불과한 실정이다. 쌀이나마 자급할 수 있어 겨우 버티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계가 심각하다.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국가의 진정한 독립은 식량 자급에 있다고 했다. 무던한 노력으로 80퍼센트였던 자급률을 200퍼센트 이상 끌어올린 프랑스도 자국의 농업을 지키려 애를 쓰지만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쌀 이외 대부분의 곡물을 비롯해 육류와 가공식품을 다국적기업에 의존하는 우리는 한미FTA에 신중해야했건만 실패했다. 드골이 보기에 우리는 식민지나 다름없는 정도였다.

 

한미FTA가 실행될 즈음, 세계 최대 미국계 곡물 다국적기업인 카길이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문을 열 예정이라는 뉴스를 지난 10월 초 국내 언론이 보도했다. 충청남도의 공장이 가동되면 국내 최대 콩기름과 사료업체의 매출을 앞지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자사 농산물을 대량 가공할 테니 소비자는 값싸고 질 좋은콩기름과 사료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격 열세에 놓일 국내업체는 고전할 게 틀림없다. 장차 국내업체들이 경쟁에서 밀려난다면? 카길이 가격을 슬그머니 올려도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할 수밖에 없다. 빗발치는 민원으로 정부가 나서 가격 통제에 나선다면? 카길은 한미FTA협정의 당사자 직접 소송 조항을 근거로 우리 정부를 고소할 테고, 당연히 패소할 우리 정부는 카길이 주장하는 손실액을 세금으로 고스란히 보전해주어야 한다.

 

막대한 자본을 동원하는 카길은 콩만 취급하지 않는다. 우리가 수입하는 미국산 쇠고기의 대부분을 취급하는 카길이 아예 쇠고기 매장을 연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값비싼 한우가 파고를 막아낼 수 있을까.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한미FTA는 카길의 시장 진출을 통제할 정부의 수단을 무력화한다. 농축산물은 물론이고 그 가공식품까지 포괄하는 카길이 막강한 협상력으로 우리 정부를 굴복시켜 한국 내 매장에서 우리네 입맛에 맞는 미국산 쌀을 대거 진열해 비교할 수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 농업은 어떻게 될까. 식량 자급률과 더불어 사망선고를 받지 않을까,

 

아무리 막강한 한미FTA라도 소비자의 의지까지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농약으로 땅을 황폐화시키며 농민을 착취한 관행 농산물이 낮은 가격표를 붙여도 생활협동의 소비자 조합원들이 외면했던 건, 땅과 내일을 살리려 애를 쓴 생산자 조합원들의 땀을 신뢰하기 때문이지 정부의 요구나 통제가 없었던 까닭은 아니다. 한미FTA도 마찬가지다. 가격이 높아도 공정무역 커피와 설탕의 흔쾌히 사먹는 소비자의 의지가 더욱 굳어진다면, 카길 또는 그 이상의 다국적기업이 이 땅에 거듭 문을 열어 낮은 가격으로 아무리 유혹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한미FTA협정으로 자진에서 무력해진 우리 정부에 대책을 호소할 이유도 전혀 없다.

 

한미FT협정 본격 실행을 계기로 생활협동조합은 새로운 사업을 기획할 때가 되었다. 신뢰할만한 유기농산물의 활발한 거래와 더불어 생산자 조합원의 의욕을 한껏 높여줄 자본을 모을 사업이 필요한 때가 된 것이다. 더는 견딜 수 없어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려는 농민을 적극 도와 전환기 농산물도 흔쾌히 취급하는 것은 물론, 영농비도 지원하자는 거다. 도전하는 생산자 조합원의 생계와 자립을 지원하는 비용까지 생활재의 가격에 공개적으로 포함하면 어떨까.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하는 생산자와 소비자 조합원의 의지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생활협동조합은 한미FTA의 파고 따위는 능히 극복할 수 있다. 조상과 후손 앞에 뿌듯한 일이다. (푸른생협 소식지, 201111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7. 11. 15:08

 

최근 농촌진흥청을 방문한 농식품부 장관이 패배감에 젖어있지 말고 농업을 2~3차 가공마케팅서비스산업이 결합된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발전시키자 강조했다고 한 언론이 전했다. 올봄 62차 라디오 연설에서 바이오 농업 시대가 다가오면서 농업은 유망한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방송한 대통령 뒤를 이은 장관의 이번 발언은 진정성이 없는 원칙에 불과하다고 참석자의 혹평을 받은 모양이다.

 

62차 라디오 연설에서 “21세기 농업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관광과 체험, 레저, 예술이 결합된 복합문화산업이자 지식기반산업이므로 농민과 협력해 도시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활기찬 농촌을 만드는 데 힘을 쏟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은 중국 농산물이 대량 수입돼 우리 농업이 위협 받고 있다고들 하는 현 시점이 새로운 기회라고 운을 떼고, “고소득층이 날로 늘어나는 중국이 고부가가치인 우리나라 유기농 농수산식품을 수입할 것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한데, 과연 그럴까. 또 그리 되는 게, 이 땅의 농촌과 농민에게 보람으로 이어질까.

 

대통령의 인식이 그 수준이니 장관도 그 모양일 텐데, 생각해보자. 거의 성사 단계에 있는 미국과 EU에 이어 중국과 FTA를 구상하는 현실에서 우리 농촌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무관심 속에 우리 식량자급률은 26퍼센트를 밑돌 정도로 열악한데, 수출이라니.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고부가가치를 운운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렵사리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중국의 부자들에 팔아 돈벌이에 나서라니. 정부가 판로를 이미 개척이라도 한 걸까. 세계적 식량위기 시대를 목전에 두고 투기를 일삼으라는 건가. 대통령은 유전자조작도 농약만 배제하면 유기농산물이라고 인식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데, 제 땅에서 소비되어야 한다는 유기농 원칙을 모르는 게 분명하다.

 

형용모순인 녹색성장을 주억거리는 청와대와 정부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산업을 도입하고 생활습관도 그에 걸맞게 바꾸기 위해 한여름 관공서와 공공시설의 냉방온도를 섭씨26도에 맞출 것을 요구한다. 근본과 거리가 있는 조치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고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농산물 수출을 언급하며 신성장동력을 운운하는데 기가차지 않을 수 없다. 멀쩡한 논밭을 돈벌이를 위한 시설농업단지로 바꾸는 것도 걱정스런 일인데 아예 도시와 도로로 없애버리면서 뭐? 수출하라고? 내 나라 내 땅에서 재배하는 우수 농작물을 우리가 먹으면 큰 손실이라도 생긴다는 겐가.

 

개정된 농협법의 핵심은 금융 분야와 농업 분야를 분리해 유통을 비롯한 농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본 대통령은 농협이 유통과 판매를 책임져 중간 단계를 줄이게 되면 농민은 제값을 받을 수가 있고, 소비자는 보다 저렴한 값에 구입할 수 있다면서 농산물 수급을 안정시켜 물가 불안을 줄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는데, 그 말에 수긍할 농민과 소비자, 심지어 농협 관련자가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해 상호 이익을 모색하는 협동조합이 농협인데, 생산과 판매를 분리하다니. 유기농업으로 땅과 내일을 살리려는 농민들이 관료화된 농협을 외면하고 왜 생활협동조합의 일원이 되는지, 유기농산물 수출로 부가가치를 챙기라 다그치는 대통령은 아마 모를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가 줄어도 평균수명 연장만큼 늘어나는 이 땅의 인구는 먹는 농작물의 양과 질이 성큼 달라졌다. 초고령화된 농촌은 적막강산이 된지 오래고, 주로 공공기반의 개발로 경작지가 급격히 위축되는 현실이다.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국제 곡물가격이 급상승하는 마당에 농업이 신성장동력이라니. 경작지의 거듭된 상실로 생존기반이 무력해지는 이때 투기를 부추기는 정책은 무책임하다. 농민의 원성을 무시하고 FTA를 맺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곧 맺을 중국에서 수입할 농작물이 남아 있다면 다행이지만, 국제추이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우리처럼 개발로 식량기지가 위축된 데 이어 소비량이 급증한 중국이 농산물 순수입국이 된 마당이다. 중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도 자국의 식량이 부족해지면 러시아처럼 수출을 지체 없이 금지할 가능성이 높다.

 

땅과 내일을 유기적으로 살리는 유기농산물은 가격이 높다. 농약으로 환경과 건강을 해치는 비용을 외부화한 기존 농작물과 달리 가격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내 땅에서 재배한 유기농산물로 가족의 건강을 도모할 수 있는 우리는 저급한 수입농작물, 첨가물이 들어간 가공식품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 농촌과 농민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정부는 농민을 돈벌이로 현혹하는 천박한 정책을 버려야 한다. 이 땅에 생명을 둔 이의 내일을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는 농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으로 나서야 옳다. 농업은 더도 덜도 없는 생존기반이다. 투기가 된 농업에서 건강한 내일은 비롯될 수 없지 않은가. (푸른생협 소식지, 2011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