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10. 1. 17. 23:54

 

쌀을 생산한다고 말하는 우리는 밥은 짓는다고 한다. 한 톨의 씨앗이 봄부터 적당한 햇빛과 바람과 물을 받으며 가을에 수십 배 늘어나는 게 쌀이다. 우리는 쌀로 밥이 지어 먹는다. 농민의 땀방울을 머금으며 알곡으로 늘어난 쌀은 그래서 농산물이지만 밥은 그저 변형인 것이다. 한데 전자레인지로 데워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슈퍼마켓의 밥을 사람들은 생산물로 착각한다. 대기업이 밥을 생산했다는 겐가. 감히?

 

공장 식으로 밀집 사육한 가축을 도축 포장해 파는 요즘의 부드러운 쇠고기나 돼지고기는 생산과 거리가 멀다. 고기용으로 사육하는 가축은 아주 어릴 때 도축한다. 사람과 비교하면, 사춘기는 고사하고 첫 영구치가 나올 즈음 도살되는 거다. 성장호르몬 때문에 빨리 자란 만큼 빨리 죽은 어린 가축에게 생산의 기회는 박탈된다. 대신 그런 고기를 위해 평생 정액을 쏟아내야 하는 씨수컷과 평생 난자를 내놓아야 하는 씨암컷, 그리고 시험관에서 수정해 분열시킨 난자를 기계처럼 착상해 평생 새끼만 낳는 대리모는 제 수명을 마치지 못하고 기진맥진해 죽는다. 사람이 강요하는 생산의 대가가 그렇다.

 

소와 돼지의 사료로 가공되는 곡물, 다시 말해 미국의 광활한 농토에서 수확하는 요즘의 옥수수와 콩은 분명히 땅에서 재배하지만, 생산이 아니라 변형으로 치부해야 할 정도로 많은 투입을 요구한다. 석유다. 파종과 수확에 동원되는 무거운 농기계에 들어가는 석유만이 아니다. 곡식의 수송과 저장에 들어가는 석유의 양도 무시할 수 없지만 화학비료와 농약 살포양이 막대하다. 모두 석유로 가공한 거다. 드넓게 파종한 단일작물은 석유 없이 재배가 아예 불가능한데, 유전자조작 농산물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옥수수 100칼로리를 수확하려면 미국의 농부는 1000칼로리 이상의 석유를 부어야 한다. 고기용 소는 옥수수 10킬로그램 이상을 먹어야 살코기 1킬로그램을 내놓는다. 돼지는 대략 소의 절반이고 닭과 계란과 우유는 3분의1 정도다. 따라서 육식, 특히 쇠고기로 배불리 먹으면 그 10배 이상의 곡식을 낭비한 셈이고 곡물 10배 열량의 석유를 태워버린 꼴이 된다. 세계 식량은 남아돌아도 굶주리는 인구가 좀처럼 줄어들지 못한다. 우리는 국제곡물상의 불합리한 분배에 관심을 가져야하지만 거기에서 멈출 수 없다. 육식이 느는 만큼 지구온난화는 거세지고 석유 위기가 앞당겨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1998년 우리나라의 한 대학에서 400그램에 달하는 미꾸라지를 개발한 적 있다. 당시 한 중앙언론은 식량 부족의 대안으로 보도했지만 어처구니없었다. 자연에서 채집할 수 있고 양식도 가능한 보통 미꾸라지보다 40배 이상 커진 이른바 ‘슈퍼미꾸라지’는 사료를 40배 이상 축내는데 그치는 게 아니다. 유전자를 변형시킨 까닭에 알이나 가공 부산물은 물론, 배설물까지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게다가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좁은 만큼 사육조건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뜻이다. 미꾸라지의 변형 유전자가 먹는 이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지 파악된 게 전혀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식량 해결을 점친 당시의 기사는 위험했다. 소비자에게 생명공학의 위험성을 망각하게 만들 수 있었다.

 

얼마 전 네덜란드 과학자들이 줄기세포로 돼지고기를 만들었다는 외신이 보도되었다. 가리비처럼 단단하지만 축축하고 질퍽한 질감의 고기 1센티미터를 분화시켰다는 거였다. 그 소식에 한 전문가는 앞으로 돼지 한 마리로 100만 마리 분량의 고기를 만들 수 있을 테니 기아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 뿐이 아니다. 그 기술을 소나 양, 그리고 닭에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고, 그 ‘시험관 고기’에 생선의 줄기세포로 만든 오메가-3지방산을 첨가한다면 심장마비를 예방하는 햄버거, 건강에 좋은 소시지까지 시장에 나올 거로 한술 더 떴다는 게 아닌가.

 

외신은 고기를 어떻게 100만 배나 늘릴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을 밝히지 않았지만, 한술 더 뜬 전문가는 돼지의 줄기세포가 저절로 증식할 듯 호들갑을 떨었다. 줄기세포의 안정성은 아직 확보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확보되리라 믿고 일단 지나가자. 다시 말해, 고기로 변한 돼지 줄기세포가 사람의 위장에서 미처 예상치 못했던 물질로 돌변할 가능성을 앞으로 제어할 수 있으리라 막연히 믿기로 하자는 거다. 모든 줄기세포는 영양을 공급받는 만큼 늘어날 수 있는데, 만 배 이상 키우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영양물질은 어디에서 어떻게 조달할 텐가. 비용은 돼지 100만 마리 사육하는 것보다 적게 들어갈까. 돼지와 생선 줄기세포들이 만나 엉뚱한 물질로 바뀔 가능성은 전혀 없을 거로 자신할 수 있을까.

 

유전자조작 기술까지 접목하면 돼지고기에 사과 맛까지 나게 만들 거로 떠벌일 수 있을 텐데, 벌써 공장에서 배양할 그 돼지고기로 개도국 중산층을 먹일 수 있다며 서방의 언론은 예단한다. 생산이 불필요한 만큼 온실가스 배출과 물 사용량이 줄어들 거라는 어설픈 예상은 둘째 치고, 서방의 연구자와 언론인들은 과연 맛과 향이 개선될 줄기세포 돼지고기를 먹으려 들까. 생태 질서를 허무는 식량 제조 기술이 초래할 재앙을 그들은 정녕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야곱의우물, 2010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