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5. 15. 15:32

    영리병원이 달갑지 않은 이유

 

아담을 기다리며라는 책은 병원에 누워 있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워낙 위중해 의사마저 거들떠보지 않는 상태라서 죽음을 의식하고 기진맥진해 있을 때였다. 병실 청소부로 보이는 아시아계의 작고 나이 든 여인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다가오더니 동정심 가득한 얼굴로 얼굴과 몸을 정성스레 닦아주는 게 아닌가. 치료를 포기한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 가족까지 찾지 않는 상황인데, 낯모르는 이에게 동정어린 마음으로 다가와 정성을 다해 씻겨주는 모습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그는 그 경험을 계기로 회복돼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고 썼다.


목포의 해운항만청에 근무하던 한 사내는 퇴근 후 늦은 시간까지 자주 마시는 술 때문인지 속이 늘 불편했다. 찾아간 병원마다 주사와 약을 처방해도 차도가 없었는데, 선배의 권유로 들어간 허름한 의원은 달랐다고 한다. 나이 지긋한 의사는 증세와 관련 없는 질문을 이것저것 던지더니 단식을 처방하는 게 아닌가. 진료비도 사양하며 진지하게 권해서 마음먹고 처방대로 단식과 복식을 마쳤는데, 희한하게 천형처럼 여겼던 속병이 이후 깨끗하게 사라졌다고 말했다. 전근했어도 자주 문안을 가던 그는 존경하는 의사의 주례를 받고자 굳이 목포로 가서 결혼식을 가졌다고 했다.


최근 전국의 경제자유구역청에 외국인 투자 국제 영리병원의 설립이 가능해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외국의 투자를 희망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필요성을 제기했고, 뚜렷한 사회적 결론 없이 설립을 가능하게 하는 법이 제정되었지만, 10년 전 일이었다. 이후 시행령이 없어 실효성이 없었는데, 지난 4월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전격 통과해 오는 6월 말이면 본격적인 설립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그러자 한동안 잠자코 있던 시민단체가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무상의료와 같이 의료비 부담을 줄이려는 세계의 추세에 역행해 시민의 부담을 늘리는 의료 민영화의 신호탄이라면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영리병원 논의가 시작된 지 10년이 지나도록 아무 말도 없더니 이제와 논란이 되는데 대해 다소 당황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의료서비스 이용 환경 조성 차원에서 설립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시민단체는 정권 말 특정 재벌을 위한 노골적 특혜라고 반박한다. 한 여당 국회의원의 목소리를 빌리며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설 영리병원이 우리 건강보험 체계를 허물 수 있다고 염려한다. 의료수가가 낮은 우리 공중의료보험을 거부해 미국처럼 맹장수술 같이 간단한 치료에도 수 백 만 원을 요구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우리 의료보험 체제가 확고해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당국자는 어이없어한다.


거대 보험회사를 소유하는 대기업에서 국제 영리병원을 추진하는 현상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민단체는 영리병원이 생기면서 사설 보험을 요구하는 일이 잦아지면 공공의료보험이 병원에서 외면될 수 있다는 것을 걱정한다. 미국에서 보듯, 결국 의료비 상승으로 보통 이하의 수입을 가진 시민들 고통이 심화될 것을 염려하며, 4월에 국무회의를 통과한 시행령을 비판한다. 외국 자본 비율 100퍼센트를 50퍼센트로 낮추었다는 건, 국내 기업의 투자를 보장하는 속셈이 아닌가? 병원장을 외국인으로 두도록 규정한 시행령은 회의 결정 기구의 과반수를 해외 병원 소속 의사로 채우고 전체 의사의 10퍼센트 이상, 그리고 진료 과목 당 1인 이상을 반드시 외국 의사면허 소지자로 배치하도록 정했다지만, 국내 의사면허 가진 자가 90퍼센트 가깝다면 사실상 내국인을 받겠다는 게 아닌가 묻는다.


전국 7개의 대도시와 20개 넘는 도시가 포함되는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올 수 있는 국제 영리병원은 아마 미국계 자본이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한미FTA가 체결된 이상 우리는 그 병원을 우리 제도로 통제하기 쉽지 않을 공산이 크다. 우리의 의료 수준이 낮지 않다고 정부는 주장하지만 지금도 거액을 마다하지 않으며 미국으로 떠나는 환자가 적지 않은 마당이 아닌가. 양질의 의료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광고를 앞세우는 사설 의료보험회사와 영리병원이 위화감을 일으키며 문을 활짝 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투자자가 국가를 직접 소송할 수 있는 제도를 미국과 FTA를 맺으며 도입한 이상, 우리 정부는 미국계 자본의 사업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그런 영리병원이 의료 관광객을 늘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데, 국제 영리병원의 수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국내 병원보다 유리하다는 증거는 없다. 지금도 병원을 찾아 입국하는 외국인은 다른 국가에 비해 비용이 적고 의료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한데 고액의 의료비를 지불해야 할 국제 영리병원에 해외의 의료 관광객이 국내병원보다 더 몰려들 것으로 짐작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국내인보다 적지 않겠지만, 그들도 국제 영리병원의 의료 수준이 국내 병원보다 획기적으로 높지 않다면 거액을 요구하는 병원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절반 가까운 국내 자본이 참여하고 의사의 90퍼센트를 국내 의사면허를 가진 이로 채울 국제 영리병원이라면, 머지않아 내국인을 받으려 할 테고, 우리 당국은 통제하지 못할 것이다.


시민단체는 1인 시위와 대규모 집해, 그리고 각종 토론회를 개최해 경제자유구역의 국제 영리병원의 허용을 반대하는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국제 영리병원의 설립이 지연되거나 제지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데, 시민단체의 반대운동을 느닷없다고 보는 추진세력은 제 밥그릇을 놓치지 않으려는 극히 일부의 선동으로 몰아세운다. 하지만 국제 영리병원의 반대를 넘어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그 시민단체의 논리에서 밥그릇 싸움의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충분한 논의 없이 추진하기에 논리보다 감성적 접근에 나서지만, 선동과 거리가 멀다. 제시하는 논거가 부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서는 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침묵하는 다수가 국제 영리병원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송도 신도시에 처음으로 문을 열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는 국제 영리병원에 대해 약간이라도 상식을 가진 시민은 인천에도 거의 없다. 대부부의 시민들은 영리병원이 현재의 병원과 무엇이 다른지 알지 못한다. 10년 전부터 논의되었지만, 국제 영리병원이 문을 열 경우 우리 의료 체제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지, 그 문제가 시민의 건강권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내용을 거의 모른다. 그런 마당에 국제 영리병원의 타당성을 늘어나는 의료보험료에 부담을 느끼는 일반 시민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일반 시민은 물론, 전문가들도 쉽게 토론해 합의를 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국제 영리병원의 설립을 서두를 이유가 없어야 한다. 정부와 자본의 논리에 매몰돼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밥그릇 빼앗기지 않으려는 극소수의 선동으로 몰아붙이는 태도는 합리적이지 않으며, 민주적이지 않다. 일부 자본의 이익을 은근히 배려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국제 영리병원은 당장 밀어붙여야 할 사안이 아니다. 국제 영리병원이 무엇이고 왜 문을 열어야 하는 이유를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타당할 것이다.


     어려서 배가 아프면 할머니나 어머니의 약손이 해결해주었다. 지금은 아니다. 환경이 오염되고 사고의 원인이 많고 무서운 세상이다 보니, 엄마의 약손보다 병원의 장비나 약이 훨씬 급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가족이나 이웃이 병을 않으면 누구나 마음이 편치 않다. 남의 고통 덕분에 돈을 벌어들이는 일을 반가워하는 이는 드물다. 장비나 약을 개발하고 구입하는데 비용이 들어가므로, 병원에 관계하는 이도 수입이 필요하므로, 병원을 이용하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병원이 전문화되면서 전에 없이 늘어난 비용에 부담스러워한다. 그래서 세금을 받는 국가는 의료보험으로 보호하거나 아예 국가 재정으로 지원한다. 그런데 영리병원은 전혀 아니다. 국제든 국내든, 환자의 고통을 대가로 돈을 벌어들이겠다고 노골적으로 나선 병원이다. 그런 병원이 왜 인천에 먼저 들어와야 하는가. 영 달갑지 않다. (인천in, 2012,5,15)

지금의 대형병원도 거의 영리병원 수준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