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3. 1. 31. 12:12

 

2012년은 계사년. 검은 용의 해였다. 검은 용은 맑고 깊은 호수에 머물다 여의주를 물고 승천할 테니 풍년이 깃들 것이라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아무리 우리의 식량자급률이 처참해도 쌀만은 자급했는데 작년에는 그마저 모자랐다. 인간이 곁에 오기 한참 전부터 유장했던 4대강의 흐름이 대형 보로 가로막히며 썩은데 그 원인이 있었는지, 지리멸렬하는 농업을 일으키리라 믿었던 2012년 검은 용은 통 힘을 쓰지 못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원리를 농업에 적용한다면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의 가격은 높아야 옳다. 쌀을 포함해도 국내 생산되는 농작물이 소비량의 4분의1에 지나지 않은 현실이므로. 한데 농민의 평균 소득은 갈수록 도시인과 격차가 벌어진다. 모자라는 농작물을 해외에서 싼 가격으로 대량 수입하기 때문이라는 거, 물론 모르는 이 없다. 소비보다 절대량이 부족한 현실에서 농민의 소득을 위해 수입을 자제할 수 없겠지만, 희생적으로 수고한 농민의 소득을 노동의 대가 이상 보장하면서 수입할 수 없는 것일까. 아무리 농산물 수입업자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부라 해도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닐 텐데, 농민은 여전히 소외되기만 한다. 치유와 지혜의 상징이라는 2013년 뱀의 해를 맞아 새로 출범하는 정부는 더욱 참담해지는 농촌에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최근 농업 관련 정부 투자기관의 장이 한 지방신문의 지면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우리 농촌에 날렸다. 30년 역사 밖에 안 되는 우리 반도체와 조선도 세계 1등인데 5천년 역사를 가진 농업이 세계 1등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큰소리를 친 그는 기대에 찬 청사진을 숨 가쁘게 펼쳐 놓았다. 농업이 정보와 생명공학과 나노기술이 융복합된 산업이라고 성격을 새롭게 규정하면서, 농업이 희망 있는 산업으로 변모하는 선진국을 직시하며 패배주의에서 빠져나와 신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게 하자며 칼럼을 마무리했다. 세계 1등 농업을 위해 인식 전환을 농민에게 요구했는데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농민은 우리 농촌에 시방 얼마나 있을까 궁금하다. 그가 염두에 둔 농촌은 어디이고 농민은 누구일까.


글로벌 농업 경쟁력 시대에 걸맞게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선택될 수 있는 농산물을 수출하자는 그는 우리나라의 녹색혁명을 해외가 인정하는 성공 사례로 들었다. 그런가? 금시초문인데, 이상스럽게 식량자급을 통해 얻은 과실이 건설과 조선과 중화학과 같은 2차와 3차 산업 발전의 터전이 되었다고 그는 분석했다. 우리나라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그는 우리나라가 지금 식량을 자급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모양이다. 통계를 읽지 못하는 바보거나 거짓말쟁이라는 겐가. 그가 농업관련 정부 투자기관의 장이라는 게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런 어처구니없는 인식은 기능성 식품과 의학 소재들을 농촌에서 생산하면 큰돈을 벌 것으로 주장하는 데로 이어진다. 누가? 농민 등치는 자본이 아니라, 현재 우리 농촌의 농민이?


딱하게도 그는 농업의 소명을 근본에서 망각한다. 식량 자급도 못하는 주제에 고부가가치 농작물의 수출을 이야기하는 공직자는 우리 농촌과 소비자의 운명을 어디로 끌고 가려는 건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데, 겨우 버티는 이 땅의 농민들이 그가 요구한 대로 인식을 전환할 수 있겠는가. 그의 요구를 조금이라도 수용하려면 농촌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 복잡하고 값비싼 기계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용만이 아니다. 현재 대부분의 농민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도의 전문성도 추가로 요구될 것이다. 그리 정교하게 생산한 농작물은 당연히 수출용일 테고, 돈벌이를 최우선 목적으로 할 텐데, 무슨 근거로 그런 농작물이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우리보다 석유 가격이 저렴하고 경작할 땅도 넓으며 인력과 자본력이 우수한 국가를 이길 수 있다는 겐가.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선동은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다. 무모하기보다 무책임하다.


우리는 기능성 식품이나 의학 소재를 먹고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니 앞으로도 생명체인 우리는 밥을 먹어야 산다. 물론 반찬도 먹는다. 그를 위해 우리 땅에서 생산하는 농작물은 밥과 반찬에 우선되어야 한다. 기능성이나 의학 소재는 자급 이후에 자본이 고려할 사항일 뿐이어야 한다. 그는 더욱 중요한 점을 망각했다.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은 소비량의 4분의1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먹는 식량의 4분의3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데, 세계 식량위기가 다가온다는데, 그 물량을 앞으로도 안정적으로 수입할 수 있는가. 우리 농촌의 요즘 인력은 대부분 노인이다. 귀농인구가 없지 않지만 농촌은 절대 인구가 부족하다. 그뿐인가. 경작지는 온갖 개발로 줄어들기만 한다. 일부 유기농업을 제외하고 농민들은 농기계와 화학비료와 농약 지원 없이 경작을 못하는데, 2005년 이후 세계 석유 생산량은 생산량이 소비량을 밑 돌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농업용 석유의 가격도 이미 치솟았고, 내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렇듯 자급은커녕 버티기도 힘겨운 우리 농촌이건만 누구 좋으라고, 또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신성장동력 운운하는가.


내 땅에서 유기농업으로 생산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먹는 농작물은 차라리 석유다. 양을 늘리려 했든 질을 높이려 했든, 농작물에서 얻는 칼로리보다 최소한 10배 이상의 칼로리에 해당하는 석유를 퍼붓지 않으면 녹색혁명이 유도한 농작물일수록 기대하는 소출은 내놓지 않는다. 수입하는 농작물은 석유 의존도 훨씬 심하다. 그러므로 석유 가격이 오르면 농작물의 경작 비용은 그만큼 추가될 수밖에 없다. 그러자 농사용 빌딩에 LED 조명을 비추며 36524시간 수경재배하자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온다.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농작물의 균형 잡힌 영양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주장은 예서 따지지 않더라도, 그런 농업은 더욱 많은 에너지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데, 과연 감당할 수 있겠나. 그 농작물이 가격 경쟁력을 가지려면 들어가는 에너지 비용을 정부에서 듬뿍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전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금은 부가가치나 세계 1등과 같은 근거 없는 신기루로 농민들 현혹시킬 때가 아니다. 세계 농작물의 가격이 치솟은 작년, 4대강 사업으로 우리 4대 강가의 경작지가 망가졌을 때, 농업용수가 오염된 우리와 다른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농작물 수출국에 가뭄이 왔다. 심화되는 지구온난화로 더욱 극심해지는 가뭄은 식량주권이 그만큼 시급해졌다는 걸 경고한다. 식량이 모자라는 국가는 우리뿐이 아니다. 세계 최대 인구인 중국도 식량 순수입국이다. 지구온난화가 진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4대강의 재자연화는 아직 실행하지 않고 있다. 어떤 대책이 절박한가. 수출 위주의 농업 신성장동력인가.


     농경지보다 높은 칼로리의 어패류를 채취할 수 있었던 갯벌과 알량하게 남은 경작지마저 개발돼 사라지는 현실이다. 우리는 내일의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우리 농업의 대책을 근본에서 세워야 한다. 피폐한 이 나라의 농업은 무책임한 관료의 말장난으로 살아남지 못한다. 농촌과 농민의 소득은 물론, 자존심까지 살릴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경작지의 무모한 개발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이고, 식량 증산을 위하 농경지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실패한 개발용지와 파산한 골프장을 농지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거나 자투리땅까지 활용할 수 있는 도시농업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기농업으로 자급하려는 젊은 농민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농업은 후손까지 생각하는 내 땅의 생명산업이지 다른 국가를 물리칠 수출 산업이 아니다. (지금여기, 2013.1.29)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7. 11. 15:08

 

최근 농촌진흥청을 방문한 농식품부 장관이 패배감에 젖어있지 말고 농업을 2~3차 가공마케팅서비스산업이 결합된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발전시키자 강조했다고 한 언론이 전했다. 올봄 62차 라디오 연설에서 바이오 농업 시대가 다가오면서 농업은 유망한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방송한 대통령 뒤를 이은 장관의 이번 발언은 진정성이 없는 원칙에 불과하다고 참석자의 혹평을 받은 모양이다.

 

62차 라디오 연설에서 “21세기 농업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관광과 체험, 레저, 예술이 결합된 복합문화산업이자 지식기반산업이므로 농민과 협력해 도시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활기찬 농촌을 만드는 데 힘을 쏟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은 중국 농산물이 대량 수입돼 우리 농업이 위협 받고 있다고들 하는 현 시점이 새로운 기회라고 운을 떼고, “고소득층이 날로 늘어나는 중국이 고부가가치인 우리나라 유기농 농수산식품을 수입할 것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한데, 과연 그럴까. 또 그리 되는 게, 이 땅의 농촌과 농민에게 보람으로 이어질까.

 

대통령의 인식이 그 수준이니 장관도 그 모양일 텐데, 생각해보자. 거의 성사 단계에 있는 미국과 EU에 이어 중국과 FTA를 구상하는 현실에서 우리 농촌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무관심 속에 우리 식량자급률은 26퍼센트를 밑돌 정도로 열악한데, 수출이라니.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고부가가치를 운운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렵사리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중국의 부자들에 팔아 돈벌이에 나서라니. 정부가 판로를 이미 개척이라도 한 걸까. 세계적 식량위기 시대를 목전에 두고 투기를 일삼으라는 건가. 대통령은 유전자조작도 농약만 배제하면 유기농산물이라고 인식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데, 제 땅에서 소비되어야 한다는 유기농 원칙을 모르는 게 분명하다.

 

형용모순인 녹색성장을 주억거리는 청와대와 정부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산업을 도입하고 생활습관도 그에 걸맞게 바꾸기 위해 한여름 관공서와 공공시설의 냉방온도를 섭씨26도에 맞출 것을 요구한다. 근본과 거리가 있는 조치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고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농산물 수출을 언급하며 신성장동력을 운운하는데 기가차지 않을 수 없다. 멀쩡한 논밭을 돈벌이를 위한 시설농업단지로 바꾸는 것도 걱정스런 일인데 아예 도시와 도로로 없애버리면서 뭐? 수출하라고? 내 나라 내 땅에서 재배하는 우수 농작물을 우리가 먹으면 큰 손실이라도 생긴다는 겐가.

 

개정된 농협법의 핵심은 금융 분야와 농업 분야를 분리해 유통을 비롯한 농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본 대통령은 농협이 유통과 판매를 책임져 중간 단계를 줄이게 되면 농민은 제값을 받을 수가 있고, 소비자는 보다 저렴한 값에 구입할 수 있다면서 농산물 수급을 안정시켜 물가 불안을 줄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는데, 그 말에 수긍할 농민과 소비자, 심지어 농협 관련자가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해 상호 이익을 모색하는 협동조합이 농협인데, 생산과 판매를 분리하다니. 유기농업으로 땅과 내일을 살리려는 농민들이 관료화된 농협을 외면하고 왜 생활협동조합의 일원이 되는지, 유기농산물 수출로 부가가치를 챙기라 다그치는 대통령은 아마 모를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가 줄어도 평균수명 연장만큼 늘어나는 이 땅의 인구는 먹는 농작물의 양과 질이 성큼 달라졌다. 초고령화된 농촌은 적막강산이 된지 오래고, 주로 공공기반의 개발로 경작지가 급격히 위축되는 현실이다.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국제 곡물가격이 급상승하는 마당에 농업이 신성장동력이라니. 경작지의 거듭된 상실로 생존기반이 무력해지는 이때 투기를 부추기는 정책은 무책임하다. 농민의 원성을 무시하고 FTA를 맺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곧 맺을 중국에서 수입할 농작물이 남아 있다면 다행이지만, 국제추이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우리처럼 개발로 식량기지가 위축된 데 이어 소비량이 급증한 중국이 농산물 순수입국이 된 마당이다. 중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도 자국의 식량이 부족해지면 러시아처럼 수출을 지체 없이 금지할 가능성이 높다.

 

땅과 내일을 유기적으로 살리는 유기농산물은 가격이 높다. 농약으로 환경과 건강을 해치는 비용을 외부화한 기존 농작물과 달리 가격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내 땅에서 재배한 유기농산물로 가족의 건강을 도모할 수 있는 우리는 저급한 수입농작물, 첨가물이 들어간 가공식품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 농촌과 농민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정부는 농민을 돈벌이로 현혹하는 천박한 정책을 버려야 한다. 이 땅에 생명을 둔 이의 내일을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는 농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으로 나서야 옳다. 농업은 더도 덜도 없는 생존기반이다. 투기가 된 농업에서 건강한 내일은 비롯될 수 없지 않은가. (푸른생협 소식지, 2011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