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8. 10. 13. 09:06

 

《솔숲에서 띄운 편지》, 윤인중, 신정은, 신종철 지음, 생명평화, 2008.

 

 

인도의 가난한 여성에게 숲은 생존을 위한 기반이다. 신분제도가 고착된 인도의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남성보다 뒤쳐지는데 계층의 낮을 경우 그 지위는 터무니없는 게 일반적이다. 그들은 지참금이 적어 시집을 갈 수 없거나 시집을 가도 아내나 며느리의 대우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노예처럼 일해야 한다는 거다. 그나마 아들을 낳으면 집에 남아있을 수 있지만 딸만 거푸 낳는다면 딸과 함께 내�기는 일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집을 나와야 하는 여인은 어디로 가야 하나. 그들을 받아주는 곳은 산이다. 거기에 나무와 숲이 있는 까닭이다.

 

산은 품이 넓다. 돈과 기술이 없는 여성도 무궁한 열매와 산나물을 뜯으며 삶을 이어갈 수 있다. 약초와 목재를 내주니 약간의 돈도 장만할 수 있게 여성에게 배려해준다. 물과 맑은 공기, 그리고 숲에 어우러지는 수많은 동식물이 심신이 지친 삶과 휴식을 베풀어준다. 그런데 그런 산이 위협받는다. 사슬톱을 쥔 남성에 의해.

 

사슬톱을 쥔 남성은 자본의 지시를 받았다. 남성은 마을에서 쫓겨난 여성이 삶을 기대는 산으로 들어와 나무를 자른다. 그 여성은 시댁에서 쫓겨난 누나나 누이동생일 수도 있다. 처형이나 처제일 수도 있다. 언제나 다정했던 이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남성은 사슬톱을 쥐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직장을 잃고, 직장을 잃으면 돈을 가질 수 없고, 돈이 없으면 딸을 시집보낼 수 없다. 마을에는 돈이 없어 산에 들어가 목을 맨 남성도 많다. 그가 죽으면 아내는 아이를 안고 산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걸 그는 잘 안다. 그래서 사슬톱을 단단히 쥔다.

 

남성에 사슬톱을 쥐게 한 자본은 댐을 만들려고 한다. 댐을 만들어지면 마을과 농토가 물에 잠기고, 물이 차오른 산은 마을과 고립될 것이다. 산에 기대며 사는 여성들은 다시 쫓겨나야 하지만 더는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여성들은 사슬톱에 저항하기로 한다. 귓전에서 윙윙대는 사슬톱에 맞서 나무를 끌어안는 것이다. 나무와 함께 삶을 마치겠다는 의지로 나무를 꼭 끌어안은 여성을 보는 남성은 곤혹스럽다. 여성에 욕설을 하며 사슬톱으로 몇 번 위협하던 남성은 차마 나무를 자르지 못하고 사슬톱을 내동댕이친다. 나무를 끌어안은 여성이 마을의 이웃이고, 누이동생이고, 누나거나 처형이 아닌가. 여성성이 승리하는 순간이다.

 

이른바 ‘칩코운동’이다. 칩코운동을 지켜본 생태여성주의자 반다나 시바는 핵물리학자였다. 인도에서 여성이 핵물리학을 전공한다는 게 쉬운 어디 쉬운가. 반다나 시바는 보통 계층이 아닐 것이다. 그 반다나 시바가 핵물리학을 버렸다. 거대자본이 추진하는 핵물리학은 중앙집중적이다. 파괴적이다. 남성주의다. 여성과 마을을 짓밟는다. 인도의 여성에게 칩토운동의 가치를 전파하는 반다나 시바는 당연히 댐을 반대한다. 토착지식을 훔쳐 사유화하는 생명공학도 반대한다.

 

대학을 갓 마친 한 여성이 한 나무의 고통을 듣는다. 미국 서북부, 아주 멀리 떨어진 벌목 현장에서 전해오는 나무를 공포를 감지한 그 여성은 불원천리, 맨발로 고통받는 나무에 오른다. 738일. 혹독한 겨울을 세번 견디며 나무에서 두번 생일을 맞이한 여성은 미 정부가 일대의 숲을 매입해 보전하기로 결정하면서 내려온다. 나무의 이름은 ‘루나.’ 2년 넘게 자신을 받아준 루나와 헤어지면서 눈물을 펑펑 흘린 그는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덕분에 수천년 수령을 자랑하는 미국 메타세콰이어 원시림의 극히 일부는 지금까지 보전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과 같은 역할을 17일 동안 계속한 이가 있다. 그는 ‘환경정의’라는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는 박용신이고 남성이다.

 

용인은 난개발로 파헤쳐진 곳이다. 공업단지는 흩어진 공장지대를 모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겠다는 목표를 가진다. 아파트단지도 비슷한 목적을 표방한다. 그런데 아파트단지가 난립되면 어떻게 될까. 바로 용인이 그렇다. 난립된 아파트단지로 울창했던 숲이 거의 사라졌고 교통난이 심각하다. 그곳에 대지산이 있다. 경주 김씨의 문중 산으로, 잘 보존된 곳이다. 덕분에 철근시멘트에 지친 용인시민들은 숨을 쉴 수 있었는데, 토지공사에서 거기마저 벗겨내 아파트단지로 개발하겠다고 나서는 게 아닌가. 박용신은 대지산 100평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구입한 시민들의 성원을 받고 상수리나무 위에 올랐다. 그리고 토지공사가 “보전하겠다!” 천명한 약속을 법원에서 공증을 받아올 때까지 17일간 버텼다. 덕분에 대지산 4만5천평을 포함한 죽전지구 8만5천평이 공원과 보존녹지로 지정될 수 있었다. 박용신은 자신을 받아준 상수리나무에 이름을 붙였다. “장군”이라고.

 

인천의 진산 계양산에 ‘우직(愚直)’, ‘묵직(默直)’, ‘눌직(訥直)’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나무가 있다. 그 3그루 소나무를 기둥삼은 고공텐트에서 155일 머문 윤인중은 동학(東學)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솔숲에서 띄운 편지》에 적었다. 해월선생은 무슨 일을 처리할 때 고지식하고, 말없이 신중하며, 어눌하지만 정직하게 행하라고 가르쳤다면서, 155일 동안 자신을 받아준 소나무에 그리 이름을 헌정한 것이다. 그는 고소공포증을 가진 50줄의 목사다. 하지만 계양산이 골프장으로 훼손되는 걸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2006년 10월 26일, 인천녹색연합의 신정은이 먼저 소나무 위의 텐트로 올랐다. 과년한 딸이 겨울로 들어가는 계양산에서 56일이나 나무 위에 올라 있는 걸 그의 부모가 감내하기 어려워하자 윤인중이 2007년 5월 23일까지 바통을 이어받았다. 계양산이 골프장 족쇄에서 풀리기를 기다리며 155일 동안 고독을 자청한 그는 철학자가 되었다. 계양산에 골프장이 생긴다는 풍문을 들은 등산객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이 호기심으로 다가와 격려하거나 비난하는 소리를 듣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해야 했고, 일부러 찾아오는 이를 반갑게 맞으며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가끔 성난 얼굴로 찾아오는 개발업체 관계자의 목소리도 들어야 했다. 올려준 책을 읽으며 다가오는 산새도 바라보았다. 소나무 위에서 철학자가 된 목사는 그 상념을 기록했다. 신정은도 썼다. 그 글들을 묶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서. 과연 자본은 여성성을 짓밟는데 정부보다 집요하다.

 

계양산 소나무에 처음 오른 신정은은 여성이다. 윤인중은 남성이지만 따뜻한 여성성을 가졌다. 다음 세대를 걱정하므로 나무 위에 올랐다. 대지산의 상수리나무, 장군에 오른 박용신도 남성이지만 그도 여성성을 가졌다.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은 여성이다. 칩코운동은 여성의 운동이다. 모두 자본에 저항하며 대지의 여성성을 지키려 행동했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써야 했던 쓴 더글러스 러미스는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경제성장”이라고 단언한다. 그 말이 맞다. 민주주의의 반대가 독재일 때, 운동은 쉬웠다. 상대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다. 민주화운동으로 패가망신할 위험이 있더라도 신념으로 싸울 수 있었다. 민주주의의 반대가 제국주의일 때, 자칫 생명을 잃을 수 있어도 싸웠다. 그들 덕택에 대한민국은 불완전하나마 독립을 이뤘다. 한데 지금, 우리는 상대가 분명치 않은 경제성장과 맞서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행동이 어렵다. 자본이 우리에게 세뇌한 경제성장이라는 상대는 내 안에도 똬리틀고 앉아있지 않은가.

 

경제성장이라는 마패를 내미는 세력에 의해 파헤치는 대지의 상처는 깊고 넓다. 내일을 위협할 지경이다. 조상이 물려준 대지를 후손에게 온전히 물려줄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그 신념은 땅, 삼라만상의 생명을 잉태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해야 할 대지에서 찾아야 한다. 알도 레오폴드는 일찍이 ‘대지의 윤리’라고 했다. 《솔숲에서 띄운 편지》를 쓴 윤인중과 신정은은 대지의 윤리를 우리에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신종철 선생은 사진으로 그들의 행동을 기록했다.

 

《솔숲에서 띄운 편지》를 함께 쓴 윤인중과 신정은과 신종철 선생은 반다나 시바,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 박용신과 더불어 나무와 숲을 끌어안은 사람이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다음 세대의 대지를 지키려 나무와 숲을 나무와 숲을 끌어안은 이는 많을 것이다. 여성성을 지닌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아직 숨 쉴 수 있다. 아이를 낳고 기를 명분이 있다. 우리는 《솔숲에서 띄운 편지》를 읽으며 그이들의 노고를 기억할 의무가 있다. 더욱 힘겨운 행동을 위해. (《솔숲에서 띄운 편지》 서평, 2008년 10월)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6. 11. 13. 22:13

   

    언덕에 석상 산등성이로 밀어 올리려는 씨족 사이의 경쟁이 이스터 섬의 문면 붕괴를 가져왔다. 원인은 나무다. ‘모아이’라 하는 석상을 나무를 모조리 잘라 올렸지만 빗물은 섬의 모든 것을 쓸어버렸고, 카누를 잃은 선조들은 비참한 생을 마감해야 했다. 남은 후손은 선조의 찬란한 문명을 기억하지 못한다.


핵물리학을 전공했지만 마초가 지배하는 과학기술에 반기를 든 반다나 시바는 생태여성주의자의 길을 걷는다. 그는 칩코운동을 전개했다. 지참금이 없어 부모에게 버림받는 딸, 남편의 포악성을 견디다 못해 아이를 들쳐업고 집을 뛰쳐나온 주부, 창녀촌에 팔려나갈 뻔한 여자아이, 이혼당한 아내들은 숲으로 들어가야 했다. 약초와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아이를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숲을 파괴하는 사슬톱에 저항하는 여성의 행동이 나무를 끌어안는 칩코운동이다.


사슬톱을 귓전에 윙윙거리며 나무를 끌어안은 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남성 노동자들은 숲에서 여성들을 몰아내기 위한 폭력이기에 앞서 자본에 굴종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이 아무리 닦달하더라도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어머니, 누이동생, 이웃 아주머니를 차마 해칠 수 없자 사슬톱을 내던질 수밖에 없었고, 칩코운동은 숲을 지켜낼 수 있었다.


22세의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은 ‘루나’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삼나무에 올라 738일 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천년이 된 생명이 벌채되어 죽는다는 걸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무에 쐐기톱을 박고, 헬기로 주위를 돌며 줄리아의 생명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자본은 갖은 협박과 회유로 내려갈 것을 강요했지만 소용없었다. 정부가 벌목회사에 거액을 제공하며 루나와 주변 숲을 법으로 보호하자 땅으로 내려온 줄리아는 폭설이 매서운 겨울을 두 번이나 맞으며 맨발로 버텼다. 맨발이 아니면 루나와 마음을 주고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루나와 헤어지며 엉엉 울음을 터뜨린 줄리아는 미국의 소중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루나를 지켜낸 지역은 미국 제일의 생태계를 자랑하고 있다.


교실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지저분하고 불쾌하다. 그래서 교실에 쓰레기통을 놓는다. 주택과 공장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으면 환경이 좋지 않다. 그래서 단지를 체계적으로 조성한다. 그런데, 단지가 난개발되면 어떻게 되나. 용인은 주택단지가 난개발되는 지역이다. 한 문중은 개발이 예고된 산을 그린벨트로 지정해달라고 정부에 탄원했다. 하지만 포클레인과 불도저는 삽시간에 대지산 절반의 표피를 벗겼고, 분노한 환경 활동가는 상수리나무 위에 텐트를 쳤다.


나무를 베면 나무와 함께 목숨을 내던지겠다고 각오를 다진 활동가는 인간을 경원하는 상수리나무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했다. 일주일에 걸친 사죄를 받아들인 상수리나무는 이후 활동가를 받아들였고, 활동가는 상수리나무와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나무에 오른 지 2주일 만에 개발업자는 백기를 들었고, 활동가는 법원 공증을 받을 때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그 동안 3일, 상수리나무는 그 활동가와 헤어질 것에 매우 아쉬워했고, 활동가는 상수리나무에 ‘장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현재 장군이 버티는 대지산은 자연공원으로 보전되고 있다.


그리고 인천의 진산 계양산에는 한 활동가가 3주일 가까이 나무에 올라가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올라 있을지 그 활동가도 모른다. 계양산에 골프장을 만들려고 온갖 협잡을 마다하지 않는 대기업 롯데는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활동가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이가 아니라면 반딧불이가 숨쉬는 인천 제일의 녹지는 “골프장도 녹지”라고 거품을 무는 인천시장의 지원을 받아 벌써 절딴났을 것이다.


나무를 잘라 만든 펄프를 소비하는 우리는 나무를 둘러싼 환경운동을 잠시라도 잊으면 안 된다. 한 장의 종이라도 최대한 아키는 것은 물론, 반드시 의미 있게 소비해야 한다. 나무 없는 신문이나 글쟁이는 존재할 수 없다. (기호일보, 20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