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6. 12. 11. 10:43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 이본 배스킨 지음, 이한음 옮김, 돌베개, 2003.



안정된 생태계가 개발행위로 교란되었을 때, 생물종의 유전적 다양성에 어떤 변화가 초래될까. 그 연구를 위해 개발 전후의 하천에서 담수어류를 채집한 적 있다. 실험을 위해 20마리를 산 채로 잡아야 했는데, 강이 직선으로 바꾸자 시간 내에 채우기 어려웠다. 하천 생태계의 파괴보다 채집 시간이 길어진다는 게 당시의 불만이었는데, 연구결과를 학회에 발표하고 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은 이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 추가 연구를 위해 연구비를 신청할 때 예외였을 뿐.

 

세금으로 조성된 연구비로 과학자가 수행하는 논문은 대개 어렵다. 같은 방면 전공자가 아니라면 접근하기 어렵고, 펼쳐놓아도 무슨 뜻인지 세금을 낸 시민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암호 같은 수식이 복잡하지만 그 때문만이 아니다. 외국어가 아니라도 문장의 맥락 파악이 어렵다. 구사하는 문체도 익숙하지 않다. 생태학 논문도 예외가 아니다. 생태계 변화로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면 그 생물종의 환경 적응력은 어떻게 되고 사람의 삶에 장차 어떤 영향을 초래할지, 소통 안 되는 논문은 행동을 준비하는 시민에게 도움이 못 된다.

 

분별없는 개발에 의해 파괴되는 생태계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파괴로부터 생태계를 보전하려는 환경운동가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신념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현장에 나가야 하고 공부도 결코 게을리 할 수 없다. 헌데 무얼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 논문을 읽을 수 없고, 가치중립이라는 허울 아래 감성을 배제한 교과서를 건조하게 들어다볼 수도 없다. 야생의 아름다움이나 보전의 가치를 전하는 책은 더러 있지만 일면적이다. 생태계의 안정성과 변화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야 생태계 보전운동에 신념이 실릴 텐데. 막강한 개발세력과 부딪힐 엄두를 낼 수 있을 텐데. 전문가가 아닌 시민에게 신념이라는 힘을 실어줄 책은 어디 없을까.

 

“생물 다양성은 어떻게 우리를 지탱하는가.” 라는 부재를 단『아름다운 생명의 그물』은 미국 출판계를 다시금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생태학자의 수많은 논문들을 먼저 소화한 저자가 전문가의 주장을 주제별로 분류, 재해석하여, 보통 정도의 상식을 가진 시민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일상의 언어를 감성적으로 구사한 책인데, 그런 책을 내놓아도 출판사가 망하지 않는 까닭이다. 물론 평론가의 추천이 있는 책이라면 거의 사들이는 도서관과 과학교양 독자가 그만큼 많다는 점이 그 부러움의 원천이겠지만.

 

미국의 저명한 과학저술가인 이본 배스킨은 1994년 환경문제과학위원회로부터 6권의 전문서적을 받는다. “생태계 과정들을 생물 다양성과 결합시킨 새로운 과학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계획”으로 전 세계 생태학자 수백 명이 3년간 연구한 결과였다. 인간이 “지구의 다른 생명체들을 허약하게 만들 때 우리 자신의 종에게 돌아올 위험들을 학생과 정책 결정자, 관심 있는 시민들에게 소개”하고자 이본 배스킨은 방대한 논문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로 번역된 ‘The Work of Nature’를 썼다.

 

자신의 삶을 기대고 있는 생태계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유지하려면 생물 다양성이 얼마나 필요한지 인간은 궁금해 한다. 개발 관성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리라. 두려움은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옳게 대처하거나 완화할 수 있다. 이본 배스킨은 생물 다양성의 변화가 생태계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6가지 사례로 살핀다. 생태계라는 ‘자연 공동체의 지속성과 안정성’, ‘수생 서식지의 수질과 흐름, 그리고 건강성’, ‘토양 비옥도와 그것이 건강한 작물 및 숲과 맺는 관계’, ‘야생의 땅과 경작자의 생산성, 즉 무성함’, ‘경관의 모습과 기능 및 불 같은 교란의 빈도’, 그리고 ‘지구 대기와 기후의 상태, 지역 강수 양상과 날씨’가 그것이다.

 

현재 생물종의 멸종속도는 화석 기록의 천배. 이런 퇴행이 계속된다면 50년 내에 현 생물종의 4분의1이 멸종할 것으로 생태학자들은 추정한다. 200년이 지나면 모든 생물종이 사라진다는 경고인데, 경고가 아무리 메아리쳐도 개발은 멈추지 않지만 마냥 무심할 수는 없을 터. 보전 행동을 위한 근거를 확보하려는 환경운동가 못지않게 개발을 계획하는 사람도 생물 다양성의 변화에 촉각을 세울 것이다. 생태계에서 얻는 경제와 문화적 이익을 내세워야 할지, 생태계 자체의 교란을 문제 삼아야 할지, 고민할 것이다.

 

산호초를 제거하면 다른 어류의 서식처가 파괴되고 해류가 바뀌며, 그로 인해 전에 없던 파도가 일어 해변의 맹그로브 숲이 밀려나면 쓰나미가 더욱 두려워질 것이다. 이본 배스킨은 아치 위에 끼워 전체 구조를 안정시키는 쐐깃돌처럼, 생태계 지배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성게와 전복을 먹어치우는 해달을 잔멸시키면 어획고가 증가할까. 성게가 늘어나면서 갈조류가 고갈되니 물고기는 물론 성게와 전복마저 사라지고 만다. 해달은 그 해안의 쐐깃돌 생물종인 셈이다. 저자는 숲에 댐을 만드는 비버를 비롯하여 보전해야 할 쐐깃돌 생물종의 예를 거듭 상기하지만, 간척사업 중인 새만금 갯벌이나 터널로 뚫리는 천성산 생태계에도 보전해야 할 쐐깃돌 생물종도 많을 것이다. 다만 공권력을 동원할 수 있는 개발세력의 무지에 의해 철저히 외면되고 있을 뿐.

 

인간에 의해 종이 추가되거나 제거될 때, 농약이나 항공방제로 곤충이 사라질 때, 사료나 음식을 통해 항생제가 생태계에 퍼져나갈 때, 댐으로 강의 흐름과 수역이 바뀔 때, 지나친 관개농업으로 토양에 염해가 발생할 때, 단일수목을 심어 산록에 생물종이 단순화될 때, 화석연료 과다 소비로 지구가 온난화될 때, 생물 다양성은 어떻게 되고 원인을 제공한 인간은 자신의 생태계 내에서 얼마나 보전될 수 있는지,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은 절박하지만 설득력 있게 경고한다. 모두 연결돼 있는 생태계의 생물종을 경제성으로 판단할 수 없다. ‘자기 보전 수단으로서 보전’이라고 저자는 결론짓는다.

 

오랜만에 들린 생태학회에서 발표 논문을 보고 맥 빠진 적 있다. 강을 직선으로 만들자 생물 다양성이 줄었다는 내용을 어렵게 썼는데, 저자는 생태계가 얼마나 위태로워졌는지 절박해하지 않는다. 개발 행위의 부당성을 지적하지 않으니 대책도 일체 요구하지 않는다. 소통할 독자가 연구비에 목매는 연구자에 한정되어 그럴까. 생태계 파괴는 연구 재료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은 장차 인간에게 다가올 생태계의 통증을 쉽게 이해하도록 이끈다. 생태계 보전 행동에 나설 수 있는 힘을 실어준다. (출판저널, 200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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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추억

디딤돌 2005. 9. 1. 14:28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 이본 배스킨 지음, 이한음 옮김, 돌베개 2003년



일요일 오후, 악랄한 선임하사는 공사장 각목을 던져주며 뜬금없이 명령한다. 점호 전까지 신발장을 만들라는 거다. 투덜거리던 병사들이 움직이는데, 얼음이나 자를 톱으로 각목을 커고 자르며 두드려 박더니 어느새 그럴듯한 신발장을 만들어냈다. 헬기로 아무데나 떨어뜨려도 시간 내에 복귀하는 그들, 다재다능한 재주를 가진 병사들이 모여 있기에 군대는 극한 상황도 충분히 극복할 것 같다. 병사 부려먹는 맛에 사는 장교들을 제대로 귀환할런지, 선임하사에게 물어볼까나.

 

1992년 리오 데 자네이루 환경회의에 모인 세계 정상들은 생물다양성 보전을 약속했다. 논에 개구리가 사라져도, 제비와 배추흰나비들이 보이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아무 지장 없는데 왜 생물다양성을 중요시할까. 생물종의 종류가 많거나 적은 게 사람의 삶에 도대체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걸까.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은 그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전문가들의 용어를 쉽게 고쳐 생물다양성이 무엇인지, 사람들에 의해 생태계는 어떻게 교란되는지, 우리의 삶은 그로 인해 어떻게 피폐해졌는지 진상을 이야기한다.

 

생물종이 얼마나 많아야 생태계는 환경변화를 이겨낼 수 있고, 생태계 유지에 꼭 필요한 생물종은 무엇인가. 생태계의 역동적 과정은 생물다양성과 어떠한 연관이 있을까. 그런 문제를 고민한 국제과학연맹이사회 산하 환경문제과학위원회는 전 세계 수백 명의 생태학자들을 동원, 3년간 연구했고 6권의 논문집을 발간했다. 과학저술가인 저자는 시민들이 쉽게 소화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로 요약했다.

 

사람의 쾌적함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생물다양성은 사람 때문에 위태롭다. 홍연어가 올라올 때면 회색곰과 대머리독수리를 비롯하여 코요테, 밍크, 수달들이 몰려들어 장관을 연출했던 미국의 한 국립공원은 어업당국이 민물곤쟁이를 상류에 방류하면서 엉망이 되었다. 밤에 홍연어의 먹이인 동물플랑크톤을 민물곤쟁이가 먹기 때문인데, 홍연어와 함께 대머리독수리와 회색곰들이 사라지면서 공원과 마을의 수입도 사라지고 말았다. 여문 곡식을 쪼아 먹는다고 참새를 없애자 해충이 득실거린 중국의 옛 사례는 무엇을 말하는가.

 

숲을 밀어대는 코끼리 떼는 무법자인가. 코끼리가 없다면 초원은 유지될 수 없고, 초원이 줄면 대형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은 생존이 버겁다. 사람의 좁은 소견은 생태계의 연결고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성게를 먹는 해달을 없애자 늘어난 성게들이 갈조류들을 먹어치워 바다목장이 사막이 된 사례, 순록을 보호하려 늑대를 몰살시키자 먹이가 부족한 순록들이 떼로 죽었던 사례들은 생태계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의 단순한 간섭이 얼마나 무모한지 보여준다.

 

생물다양성은 환경변화에 대한 완충효과를 극대화한다. 생태계 유지에 결정적인 이른바 ‘쐐깃돌 종’은 인간의 간섭이 없어야 생태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물, 토양, 기후와 대기의 안정은 생물다양성으로 담보할 수 있다. 추천의 글을 쓴 폴 에릭 교수는 생물다양성을 인간의 생명유지 장치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생명의 그물》은 결국 인간 생존법을 일러주는 셈이다. (발간 예정 서평집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