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3. 5. 21. 12:41

 

몽골에서 탄 관광버스는 서울시의 골목을 달렸던 시내버스였다. 길도 없는 초원을 누비던 버스는 인적 없는 초원에서 탈탈거리다 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던 버스의 운전기사들이 부품을 이러 저리 빼고 고치길 두어 시간, 차는 겨우 움직였다. 그들의 빼어난 기술 덕분에 시간을 가까스로 맞출 수 있었는데, 처음부터 덜컹거리는 게 불안했다. 폐차 직전의 차를 수출한다고 들었는데, 공연히 미안하기도 했다.


태국에서 육로로 넘어간 라오스. 넘어가자마자 보이는 차는 대부분 한국 상표였다. 일행이 오른 관광버스도 서울시의 시내버스였던 흔적을 남기고 있었는데, 국경 근처의 야적장에 국산으로 보이는 중고차들이 빼곡했다. 얼마 전까지 쉽게 통관했는데 최근 개선된 환경기준에 맞지 않아 묶여 있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멀쩡한 차를 수출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 폐차 직전의 낡은 차를 움직일 만큼 수선했겠지만, 저런 차들 때문에 한국인의 인상까지 부정적으로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 화끈 거렸다. 폐차 직전의 그 수출용 자동차들이 늘어선 곳은 어디일까.


오래 전 형성된 드넓은 갯벌의 일부를 매립해 수영장과 보트장, 그리고 놀이와 휴양시설을 갖추고 운영해왔던 송도유원지는 인천의 추억이 어린 곳이다. 지금 장년층이 초등학교를 다닐 적부터 문을 닫은 날까지, 봄가을 소풍이면 어김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찾았다. 그뿐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은 연인의 손을 잡고, 가족은 아이들을 이끌며, 유원지에서 아스라이 보이는 아암도를 썰물 때 걸어 들어갔다. 지금은 매립돼 송도신도시와 경계를 짓는 해안도로 옆에 붙었지만 당시 밀물과 썰물이 이어지는 조간대에서 외롭고 신비롭기만 했다.


밀고 들어오는 바닷물을 받아 채워놓은 원형 수영장은 파도가 없고 완만해 안전했다. 인천에서 유일한 보트장도 깊지 않았기에 인천 뿐 아니라 수도권에서 많은 시민들이 찾았다. 2000년대 이후, 시설이 낙후해지고 놀이문화가 다양하게 변하면서 찾는 이의 발길이 뜸해지더니 2011831, 30억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하지만 인천관광공사는 폐쇄에 앞서 해수욕장과 대중골프장을 비롯해 캠핑장, 청소년수련원, 컨벤션, 프리미엄아울렛, 테마레스토랑, 씨푸드센터, 프레저몰, 전통음식점, 그리고 여러 호텔을 그 자리에 세우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특이하게 인천관광공사는 메디컬케어센터와 옥션센터를 계획해 다른 유원지에서 볼 수 없는 면모를 과시했지만 내용에서 송도유원지의 오랜 문화를 반영하지 않아 인천시민들의 애정 어린 관심을 끌어들이는데 실패했다. 개발 계획은 60만 평에 이르는 대상지에 방문객이 많은 것으로 예상하는 휘황찬란한 시설을 모았어도 투자자가 모여들지 않는 모양이다. 경제에 거품이 빠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 투자 이익을 확신할 수 없는 탓일 텐데, 그래서 그런가, 사업성과를 장담하던 인천관광공사는 아직까지 개발을 위한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아닌가. 화려한 청사진과 전혀 다른 모습, 송도유원지가 있던 장소는 시방 고개를 돌리고 싶은 장면을 짜증나게 연출하고 있다. ‘중고차 매매단지로 더러워지고 만 것이다. 사업 대상 부지의 대부분이 사유지라는 어려움이 있다지만, 인천시민의 의사를 묻지 않고도 호기 있게 발표한 내용과 달라도 한참 다르다. 불법으로 설치한 중고차 매매단지를 눈감은 인천관광공사는 투자자가 몰려들 때까지 잠시 돈벌이에 나서겠다는 심산으로 보이는데, 덕분에 도대체 얼마나 큰 이익을 챙기는 걸가. 하지만 알량한 인천관광공사의 이익을 위해 약속을 믿은 인천시민의 정서가 더럽혀져도 되는 것인가.


매립된 송도유원지에 세워둔 중고차들은 수출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우리 땅에서 팔리지 않을 정도로 낡은 중고차들은 어디에서 수선을 했을까. 수선해서 가져온 중고차도 있을 것이고 절도된 것이기에 멀쩡한 자동차도 은밀하게 서 있겠지만, 많은 차들은 매립된 송도유원지에서 수선했을 거로 짐작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인천시가 요구하는 환경 조건은 얼마나 지켰는지 궁금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어떻게 숱한 시민들의 추억이 어린 곳을 중고차로 짓밟도록 인천관광공사는 허락할 수 있었나. 분명히 불법인데 인천시는 왜 아직도 방관하는가.


호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은 시민들은 엄두 내기 어려울 만큼 휘황찬란한 시설을 계획했지만, 원래 송도신도시는 부자들의 전유가 아니었다. 부자들의 공간이었다면 시민들의 추억이 그리 어렸을 리 없다. 문 닫기 전에 발생하던 적자는 시민 정서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관리자의 무성의와 무관하지 않겠지만 그 전에 인천시민이라면 누구나 찾으려 했던 갯벌과 아암도를 매립한 인천시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시사철 갯벌을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석양과 노을을, 바닷물이 들어오면 수평선을, 바닷물이 썰어나가면 지평선 바라볼 수 있던 유일한 곳을 없애지 않았나. 가장 인천다운 경관이었다.


인천시는 매립된 송도유원지에 함부로 조성된 중고차 매매단지의 현황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인천시는 어떤 대안을 연구하고 있을까. 멀리서 스스로 찾아오는 친지의 손을 잡고 가장 인천다운 곳을 찾고 싶은 시민들의 마음은 헤아리고 있을까. 사업성 확보를 검토하며 토지 소유주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의사 표명은 대안과 거리가 멀 수 있다. 논의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인천시민이 제외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성과 땅 주인의 이해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송도유원지와 아암도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시민들, 자식과 인천에 살고자 하는 시민들의 정서를 더는 함부로 짓밟지 말라는 뜻이다.


적어도 인천시 대표격인 송도유원지라면 누구나 돈으로 계획할 수 있는 신기루 같은 개발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담아낼 수 있어야 옳다. 시민들이 송도 뒷산이라고 말하는 청량산에 올라서 바라볼 수 있고 지금은 방치돼 아쉽기 그지없는 석산에서 시야 방해 없이 바다와 더불어 바라볼 수 있는 그 장소는 오늘의 이익 뿐 아니라 내일의 문화로 건강하게 보전해야 당연하지 않은가. 석산과 아암도 주변 해변을 연계하는 공간으로 구상하는 방법도 있다. 인천에 삶의 뿌리를 둔 시민들과 더불어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시와 인천관광공사는 지역에 관심을 가진 다중지성에서 지혜를 구하길 바란다. (인천in, 2013.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