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3. 10. 26. 10:20


경제 성장이 없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더글러스 러미스는 오키나와에 산다. 일본 국토의 1퍼센트도 되지 않지만 주일 미군의 4분의3이 주둔한 오키나와에서 그는 기지를 들락거리는 미군에게 양키 고 홈!” 전단을 나누어준다. 미국계 일본인인 그의 노력으로 오키나와 미군이 집으로 돌아갔다거나 기지 축소가 논의된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러미스는 전단 돌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애먼 헤나시. 1970, 70대 후반의 몸으로 피켓시위와 단식투쟁을 위한 현장으로 가던 길에서 쓰러져 죽은 그는 하느님과 폭탄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는 아나키스트였다. 본토에 공습이 없었지만 1950년대 미국은 방공훈련을 했고, 사이렌이 울리면 시민들은 어딘가로 황급히 피해 거리에서 사라져야 했다. 애먼 헤나시는 길들이려는 속임수라며 피켓시위에 나섰고, 동조하는 시민이 수천으로 늘어나자 1960년대 초 반공훈련은 중단됐다. 그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다. 댁이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겠냐고. 대답이 명쾌했다. “아니오. 하지만 세상이 나를 바꿀 수 없다는 걸, 나는 확신합니다!”


지난 920. 서울 동작구 보라매 병원의 영안실에서 조촐한 행사가 있었다. 1923426일에 태어나 만 90년 넘는 생애에 신념을 굽히지 않은 김원식 선생의 영결식이었다. 열혈 청년 시절 공산주의에 심취하다 대학에서 제적되었지만 행동을 멈추지 않은 선생이었다. 결국 10년 수감되며 전향을 거부, 만기 출소한 선생은 공산주의에서 스스로 벗어났다.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생산에 탐욕스러웠고, 그 결과 환경을 돌이킬 수 없게 오염시키는 건 마찬가지가 아닌가. 환경에 눈을 뜬 선생은 감옥서 나온 뒤 생태아나키즘의 길을 나섰다. 그때가 1970년대였다.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인가. 탄압을 위해 다분히 의도적으로 오역한 아나키즘은 기득권에게 눈의 가시였다. 내 뜻을 묻지 않고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권력자를 본질적으로 싫어하는 사상이 아닌가. 세력권 안에 우두머리는 하나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 문화와 교육, 심지어 종교와 사회운동도 마찬가지다. 자기 분야에서 권력자들은 서로 경쟁하고, 탄압을 일삼는다. 그로인한 폐해는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에서 그치지 않는다. 권력과 결탁한 자본의 경쟁적 생산력은 환경문제를 고질화시켰다.


권력자는 다양성을 혐오한다. 다양한 사상과 삶의 방식이 존중된다면 지배는 불가능하다. 막대한 자본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우두머리는 자신의 요구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굴종하기를 요구한다. 정의, 아름다움, 행복까지 제 뜻대로 재단하고, 아니라며 고개 드는 자를 억압한다. 그 결과 세계와 우리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획일화되었다. 도시는 에너지를 과다 소비하는 초고층빌딩과 아스팔트로 뒤덮이고 농촌은 농약과 유전자조작 농산물이 오염시켰다. 끝 모르는 오늘의 탐욕이 내일을 저당했다. 핵발전이 파멸적 생산력주의의 증표다.


출옥 후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장을 연 김원식 선생은 1980년대에 들어 뜻을 같이하는 이와 공부모임을 시작했지만 신참자의 행동을 지배하는 운동방식을 거부했다. 그로인해 환경운동 판의 은둔자처럼 인식되었지만 1세대로 알려진 우리나라 환경운동가 치고 선생의 빚을 지지 않은 이는 드물다. 현장에서 활동가들과 토론하기를 즐겨한 선생은 젊은이들이 할아버지로 불러주는 걸 좋아했다. 한 언론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신념에 따라 직업을 갖지 않은 할아버지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는 책이라고 밝힌 선생은 환경과 핵 문제를 먼저 고민한 일본 생태아나키스트의 책을 여럿 번역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폭발을 예견하고 핵의 위험성을 전하는 히로세 다카시의 위험한 이야기누가 존 웨인을 죽였는가1990년대 초에 소개했다.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에 요긴한 자료를 제공하는 오기노 코오야의 암과 전자파1990년대 중반에 번역했고 일본 반핵정보자료실을 시작한 다카기 진자부로오의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시민과학자로 살다, 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잇따라 우리말로 옮겼다. 일본 사회학계를 이끄는 토다 키요시의 환경정의를 위하여환경학과 평화학,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의 대표적 반핵학자 고이데 히로아키의 원자력의 거짓말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을 거듭 번역해 소개했다.


김원식 선생은 1995년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 때 처음 만났다. 아나키즘 역사가 우리보다 덜 뭉개진 일본에서 활동가들과 일찍이 교류해온 선생은 반대를 선명하게 내세우지 못하던 대책위원회 위원들을 반핵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일본 활동가들과 만나게 주선했고, 반핵운동의 현장을 안내했다. 그때 만난 일본 반핵운동가는 지금도 우리 활동가와 교류하며 자료를 교환한다. 선생을 통한 한일 교류는 반핵운동에서 머물지 않았다. 핵 못지않게 중앙 집중적 체제의 폐해를 일으키는 석탄화력의 문제에서 생활협동조합, 직접행동, 생태아나키즘을 함께 고민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와 만나 토론과 의기투합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김원식 선생은 홍대에서 소외된 인디밴드, 멸시되는 외국 노동자, 무직 또는 실직을 선택한 남녀 젊은이들과 격없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일방적 지시에 응하는 방식의 사회운동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시민운동의 생산력주의를 경계한 것인데, 우리 사회에 생태아나키즘은 아직 정착되지 못했다. 지역의 역사와 생태적 조건에 따라 다양했던 문화가 권력자에 의해 획일화되며 파괴되건만 우리는 우두머리가 만든 기준에 길들어졌다.


간디는 신이 진리인 줄 알았더니 진리가 신이라고 말했다. 올 초 266번 째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체스코 1세는 비신자라도 신념에 따라 살면 된다!”고 축원했다. 임종 전 의식이 분명할 때, 많은 일을 남기게 되었다고 김원식 선생은 아쉬워했다. 평생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살아온 선생의 유지는 분명하다. 비틀거리는 한이 있더라도, 우두머리가 지배하는 세상의 덫에서 스스로 벗어나, 굴종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라는 당부다. 그런 세상이 열리면 전쟁도 환경오염도 사라질 것이다. 핵이나 생명공학과 같은 무지막지한 패악도 사라질 것이다. 권력에 굴종하지 않으려는 이라면 김원식 선생, 그를 기억해야 한다. (작은책, 201311월호)

고마운 분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