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6. 12. 25. 16:26


지난해를 마무리하거나 새로운 해를 맞으며 사람들을 두루 만난다. 위장이 부대끼고 대리운전 사업이 호황을 누릴 정도다. 망년회나 신년회에서 술잔 부딪히자마자 나누는 요사이 대화거리는 단연 아파트다. 억울하다거나 뒷걸음치다 운을 밟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파트가 올라 기분은 좋지만 세금 폭탄으로 가계가 휘청한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세금은 다 냈단다. 세금 이상 아파트 값이 올랐고, 더 오를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리라.

 

지금은 서울시의 후분양 전환으로 투기 조짐이 수그러들었지만 평당 1500만원의 분양가로 주변 아파트 값 상승에 기여한 은평뉴타운을 생각해 본다. 개발 예정 지역 주민들은 평당 400만원 이하로 땅을 절대 내놓을 수 없다고 애초 배수진을 쳤는데, 서울시가 투자한 공영개발회사인 SH공사는 600만원을 제시했고, 서슬 퍼렇던 내용의 현수막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북한산의 경관이 가까워 더욱 고즈넉했던 마을을 주민들과 함께 보전하려던 시민단체는 그만 맥이 빠지고 말았는데, 한양주택을 제외하고, 개발 대상에 자기 지역을 포함해달라는 청원 이외에 이렇다 할 주민 소요는 없었다고 담당자는 밝힌다.

 

은평뉴타운 예정 지역에 위치한 한양주택은 박정희 정권이 날림으로 지은 그저 그런 집단 가옥이다. 한데 주민들은 똘똘 뭉쳐 자신의 공간을 개발에서 제외해달라고 끈질기게 버텼다. 재산가치 상승을 기대했기 때문이 아니다. 정붙여 살던 공동체를 보전하고 싶은 까닭이었다. 낡은 집을 개성 있게 수리한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마을길을 가꾼 한양주택은 숱한 희로애락이 배인 오랜 공동체였다. 꽃으로 장식된 골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주민들은 보상금 받아 뿔뿔이 흩어지는 걸 상상하기 싫었던 것인데, SH공사는 한양주택의 탄원을 끝내 무시했다. 심지어 보상금 인상을 노리는 행위로 몰아붙여 주민의 가슴에 상처가 남게 만들기까지 했다.

 

자신의 터전을 평당 600만원에 내준 주민의 대다수는 은평뉴타운에 입주할 수 없다. 서울시에서 땅값이 가장 저렴해 이사온 은평구에서 밀리면 어디로 가나. 보상금으로 전세살이를 시작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세입자는 어찌한담. 세입자의 고달픈 사정에 눈여기지 않는 기존의 주택단지는 정주의식보다 돈으로 개발을 유인한다. 다정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집이나 땅을 주민들의 합의로 보전하면서 개발하는 방안은 돈 앞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요즘 주택은 투기공간이 되고 말았다. 먹고 튀면 그만이다.

 

내 주민등록이 기재된 지역을 어떻게 가꾸면 좋을까. 정주의식이 없는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누가 단체장이나 의원에 출마하는지, 출마의 변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려 않는다. 저평가된 아파트가 어디인지 자료를 뒤적이는데 바쁜 주민들은 제 지역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이웃집이 살아가는 모습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남의 집 노인이나 아이 돌보아주는 이웃은 도시에서 이미 사라졌다. 요양소나 산후조리원에 맡겨야 한다. 이삿짐을 날라주는 풍경은 전설이 되었고 손님 사정 이해해주는 단골가게도 없다. 미련이 남지 못하는 주거공간에 투기가 판치는데, 정주의식은 기대하기 어렵다.

 

아파트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인구에 비해 일류대학에 입학 비율이 낮다는 건 모르는 시민도 없지만 인천을 상징하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는 시민도 거의 없다. 그들은 돈 모으면 타 도시로 떠나려 한다. 정주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정주의식은 투기와 반비례하는데, 2007년 인천은 어떤 도시를 지향해야 할까. 문화에 무게가 실리지 않은 2007년 이전의 계획, 다시 말해 갯벌 매립, 천지사방의 골프장, 투기를 부르는 신도시 개발은 시민의 정주의식에 얼마나 기여할까. 2007년 벽두를 맞아, 인천에서 다시 인천을 찾는다.

 

후기: 옮겨가고 남을 인천대학교 부지도 아파트로 도배가 될 공산이 크다고 한다. 인천시에서 투자한 공영개발 방식이 그렇다 것인데, 프랑스 파리가 자랑하는 몽마르트 언덕처럼, 문화와 자존심이 가득한 공간으로 꾸밀 용의는 과연 없어야 하는 것인가. (인천신문, 2007년 1월 1일)

 
 
 

도시·인천

디딤돌 2006. 5. 5. 21:33
 

황사가 물러간 아침, 부엌에 난 작은 창을 통해 아파트 단지의 신록을 본다. 이 아파트 단지로 이사 오기 전에도 아파트에 살았는데, 18층이라 그런가, 어느 새 나이 들어 그런가. 단지 내 녹지가 신록으로 단장했다는 걸 문득 깨닫는다.


꽃이 예쁜 조경수는 이 아파트 단지에서 6년 사는 동안 그리 자라오르지 않았다. 녹지 아래는 지하주차장이니, 저 나무들은 철근 시멘트에 얹은 얇은 흙더미 위에 설계도에 맞춰 식재된 것인데, 법적 요건에 맞추긴 했을 테지만, 저 나무들은 베란다의 화분처럼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없게 운명 지워졌다. 녹지라기보다 차라리 ‘녹색말뚝’이리라.


막 싹이 튼 어린나무들이 작은 나무들과 상층과 중층과 하층의 층위를 구성하는 숲은 후대를 이을 수 있어 후대를 기약할 수 있다. 아파트 단지에 심겨진 녹지에는 층위가 없다. 오로지 상층이다. 어쩌다 나무 아래에는 조릿대나 화훼식물이 국적미상의 꽃을 어색하게 피어낼 뿐이다. 모두 사람이 심은 조경용으로, 계속 보살피지 않으면 후대를 이을 수 없다. 어떤 생태학자는 그런 나무를 ‘녹색말뚝’이라고 했다. 수명을 다하면 사막으로 남는 녹지이므로 그렇게 정의한다. 잔디는 ‘녹색융단’이라 하고.


아파트 단지는 그렇다 치고, 독일처럼, 도심에 층위를 구성하는 녹지가 넓게 드리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지만, 우리나라 도심 녹지에는 층위가 없다. 어쩌다 녹색말뚝만이 허전하게 눈에 띌 따름이다. 이렇듯 삭막한 회색도시에서 녹색말뚝이든 녹색융단이든,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 지친 주민들의 눈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한다. 작년 가을 단풍의 맛을 쓸쓸히 보여주더니 올 봄엔 신록을 환하게 연출하지 않는가.


신록! 듣기만 해도 가슴 벅찬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해마다 열악한 정도를 갱신하며 찾아드는 황사로 뿌옇게 지친 남동공단을 맥없이 바라보다 문득 내려다보는 신록, 철저한 시건장치로 잡상인은 물론 이웃까지 자단하는 사각의 아파트에서 가녀리나마 자연을 느낀다. 주말이면 들고 나는 이삿짐센터 차량으로 조심스러운 아파트 단지에서 내 아이 말고 자라나는 어린 이웃을 반갑게 만나기 어려운데, 신록이 찾아오니 그 또한 반갑지 아니한가.


한 소설가는 후면 주차 때문에 시름시름 앓았던 어린 딸을 이야기한다. 차 꽁무니에서 내뿜는 매연으로 겪는 조경수의 고통을 대신하며 불면의 밤을 견디다 못한 아이는 “아저씨, 나무 때문에 다른 차들이 주차한 것을 살펴보세요. 나무도 좋은 공기를 마시고 싶어 할 거예요.”하고 써 차 앞 유리에 끼었고, 그 뒤로 주차된 차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더 반가운 일은 어쩌다 후진 주차한 차량에 다른 아이가 쓴 비슷한 메모지가 끼워 있는 모습이었다. 아파트에서 또 다른 신록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였다.


어느 해 봄날, 영동고속도로에서 신록을 보고 가슴이 설렜다. 연분홍 꽃송이와 어우러진 신록을 승용차 뒤 좌석에서 장난하는 아이들에게 보라고 종용했건만 아이들은 시큰둥했다. 자란 나이보다 자랄 나이가 더 많은 꼬마들에게 신록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않는 모양인데, 지금 신록의 끄트머리에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 아이들의 아이가 신록을 맞을 때에도 이 땅의 신록이 여전히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인천e뉴스, 2006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