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1. 9. 30. 00:58

 

1990년대 중반, 아름다운 굴업도가 핵폐기장으로 오염되는 걸 반대하는 시민운동으로 인천이 뜨거울 때, 독일에서 화학을 전공한 과학자가 굳이 인천까지 방문해 반핵운동에 동참하고 나선 이유를 떨리는 목소리로 전했다. 학위논문을 제출해 수여식만 남긴 상황에서 동료에게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들은 그가 고국에 찾아와야 했던 이유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에 이은 우리 대형 식품업체의 용서할 수 없는 행동과 관계있었다.

 

1986426일에 발생한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폭발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독일에 경각심을 일으켜 방목하던 목장은 우유를 일체 판매할 수 없었다. 비록 적은 양이라도 방사성물질이 포함되었기에 관계당국이 바다에 버리려하자 시민들은 해양오염을 이유로 거세게 반대했다. 분유로 가공해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에 무상으로 제공하려 하자 멀쩡한 분유로 보내라며 반대했다. 지하수 오염 때문에 파묻을 수 없기에 분유 상태로 창고에 막연히 쌓아 놓았건만. 어느 날 전량 팔려나갔다 소식이 들렸다. 한데 어처구니없게 한국의 식품회사에서 대부분 수입했다는 사실을 동료에게 한국인 화학자는 들었고, 분노를 삭일 수 없었던 그는 고국으로 날아와 반핵운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황금빛 농촌 풍경은 여기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지만, 수확한 쌀에서 고농도의 방사성 세슘을 검출한 후쿠시마 현은 출하를 금지할 예정이라고 언론은 전했다. 그 쌀은 앞으로 어찌 처리할까. 버리기 아까우니 일본 고유의 술, 사케의 원료 가공할까. 사료로 가공해 일본 흑우에게 먹일까. 물론 감시의 눈을 피하면 일단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들키고 말 것이다. 맛이나 색깔, 그리고 냄새로 구별할 수 없는 방사성 물질은 가공과정과 먹이사슬을 지나더라도 사라지지 않으므로 측정 장비에 결국 검출될 수 있고, 불법행위를 한 자는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방사성 물질은 반감기를 가진다. 1그램으로 수백만 인구를 폐암으로 사망하게 할 정도의 강력한 방사능을 내놓는 플루토늄은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배출되었는데, 매우 무거워 발전소 근처의 땅이나 바닷가에 고여 있을 것이다. 플루토늄의 반감기는 무려 24천년이다. 독성이 반으로 줄어드는 게 아니라 내뿜는 방사능이 반으로 줄어드는 기간이 그렇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이후 우리나라에서 검출된 방사성 세슘의 반감기는 30년이다. 가벼운 세슘은 공기로 흩어지고 막대하게 배출된 냉각수에 섞여 바다로 퍼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플루토늄은 바닥에서 먹이를 먹는 어패류의 몸에, 세슘은 일본의 동해안에 분포하는 물고기의 몸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짙다. 먹이사슬이 더해질수록 농축된 상태로.

 

야박한 것 같아도, 25년 전 독일인은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자국의 분유를 아프리카에 무상 제공하는 걸 반대했다. 상인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처분하고 싶을 테고, 결국 우리나라에 와서 각종 유제품과 제과에 포함되고 말았는데, 그걸 먹은 이의 몸은 여전히 방사능을 배출할 게 분명하다. 후쿠시마 현은 지역의 오염된 쌀의 출하를 막았다. 따라서 후쿠시마 현의 사케에 그 쌀이 합법적으로 들어갈 리 없지만, 사람들은 후쿠시마에서 만든 사케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농작물과 가공식품을 멀리할 게 뻔하다. 평생 유기농업을 일궜던 후쿠시마 현의 농부가 자살했지만, 아무리 안타까워도 자식 키우는 소비자로서 어쩔 수 없을 터. 미국이나 유럽도 지체 없이 일본의 농수산물의 수입을 중지시켰다.

 

엑스레이와 같이 외부의 방사능도 선량이 많으면 위험하지만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특성상 내부피폭만큼은 아니다. 많든 적든,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농수축산물이나 가공식품을 먹으면 몸 안에서 방사능을 쏟아내므로 피해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실제 체르노빌의 방사능 피해의 90퍼센트가 내부피폭에서 발생했다. 한데 우리나라는 기준치 이하라면서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일본산 농수축산물 수입을 막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방사능에 안전 기준치는 없다고 거듭 밝히는데, 걱정이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농수축산물로 인한 내부피폭의 책임을 후쿠시마 핵발전소도 수입업자도 질 리 없다. 규제가 없는 한 그렇다. (기호일보, 201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