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2. 7. 20:11

프랑스의 사르르 드골 공항. 바삐 움직이던 한 사내가 그만 대리석 바닥에 꽈당 넘어졌다. 말쑥한 복장으로 걸음을 재촉하던 그는 개 배설물을 밟은 것이다. 알프스에서 조난객을 구조할 만큼 덩치가 큰 그 개는 공항 바닥에 큼지막하게 실례를 했고 낯선이에게 봉변을 안겼지만 개 주인은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자신은 굵은 끈으로 개를 묶었고, 개 배설물을 치워야 하는 의무는 없다는 태도였다. 하긴, 프랑스에는 공공장소마다 개 배설물만 치우는 청소부가 있다.

 

우린 프랑스와 다르다. 개 배설물 청소부가 없을 뿐 아니라 끈 없이 개와 산책하는 이도 아직 많다. 운동할 공간이 드문 도시에서 산책 나선 개는 네발짐승답게 겅중겅중 뛰며 밖에 나온 기분을 만끽하는데, 그 점이 간혹 이웃을 놀라게 한다. 입양한 주인이야 자신의 개가 미덥겠지만 어디 이웃이야 그런가. 실내에서 주로 키우는 작은 품종은 덜하지만 북극권에서 썰매를 끌어도 충분할 만큼 커다란 개는 아무리 고분고분해도 지나는 이에게 공포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동물을 입양하는 이는 요즘 동물 앞에 ‘애완’보다 ‘반려’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대상이 아니라 남은 삶을 함께 보낼 동물이라는 의미를 갖는 걸 텐데, 공원이나 주택가의 보행자도로를 걷다보면 우리네에게 아직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충실하지 못한 모습이 많다. 지나가는 이에게 짖거나 공격하는 일은 무척 드물어졌지만 소변으로 영역을 표시하려는 개의 행동을 수수방관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배설물을 방치하는 주인도 적지 않다.

 

염려스러운 것은 키우다 싫증나면 함부로 버린다는 거다. 해마다 유기견으로 포획돼 안락사되는 개와 고양이가 광역시 단위의 대도시마다 수천 마리에 달할 정도다. 그를 대비하려는 건지, 입양할 때 동물의 몸에 주인을 인식할 수 있는 반도체를 삽입하자는 제안이 나오고 받아들인 지방자치단체도 늘어나고 있다. 그럴 경우 반려동물의 위생을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으며 입양한 동물을 함부로 버리는 행위를 막을 뿐 아니라 잃었을 경우 발을 동동 굴리는 주인에게 쉽게 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아파트단지와 근린공원의 어린이 놀이터의 바닥에 다시 모래가 깔리는 추세다. 한때 푹신한 화학물질을 깔았지만 바꾼 것이다. 금방 지저분해질 뿐 아니라 그때마다 교체가 어렵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리 푹신해도 뛰놀다 넘어지는 어린이에게 상처를 입일 수 있고 화학물질에서 배어나오는 성분이 어린이에게 위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인데, 지자체들이 깨끗한 모래로 바꾸는데 망설였던 건 반려동물의 배설물이었다. 배설물을 치우지 않는 주민에 의해 어린 이웃들의 건강이 염려되었던 거다.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 눈이 내린 뒤 연일 추위를 경신할 때 아파트단지 옆 보행자도로에서 위험했던 일을 목격했다. 텔레비전 동물 프로그램에서 인기리에 등장해 급속하게 보급된 ‘시츄’라는 품종의 개가 한 정신박약 어린이를 뒤따르며 짖어댔고 놀란 아이는 개를 쫓아내려는 엄마의 품을 벗어나 빙판길이 된 차도로 뛰어든 게 아닌가. 자칫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산책 나온 주민은 제 눈에 귀엽고 덩치가 작으므로 끈을 묶지 않았던 모양인데, 아무리 작은 개도 뒤로 물러서는 어린이를 충분히 위협할 수 있다. 본성이 억제되지 않은 개는 크던 작던 자신을 두려워하는 상대를 공격하고 싶은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입양한 이는 반려동물을 당연히 존중해야 하지만 자신의 동물로 인해 이웃에게 혐오감이 전해지는 일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한밤중에 짖어대는 아파트단지의 개만이 아니다. 옷과 스카프는 물론 양말과 운동화를 신기고 색안경에 망토까지 씌운 개와 산책하는 행위도 민망하기 그지없지만 그런 개를 품에 앉고 대중교통 시설을 이용하는 태도는 심각한 결례다. 그리고 무엇보다 끈에 묶어 데리고 나가는 일이야 말로 자신의 반려동물과 이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 잊지 않아야 한다. (요즘세상, 2010.2.?)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5. 8. 8. 16:07
 

1980년대 중반, 인천항 원목부두에서 한 마리의 도마뱀이 연구실로 운송돼 왔다. 급히 구입한 대형 수조에 넣은 그 녀석은 인도네시아의 왕도마뱀이었는데, 한 동안 미꾸라지를 잡아먹다 포르마린에 고정되고 말았다. 몸 움직이기에 좁아터진 수조에서 견디기 어려웠으리라. 비슷한 시기,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바뀐 농촌에서 거대한 개구리 한 마리가 잡혀왔다. 밤새 황소 울음소리가 나 웅덩이를 퍼냈더니 이놈이라며 가져온 황소개구리를 하는 수 없어 왕도마뱀이 머물던 수조에서 넣었는데, 수조 속의 연구용 청개구리를 한동안 축내던 녀석도 표본병 속의 포르마린에 잠기고 말았다. 인도네시아의 왕도마뱀은 영문도 모르는 채 비자 없이 밀입국하다 봉변당했다면 양식용 황소개구리는 비자 내용과 다른 곳에 머물다 생포돼 수명이 단축되고 말았다.


검역이 강화되면서 비자 없이 들어오는 외래동물이 드물어진 요즘, 비자에 허가되지 않은 곳에서 번식하며 살다 생태문제가 되는 외래동물이 늘어나고 있다. 원조곡물에 외래곤충의 알이 묻어오거나 아열대 파충류가 원목에 무임승차하는 사례는 대폭 줄어들었지만 애완동물로 수입돼 우리 생태계에 슬그머니 방치되는 사례가 전에 없이 많아진 것이다. 황소개구리나 배스와 블루길처럼 양식 목적으로 들여왔다가 돈이 되지 않자 방치해 전국에 흩어진 외래동물은 싫던 좋던 우리 생태계의 일원이 되고 말았다. 구제를 위한 이벤트가 지방자치단체에서 가끔 벌어지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이미 귀화하고 만 것이다. 한때 애완동물로 잘 팔렸던 붉은귀거북도 거의 귀화되었다. 감당하기 어렵게 몸이 커지자 하천에나 호수에 슬그머니 방생한 무책임 때문이다.


수입되는 애완동물은 호기심만큼이나 다양해진다. 희귀 품종의 개나 고양이, 고가의 앵무새나 카나리아 같은 명금류, 화려한 열대어나 바닷물고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크고 작은 원숭이와 슈가글라이더라는 날다람쥐, 사료가 까다로운 코알라와 대평원에 땅을 파고 사는 프레리독과 같은 포유동물이 들어온다. 악어를 키우는 사람도 있고, 대형 육식동물인 악어거북이나 늑대거북, 파이톤이라는 구렁이 종류, 작고 알록달록한 뱀들, 이구아나와 카멜레온과 같은 파충류도 흔해졌다. 목도리도마뱀도 실려온다. 타란튤라라는 큼직한 거미, 독 없는 전갈, 색이 화려한 가제와 달팽이가 수입되고, 애완용 딱지가 붙은 덩치 큰 열대 개구리도 가정으로 팔려나간다. 대부분 생태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환경에서 사육되다 죽어나가는 외래동물 목록이다.


문제는 키우다 싫증나거나 경제 여건이 어려워져 처분해야 할 때 발생한다. 동호회를 통해 입양시키면 최선이지만 살아있는 채로 습성에 맞지 않는 우리 자연에 풀어놓아 말썽을 빚는다. 주어지는 먹이에 의존해온 애완동물은 대개 자연에 방생되면 죽고 말지만, 죽지 않고 퍼져나갈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남생이와 자라와 같은 고유 거북들을 몰아내고 공원의 호수를 보란 듯 점령하며 작은 물고기들을 먹어치우는 붉은귀거북처럼 고유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자연에 나온 악어거북으로 몸살 앓는 일본의 경험이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수 없다.


애완동물을 입양하려면 생명에 대한 책임의식부터 가져야 한다. 단순한 호기심이나 남에게 자랑하고 싶은 욕심으로 들여놓았다가 귀찮다고 버리거나 방치하는 태도는 생명에 대한 폭력이고 애완동물의 독특한 습성을 무시하는 행위는 생명에 대한 결례다. 유리상자 안에 꼼짝 않고 앉았다가 주는 먹이만 날름 받아먹는 외래 개구리, 몸을 돌리기에도 비좁은 응접테이블에 갇힌 악어, 에어컨 커놓은 거실 한 구석에 웅크리고 유리상자 두드리는 사람을 외면하는 카멜레온과 이구아나와 목도리도마뱀은 죽지 못해 살아갈 따름이다. 인간은 처지를 바꾸어 그들의 복지를 생각해야 한다.


애완용으로 수입되는 외래 야생동물은 포획 수입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개체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가족의 유대가 돈독한 유인원은 그 정도가 심해, 밀렵꾼들은 새끼 몇 마리를 포획하기 위해 일가족을 쏘아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희소가치가 클수록 값이 오르니, 값비싼 야생동물을 수집하려는 사냥꾼들로 인해 생태계는 헤집어지고, 동물들의 멸종행렬은 길어지기만 한다. 많은 앵무새들이 그렇게 사라졌다. 외래동물만이 아니다. 애완동물로 버젓이 소개되는 우리의 고슴도치와 하늘다람쥐도 요즘은 자연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람쥐마저 드물어졌다.


최근 서울의 월드컵공원 주변에서 미국 너구리인 라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국 너구리까지 애완동물로 수입했던가. 월드컵 공원의 라쿤이 한 마리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황소개구리처럼 퍼져 우리 너구리를 몰아낸다면 어찌할 것인가. 월드컵공원을 흐르는 난지천에는 애완용으로 들어온 커다란 달팽이가 부들과 같은 수초를 갉아먹고 있다. 친환경농업을 위해 수입한 달팽이가 농촌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의혹이 불식되지 않는 마당인데 애완용으로 팔려나간 달팽이까지 가정에서 자연으로 풀려나간다면 장차 어떤 일이 발생될까.


외래 애완동물의 수입을 원천봉쇄하자는 뜻은 아니다. 우리 고유의 생태환경에 부적합한 애완동물의 수입을 당국에서 철저히 통제하고, 소비자들은 생명존중과 책임의식으로 애완동물을 입양하며, 외래동물을 함부로 방생하지 말자고 당부하려는 것이다. 관련 전문가는 외래종환경영향평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유입될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예측 평가하여 외래 애완동물의 도입 여부와 도입 정도와 방법을 외래종환경영향평가는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외래종환경영향평가 제도는 이 땅에서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유전자를 조작한 야광 관상어까지 거리낌 없이 수입 판매되는 실정이 아닌가.


살아 움직이는 동물은 애완용이 아니라도 가까이할수록 애틋하다. 지율스님은 한 마리의 메뚜기와 생쥐 한 마리에서 영성을 느끼고, 그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인다. 도롱뇽의 안위에 가슴 저미며 천성산 터널공사의 부당성을 법에 호소했다. 하찮다 생각하는 동물을 배려하는 것이 결국 인간을 위한 동정임을 확신한다. 비자의 유무, 비자 내용의 준수는 인간 세계의 약속이며 구속이다. 동물 세계에 비자는 없지만, 토착 생태계가 있고 그에 따르는 습성이 존재한다. 비자가 있든 없든, 인간의 이기심으로 습성이 무시되는 동물들이 이래저래 수난이다. (물푸레골에서, 2005년 9월호)

개인적으로는, '애완' 동물이라는 발상자체가 동물 학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면에서는 '가축'보다 더 심하다고도 생각합니다. 가축은 그래도 인간의 생존이나 생활,즉 먹고 사는 부분을 돕는 역할이지만, 애완동물이란 인간의 즐거움만을 위한 것이니까요.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다지만, 진정한 가족이란 서로의 성장과 자립을 돕는 것이 아닌가요? 애완동물에 대해선, 나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의 자립을 불가능하게 하여 거의 모든 생활을 내게 종속시키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 더이상 즐거움을 주지 않으면 내다 버리게 되는게 당연한 것이죠. 보신탕 먹는 나라가, 애완견을 가족으로 착각하는 나라보다 훨씬 거짓이 적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