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5. 10. 16:16

 

호랑이 한 쌍이 살아가려면 400제곱킬로미터의 온전한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한다. 지리산국립공원의 면적인데 지리산도 시방 아스팔트로 토막 난 상태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강산에 광활한 자연이 드물었기에 호랑이는 백두대간을 회랑으로 움직이며 사냥했을 테지만 서열이 낮은 녀석은 위험을 무릅쓰고 가축을 노리고 인가를 기웃거렸을 것이다. 인왕산은 요긴한 출입구의 하나였을 테고.

 

멧돼지 나타나면 마취총을 든 소방대원이 긴급 출동하는 서울에 호랑이는커녕 늑대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지만 야생동물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몽둥이찜질을 당해도 기필코 내려오는 배고픈 멧돼지도 남았을 테지만 양재천의 너구리 가족이 방송사의 집요한 카메라에 들킨 바 있다. 주말이면 인파로 뒤엉키는 월드컵공원에서 삵이, 개발이 예고된 마곡유수지에서 고라니가 환경단체 활동가의 눈에 띈 적도 있다. 축적된 조사 결과가 없어 그렇지, 인적 드문 산록에 오소리와 족제비, 한북정맥을 타고 내려온 대륙목도리담비도 시민의 텃밭과 쓰레기통을 뒤질지 모른다. 땃쥐와 두더지도 적지 않겠지.

 

사람들은 덩치가 큰 포유동물을 먼저 떠올리는 경향이 있지만 박쥐와 들쥐, 청설모와 다람쥐도 분명히 포유류고, 포유류 이외에도 야생동물은 많다. 커다란 눈이 부리부리한 수리부엉이가 북한산을 지배하는 건 등줄쥐 같은 동물이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수리부엉이뿐이랴. 여의도 샛강 생태공원이나 뚝섬의 서울숲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의 베란다에 말똥가리나 황조롱이가 둥지를 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화장품 냄새와 자동차 소음을 내뿜는 사람만 사는 서울이라면 자연의 이웃, 우리 야생동물이 기웃거릴 리 없다.

 

호랑이 없는 인왕산에 요즘 호랑지빠귀가 찾는다. 바이올린 G선을 짧게 잡고 활을 켜듯, 단순한 곡조의 휘파람처럼 적막하게 우는 호랑지빠귀는 외곽의 녹지가 게까지 이어지기에 저녁 무렵 소쩍새, 쏙독새와 함께 찾을 것이다. 강한 여름 햇살에 지친 몸을 끌고 집에 왔을 때 들리는 소쩍새 소리는 피로를 잊게 할 뿐 아니라 기족이 모여 얽힌 전설을 이야기하게 한다. 알 맡긴 둥지를 배회하며 여름 내내 우는 뻐꾸기도 빠질 수 없겠지. 노란 날개깃을 펄럭이며 숲으로 들어가는 꾀꼬리의 싱그러운 소리는 청계산 입구부터 등산객의 땀을 식혀주고 도봉산 한가운데서 듣는 두견이의 처절한 울음은 이웃의 희로애락을 새삼 떠올리게 할지 모른다.

 

사람도 자연의 산물이기에 그런가.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본능적으로 주변에 깃드는 동물에 반가워한다. 속도와 경쟁에 지친 회색도시의 시민들은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도봉산 계곡의 꼬리치레도롱뇽과 우면산 작은 호수의 두꺼비를 보호하려 애쓰고, 오페라하우스가 예정된 노들섬과 아파트로 뒤덮인 은평구를 떠나지 않은 맹꽁이에게 대체서식지를 만들어주며 미안해한다. 시내 여기저기에 생태공원을 만들어 초대한 자연의 이웃들이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행복해 한다. 그렇다면 서울시는 도시에 자연의 이웃이 깃들 공간을 확보할 이유가 충분해진다. 보호대상종으로 선정한 뒤 서식지를 보호하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외곽에서 도심의 녹지로 안전하게 연결되도록 녹지축을 조성하는 정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박물관들이 늘어선 미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는 청설모와 닮은 다람쥐가 관광객을 먼저 맞고, 독일 도심의 자투리공원마다 지빠귀와 비슷한 붉은 부리의 검은 새가 교교히 울며 이방인을 반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방인에게 시민들은 친절하고, 이방인은 예가 도시라는 걸 잠시 잊는다. 그렇듯 외국의 유서 깊은 도시들은 도시의 30퍼센트 이상에 숲을 조성하려 애쓴다. 5분 걸으면 자연의 이웃을 만날 수 있는 공원에 나무와 풀을 심을 뿐 아니라 되도록 호수를 조성한다. 그래야 아스팔트를 스치며 허둥지둥 낮은 곳으로 몰리는 큰비로 인한 피해를 완충하고 지하수위를 보전할 수 있지만 더욱 애틋한 게 있다. 교외의 녹지와 연결되면 자연의 이웃들이 흔쾌히 찾는 게 아닌가. 그를 위해 시당국은 도심과 외곽은 가로와 세로 녹지축이 연결되고 환상 녹지축이 동심원을 그린다. 조례를 제정해 재개발은 녹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로 제한된다.

 

회색도시의 건물 뒷골목에서 낯선이와 눈길 마주치면 왠지 두렵지만 녹지에서 만난다면 눈인사 나눠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 지리산 등산로에서 마주치는 이들이 마실 물을 서로 권하듯 도시의 공원을 만들어가면 어떨까. 나무 사이로 직박구리가 날고 청설모가 오르내리는 공원에서 마음이 열리는 시민들은 여간하면 이사 가려하지 않을 것이다. 동네에 뿌리내리는 거다. 투기가 사라지고 범죄도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조경학자들은 도시의 완성은 빌딩과 도로가 아니라 나무가 우거진 녹지로 본다. 동물이 찾는 도심 속의 녹지 공원이다. 북한산과 관악산과 청계산 안에 남산과 용산이 펼쳐지고 넓은 한강이 지천을 거느리며 흐르는 서울이라면 여건은 충실하다. 거기에 건물과 자동차와 인구가 많으니 더욱 시급하다.

 

북한산에서 멧돼지가 내려오면 불쾌한가. 마취총들고 맞기 미안해야 하지 않을까. 백두대간에서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녹지를 떠들썩한 등산로가 끊지 않았다면 굳이 위험한 시내를 기웃거리지 않을 것이다. 홍여새와 도마뱀은 반가운가. 그렇다면 그들이 찾는 녹지를 시내의 공원까지 이어주고 먹이 되는 동식물이 제공되어야 한다. 매미가 시끄럽다고 나무를 자르지 말고 살충제나 제초제는 삼가자는 거다. 약수터 휴식년제를 고려하는 것도 바람직하겠지. 물이 흐르면 버들치와 청개구리도 노랑턱멧새와 흰눈썹황금새도 찾을 것이다.

 

그를 위해 시정개발연구소를 가진 서울시는 주민과 시민단체, 그리고 대학의 전문가들과 마음을 모아 외곽에서 도심으로 이르는 생태계의 현황과 변화를 주기적으로 조사해 축적하고 그 결과를 시민과 공유하는 게 좋다. 끊어진 녹지축을 이을 때 분포하는 생물에 맞게 설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걷어낸 자리에 공원을 어떻게 조성하고 관리해야 할지 진작 파악할 수 있다. 상징이 되는 동물이 동네마다 다채롭게 보전될 테니 시민들의 자부심도 한껏 높아질 것이다. 그를 위한 조례, 마련해야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 (중앙sunday, 201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