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12. 2. 12:01

 

강원도에서 ‘얭미리’라고 말하는 양미리는 겨울의 진미다. 모래가 고운 동해안 앞바다에서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실컷 잡아올리는 양미리는 값이 아주 싸다. 어물전의 대구나 명태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아낙도 20마리 씩 새끼줄에 엮어 꾸덕꾸덕하게 말린 양미리는 쉽게 흥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겨울철의 진미 반열에 올랐을지 모른다.

 

양미리는 오로지 강원도 일원의 동해안에서 잡는다. 바닷바람이 매서운 고성에서 강릉으로 이어지는 항포구는 그물에서 양미리를 떼어내는 아낙들의 손길로 분주하다. 바닥의 모래 속에 몸을 숨기다 동트기 전에 먹이를 먹으려 뛰어오르는 특징이 있는데 미리 그물을 깔아놓으면 주둥이에서 아가미까지 그물코에 끼어 꼼짝 못하게 되는 거다. 만일 암컷이 그물에 걸리면 뒤따르던 수컷 서너 마리도 덩달아 끼어든다고 한다. 곧 산란철이 시작될 터.

 

망이 촘촘한 그물에 축 늘어진 채 주렁주렁 올라오는 양미리들을 몸이 상하지 않게 떼어내는 게 중요한데, 동해안의 아낙네는 “얭미리를 딴다.” 또는 “베낀다.”라고 말한다. 두툼한 옷을 겹쳐 입고 털퍼덕 앉아 신출귀몰한 솜씨로 그물코에서 한 마리 씩 빼내는 아낙은 하루에 10만원 벌이도 너끈하다는데, 표준말이 왜 양미리일까. 동해안 특산물이니 그들 말대로 얭미리라 불러야 옳은 게 아닐까.

 

알라스카와 오호츠크해에서 사할린과 일본 연안에 걸쳐 분포하는 양미리는 수온이 15도를 넘으면 여름잠에 들어가는 한대성 어종으로, 장어처럼 길쭉하지만 등이 녹청색이고 배가 은백색인 어엿한 등푸른 생선이다. 여름잠에 들기 전, 실컷 먹고 몸에 기름기를 축적하는 양미리는 바닷물이 선선해지는 10월 경 깨어 먹이 활동에 나선다. 몸을 만들어야 짝짓기에 제대로 임할 수 있지 않은가.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계절, 20미터 이상 내려가는 바다모래에 2천에서 6천개의 알을 낳는 양미리는 1년이면 13센티미터 내외, 2년이면 17센티미터, 3년이면 20센티미터를 훌쩍 넘기고 25센티미터까지 자란다고 한다. 그렇다면 겨울철 강원도 항포구를 석권하는 양미리는 대개 3년생인 셈이다.

 

한데 강원도의 양미리가 까나리라고? 까나리 하면 서해안의 대청도나 충남 보령시 근해에서 봄에서 여름 사이에 잡는 작디작은 생선이 아닌가. 주머니그물로 잡아올리자마자 파닥파닥 튀어오르는 녀석들을 산 채로 끓는 물에 데친 다음 소금과 1대1로 섞어 1년 넘게 숙성시키는 까나리액젓의 주인공인데. 멸치보다 작고 연필처럼 가느다란데. 헌데 동해안 양미리가 까나리라니. 옅은 원두커피색으로 젓갈 특유의 역한 냄새가 없어 간장처럼 전을 찍어먹기도 하고 김장에 넣어 배추의 신선함을 잘 살린다는 그 액젓에 들어가는 까나리는 기껏해야 10센티미터에 불과하다.

 

요즘 동해안에서 어부와 아낙네를 눈코 뜰 새 없게 만드는 양미리가 까나리라면 서해안 까나리는 1년 생 미만인가? 서해안 까나리는 여름잠도 없나? 잡는 방법과 시기에 따라 동해안은 3년생만 서해안은 1년생만 잡는 걸까. 혹시 그 작은 덩치로 서해안에서 동해안으로 이동하는 건 아닐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전문가들은 양미리라는 생선은 따로 있다고 도감을 펼치며 설명한다. 아래턱이 위턱보다 튀어나오고 차가운 동해안에 살며 몸이 길쭉한 모습이 비슷하지만 등이 황갈색인 양미리는 다 자라도 9센티미터에 미치지 못한다는 거다. 게다가 요즘은 거의 잡히지도 않는다고 덧붙인다.

 

뚜렷한 차이는 등지느러미로, 가슴 근처에서 꼬리까지 이어지는 까나리와 달리 양미리의 등지느러미는 뒷지느러미 근처에 짧게 붙어있다고 지적하지만 그건 학자들의 주장일 따름이라고 동해안 어민들은 일축한다. 아니 까나리란 물고기가 있는지 자체를 모른다. 학자연하는 자들이 와서 “양미리가 아니라 까나리!”라고 말하니 어처구니없을 뿐이다. 동해안에서 한평생 고기잡이 한 우리가 양미리라 하는데, 지들이 뭘 안다고! 부아가 치민다. 그이들은 진작부터 양미리, 아니 “얭미리”라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와서 까나리라고 고쳐 말한다면 사람들이 당황할지 모른다. 오래 전부터 겨울이 오면 양미리를 사먹던 이들이 “이게 그 젓갈 담는 까나리라고요?” 놀라며 외면할지 모른다. 실제 양미리는 잘 잡히지 않는다지만 그게 우리하고 무슨 관곈가. 우리는 다만 얭미리를 잡아왔을 뿐이다. 서해안 까나리를 모르는데, 누가 등지느러미를 일일이 살펴보나. 그저 예전과 똑같은 양미리의 맛이라면 좋은 거 아닌가. 이제라도 강원도 사람들이 말하듯, 동해안의 까나리는 ‘얭미리’ 서해안의 까나리는 그대로 까나리로 부르면 어떨까. 꽁치를 닮아서 그런지 남쪽 지방에서 ‘꽁멸치’라 말한다던데, 점잖게 ‘양미리!’라 칭하려는 교양 있는 서울 사람의 표준말이 오만한 게 아닐까.

 

강원도 사람들은 산란철을 앞두고 알이 꽉 찬 양미리를 ‘밥도둑’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등푸른 생선답게 비타민B1과 B2, 필수 아미노산과 불포화지방산, 그리고 DHA와 핵산이 풍부하다지 않던가. 쇠고기 이상으로 단백질이 많아 담백한 맛이 그만이라는 양미리. 동해안에서 그물 출렁이게 잡히는 양미리는 까나리든 얭미리든, 아니면 꽁멸치든, 맛은 물론, 먹는 방법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겨울철의 진미, 여전히 밥도둑이다.

 

서울과 경기 일원의 사람들은 그저 꾸덕꾸덕하게 20마리 씩 말린 두름을 사서 간장에 졸여먹지만 양미리의 본고장인 강원도는 먹는 방법이 다양하다. 바다에서 올라오자마자 굵은 소금을 뿌려 석쇠에 구워먹거나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익혀먹는 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조리법이고, 껍질 벗긴 몸을 앞뒤로 켜서 먹는 회는 동해안에 가야 맛볼 수 있다. 묵은 김치와 끓이는 찌개와 쑥갓과 고사리에 갖은 양념을 넣고 푹 끓이는 추어탕도 별미일 테지만 동해안의 별미는 뭐니뭐니해도 좁쌀밥과 무채를 넣고 삭힌 양미리식해가 아닐까. 함경도의 가자미식해가 양미리식해로 변신, 달콤 쌉싸래한 별미 중의 별미가 되었다.

 

겨울철 저장식품에 물린 백성에게 동해안 양미리는 반가운 생선이었다. 붉은 살코기가 지천이고 원양어선이 풀어놓는 진귀한 생선이 시장에 가득 쌓인 요즘에도 한겨울 양미리는 우리의 입맛을 자극한다. 음식문화와 전통이 그리 연결돼 있기 때문이리라. (전원생활, 2010년 1월호)

이북에서는 정어리라는 생선을 많이 먹습니다. 쪄서도 먹고, 식초와 고추장에 생으로 뭍혀서도 먹고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한국에 와서 정어리를 찾으니 없더군요. 가장 좋아하는 생선중에 하나인 정어리가 그립네요. 제가 듣기로는 한국에서도 잡히는데, 일본으로 수출된다고 하더군요. 강원도에 가면 양미리도 먹어보고, 정어리도 함께 찾아봐야겠습니다. ^^
그렇군요. 1980년대 만 해도 정어리 통조림이 많았는데, 요즘은 보이지 않네요. 참치가 정어리를 밀어낸 모양입니다. 서민에게 든든한 영양식이었는데 말이죠. 댓글,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