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7. 10. 22. 11:30
 


조삼모사. 이럴 때 조삼모사라는 설화가 잘 어울리지 싶다.


 

 

우리 아파트 단지와 이마트는 길 하나 사이다. 8차선 고가와 연결되는 왕복 10차선 포장도로 너머 50 번째로 개점한다고 떠들썩했던 전국 최대 규모의 이마트가 그 위용을 자랑한다. 인천 지하철과 연결된 이마트는 주말이면 지상의 포장도로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곤 하는데 우리 아파트 주민들은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오가곤 한다. 그게 집값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주민들은 굳게 믿는다.

 

이마트가 들어오기 전, 그 부지는 남동공단과 이어지는 넓은 공터의 일부였다. 지방의회나 단체장에 도전하는 후보 선량마다 당선되면 녹지를 만들겠다고 기염을 토한 바로 그 땅이었다. 하지만 그 땅엔 현재 나무 한 뿌리 심겨 있지 않다. 이마트가 들어서기 전, 맹꽁이가 장마철을 먼저 알려주던 하천부지였는데, 그 땅은 시멘트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 바닥으로 뒤덮였다. 이젠 아무도 나무를 심을 수 없다. 앞으로 어떤 선량 후보도 그 땅에 나무를 심겠다고 공약(空約)하지 않을 것이다.

 

이마트가 들어선 부지는 남동공단과 남동공단의 배후 주거단지를 조성하면서 생겼다. 갯벌을 드넓게 매립한 공단과 주거단지는 가까운 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천으로 구별되는데, 아직 갯벌이었던 시절, 그 개천은 갯벌로 이어지는 갯고랑이었다. 공단과 아파트 단지를 위해 갯벌을 매립하면서 갯고랑을 개천으로 바꾼 토목은 하천부지를 넓게 남겼는데, 선량들의 공언과 관계없이 아무도 나무를 심지 않았다는 거다. 한데 도시계획은 일찌감치 그 부지를 화물터미널 용지로 점지해둔 상태였고, 아파트 단지에 나중에 입주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남동공단이 먼저 생기고 배후 주거단지는 갯벌을 더 매립한 뒤 조성되었는데, 국가공단임을 자랑하는 남동공단. 그 남동공단을 위한 화물터미널은 지금까지 그 선취권을 명백히 한다. 화물터미널이 생긴다는 걸 나중에 안 주민들의 거친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끔 지역신문에 글을 쓰는 처지에 모르는 척 할 수 없어 반대운동을 주도하는 후배에게 주거단지 곁의 화물터미널은 대기오염과 안전을 걱정하게 하므로 타당하지 않다는 원칙을 의견으로 전했지만 데모대와 동참하지 않았다. 구청과 시청을 오가는 주민들과 하늘에 삿대질하며 구호를 외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웠지만 주민들의 순수성에 신뢰가 생기지 않았다.


 

 

아파트 벽에서 세로로 펄럭이던 살벌한 구호가 슬그머니 사라진 것은 화물터미널 부지에 이마트 건물이 모양을 드러내면서부터다. 선물로 받은 난이 무성했던 잎을 잃고 시름거리는 18층 아파트의 베란다로 나가면 건축 중인 이마트 건물을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그것 참. 3층 건물이 금방 모습을 갖췄다. 개펄을 파낸 지하에 파일을 박는데 시간을 약간 썼고 나머지는 그야말로 후다닥이었다. 기둥도 슬래브도 조립식이어서 그런지 일주일이면 한 층씩 올라갔고, 한 달 쯤 지나자 웅장한 외양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건물보다 실내외 장식에 오랜 시간을 보낸 이마트는 전국에서 값이 가장 싸다면서 문을 열었고, 설과 추석 당일을 제외한 날, 자정이 임박하면 같은 가요를 내보낸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새벽마다 고가차도를 오르내리는 폭주족들이 별천지를 구가하는 왕복 10차선 아스팔트, 초저녁이면 그 도로를 메우는 자동차는 꾸역꾸역 이마트로 빨려 들어간다. 건물 주변과 3층, 그리고 옥상으로 이어지는 주차장이 주말이면 오전부터 만원인데 아스팔트를 메우는 승용차는 끈질긴 인내심을 발휘한다. 간혹 새치기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근대사회에 어울리는 성숙한 시민의식에 충분히 뿌듯해할 수 있을 정도다. 주말마다 잔뜩 부푼 노란 비닐봉투 서너 개씩을 든 남동공단의 아시아 사람들이 계산대를 삼삼오오 빠져나가는 이마트는 자동차가 없으면 기본적으로 불편하다.

 

이마트가 들어서자 쓸쓸해진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도 문방구가 있다. 잔돈을 쥔 아이들이 쭈그리고 앉아 컴퓨터 게임에 정신없는 문방구는 입구부터 복잡한데, 그 문방구를 지키는 아저씨는 여전히 퉁명스럽다. 거기는 복사용지를 낱장으로도 판다. 물론 박스로도 팔지만 비싸다. 프린트 용지가 떨어져갈 무렵, 이마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초등학생처럼 한두 장을 사려는 게 아니다. 값이 저렴한 이마트 말고 시방 대안이 없다. 복사용지 말고 더 살 게 없으니 차를 가지고 가지 않았다.

 

이마트에는 가방을 집에 두고 가야 몸도 마음도 편하다. 가방을 들고 매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지만 외밭에서 갓끈을 고치지 말라 했다. 무전기 든 점원의 시선도 그렇지만 구석구석 번득이는 감시카메라에 괜한 의심을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어 가지고 간 가방은 보관함에 넣어야 하는데, 보관함을 잠그려면 100짜리 동전이 있어야 한다. 신용카드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부터 호주머니에서 사라진 동전을 일부러 바꿔야 한다. 동전이야 가방을 꺼낼 때 회수할 수 있지만 구입한 물건과 가방을 들고 뒤뚱거리는 꼴이 뒷사람 보기에 민망하고 나도 불편하다.

 

지하철과 연결된 입구에서 자동으로 열리는 문을 통과해 완만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오른 다음, 계산대 옆 출입구로 슬쩍 들어갔다. 뒤통수에 대고 어김없이 외치는 점원의 인사소리를 뒤로, 매장 안에 들어서서 문구 파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출입구의 점원은 무전기를 들고 ‘고객님’을 반드시 맞는다. 그것도 반가워하는 과장스런 몸짓과 함께. 나는 그를 모른다. 물론 그도 나를 모를 것이다. 날마다 찾아가면 서로 얼굴을 기억할 수 있으려나. 그가 그 자리를 얼마나 지키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얼마 전, 자정 가까이 이마트에 간 적 있다. 큰 애가 좋아하는 소시지를 사려고. 지방에서 고등학교 다니는 녀석이 한 달 만에 집에 왔는데 함께 밥 먹을 시간을 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발동한 거다.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이마트 식품매장은 얼마 남지 않은 재고를 털어내려 값을 더 내린다. 물론 원하는 식품이 다 팔려 허탕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날 지나친 문방용품 코너는 복사용지를 산더미처럼 내놓고 있었다. 값도 저렴했기에 기대했는데 아니, 그 복사용지가 이번엔 보이지 않는다. 대신 못 보던 상표를 단 복사용지가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이플러스’, 이마트 자체 상표다. 프린터에 용지가 걸리는데 더는 민감해 하기 싫어 낯선 상표가 꺼림칙했는데 보아두었던 상표는 구석으로 밀려나 쉽게 눈에 띄지 못한다. 한데 이플러스 복사용지 박스의 작지만 선명한 글자가 뭐라 주장한다. 전에 보아둔 바로 그 상표의 종이와 같은 제품이라고. 상표만 바꿨다는 건데 가격은 10퍼센트 이상 저렴하다. 품질이 같은데 누가 비싼 종이를 선택할까. 선뜻 두 박스를 바구니에 넣으려다 꾹 참았다. 차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으므로. 예정에 없던 문구를 이것저것 집어 들고 줄이 짧아 보이는 계산대를 빠져나왔다. 이어지는 “봉투 필요하세요?”, “포인트 카드 없으세요?”, “세금 계산서 필요하세요?”, 건조한 질문과 인사를 뒤로하고.


 

 

자사 복사용지를 10퍼센트 저렴한 이플러스 상표로 납품하는 제지회사는 이윤이 줄었을까. 아닐 것이다. 어떤 조치를 취했을 게 틀림없다. ‘노동력 유연화’, 풀어서 말해, 골치 아픈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바꿨거나 그런 위협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동결했을지 모른다. 산업연수원 제도를 십분 활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지. 아무튼 기업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았을 텐데, 이마트를 찾은 많은 소비자는 더 저렴해진 복사용지를 계획보다 더 구입할 거고, 복사용지가 충분히 확보된 이상 소비에 너그러워질 것이다. 나도 미뤄두었던 문서를 모두 인쇄했고 이면지가 많이 나왔다.

 

이윤이 박하면 회사는 물건을 더 만들어 해결하고 싶을 것이다. 이마트 압력에 굴복했을 제지회사는 용지를 더 만들려 애를 쓸 텐데, 해고되거나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기 싫은 노동자는 늘어나는 노동시간과 강도를 감수해야 한다. 제지회사는 규모가 큰 만큼 견딜 여력이 있겠지만 중소기업은 어이할꼬. 소비자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이마트와 가까운 곳에 사는 소비자도 승용차를 몰고와 저렴한 물건을 카트에 가득 채울 따름이다. 구입한 물건이 많으니 자동차가 필요하고, 자동차와 물건의 할부 때문에 일을 더 해야 한다. 일에 쫓겨 집에 노상 늦으니 모처럼 시간 날 때 이마트로 차를 몬다. 값이 싸니 많이 사고, 많이 사니 낭비한다.

 

자동차 없는 알뜰 소비자의 출입을 봉쇄하는 양판점은 대부분의 점원을 비정규직으로 채운다. 인건비를 시간으로 계산하는 이마트도 마찬가지다. 그 비정규직, 양판점 점원으로 들어서기 전에는 어엿한 구멍가게의 사장님이었을지 모르는데, 지금은 양순한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은 규정에 얽매인다. 단순 작업이 반복되는 카운터 이외의 비정규직은 의자에 앉을 수 없다. ‘고객님’이 다가오면 웃는 얼굴로 반갑게 다가가 이 물건 저 물건을 들추며 시선을 끌어야 하고 ‘고객님’이 떠나면 흐트러진 물건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 가끔 휴게실에서 커피 뽑아 마실 수 있지만 곧 제 자리를 지켜야 한다. 이웃 매장의 비정규직과 이야기라도 잠시 나누려면 여간 눈치 보이는 게 아니다. 감시카메라보다 매서운 눈초리, 비정규직 점원의 태도를 살피는 비정규직 직원이 돌아다닌다. 끗발 높은 비정규직에 걸리면 4주간 교육이다. 물론 교육시간은 인건비 산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전국 100군데 지점에서 벌어들이는 이마트의 수익은 중앙으로 집중된다. 중소기업과 농촌, 그리고 노동자들이 어렵게 벌어들인 100군데 지방의 알량한 돈들이 빨려 나간다. 한 군데로. 언젠가 이마트 최고위 경영자의 운전기사에 대한 뉴스가 방송에서 흘러나왔다. 에피소드처럼. 한 번 신고 쌓아 둔 경영자의 구두를 몇 켤레 슬며시 챙겼다 고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운전기사를 해고했을 경영자는 구두 수집 취미를 가진 모양이다. 그 구두, 이마트에서 파는 물건과 격을 달리해도 한참 달리하겠지.

 

양판점은 리바이어던이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개구리의 왕이다. 우리에게도 왕을 보내달라는 개구리에게 제우스는 나무토막을 보냈다. 개구리 사회에 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한데 나무토막은 아무런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개구리의 행동을 전혀 통제하지 않으니 어떤 개구리도 나무토막을 숭배하지 않는다. 개구리는 다른 왕을 요구했고 혀를 쯔쯔 차던 제우스는 황새를 내려보냈다. 왕이 된 황새는 개구리에게 가혹한 규칙을 요구했고 그 규칙을 어길 수밖에 없는 개구리들은 황새에게 잡혀 먹혔다는 우화. 양판점이 그렇다. 중앙의 거대한 권력자인 양판점을 반겨 숭배하는 우리는 양판점이 요구하는 까다로운 규칙에 기꺼이 구속된다. 모셔놓고 공포에 떠는 우리의 리바이어던이다. 이마트가 들어서자 집값이 뛰었다고 반긴 우리 아파트 단지의 주민은 우화 속의 개구리와 다르지 않다.


 

 

요즘 우리 아파트 단지에 다시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번엔 작고 몇 개 되지 않는다. 화물터미널을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이마트가 들어선 부지보다 더 넓은 면적의 공토에 화물터미널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일부 주민들이 구청으로 시청으로 몰려다니며 궐기하고 나선 것인데, 이마트가 들어선지 5년이 넘었으니 아파트 주민도 그 사이 상당히 바뀌었겠지. 이번 화물터미널 소식에 화가 난 주민도 5년 전 화물터미널 소식에 화를 낸 주민처럼 집값을 먼저 생각한다.

 

이마트가 들어선 화물터미널 부지의 주인은 언성 높이는 5년 전 주민들을 이마트 부지라는 걸 앞세우며 설득했고, 그 설득은 주효했다. 설득된 주민 중 상당수는 이마트 이후 화물터미널이 들어올 거를 알고 있었지만 데모는 힘을 잃었고 지금 다시 주민들이 모인다. 하지만 목소리는 훨씬 약하다. 화물터미널을 막을 위세와 거리가 멀다. 이마트로 들어가는 수많은 승용차는 앞으로 화물터미널을 들고나는 트럭들과 10차선 포장도로에서 엉킬 게 틀림없다. 소음도 대기오염도 늘어나겠지만 사고도 많이 일어나겠지. 물론 집값이 떨어질 수 있겠다. 이마트 프리미엄이 상쇄될 만큼. 조삼모사가 따로 없는 셈이다. (녹색평론, 2007년 11-12월호)

다른 선택이 없어요.
우리 동네도 3월에 홈플러스 개장했는데 안 쓰려고 해도 작은 가게는 물론이고 GS마트까지 넘어지고 명목 뿐인 5일장도 온통 너풀너풀 옷 뿐입니다.
할 수 없이 홈플러스에서 장을 보는 실정입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머지않아 이마트도 선다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