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6. 3. 11:18

 

우리나라의 동물 중에 이름을 치로 마치는 종류가 꽤 많다. 까치와 어치 같은 조류도 있지만 참치, 삼치, 멸치, 한치, 꽁치, 곰치, 개복치, 쥐치, 버들치, 금강모치, 강준치, 학공치, 가물치, 누치와 같은 어류가 대부분인데, 조상은 왜 ‘치’ 자를 그리 애용했을까. 우스꽝스러운 생김새도 아닌데. 부끄러울 치(恥) 자를 염두에 둔 건 아니겠지만 분명한 것은 치 자로 끝나는 동물은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다는 거다. 동물은 아니지만 우리 식탁에 없어선 안 될 김치도 올라가지 못하고, 고급 생선의 대명사인 참치도 감히 넘보지 못한다. 물론 멸치와 꽁치도 마찬가지고.

 

치 자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민물고기 중에서 나중에 벼슬을 받은 종류가 있다. 어름치가 그렇다. 1972년 5월, 문화재청은 금강의 어름치를 천연기념물 238호로 지정 보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지정한 보람도 없이 걷잡을 수 없게 사라지는 게 아닌가. 문화재청은 6년 후, 그러니까 1978년 8월, 전국의 하천의 모든 어름치를 천연기념물 259호로 황급히 지정하고 나섰는데 어름치는 오로지 한강과 금강에만 산다. 희한하게 금강모치, 대농갱이, 꾸구리 들과 더불어 어름치는 다른 수계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 아주 먼 옛날 금강과 한강의 상류가 연결되었던 걸까.

 

어름치는 왜 어름칠까. 얼음과 무슨 관계가 있나. 물이 맑은 하천의 모래 바닥에 주로 사는 까닭에 쨍하고 강이 얼어붙은 겨울, 투명한 얼음을 걷으면 아래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기에 이름을 그리 붙였다는 설이 있다. 얼음 속에서 너끈히 사는 물고기라는 거지만 사실 우리 민물고기는 모두 얼음 아래에서 잘산다. 그렇지 않고야 어찌 봄에 다시 만날 수 있겠나. 아가미 뒤에서 꼬리까지 이어지는 예닐곱 줄의 점이 물밖에 어른거려 어름치라 했다는 설도 있다. 그럴싸하긴 한데, 점무늬가 있는 민물고기가 어디 어름치뿐이랴. 20에서 30센티미터의 크기가 많지만 다 자란 녀석은 50센티미터에 육박한다. 덩치가 크니 어른치라 했다, 나중에 어름치로 바뀌게 된 건 아닐까.

 

우리의 담수어류 중에는 고유종이 많은데, 고유종 중에 천연기념물은 어름치가 유일하다. 보호가 필요할 정도로 수가 적고 사는 곳이 제한돼 있기 때문일 테지만, 어름치 이외에도 개체수가 아주 드물고 분포지역이 좁은 고유종은 더러 있다. 그 종류들은 왜 문화재청에서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어름치의 덩치가 큰 만큼, 얼음 뚫고 견지낚시에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겨울 강태공이나 여름에 투망을 어깨에 메고 천렵 나온 이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겠지. 그런데 생김새를 알지 못하는 이에게 어름치가 천연기념물이고 고유종이라는 정보를 어떻게 알려주나. 어름치가 사는 강에 눈에 잘 띄는 안내판을 설치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생태학자들은 여전히 두려워한다. 어렵게 잡은 덩치 큰 물고기를 순순히 놓아줄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포유류나 조류와 달리 어류에 천연기념물이라는 벼슬을 여간해서 내리지 않건만, 어름치는 두 번이나 하사되었다. 고유종이고 덩치가 클 뿐 아니라 생긴 모습까지 준수하다는 학자들의 천거가 전부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저러한 이유로 청원되는 야생동물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 보수적인 관청은 어름치에게 나타나는 특별한 행동을 주목했을 것 같다. 투명할 정도로 깨끗한 중상류의 하천, 모래와 자갈이 깔린 깊은 바닥에서 수서곤충을 주로 잡아먹는 어름치는 수온이 따뜻해지는 늦은 봄에서 이른 여름, 수심이 낮은 곳으로 나와 알을 낳는데, 그때 산란탑을 쌓는다는 게 아닌가.

 

깊은 곳은 갈수기에도 물은 마르지 않지만 대체로 수온이 낮고, 거긴 이미 저보다 작은 물고기를 거칠게 잡아먹는 꺽지란 놈이 자리를 잡았다. 곧 장마가 올 터. 수심이 낮아도 조만간 깊어질 테니 물 걱정은 없지만 그땐 흐름이 거세질 터. 어름치는 바닥에 찻잔 받침만한 구덩이를 살짝 판 뒤 알을 낳고, 그 위에 자잘한 자갈을 부지런히 물어 나른다. 5에서 8센티미터 정도 높이의 산란탑을 펑퍼짐하게 쌓아 휩쓸려가지 않게 알을 덮는 것이다. 그래야 주변을 어정대는 천적에게 알도 잃지 않을 것인데, 그것 참. 주민들은 어름치 산란탑이 하천의 가장자리에 있으면 큰비를, 가운데 쌓으며 작은 비를 예상했다고 한다.

 

금강에서 보기 어려워졌어도 소양강에 참 많았다던 어름치. 다목적댐이 들어선 지금은 통 볼 수 없단다. 전문가들은 흐름이 막히자 강물이 혼탁해졌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흐름이 멈추면 강은 모래와 자갈에 붙은 물이끼를 먼저 잃는다. 물이 차고 투명한 중상류의 모래와 자갈과 바위를 보라. 맨발로 밟아도 미끄러지지 않는, 아주 얇지만 단단하게 붙는 초록색 물이끼를 볼 수 있으리라. 하천이 흐름을 잃으면 수서곤충의 애벌레와 다슬기의 먹이가 되는 그 물이끼에 흙탕이 쌓일 테고, 오염에 예민한 물이끼는 탄소동화작용을 제대로 못해 그만 뿌리를 잃고 떨어져나간다. 수서곤충을 주로 먹다 산란을 앞두고 다슬기를 찾는 어름치에게 흐름이 멈춘 강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먹이도 부족해질 테지만 건강한 알을 낳기 어려워지는데 그치는 게 아니다. 산란탑에 흙탕이 앉으면 알은 호흡이 갑갑해질 테고, 어렵게 부화된 치어들도 뜯어야 할 물이끼를 구경할 수 없을 게 아닌가.

 

소양강댐에서 팔당댐까지 가로막힌 북한강은 그리 되고 말았다지만 남한강이 버텨주므로 어느 정도 보전되던 어름치도 이제 바싹 긴장해야 한다. 동강의 영월댐이 취소되어 가슴을 쓸어내렸더라도 소용없게 된 것이다. 영월댐 반대운동 덕분에 유명세를 탄 동강의 비경을 구경하겠다는 모여드는 관광객을 위해 관청에서 없었던 길을 냅다 뚫자 숙박시설이 거푸 들어섰고, 이후 강물이 오염되었지만 그건 약과다. 1999년에 쓰레기매립장을 어렵싸리 막아낸 서강도 안심할 수 없다. 높이 10미터가 넘는 대형 보 3개가 남한강의 흐름을 차단할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평내수면연구소는 2001년부터 실험실에서 부화시킨 어린 어름치 수천 마리를 해마다 무주 남대천에 방류하고 있다. 덕분에 30개의 산란탑을 확인했다고 전문가들은 최근에 희소식을 알렸지만 더욱 불안해진다. 한강 어름치가 금강에 드물게 남은 어름치와 유전자가 섞일까 염려되기 때문인 건 아니다. 두 개의 대형 보가 금강의 흐름도 차단할 거라 예견하지 않던가. 흐름이 멈춘 강은 어름치의 터전만 빼앗지 않을 텐데, 서로 ‘그치’ ‘저치’ 하는 인간들은 자신이 하사한 어름치의 벼슬마저 잊은 건가. (사이언스타임즈, 2010.6.3)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0. 5. 11. 14:07

 

천연기념물 238호 어름치는 금강에 산다. 아니 살았다. 1972년 국가 문화재로 지정했어도 사라지고 말아 1978년 전국의 어름치를 천연기념물 259호로 확대 지정해야 했다. 현재 어름치는 한강 수계의 상류에 제한 분포한다. 덩치가 20에서 30센티미터에 이르고 옅은 갈색 몸의 아가미 뒤에서 꼬리까지 작은 검은 점이 예닐곱 줄 이어지며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를 가르는 세 줄의 흑색 무늬가 독특한 우리의 고유종은 시방 풍전등화다.

 

빙하가 지구 표면을 덮던 시절 황하강과 양자강의 상류였던 우리나라 하천들은 저마다 독특한 고유종을 자랑하는데, 그 중 어름치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천연기념물이자 고유종이다. 보존가치가 그만큼 높지만 최근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경쟁적 골재채취로 터전이 파괴될 뿐 아니라 먹이마저 쫓겨나기 때문이다. 깨끗한 모래와 자갈이 깔린 강바닥에서 곤충과 갑각류를 즐기고, 산란을 준비하면서 다슬기를 집중적으로 먹는 습성을 가진 어름치에게 골재채취는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여름밤 하늘을 수놓는 반딧불이의 애벌레는 다슬기를 먹고 자라는데, 다슬기는 물이끼를 뜯어야 산다. 차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광합성을 하며 바위와 자갈에 옅은 초록으로 단단히 붙는 물이끼는 흙탕이 천적이다. 분별없는 산간 도로공사나 골재채취로 이는 흙탕은 하천 바닥을 뒤덮어 물이끼의 광합성을 방해할 뿐 아니라 뿌리를 들어내게 한다. 물이끼가 없으면 반딧불이는 사라질 것이며 어름치도 정든 하천을 떠날 수밖에 없다.

 

늦은 봄이나 이른 여름, 흐름이 완만한 하천의 바닥에 웅덩이를 파고 알을 낳은 뒤 모래와 자갈을 5센티미터 이상 덮어 산란탑을 쌓는 어름치에게 흙탕은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 산란탑에 흙탕이 끼면 산소공급이 차단되는 알은 부화되지 않을 게 아닌가. 그나마 일부분에서 실시되는 골재채취는 멸종으로 몰지 않지만 얼음이 채 녹기도 전부터 24시간, 노동자가 과로로 쓰러질 지경으로 강 전역을 난폭하게 파헤치는 목하의 ‘4대강 사업’은 어름치의 멸종을 강요한다. 10여 년 전부터 복원을 위해 치어를 금강에 방류하는 국립수산과학원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인가.

 

건강한 강은 예나 지금이나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지구의 자전축이 23.5도 기운 상태에서 태양을 공전하는 한, 굽이쳐 흐르는 강은 다채로운 생태계를 펼쳐주었다. 강은 대지의 혈관이다. 주위의 생태계가 보전되도록 지하수와 습지를 유지해주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홍수와 가뭄은 강의 생명현상이다. 이따금 범람했던 강이 갈수기에 넓은 강폭을 드러내며 조용히 흐르는 변화는 혈관의 탄력성이다. 덕분에 수분과 영양물질을 제때 공급받는 생태계는 건강한 후대를 이어갈 수 있었다. 생태계는 강의 오랜 생명현상에 적응해왔다. 홍수가 들었을 때 물고기는 범람원에 알을 낳았고, 물고기가 성장했을 때 기웃거리는 동물들은 살을 찌웠다. 동물이 건강해야 식물도 건강할 수 있는 건 불문가지.

 

국토의 65퍼센트가 경사가 급한 산지로 구성된 우리나라는 몬순 기후대에 속한다. 내리는 비가 장마철 전후의 여름 한철에 집중된다. 큰비는 계곡을 거세게 휘몰아치며 상류에 거대한 바위를 포개놓았고 곤두박질치며 넓은 바위에 소를 파놓았다. 강폭이 넓어지면 강물은 호박돌과 모래와 자갈을 남기며 어귀마다 넓은 백사장을 펼쳐놓았고 모래와 자갈에서 더욱 정화된 강물은 하류로 흐르며 곱디고운 흙을 하구와 해안에 끊임없이 내려놓았다. 그게 다가 아니다. 지구촌에서 유래가 드물게 간만의 차가 큰 우리나라의 조수는 강이 내려놓은 고운 흙을 넓은 조간대에 두툼한 갯벌로 펼쳐놓았으니 상류의 계곡에서 해안의 갯벌까지, 강이 창출한 다채로운 생태계에 수많은 생물들이 어우러질 수 있었다.

 

좁은 국토에 인구가 넘쳐도 건강할 수 있었던 건, 강이 펼치는 생태계 덕분이었다. 홍수를 타고 내려온 흙은 기름진 평야를 제공했고 강과 갯벌은 풍성한 단백질을 무한히 허용했다. 수천종의 나무와 식물이 켜켜이 남긴 부엽토는 스펀지처럼 빗물을 머금어 여름은 물론 강우량이 적은 가을부터 산불이 빈번할 정도로 메마르는 봄철까지 맑은 물을 흘려보냈다. 덕분에 한반도에 첫 터전을 정한 조상 이래 오늘까지 우리는 삶을 보전할 수 있었다. 어름치와 더불어.

 

영겁을 흐르던 우리의 4대강은 이제 작별을 고하려 한다. 강에 삶을 의탁해왔던 인간이 배은망덕하게 돈벌이를 위해 살해하려 들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4대강 혈관의 살점을 깊게 떠낸 뒤 대형 콘크리트 보로 흐름을 틀어막는 당대에 의해. 탄력을 잃은 혈관은 체내에 산소와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다. 흐름을 잃으면 강물은 썩는다. 혈관은 쉽게 감염될 것이다. 직선으로 좁아져 단조로워진 수중은 물론이고 주변 생태계도 콘크리트 제방과 보 탓에 수분과 영양분 공급이 차단돼 붕괴되고 말 것이다.

 

과학기술을 앞세우는 인간도 생태계의 자손이다. 강과 생태계와 후손의 생명은 돈벌이를 위해 살해해야 할 대상일 수 없다. 생명을 받은 자라면 그런 불경한 상상은 불가능하다. (야곱의우물, 2010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