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5. 12. 31. 13:36


해가 짧아지면서 추위가 선뜻 다가왔다. 두툼한 겉옷이 필요한 계절인데 운동 삼아 긴 거리를 걷다 보면 두툼한 옷이 부담스럽다. 벗으면 춥고 다시 입으면 속옷은 땀에 푹 젖게 된다. 감기 걸리기 십상인 계절인가?


1970년대 말, 술 거나하게 마시고 잠을 청한 청년은 아침에 마실 요량으로 주전자를 머리맡에 놓았는데, 그 물을 마시지 못했다. 갈증이 밀려와 잠에서 깼지만 주전자 속의 물이 꽝꽝 얼어붙은 게 아닌가. 그 청년은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청년이기에 그랬다기보다 그 시절 겨울은 여느 집이든 안팎이 추웠고 두툼한 이불로 체온을 유지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요즘은 어린이는 물론이고 청년도 계절에 관계없이 감기를 달고 산다. 여름이 겨울 같고 겨울이 여름 같으니 자신의 체온을 유지할 겨를이 없다. 살을 시리게 추우니 한여름에 얇은 스웨터를 가방에 넣고 맥줏집 문을 열어야 하고 겨울이면 식당 방석에 앉아 겉옷을 하나 둘 벗어야 한다. 오랜 계절 변화에 적응된 유전자를 물려받은 몸은 체온조절에 어려움을 겪는다. 예전에 없던 일이다.


무더운 여름철 냉장고에서 차가운 음료수를 부으면 컵은 이내 땀을 흥건히 흘린다. 바닥이 다 젖을 정도인데, 한 세대 전, 바깥 기온이 낮은 겨울철이면 밖으로 난 창의 안쪽은 성에로 가득 찼다. 다채로운 기하학적 무늬를 남긴 성에에 주먹을 쥔 손 아랫부분을 대고 발바닥 만들겠다며 녹였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 요즘 아이들은 성에가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고드름은 알까?


이중 유리로 만든 베란다와 거실의 창호는 차갑거나 더운 바깥 공기가 실내로 들어오는 걸 철저히 차단한다. 성에가 앉을 자리가 없다. 에어컨이 만든 여름철의 냉기와 중앙난방이 데워준 겨울철의 온기가 밖으로 나가지 않는 만큼 에너지 소비를 방지할 수 있지만 그런 실내공간에 머무는 이는 환절기마다 감기를 조심한다.


아랫목만 뜨거웠던 시절, 밥주발 덮어놓은 이불 속은 겨우 발만 따뜻하게 했을 따름이었다. 밥주발을 피해 두툼한 요를 푹신하게 깔고 가슴으로 무게를 느끼며 두꺼운 솜이불을 두 겹으로 코끝까지 끌어 덮고 잠을 청했던 시절에서 한세대 지난 요즘, 두꺼운 이불을 덮고 두툼한 요를 까는 집안은 거의 없다. 요는 침대의 매트가 대신하고 이불은 얇다. 그 이불마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걷어차고 마는 요즘 아이들은 요가 무엇인지 모르겠지.


간장독과 아이들은 겨울에 내놓아도 얼지 않는다고 했지만, 간장독이 사라진 요즘, 우리 아이들은 얼어붙을 거 같다. 집이 따뜻할 뿐 아니라 유치원도 따뜻하고 유치원으로 이어주는 자동차도 따뜻하다. 아파트 현관에서 유치원 차를 잠깐 기다리는 아이들은 발까지 내려가는 외투와 털모자, 그리고 긴 목도리로 머리를 둘둘 말았다. 냉기가 피부에 닿을 틈을 원천봉쇄했다.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버스 오르내리기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자라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청년이 되겠지.


수돗물 손잡이를 왼쪽으로 돌리기만 해도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시절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며칠을 씻지 않아 떼가 켜켜이 앉은 손이 아무리 곱아도 밖에 나가던 시절, 내복을 입어도 활동이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물이 언 논밭으로 나가 외발썰매를 지치고 자치기 구술치기로 해가 짧은 겨울을 아쉬워했다. 놀기 바빠 손을 씻지 않았다기보다 떼를 걷어낼 정도로 손을 따뜻하게 할 더운 물이 집안에 없었는데, 그 시절 따뜻한 물은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책임지는 부뚜막에 한정되었다. 부뚜막? 요즘 아이들이 보았을 리 없다.


부뚜막은 낮다. 구부정한 자세로 밥하고 주저앉아 나무 태우던 시절은 연탄을 태우는 시기로 바뀌었고 부엌 입식 바뀌면서 실내로 들어오자 부뚜막은 사라졌다. 취사와 분리된 난방은 남에게 맡기게 되었다. 싱크대와 식탁이 부엌을 차지하면서 잠시 애용하던 석유곤로도 사라졌다. 석유를 제때 채우지 않아 심지를 태우면 심지 교환하는 남편이 툴툴거렸는데 가스레인지로 바뀌면서 집안에 석유 냄새는 사라졌다. 이젠 전기로 요리하는 시절이란다. 컨버터라고 한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탐사 저널리스트 앤드류 니키포룩은 우리는 시방 에너지를 노예로 부리고 있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물로 머리를 감고 헤어드라이어로 머리칼의 물기를 말릴 때 필요한 전기를 옆집에서 자전거 발전기를 돌려서 공급한다면 몇 명이 수고해야 할까? 그들을 에너지 노예로 생각해보자. 전기압력밥솥을 커면 여러 명이 달라붙어 전기를 생산하다 밥이 다 되면 다리에 힘이 풀린 에너지 노예들은 나자빠질 것인데, 미국인은 평균 200명 이상의 에너지 노예를 부리는 셈이란다. 우리는 몇 명의 에너지 노예를 혹사시키고 있을까?


인류의 역사 이전은 물론이고 이후,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전기는 물론 석유와 석탄을 몰랐다. 추우면 그저 나무를 태웠을 텐데, 아무리 심어 키울 수 있다 해도 무한히 공급할 수 없기에 대개 겨울은 추웠다. 그에 적응해왔지만 화석연료가 대신하는 에너지 노예를 부리는 지금은 아니다. 하지만 사용할 수 있는 석유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산유국이 자료를 투명하게 제시하지 않아도 관련 전문가들은 석유를 펑펑 쓸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석유는 태워 버리기 무척 아까운 자원이다. 석유가 없으면 자동차만 움직이지 못하는 게 아니다. 옷도 신발도 의약품도 만들 수 없고 음식의 양도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옥수수 10칼로리를 얻으려면 그 10배에 해당하는 석유가 동원돼야 한다. 화학비료, 제초제와 살충제, 농기계 연료, 운송과 저장에 들어가는 석유가 없으면 우리는 밥을 얻기 어렵다. 석유가 없는데 어떻게 대형선박으로 식량을 운반하겠는가?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석유위기 시대를 앞둔 현시점에 25% 유지도 버겁다.


추운 계절에 오리털 점퍼를 찾는데, 그 털을 가혹하게 뜯기는 오리도 석유 없이 사육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천년만년 에너지 노예를 부릴 걸로 생각하는지 겨울이 통 겨울답게 살지 않는다. 천지사방이 덥다. 두껍게 껴입은 몸은 조금만 움직여도 땀에 젖는다. 에너지 노예는 머지않아 사라질 텐데, 겨울을 거부한다. 겨울답게 사는 연습이 필요한데, 괜한 걱정일까? (작은책, 2016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