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15. 6. 29. 00:03


지구온난화가 어제오늘 아니니, 재작년 여름도 더웠을 것이다. 올해는 그 정도가 심회되었는지, 5월부터 무더위가 몰아쳤지만 실내에 머무는 한 결코 덥지 않다. 여름 더위가 본격화되면 가방에 두툼한 스웨터를 챙겨야 할 지경으로 에어컨은 빵빵하다.


재작년 정부는 에너지 절약 코스프래에 여념 없었다. 전력예비율이 바닥이라는 둥, 이러다 블랙아웃으로 산업이 마비된다는 둥, 전국의 전력회사 사무실을 비롯해 관공서의 냉방 상한선은 상향 조정되었다. 방송매체를 활용하며 흐르는 땀을 감내하는 공무원의 살신성인을 한껏 보여주자 공무원을 자녀로 둔 어버이들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는데, 으름장도 잊지 않았다. 에어컨 바람을 밖으로 내보내며 손님 유혹하는 상가를 가만두지 않겠다며 별러, 여러 사람 뜨끔하게 했다.


공공장소에서 땀을 연실 닦아야했던 2013년의 기억은 이듬해 에어컨 바람에 얼어붙었다. 이른 여름부터 등골이 오싹했던 시민들은 에어컨 바람이 이끄는 상점에 들어가 화장품을 골랐고 여름방학을 앞둔 대학은 스웨터로 짧은 치마 위를 무릎까지 덮은 여학생들의 불만이 터졌다. “추워요!” 올해는 5월부터 그런 풍경이 연출되었다. 3기의 핵발전소가 추가되었고, 가동을 기다리는 핵발전소는 전례 없는 전력예비율을 약속하지 않는가. 대한민국의 여름을 얼어붙게 만들 태세다. 덕분에 전국의 햇빛발전소들은 문 닫기 일보직전이다.


우리보다 여름이 덜 더운 독일은 유럽 최대 산업국가다. 전기를 그만큼 많이 소비할 독일의 실내가 여름에 얼마나 시원한지 그 여부를 모르지만, 고급식당은 휘황찬란하지 않다. 회의하려 들린 베를린의 최고급 한식당은 우리와 비교할 때 차라리 컴컴했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이후 자국의 핵발전소 17기 중에 9기를 즉각 꺼서 그럴까? 전기가 모자라면 산업이 마비되므로 고급식당도 자진해서 손님이 앉지 않은 자리의 실내등을 밝히지 않는 걸까?


독일이 2022년까지 핵발전소를 모두 폐로하기로 결정하고 우선 오래된 9기의 가동부터 멈추자 미국 언론은 프랑스에서 전기를 수입할 거로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오히려 프랑스가 독일에서 전기를 수입하는 게 아닌가? 핵발전소의 가동을 멈추기 훨씬 이전부터 전국의 지붕에 태양광 발전장치를 부착한 독일은 핵에너지를 대체할 전기가 어느 정도 준비돼 있었지만 소비전력의 4분의3을 담당하는 핵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를 흥청망청 쓰는데 익숙한 프랑스는 대안이 태부족했다. 발전설비가 오래된 만큼 고장이 잦고, 고장 때마다 큰 용량이 줄어드니 허둥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위험한 방식이라 평가되는 경주 월성의 핵발전소 1호기의 수명을 2022년까지 연장했는데 독일은 전력부족을 감내하면서 가동하던 핵발전소를 즉각 껐다.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독일의 관계자는 일본처럼 과학기술 수준이 높은 국가에서 폭발한다면 핵발전 시설은 어느 곳에 있든 폭발할 수 있고, 폭발하면 그 피해를 감당할 수 없다고 믿기에 폐로하기로 결정하게 되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데 그런 결정은 왜 우리나라에서 나오리라 상상하기 어려운 걸까? 우리의 과학기술이 일본보다 빼어나고, 핵발전 시설이 독일보다 안전하게 관리되기 때문일 리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인 까닭이리라.


명절이나 연휴를 제외하고 거의 막히지 않는, 아니 평소 차 한 대 보이지 않을 때가 많은 고속도로를 바둑판처럼 국토를 누비게 만든 이는 누구일까? 고속도로를 구상하고 시공하는 결정권자들은 운전자들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았다. 오직 고속도로 사업자와 상의했을 따름이다. 주택이 모자란다는 민원의 발상지는 주택업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주택이 남아돌아도 계속 짓고, 소비를 창출하려고 언론을 동원한다. 불안 심리를 조성하려고. 전기가 모자라는지 소비자는 몰라야 하는가? 전기 필요성을 발전업자와 협의한 결과 여름철 실내가 얼어붙었다. 광고는 가스보다 전기렌지를 쓰라고 속삭인다.


핵발전소를 폐로하기 전, 독일은 17인이 참여는 위원회를 가동했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위원회는 독립적이고 투명했는데, 그 위원회에 핵발전소 관련자는 한 명도 참여할 수 없었다. 그들은 생산자, 다시 말해 소비자의 요구에 응해야 하는 사업자가 아닌가? 독일은 원칙에 충실했지만 우리는 사업자의 말만 들었다. 그러니 원천기술을 가진 캐나다도 포기하는 월성 핵발전소의 수명을 무모하게 연장했다. 수명을 연장할수록 발전사업자의 수익은 늘어난다. 소비자의 감시가 차단되면 온갖 비리와 부정이 판을 친다. 복잡하고 크고 위험할수록 투명한 운영과 독립된 감시가 없을수록 사고확률은 높아진다.


수백 개의 전력회사가 경쟁하는 독일에서 마을은 전기 공급업체를 주민의 합의로 선정한다.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폭발 이후 많은 독일인들은 핵발전소의 전력을 되도록 회피한다. 그러자면 화력발전소의 전기를 받아야하지만 화석연료를 태우는 화력발전은 환경오염물질이 상당히 쏟아낸다. 최첨단 저감장치를 달더라도 완벽한 건 아닌데, 현재 기술로 초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는 걸러내지 못한다. 폐를 위협하는 초미세먼지는 수명을 단축시키고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다. 화력발전마저 싫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후손에게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 태양과 바람이다. 마을은 전기를 자급하기로 마음을 모은다.


산업체에 원가 이하로 공급해 전기 소비효율의 기술개발을 등한시하게 만든 우리의 전력요금 체계는 비정상이다. 독일 산업체는 에너지 효율이 높다. 지붕마다 태양광 발전장치를 붙인다. 그래도 전기가 모자라다면? 전기를 덜 쓰기로 마을은 합의한다. 핵발전소 9기를 한꺼번에 꺼도 산업이 마비되지 않는 비결이 거기에 있다. 평소 펑펑 전기 소비하는 생활에 익숙한 프랑스로 독일이 전기를 수출할 수 있는 설명이기도 하다.


결국 민주주의다. 2025년까지 핵 의존도를 50% 이내로 낮추기로 결정한 프랑스가 상업지구의 모든 옥상에 태양광 발전장치의 부착을 의무화한 이유도, 독일이 핵발전소를 끄고 에너지 자립마을이 늘어나는 이유도, 민주주의다. 독일보다 화창한 날이 많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에너지 민주주의를 이뤄야 하나? (작은책, 2015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