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1. 6. 20. 00:05

 

탈핵, 포스트 후쿠시마와 에너지 전환 시대의 논리, 김명진 외 지음, 이매진, 2011.

 

 

지난 6월 중순, 일본 동북부 후쿠시마 현을 지난 바람이 우리나라 쪽으로 불었다. 편서풍 지대에서 편동풍이 거세게 휘몰아친 건 물론 아니었다. 태풍이 아니라 그런지, 우리 기상대는 사소한 편동풍 따위에 주목하지 않았지만, 체르노빌 이후 민감해진 독일은 일본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동아시아의 기상을 예측했고, 일본 동경전력의 사고 수습에 관심을 놓지 않는 일부 언론에서 독일의 예측을 보도했건만, 우리 기상대는 작은 비가 내릴 확률이 지역에 따라 다소 높다는 점을 예보하는 데 그쳤다.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은 우리 상공은 일본 동북부에서 퍼져 지구를 한 바퀴 돈 방사성 물질이 자동차 배기가스와 더불어 비록 희석되었더라도 모였을 게 틀림없다. 후쿠시마 현의 바람까지 도달했을 바로 그 시간, 우산 없다면 부담스러울 정도 내린 빗물에 방사성물질이 부담스럽게 섞였을 텐데, 대학 등록금 반값 논쟁이 주요 뉴스를 잠식해서 그런가, 비 맞는 시민들의 표정에 위기의식이 없다.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비를 맞는 관객들은 흥건히 젖은 구장에서 공을 던지며 치고, 뛰며 구르는 선수들을 흥에 겨워 응원했다.

 

구소련의 체르노빌에서 폭발한 지 25년 이상 흐른 지금도 위험반경을 줄이지 않는 방사성 물질은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의 건강을 대대손손 위협한다. 3월부터 후쿠시마에서 확인하듯, 탑승하지 않으면 공포를 느낄 필요가 없는 비행기나 자동차와 달리, 폭발 사고는 즉각 세계를 위협한다. 지구촌에 감당할 수 없는 민폐를 거듭 안기는 그 사고의 원인을 지진에 이은 쓰나미에 돌릴 수 없다. 그런 공감대에서, 단층대 바로 위에 안전장치를 과신한 발전소를 몰아세운 자본의 탐욕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동의한다. 그 발전소가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는 이라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30억년 지속된 생태계를 몇 번이나 거세할 태세의 핵무기들은 폐기하는 게 타당하지만 평화적으로 이용하는 원자력은 용인해야 하나. 희한하게 무기 앞에는 , 발전소 앞에는 원자력이라는 글자를 붙이는데, 핵과 원자력은 무엇이 다른가. 시민 대다수는 원자력문화재단의 집요한 광고에 현혹돼 그런지, 핵무기는 반대하지만 원자력발전을 막연히 찬성한다. 반면, 핵무기의 재료를 발전소에서 모아들이는 권력자는 잘 안다. 같은 거라고. 그래서 원자력발전이라는 말은 틀렸다. 핵무기처럼 핵분열로 에너지를 얻으니 핵발전이라 해야 옳다.

 

유일하게 핵무기 공격을 받은 일본은 물론이고,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 피해를 가장 심각하게 받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도 핵발전소를 마다하지 않는다. 연료가 풍부하기 때문에?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기 때문에? 전기 생산 비용이 낮기 싸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더욱 엄격하게 관리할 것이기 때문에? 의외로 많은 시민들이 그리 생각한다. 지구촌 어느 곳보다 핵발전소의 밀도가 높은 우리 처지를 크게 걱정하지 않으며, ‘전기 없이 살 수 없으니 양해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조심스레 짐작할 뿐이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발굴과 보급에 앞장서는 세계 여러 지역을 방문한 뒤 착한 에너지 기행을 기획 발간한 에너지 기후 정책 연구소에서 이번에 탈핵, 포스트 후쿠시마와 에너지 전환 시대의 논리를 엮었다.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다고 자부하던 우리 옆 나라에서 핵발전소를 터뜨렸으니 필자들은 마음이 급했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내 땅에 확보하자는 운동보다 당장 온 나라를 도가니처럼 감싼 핵발전소부터 정리하고 싶었을 터. 당장 꺼야하는 당위성을 알리는 운동에 나서야겠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신화에서 여태 벗어나지 못한 시민들을 깨닫게 해야 했다. 핵의 본질이 무엇인지 시민이 알아야 우리도 핵 없는 세상으로 개과천선하지 않겠나.

 

그래서 집필에 참여한 젊은 저자들은 사고 이후 시시각각 변하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끔찍한 현황을 추적하기보다 원자력이라는 신화를 극복하고 탈핵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탈핵, 포스트 후쿠시마와 에너지 전환 시대의 논리를 펼쳐냈다. 기술사를 공부하고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위한 시민운동에 나선 저자는 핵무기와 필연적인 관계를 가진 핵발전의 맥락을 역사적으로 살펴보았고, 에너지 정책을 연구하는 저자는 안전을 무모하게 확신한 일본에서 어쩌면 필연적으로 발생한 폭발사고는 우리 에너지 정책을 돌이키는 교훈이 되어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경제적이지 않고 지구온난화에 기여하는바 거의 없는 사고뭉치 핵발전소는 없어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냥 증설할 뿐 아니라 낡은 발전소의 수명을 막무가내로 연장하고, 심지어 수출을 자랑하는 우리의 현실을 실증적인 예를 들며 크게 걱정하는 환경운동가의 글에 이어 우리보다 넓은 땅에서 적게 가동하던 핵발전소를 독일은 왜 중단하기로 결정했는지, 그 대안으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찾으려 어떻게 애를 쓰고 있는지, 기후관련 시민운동에 앞장서는 기술사 전공의 학자가 글을 이었다. 결론은 역시! 시민의 힘이었다. 우리보다 해안선이 짧고 높은 산이 드문 독일에 햇볕이 강하지 않건만 시민의 노력으로 태양과 바람에서 얻는 에너지를 빠르게 마을 단위로 확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일을 생각하는 자세가 문제일 뿐, 우리라고 불가능할 리 없다.

 

소비자의 처지에서 기후변화정책을 공부하는 저자는 우리 땅에 핵발전이 없어도 에너지 활용이 충분하다는 걸 밝힌다. 태양이나 바람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는 물론이고 생물자원에서 얻을 수 있다는 거다. 물론 거대자본이 중앙에서 공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필요한 만큼 마을에서 생산해 자급하되 에너지의 낭비구조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걸 지적한다. 그래야 시민의 뜻을 모아 탈핵으로 갈 수 있다는 건데, 탈핵은 곧 비핵이다. 핵을 아예 없는 세상이다. 탈핵, 포스트 후쿠시마와 에너지 전환 시대의 논리는 자식 키우는 독자에서 비핵의 당위성을 안내한다. (우리와다음, 20117-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