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18. 1. 26. 22:36

 

지난해 127, 서울시 노원구는 색다른 주택을 공개했다. 태양광으로 전기를 자체 생산하고 냉난방은 지열로 해결하는 에너지 제로(EZ) 주택이다. 화석연료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주택으로, 연간 사용하는 에너지와 생산하는 에너지의 양이 같기에 에너지 제로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담당자는 뿌듯해했다. 여름철 냉방기기를 24시간 가동하더라도 기존 주택보다 소비 전력을 60% 이상 줄이고 전기요금을 90% 이상 낮출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집밖의 에너지는 받아들이되 집안에서 발생한 에너지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단열하는 주택을 흔히 패시브하우스라 하는데, 독일 프랑크푸르트 시는 2009년 이후 신축하는 모든 건물에 의무화 했다. 그에 반해 액티브하우스는 능동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주택으로 보통 태양광 패널을 지붕에 붙이거나 지열을 활용한다. 노원구의 그 주택은 패시브와 액티브를 동시에 활용했다. 석유나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냉난방이 가능하다는 건데, 우리나라에 비슷한 성격의 단독주택은 더러 있다. 하지만 아파트와 연립과 같은 공동주택은 노원구가 최초라고 한다.


강원도 홍천에 에너지 제로 주택이 있어 10여 년 전 방문한 적 있다. 한반도 남쪽에서 가장 추운 마을이라는 살둔에 위치한 120제곱미터 규모의 그 집은 지열을 활용하지 않고 러시아 식 벽난로인 페치카로 난방을 하는데, 집주인은 한 단 정도의 장작으로 섭씨 영상 20도 내외를 1주일 이상 유지한다고 방문자에게 설명했다. 패시브하우스는 내부에 아르곤 기체를 채운 3중창을 설치하는 게 보통이지만 살둔은 2중창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장담한 집 주인은 두툼한 특수 소재의 단열이 필요해 많은 건축비를 감당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노원구의 EZ주택을 방문한 대통령은 순수한 우리 기술로 건설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지만 우리나라의 에너지 제로 주택 보급은 이제 시작이다. 정부와 기업의 협력으로 시공한 노원구의 EZ주택은 공동주택이라 해도 규모가 작다. 6121세대의 주택은 39제곱미터에서 59제곱미터의 면적이다. 공공건물부터 패시브하우스를 의무화한 독일은 관련 기술을 선도할 뿐 아니라 자재의 단가를 대폭 낮출 수 있었기에 민간 건물에 의무화를 추진할 수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다. 집중적인 연구와 개발로 지금보다 저렴하고 효율적인 주택을 폭넓게 보급할 수 있어야 한다.



사진: 2017년 12월 7일 공개한 서울시 노원구 소재 에너지제로(EZ) 주택의 전경.


노원구 EZ주택의 출현을 계기로 우리 정부는 2025년까지 제로하우스 수준으로 단열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다행인데, 이후 구체적인 계획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지금도 맹렬하게 올라가는 전국의 초고층아파트는 정부의 방침에 발맞출 의지가 없어 보인다. 당장 외국 기술과 자재를 도입하려면 비용이 상승하기 때문일 텐데, 공공건축물에 EZ기술을 의무화하겠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환경단체가 제안하면 비용 부담을 핑계로 난색을 표하는 지자체가 여전히 수두룩한 실정이 아닌가.


공공 또는 민간 주택에 적용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울까? 단가가 높은 우리 기술이든 수입해야 할 외국 자재든, 건축비가 주택의 원가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은 게 현실 아닌가. 요사이 서울 강남의 주택은 평당 5천만 원을 호가한다. 강남까지 예를 들 필요가 없다. 에너지를 과다하게 낭비하는 수도권의 웬만한 주택의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한지 오래다. 그런 주택을 재개발하든 리모델링하든, EZ기술로 에너지 수요를 줄이려는 노력은 의지가 문제일 뿐, 당장이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에너지 제로는 지구온난화와 석유위기 시대를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기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최선일까? EZ기술의 핵심은 단열이다. 살둔은 일반 주택보다 2배 이상 두꺼운 특수한 단열재를 사용했는데, 불에 약한 석유화학제품이다. 작년 1221일 제천시 스포츠센터에서 보듯, 석유화학제품을 사용한 건물은 삽시간에 화재로 소실될 수 있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데, 철두철미한 단열은 환기를 어렵게 만든다. 창문을 열 수 없는 겨울철은 모터를 동원하며 강제로 공기를 순환해야 질식을 면할 수 있다고 한다.


옷을 입으며 추운 지역으로 삶터를 확장한 조상은 나름 단열에 관심을 가졌다. 석유화학제품을 몰랐으니 자연소재를 사용했고, 밀폐가 충분치 않아 냉기가 스며들어도 견뎌냈다. 건축 기술이 전에 없이 향상된 오늘, 석유제품을 대체할 자연소재가 등장한다. 흙도 그 중 하나다. 강화에 20여 년 전에 지은 흙벽돌집이 있다. 유기농 관련 모임 장소로 유명한 그 집은 실내 공간이 넓은 2층 규모인데 난방에 특별한 비용을 추가하지 않는다. 외벽을 2중 흙벽돌로 지어 단열이 충분하기 때문이라고 그 집을 직접 지은 주인은 말하지만 그 사이에 스티로폼과 같은 단열재를 전혀 넣지 않았다.


흙벽돌이라도 빈틈없이 마감하면 겨울철 외부의 냉기 뿐 아니라 여름철 외부의 더위를 효과적으로 차단한다. EZ주택만큼 철저하지 않지만 기존 주택보다 효율적이다. 흙벽돌 사이에 석유화학제품이 없으니 화재로 유독가스가 발생할 리 없다. 심층 연구하면 고층은 아니더라도 여러 가구의 생활이 가능한 공동주택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태양광 패널을 넓은 지붕에 설치한다면 전기 역시 어느 정도 자급할 수 있을 텐데, 흙벽돌 공동주택이 일반에 보급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건축소재는 흙벽돌뿐이 아니다. 짚이나 나무로 짓는 주택도 있다. 하디만 자연으로 돌아가는 소재로 단열하는 주택은 대체로 춥다. 미세하게 공기가 통하므로 외부 냉기가 스며들고, 난방을 멈추면 EZ주택보다 빠르게 실내가 차가워진다. 단열이 완벽하지 않으므로 그 건물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겨울철 외투를 입는 걸 당연시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강화 흙벽돌집에 모이는 사람들은 주방의 열기와 약간의 난방, 그리고 사람들의 온기로 견딜만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동의하며 외투를 벗지 않는다.


흙과 볏짚으로 단단하게 뭉쳐 말린 벽돌은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마을을 만들면 어떨까? 난방 부담을 최소화하는 작은 주택을 여러 채 지어 모여서 살면 어떨까? 기말이 보장이 필요한 부부나 가족 공간은 면적을 줄이고 함께 사용하는 공간, 예를 들어 식당이나 회의실, 아이들의 놀이와 공부방을 키울 수 있다. 크고 작은 지붕에서 생산하는 전기 뿐 아니라 빗물을 활용하고 마을 공동 텃밭에서 푸성귀를 자급하며 이웃은 돈독해질 수 있다. 땅값이 비싼 도심은 어렵더라도 변두리나 농어촌은 가능하지 않을까?


공동주택에서 지속 가능한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가능성을 선보인 노원구의 EZ주택은 커다란 진전을 보여주었다. 지원 제도가 뒷받침되며 민간 차원의 보급이 확대되길 바라면서 자연 소재를 적극 사용하는 EZ주택의 연구가 뒤따를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천편일률적 아파트 위주의 주택은 지겹다. 겹겹이 쌓인 주택은 낯선 주민을 모았지만 아파트의 크기와 자동차 가격으로 비교하는 단지에서 이웃은 다정다감할 수 없다. 건축업자의 이익에 충실한 초고층 아파트단지 위주의 지역의 정체성을 짓밟는다.


석유와 시멘트보다 이웃의 냄새가 즐거운 작은 규모의 마을이 지속 가능하다. 규모가 작은 EZ주택은 이제 시작이다. 정체성이 살아나는 정주 공간, 과시하는 주택이 아니라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주택으로 이어지는데 EZ주택이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작은책, 2018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