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0. 3. 20. 21:58

어떤 분야든 시민운동가라면 한번 쯤 느꼈을 자신의 한계. 환경운동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민들이 발 벗고 나설 정도로 절박한 상황을 절절하게 알리고 대안을 찾아 함께 행동하게 만들어야 할 텐데, 도무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서슬이 퍼렇던 군사독재 시절, 머리 띠 두르고 거리에 나가 목청 터져라 구호 외치는 집회와 시위를 벌일 때 삼삼오오 불안한 듯 지켜보는 시민들의 가슴을 움직이게 했지만, 군사독재보다 교활한 금권독재가 판치는 이 시대, 효과를 잃었다. 요즘 시민운동은 재미와 감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어디 소설가 없나. 얽히고설킨 환경 문제를 한 꼭지의 시로 설득력 있게 풀어내기 어려울 테니 시민들을 움직이게 하는데 역시 소설이 좋겠는데, 파악한 실상을 알리려 몸을 아끼지 않는 환경운동가는 두리번거린다. 소재를 제공해줄 테니 재미와 감동을 담아 독자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소설을 절절하게 쓸 소설가에 목이 마르다. 하지만 의식이 없는 소설가가 쓴 환경소설은 대체로 공허하다. 그렇다고 환경운동가가 직접 소설을 쓸 수 없는 노릇이다. 쓴다면 읽는 이가 한심하기 그지없다 여길 게 틀림없다. 문제의식을 가진 소설가가 나서야 할 텐데, 그런 이가 어디 흔한가. 의식이 남다른 소설가가 절박한 마음으로 쓴 소설이라고 해서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환경운동가는 소설가를 애타게 찾는다.

 

어니스트 칼렌바크. 그는 소설가다. 무소불위의 군사정권이 힘을 잃어가던 1990년대 초, 이 땅에 조심스레 선보였다 잠시 인기를 끈 소설 《에코토피아》를 1975년에 써서 일약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 그는 작년 우리에게 소개된 소설 《에코토피아 비긴스》를 1981년에 썼다. 그 두 권의 소설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번역돼 소개되지 않은 소설이 더 있다. 그런 어니스트 칼렌바크는 환경운동가다. 그의 소설 대부분이 환경의 근원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기는 하지만 80세를 훌쩍 넘긴 그는 여전히 미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생태주의 시각으로 환경 강연에 나선다. 그는 작년에 우리에게 소개된 《생태학 개념어 사전》을 1998년에 썼다.

 

생태학과 낙원의 의미를 가지는 합성어 ‘에코토피아’는 ‘생태천국’이 되려나. 소설 속의 에코토피아는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오리건과 워싱턴 주를 아우르는 지역이 미연방에서 이탈해 독립한 국가다. 이후 교류가 차단되어 실상이 알려지지 않아 억측만 난무하는 작은 나라 에코토피아로 타임스 포스트 지의 윌리엄 웨스턴 기자가 독립 20년 만에 취재차 공식 방문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기자가 송고하는 24개 파일을 빌려 어니스트 칼렌바크는 다음 세대를 위한 생태천국을 실감나게 그렸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받은 기자의 첫 번째 충격. 넓었던 간선도로는 2차선으로 줄고 나머지는 새들이 지저귀는 공원으로 변했다. 넘치던 승용차는 간 곳 없고 전기로 움직이는 괴상망측한 미니버스와 택시, 손수레와 자전거가 널려있다. 5분 간격으로 시속 16킬로미터의 전기 버스가 다니는 시내는 잉어가 노는 생활하수가 정화되어 흐르고 디자인이 촌스러워도 개의치 않는 시민들의 옷은 천연 섬유나 가죽으로 만들었다. 형편없는 침대에 사치스런 이불, 구식 화장실에 고급 나무 욕조, 모순에 찬 모습은 서방 기자의 상식을 어지럽힌다.

 

자본을 빼돌린 자들이 빠져나가 국민소득이 3분의1로 위축되었지만 시민들이 유쾌하기만 한 에코토피아의 이모저모를 취재하면서 기자의 충격은 거듭된다. 식량을 완전히 자급자족하는 삶은 철두철미하게 재생 가능한 자원과 에너지에 의지한다. 집은 썩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었고 경쟁이 사라진 학교는 학력조차 따지지 않는다. 정규 프로그램이 없는 텔레비전 방송과 환자의 처지에서 치료하는 병원은 차라리 당혹스럽다. 목재와 플라스틱의 원료로 사용하는 울창한 숲을 지속가능하게 벌목하고, 에너지는 태양과 바다에서 얻는다. 특이한 건 야만스런 전쟁놀이다. 인간의 폭력 충동을 그렇게 달래는 전쟁놀이는 원초적이기는 해도 인간의 냄새가 스몄다. 서방 세계의 전쟁보다 절대 잔혹하지 않았다.

 

《에코토피아 비긴스》는 그런 에코토피아가 독립할 수밖에 없는 과정을 그렸다. 어니스크 칼렌바크는 《에코토피아》가 크게 성공하자 미국과 같은 국가에 왜 생태천국이 필요한지 독자와 이야기 나누고 싶었나보다. 자본이 생명과 민주주의를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태적 삶은 애당초 영위하기 불가능하다는 걸 독자에게 귀띔해야 했을까. 《에코토피아》에서, 취재가 끝날 무렵, 독립에 앞장섰던 여성 대통령을 만난 웨스턴 기자는 뭔지 모를 고민과 심각한 열병을 앓더니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자 씻은 듯 나았고 고민도 사라진다. 그리고 취재 중 만나 사랑을 나눈 산림관리원과 결혼을 결심한다. 자유로운 성도 어니스트 칼렌바크가 꿈꾸는 생태천국의 밑그림이므로.

 

어니스트 칼렌바크가 그린 에코토피아, 다시 말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의료, 과학…, 서양인이 생각하는 생태천국은 우리가 꿈꾸는 생태천국과 같지 않을 수 있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리와 세월의 차이는 가치관이 다른 생태천국을 그릴 것이다. 영국의 토머스 모어는 1516년 어디에도 없어도 누구나 꿈꾸는 유토피아를 그렸다. 윌리엄 모리스는 1890년에 어디에도 없는 곳에서 들리는 생태천국을 이야기했다. 어니스트 칼렌바크는 자신보다 먼저 상상의 나래를 편 두 영국 작가의 책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모르는데, 어니스트 칼렌바크의 소설 두 권까지 더 섭력한 우리는 어떤 에코토피아를 꿈꿀 수 있을까. 그러나 아직 우리 식의 생태천국을 그린 소설은 만날 수 없다.

 

생태천국을 그리려면 생태학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흔히 생태사상이라 말하는 개념도 익히면 좋겠지. 70세에 이른 어니스트 칼렌바크가 쓴 《생태학 개념어 사전》은 오랜 환경 강의에서 얻은 그의 경험이 녹아든 사전이다. 아니 사전이라기보다 생태학 개념 안내 소책자 정도라고 할까. 생태학에 대한 식견이 없어도 현실의 환경에 깊은 문제의식을 가졌다면 누구나 쉽게 읽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개념들을 종횡으로 이어준다. 간단한 단어풀이가 아니다. 제석평전의 인드라망처럼 얽히고설킨 온갖 생태적 개념을 재미와 감동으로 엮어준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은 생명공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고 환경정의는 생물권의 위기와 밀접하다. 《생태학 개념어 사전》의 아무 페이지를 펼치면 생태주의자 어니스트 칼렌바크의 안내를 두루 받을 수 있다. 현실에서 에코토피아를 꿈꿀 수 있도록.

 

1991년 출간된 《에코토피아》는 현재 절판되었다. 헌책방에 발품 팔아도 구하지 못하게 된 지 오래되었다. 환경단체인 환경정의에서 ‘환경책 큰 잔치’를 열 때마다 다시 출간하길 바라는 도서 명단에 올리건만, 돈이 되지 않을 거라 예단하기 때문인지 감감무소식이다. 출판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도 도솔 출판사에서 《에코토피아 비긴스》를 펴냈으니 판권을 가진 정신세계사가 《에코토피아》를 다시 출간하면 좋으련만 희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에코토피아 비긴스》에 이어 《에코토피아》를 재미있게 읽고 감동을 받은 독자가 《생태학 개념어 사전》까지 독파한다면,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환경운동가의 절박한 심정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텐데. 환경운동가만이 아니라 자식 키우는 시민도 생태천국을 꿈꾸며 행동에 나설 수 있을 텐데. 아쉽다.  (불교환경 5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