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10. 14. 00:42

 

참 단순한 놀이였다. 가을걷이 마친 들판에서 아이들은 전승된 노래를 불렀다.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술래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며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잠잔다”, “잠꾸러기!”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세수한다”, “멋쟁이!”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 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죽었니, 살았니?” 한 다음, 술래가 “죽었다!” 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살았다!” 하며 휙 뒤돌면 술래에게 잡히지 않게 우르르 달아나야 했다.

 

그때도 본 적 없는 여우의 이야기와 속담은 많았다. 여우가 마을을 향해 울면 초상이 난다거나 백년 묵은 여우는 변신술이 능하다 했고 제아무리 교활한 여우도 시내를 건너 뛸 때 꼬리에 물이 묻는 법, 같은 죄를 계속 저지르면 결국 들통나기 마련이라고 했다. 간사스러움이 여성의 특징이 아니건만, 남성이 퍼뜨려서 그런지,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늙은 여성을 여우에 비유하면서도 “여우하고는 살아도 곰하고는 못 산다.”고 했다. 앙큼한 여성과는 살 수 있어도 미련한 여성은 싫다는 속담이란다. 이런, 곰에게 미안할 노릇이다.

 

여우는 교활한가. 대개 깔끔한 오소리 굴을 차지하는 여우는 오소리가 나간 사이 일부러 자신의 배설물을 흩어놓는다는 걸 실증적 예로 든다. 지독한 냄새에 진저리를 치던 오소리가 떠나는 걸 알기 때문이라는데, 교활하기보다 영민한 게 아닐까. 둔갑술이 묘하다던데, 야음을 틈타 인가 근처 들판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며 들쥐나 토끼들을 잡아먹는 모습을 멀찍이 본 사람의 착각이 아닐지. 아무튼 인간이 붙인 부정적 상징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 땅의 전설을 풍요롭게 만든 여우는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칠흑 같은 밤길, 굽이굽이 고개를 넘으면 보였던 불빛 희미한 오두막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천적이 사라진 강산에서 여우마저 사라진 현상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야생동물 학자도 있다. 심심산골까지 쫓아간 사냥 때문이라거나 1960년대 전국에서 일제히 놓은 쥐약이 원인이라고 분석하곤 하지만, 그렇다고 깊은 산골의 여유까지 자취를 감출 리 없다는 거다. 민족혼 말살을 위해 일제가 전멸시켰다는 호랑이처럼 덩치가 큰 표범과 늑대도 그때 사라졌지만 여우는 개보다도 작지 않던가. 수달피를 위해 전국의 포수들이 요란하게 잡아대던 수달은 요즘 웬만한 계곡마다 모습을 드러내 개발업자의 발목을 잡건만, 여우는 왜 아직도 자취를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가죽을 벗기기 위한 은여우 사냥이 끔찍한 사육으로 이어진 건 그만큼 털이 곱기 때문일 텐데 은여우와 사촌인 우리 토종도 그 못지않을 건 불문가지. 싸구려 수달피에 식상한 포수들은 눈을 밝히고 산골을 누볐을지 모른다. 다른 이유도 상상할 수 있겠다. 영국의 여우사냥을 보라. 동물보호단체에서 아무리 문제를 제기해도 최근까지 총을 쥔 부자들의 전통 스포츠 반열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늑대나 승냥이처럼 툇마루에 엉금엉금 기어나온 아기를 물어가지 않았건만,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둔갑을 한다는 둥, 교활하다는 둥, 가진 이유를 붙이며 결국 모조리 사살한 게 아닐까. 돈도 돈이지만 총을 쥐어주자 손가락이 그만큼 근질근질했을지도 모른다.

 

교활하기보다 영민하니 꼭꼭 숨어있을지 모른다. 천연기념물 수달도 그랬다. 사냥꾼이 설칠 때 보이지 않더니 서식지를 보전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가.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띈 갈색이지만 귀 뒤와 발등이 검고 목과 가슴이 희며 귀가 삼각형인 토종 여우도 마찬가지 아닐까. 더구나 여우는 아직 천연기념물도 아니다. 인적이 드문 1, 2월 산간에서 짝을 만나 두 달 가까운 인신 기간을 거쳐 초식동물이 동면에서 깨어나는 3, 4월 예닐곱 마리의 새끼를 낳는 여우는 전국의 산간 계곡을 수렵장으로 여기는 인간들이 엽총을 내려놓지 않는 한, 은둔을 멈추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토종 여우가 우리 산하에 나타났다고 한다. 2004년 3월 23일 강원도 양구군에서 입가에 피를 흘린 채 죽은 성체로 발견되었어도 노력하면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건졌다. 독극물에 중독된 동물을 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양구의 여우는 1978년 지리산에서 사체가 발견된 이래 26년 만이었다. 그에 고무된 환경부는 전문가를 동원, 전국에 100여 마리의 여우가 생존할 것으로 추정했다. 강원도 양구군은 물론, 경북 봉화와 문경군, 경남의 하동과 지리산에서 목격담이 이어진다는 거였다. 얼마 전에는 50년 동안 사람의 출입이 차단된 비무장지대에서 배설물이 발견되었다니 이제 수십 대의 감시 카메라에 살아 움직이는 여우가 잡히기만 하면 된다.

 

내 땅에서 찾지 못할지라도 수입해서 복원하면 소원을 이루는 걸까. 북한에서 15마리의 토종 여우를 수입한 서울대공원은 올해 5월 3마리의 새끼가 그것도 암컷으로 태어났다고 반가워했다. 앞으로 2, 3년 자연 번식을 시도한 뒤 방사할 것을 고려하는 연구자에게 경북 영양군이 자원을 했고, 올 8월 ‘토종 여우 증식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한다. 현재 개체수를 늘리기 위한 우리를 확보했다는데,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양해각서에 여우의 행복은 반영되지 않았다. 토종 여우로 생태관광 붐을 조성해 지역 경제를 일으키겠다는 영양군과 자연 번식이 어렵다면 복제나 인공수정도 고려할 예정임을 밝힌 연구진의 포부는 여우 눈높이의 보전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일본도 우리처럼 햇볕이 있는 날 잠깐 뿌리다 그치는 비를 ‘여우비’라 한다. 신출귀몰한 여우를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닐까. 중국과 일본의 전설은 꼬리가 9개인 여우 ‘구미호’를 표독스럽고 간사한 여성으로 그리는데 우리는 다르다. 인간이 되고 싶은 아리따운 여성이었다. 다만 여자로 둔갑해 결혼까지 성공하는데 인간이 되기 하루를 남기고 그만 정체가 드러나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고 마는 내용으로 마무리한다. 무섭지만 가련한 짝사랑이 아닐 수 없는데, 아스팔트와 골프장과 스키장으로 난폭하게 끊긴 산간벽지에 은둔하는 토종 여우는 인간의 빗나간 짝사랑을 알기나 할런지. 이 땅의 토종 여우여 어디에서 뭐하던 감시카메라에 걸리지 말고 제발 온전하기를…. (전원생활, 2009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