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1. 5. 14:06

 

한 때 극심한 남아선호로 사회문제가 된 적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다. 사내가 대를 이어야한다는 생각이 완고한 경상북도 일부 지역은 3번째 아이에서 남여 불균형이 특히 심했다. 통계수치는 노골적 여아 낙태를 증명했는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수도권에도 남자아동이 지나치게 많은 건 마찬가지여서 초등학교에서 남학생끼리 짝이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시절이었다.

 

우리 정부에 여성부가 신설되고 여권을 도모하는 정책이 펼쳐지면서 우리사회에 남아선호사상도 희석되고 호주제도 폐지되었다. 이제 딸만 둘인 가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아들만 둘인 가정을 안쓰럽게 보는 분위기가 생겼다. 아들은 나이든 부모를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면서. 그 와중에 출산율도 상당히 줄어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는 국가 명단의 1, 2위를 다투게 되었고, 결혼연령은 크게 늘어 30세 이전에 결혼하는 젊은이가 어느덧 드물어졌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관계로 아직 인구가 조금씩 늘지만 머지않아 서서히 줄어들 것이다.

 

인구 감소보다 고령인구 증가 현상에 지레 겁을 먹은 정부는 ‘고령사회’의 도래를 엄중하게 경고하며 아이 더 낳기 운동을 서툴게 펼치지만 그 말에 경각심을 느끼는 젊은 부부는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돼지띠 해에 잠시 늘어난 신생아는 이내 줄어들었다. 젊은이 둘이 65세 이상 노인 한명을 부양하는 시기가 곧 도래할 거로 위기감을 조성하지만 젊은이들의 감각에 노인은 아직 없을 뿐 아니라 아직 건강하기만 한 제 부모를 노인으로 여기는데 거부감이 들 것이다.

 

65세 이상의 연령층도 거칠지 않다면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다. 20대부터 백수가 늘어나는 현상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는 세계 인구가 무섭게 증가하는 걸 위기로 느끼지 않는 가운데 아이를 더 낳으라고 성화하지만, 도무지 무책임하다. 에너지 고갈이 눈앞에 오자 식량위기가 앞당겨질 조짐을 보이는 국제 현실을 인식하는지 궁금하다. 세계 인구가 많아도 우리 인구를 늘이라는 정부의 권고는 후손의 안위를 염두에 둔 처사인지 어처구니없기 짝이 없는데, 청년백수 대책에 손놓은 정부에게 노인들의 일자리 보전을 요구하는 일은 차라리 연목구어(緣木求魚)겠다.

 

최근 노르웨이의 한 대학 연구팀이 환경오염과 기후변화가 심화되면서 신생아 성비가 역전되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고 연합뉴스(2009년 1월 4일) 인터넷은 전했다. 핀란드 일간지 기사를 소개하면서 “러시아 북동쪽 극지방에 거주하는 임산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환경오염이 심할 경우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가 더 많이 태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한 뉴스는 여러 대륙에서 발생한 산업오염물질이 해류와 기류를 따라 모여드는 극지방의 임신부 혈액을 조사한 결과, 폴리염화비닐(PCB)이 4피피엠 이상일 때 남자의 2배 이상 여자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자연은 위기 상황에 처할 때 스스로 방어하는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으로 해석한 연구 담당 교수는 생존이 불안할 정도로 먹이가 부족한 육식동물은 암컷을 많이 낳는 현상에 비유했다고 덧붙였다는데, 그런 징후는 도시에 뿌리내린 우리의 소나무에서 흔히 발견된다. 대기오염이 심해지면서 솔방울이 무수해진 거다. 이제 부지불식간에 오염물질에 찌든 사람도 절종 위기에 몰린 자연계 생물에게 나타나는 생존전략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몰린 모양이다.

 

척박한 환경의 집단일수록 생존은 여성이 좌우한다. 땅과 생명을 보전하는 몫을 담당하는 까닭이다. 과학기술을 믿고 자연을 지배했다고 오만해온 개발은 남성을 상징한다. 자연의 흐름을 교란하는 개발을 일삼아온 남성은 심각하게 드러난 생존의 위기 앞에서 깊이 반성하고 상처받은 자연을 치유하는 여성적 노력을 적극 배려해야 한다. 이제 산업사회의 유지를 위한 아이 더 낳기는 위기의 대안일 수 없다. 더 태어나는 여아를 더없이 고맙게 여기며, 늦기 전에 자연스런 삶에서 행복을 찾는 여성적 삶을 회복해야 한다. (요즘세상, 2009년 ?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