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0. 9. 4. 17:32

 

태풍이 지나간 주말, 아파트에 새시 사업자의 트럭이 바쁘게 움직인다. 어제는 하루 온종일 유리 파편 내버리는 소리로 시끄러웠는데 이제 새시 공사에 나섰나보다. 사실 베란다는 열린 공간으로 남겨두어야 집안이 안전할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집을 넓게 사용하고 싶은 마음은 화를 불러들였다. 베란다를 집안에 들여놓자 아래에서 올라오는 화재를 완충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번 태풍 곤파스가 창틀을 마구 흔들어대자 주민들은 새벽부터 마음을 졸여야 했다.

 

지은 지 20년이 된 연수구의 아파트들은 이번 태풍에 많은 피해를 입었다. 20년 전의 베란다 새시는 지금처럼 벽면에 단단하게 밀착되지 않았고 작은 바람에도 창틀이 흔들리곤 했는데, 이번에 사단이 났다. 큰 길 가에 위치한 아파트마다 많은 집의 베란다 새시가 떨어져나가거나 비틀렸고 커다란 유리가 깨진 것이다. 꼭꼭 닫은 새시의 틈을 파고들어오는 강력한 바람이 빚어내는 기괴한 음조는 새벽에 잠이 깬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기 충분했는데, 커다란 새시가 별안간 떨어져나가며 걷잡을 수 없는 바람이 방안으로 휘돌아 들어왔을 테니 얼마나 놀랐을까. 강화도를 상륙한 태풍이 이내 잠잠해지면서 제트기류를 타고 경기도 북부를 관통할 즈음, 구급차가 떠난 아침, 견고하다 믿었던 아파트는 서툰 개발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깨져나간 베란다 새시만이 아니었다. 놀이터에 그늘을 드리우던 커다란 느티나무가 뿌리를 내놓고 누운데 그치지 않았다. 근린공원에서 지하철로 이어지며 아기 손잡고 산책하는 주민과 출퇴근 인파에 볕을 차단해주던 소나무와 벚나무들도 뿌리 째 뽑혀 길을 가로막았다. 거리는 도로를 향해 쓰러진 가로수를 피하려는 자동차들이 조심스러웠고 보행자도로는 부러진 나뭇가지와 떨어진 잎사귀들이 가을 낙엽처럼 뒹굴었다. 상가 앞 녹지대의 히말라야시다와 일본잎갈나무는 넘어진 도미노처럼 처참했는데, 상가를 덮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거의 전부 곤파스의 오른쪽 반경의 폭풍이 휘몰아칠 때 벌어졌을 텐데, 쓰러지는 나무에 짓눌린 자동차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넘어진 나무들은 하나 같이 덩치에 비해 뿌리가 낮았다. 심을 때 뿌리를 감쌌던 비닐을 그대로 두었던 건 아닐까. 꽤 오랜 시간 그 자리에 묻혔던 뿌리는 심을 때의 크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비닐을 완전히 벗기고 심었다면 뿌리가 나뭇가지의 폭 이상 퍼졌거나 나무의 높이만큼 깊게 내려갔을 텐데, 아리송하다. 어쩌면 아직까지 서 있었던 게 용했는지 모른다. 당시의 조경업자가 책임을 지겠다고 쓰러진 나무를 일으켜 세워 다시 심는 모습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나이 든 경비들이 가지를 자르며 수습하느라 땀을 철철 흘리는데, 살아있는 나무들을 모두 제 때 세워놓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곤파스 내습이 남긴 피해를 모두 수습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텐데, 오키나와 일대를 휩쓰는 9호 태풍 말로가 우리나라, 그것도 다시 서해안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아직은 중형이라지만 해수면이 30도에 가깝게 뜨거운 바다에서 에너지를 연실 축적하면 곤파스보다 강력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모양이다. 서해안은 5일 만에 영향권에 접어들 것이라고 예보하는 기상대는 철저한 대비를 당부했다. 철저한 대비라. 베란다 새시를 잃은 시민들은 짧은 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답답하다. 자동차를 지하주차장으로 먼저 들여놓기 위해 이웃과 경쟁하는 것 말고 딱히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며칠 사이로 두 개의 태풍이 한반도 허리를 관통했던 사례가 있을까. 1995년 재니스 이후는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해마다 우리나라를 향하는 두세 개의 태풍은 대부분 남해안의 일부를 스쳐 동해안으로 빠져나가거나 일본 열도를 관통했지 이번처럼 중부지방을 휩쓸지 않았다. 인천 일원의 서해안은 특히 태풍 피해에서 멀었다. 한데 어찌된 영문인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풍이 거푸 올라온다. 이맘때 태풍이 진로를 그리 바꾼 원인을 기상대는 북태평양의 열대성 고기압이 대만 인근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고기압이 태풍의 진로를 압박했기 때문이라는 건데, 기상대는 원인보다 현상을 설명했을 뿐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왜 예년과 달리 확장된 것일까.

 

필리핀 동쪽의 태평양에서 발달하던 열대성 저기압이 요사이 그보다 북쪽인 오키나와나 대만 인근 해역에서 거듭 형성돼 우리나라로 향한다. 장마전선 뒤로 대지를 달구던 삼복더위가 식으면 한반도의 하늘은 파랗게 높았지만 요즘은 아니다. 언제부턴가 허리를 정체전선이 감싸고 국지성 호우를 쏟는다. 곤파스 직전에 200밀리 이상의 비를 송도신도시에 퍼부었던 정체전선은 전에 없던 현상이다. 제주도 남쪽 바다에서 형성돼 정체전선에 습기를 공급하는 열대성 저기압도 역시 전에 없던 현상이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가을장마’라는 용어도, 가을장마를 일으키는 ‘정체전선’도 한반도 인근 바다의 수온이 오르기 전에 없었다. ‘국지성 호우’도 마찬가지다. 100년 전보다 섭씨 0.7도 상승한 지구 평균보다 최근 15년 사이 두 배 이상 오른 한반도 인근 해역의 수온은 기상이변을 충분한 원인이 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연거푸 발생하는 기상이변의 실태를 미루어 생각해보자. 태풍의 연이은 내습과 열대성 저기압에 의한 잦은 국지성 호우, 가을장마를 부른 정체전선이 한반도 인근 해역의 온난화와 무관할까. 온난화되면서 미국의 남부를 할퀴는 허리케인의 힘이 3배나 강해졌고 태풍도 2배 이상 위력적으로 돌변했다. 적도 인근의 태평양의 수온이 예년보다 2도 이상 높거나 0.5도 이상 낮은 엘니뇨와 라니냐현상이 번갈아 발생하는 지구촌에서 기상이변은 속출한다. 한반도 인근 해역의 온난화가 일으키는 기상이변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슈퍼컴퓨터를 여러 대 돌리는 기상대의 전문가들도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는 마당이지만, 곤파스가 모종의 경고를 보낸 건지 모른다.

 

피해 당사자에게 조금의 위로도 되지 않겠지만, 사실 최근 10년 이래 가장 강력했다는 곤파스로 인한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재산 피해가 비교적 크지 않았고 바람이 거센 새벽에 거리를 나가지 않았다면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곧 다가올 말로는 어떨까. 온난화를 유발하는 한반도 주변의 개발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와 일본, 그리고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도무지 줄어들 징후를 보이지 않는다. 곤파스와 같은 피해는 예외적일까. 다가온다면 해안을 매립하고 최첨단 도시를 건설하려 혈안인 우리는 제2 제3의 곤파스에 철저하게 대비할 수 있을까.

 

우리 서해안의 갯벌은 태풍과 그로인한 해일을 얼마 전까지 완충해주었다. 드넓은 조간대가 육지까지 다가오기 전에 너울성 파고를 가라앉혔다. 이제 갯벌은 사라지고 있다. 새만금만이 아니다. 송도신도시, 인천공항, 남동공단이 그랬고, 앞으로 강화의 갯벌을 파괴하고야 말겠다는 조력발전이 갯벌의 순기능을 종식시킬 수 있다. 지구가 온난화되고 해수면이 상승할수록 해안의 개발은 신중해야 한다. 완충지대를 만들면서 해안을 보전하며 개발해야 재해를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는데, 시방 우리의 개발은 어떤 모습인가. 바닷가에 초고층 빌딩을 즐비하게 늘어놓는 송도신도시와 화려한 계획을 자랑하는 새만금, 세계 초일류라는 인천공항은 더욱 강력해질 태풍과 해일을 연거푸 막아낼 수 있을까.

 

이번에 뿌리를 드러내고 누운 연수구 일원의 나무들은 서툰 개발이 몰고올 내일의 필연적 피해를 경고한다. 기술로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인간의 오만을 경고한 곤파스는 지나갔다. 제2 제3의 곤파스가 다가오기 전에 우리가 취해야 할 대안은 무엇이어야 할까. 자나 깨나 개발을 외치는 이들은 자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구의 오랜 생태계와 공존할 수 있는 개발을 찾아야 할 텐데, 이 나라의 중앙과 지방정권은 어떤 대안을 절박하게 마련하고 있을까. 그 대안을 위해 강화조력은 마땅히 반려되어야 하는데, 어찌될 것인가. (인천in, 2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