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12. 13. 12:48

 

지구온난화에 이은 종잡을 수 없는 기상이변으로 요즘은 함부로 점칠 수 없지만, 찾아오는 물고기로 철마다 바쁜 곳이 아직 있다. 경북 영덕이다. 강원도 고성과 달리 영덕의 어항은 대게로 이맘때 흥청거린다. 고흥 하면 삼치, 제주 하면 갈치라면 영덕은 단연 대게다. 조기에서 꽃게로 황금어장이 바뀐 연평도와 그 점이 다르다.

 

먹이를 뜯는 앞의 2개를 제외한 8개의 다리가 무척 긴 대게는 분홍 찐빵 같이 둥근 몸집이 13센티미터로 커다랗지만 이름은 크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리가 대나무처럼 길어 대게다. 대게는 이맘때만 동해안에서 커다란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니다. 사시사철 머물지만 오로지 추운 겨울에만 잡아올리기에 이맘때 흔하게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조기가 사라지듯 남획할 수 없다고 여기는 어부도, 먹는 손님도 흔쾌히 자제한다.

 

대나무와 달리 수온이 낮을수록 속이 꽉 차는 대게는 단단하다. 게들이 다 그렇듯 껍질이 단단한 건 당연하지만, 대게는 다른 의미로 단단하다. 다분히 인간중심적인데, 탱글탱글하기 짝이 없는 담백한 속살이 꽃게와 달리 쉽게 빠지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영덕 일원은 한겨울마다 북적인다. 꽃게로 간장과 고추장 게장을 담가 며칠을 먹는 수도권의 시민들도 대게 찜을 푸짐히 먹자고 몰려든다. 그래서 대게는 영덕의 명실상부한 상징이 되었다.

 

‘한국 지역 브랜드포럼’과 한 중앙언론이 공동으로 평가한 ‘지방자치 브랜드 경쟁력지수’에서 2009년 최고점을 받은 영덕은 대게에 아주 적합한 서식 환경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돌초’라 하여, 폭 20킬로미터에 길이 50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암초들이 23킬로미터 동쪽 비다 속에 험준한 산기슭처럼 펼쳐진다는 게 아닌가. 수심이 30에서 500미터에 이르는 왕돌초에 집중 분포하는 대게들을 영덕의 어부도 울진의 어부도 잡아오는데, 어느 포구로 들어오는가에 따라 ‘영덕대게’나 ‘울진대게’가 되겠지만 우리 귀에 영덕대게가 익다. 해산물을 모아 나누는 교통이 유리했던 영덕의 기득권인데, 요즘 울진은 그 점을 억울해 할 수 있겠다.

 

수심이 30에서 2000미터에 이르는 차가운 바다를 좋아하는 대게 종류는 고려 태조 이후 영덕에 명성을 안겨주었다. 앞바다에 깨끗한 모래가 가득하니 살이 깨끗한데다 먼바다가 깊고 차가우니 찰지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그뿐이랴. 그린란드와 알래스카에서 캄차카반도를 거쳐 남방한계선인 동해안의 깊은 바다에 널리 이어지는 대게는 물이 차가울수록 속이 꽉 찬다는 게 아닌가. 미주와 유럽, 그리고 일본의 미식가까지 유혹한다는 겨울의 영덕대게. 고성에서 명태를 내쫓은 지구온난화는 영덕에 질투하지 않을 것인가.

 

G20 정상회의 만찬 상에 오른 대게는 울진과 영덕 일원에 해마다 2천억 원 이상을 챙겨주지만 최근의 어획고는 사실상 해마다 줄어든다. 2007년 4천 톤을 고비로 이듬해 2500톤에 그치더니 2009년에는 2000톤에 미치지 못했다. 대게에 경제 기반을 맡기는 지역은 특단의 대책을 세웠다. 먼바다는 11월부터 조업을 허용하지만 연근해는 12월부터 시작해 이듬해 5월로 마감하고 암컷의 포획은 철저하게 규제하며 수컷이라도 몸통이 9센티미터 이하는 잡지 않도록 다짐한 것이다. 다 자라도 몸통이 7센티미터인 암컷은 알을 가지면 찐빵처럼 빵빵한데, 잡는 자는 물론이고 먹는 자도 처벌받을 수 있다.

 

2월에 알을 낳는 암컷은 그러니 잊자. 제철 대게는 온난화 기운이 물러간 11월이 되어야 시작되지만 아무래도 한겨울이 제격이다. 바닷물이 가장 차가운 1월과 2월의 주말, 영덕 강구항과 울진의 후포항 앞의 포장도로는 두리번거리는 자동차들로 양방향이 막힐 테지만 두툼한 지갑을 준비한 외지인들은 조바심을 거둬야 한다. 용안이 더러워지는 것도 모르고 허겁지겁 먹는 모습 때문에 수라상 진상품목에서 제외해야 했다던 대게는 먹는 이의 체면을 망치게 하기 십상일 만큼 맛이 일품이므로 모처럼 제고장에 온 손님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기억에 남을 미각을 즐길 수 있다.

 

대파, 생강, 양파, 청주들을 넣고 설설 끓이는 솥 위에 얹은 찜통 속의 대게는 가격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대게의 가격은 어획고에 반비례하지 않던가. 어판장에서 1킬로그램에 2마리 정도 담기는 일반대게는 3에서 4만원, 속이 단단해 한 마리에 1킬로그램인 ‘참대게’ 또는 ‘박달대게’는 무려 10에서 15만원에 이른다.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비슷한 크기의 대게는 가격이 박달대게의 절반 수준이라는데, 전문 어부가 아니라면 쉬 구별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깊은 바다에서 끌어올린 박달대게의 다리에 상인과 어부들은 끓여도 변색되지 않는 초록색 인식표를 반지처럼 달았다.

 

박달대게면 금상첨화지만 지갑이 넉넉하지 않다면 일반대게를 10만원 어치 구입해도 4인 가족이 충분히 먹을 수 있다. 그 정도의 여유가 없다면 포기해야 하나. 아니란다. 그런 분은 대게와 아주 가까운 ‘홍게’를 맛보면 된단다. 깊은 바다에 서식하는 홍게는 대게보다 붉은 색이 진하고 껍질이 단단한데 암컷을 제외하고 사시사철 잡으니 언제나 먹을 수 있고 겨울철은 대게 못지않은 맛을 가진다고 상인들은 귀띔한다. 홍게는 가끔 대게와 교배가 이루어져 어부들이 ‘너도대게’라고 하는 잡종이 중간 깊이의 수역애서 잡히는데 양은 적어도 맛은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영덕 뿐 아니라 수도권 포장마차에서 절찬리에 팔라는 홍게도 줄어드는지 한여름에는 조업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인다.

 

‘대한민국 대표 축제대상’의 ‘지역 특산물’ 부문에 2년 연속 대상을 수상한 영덕대게는 영덕 강구항에서 3월 중순 이후, 울진대게는 울진 후포항에서 4월 중순 이후에 벌어지는 한바탕 축제를 마지막으로 다음 계절을 기약한다. 지역 상인들이 재고를 그렇게 털어내는 것인데, 대게는 언제까지 영덕의 겨울을 달궈줄까. 지방이 적은 대신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하고 칼슘과 철분과 같은 무기질이 많으면서도 핵산이 넉넉한 대게는 과로에 지친 중장년은 물론이고 노인과 어린이, 임산부와 환자에게 그만이라는데 명태보다 오래 우리 동해안을 지킬 것인가. 지역 어부 못지않은 소비자의 자제력과 지구온난화에 대한 모두의 경각심이 도움이 되려는지. (정원생활, 2011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