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5. 23. 12:27
 

이 땅의 오리 운명이 이다지도 기구한가. 몸을 담글 연못 하나 없는 비닐하우스에 시루 속 콩나물처럼 키울 땐 언제고, 똥오줌이 질척질척한 축사 안에서 허구헛날 같은 사료만 내주던 인간이 조류독감을 이유로 생매장하려 들다니. 항생제에 찌든 사료 때문에 죽지 못해 살아왔던 오리는 공포에 질린다. 이웃 농가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생되었지만, 그게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억울하다. 사람의 손아귀에 날갯죽지가 잡혀 부대에 거꾸로 처박힌 오리들은 그렇게 항변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한 날 한 시, 부화장에서 쏟아져 들어간 축사는 따뜻했다. 부화되자마자 주둥이 끝이 잘려나가 먹이를 휘저을 수도, 마음에 드는 먹이를 골라낼 수도 없는 신세가 되었지만 어차피 가루로 된 사료, 먹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물결 잔잔한 호수에서 어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수초를 뜯거나 올챙이들을 잡아먹는 즐거움을 본성대로 누려본 적은 없지만 또래들과 처음 맞은 축사는 널찍했고 톱밥 깔린 바닥은 뽀송뽀송했다. 공기는 답답했어도 먹이가 충분하고 어미의 보호가 없어도 해코지하는 천적이 없어 안심할 수 있었다. 사료를 선점하면 덩치가 먼저 커져 몸싸움에 밀리지 않았다. ‘공장식 축산’이라도 처음에는 참을만했다.

 

축사는 금세 비좁아졌다. 넘치는 사료를 먹고 모든 오리의 덩치가 커진 것이다. 그러자 바닥은 똥오줌으로 흥건해 악취가 진동하고 몸은 지저분해졌다. 살이 지나치게 불어난 오리들은 밀치고 다니느라 스트레스가 쌓여 서로 쪼아댔고, 경쟁에 치인 녀석은 구석에서 죽어 널브러졌다. 그래도 대부분은 건강했다. 사료에 유황이 섞여 그런지 실컷 먹고 나면 때때로 복통이 극심해지지만 항생제 덕에 죽지 않았다. 태풍에 창문이 떨어져나가거나 쏟아지는 우박으로 비닐하우스에 구멍이 숭숭 뚫리지 않는 한 견딜 만했다.

 

공장식 축산이 대개 그렇듯, 사료 대비 몸무게 증가 비율이 경제성을 벗어나는 순간, 축사의 오리들은 한꺼번에 도축장으로 가는 트럭에 실렸다. 그런데 이번엔 사정이 달랐다. 그 이전에 모조리 살처분된 거다. 어미도 모르는 채 축사에 들어가 넘치는 사료를 축내며 어느 정도 자랐어도 더 자랄 세월과 능력이 남아 있건만 그건 낭비일 따름이라고 과학축산은 영악하게 계산했다. 유황오리나 황토오리 식당에 넘기기 전에 일제히 죽어야 하는 고깃덩어리라는 거였다. 신세가 그렇게 예정된 오리일지라도, 살처분은 억울한 일이었다.

 

찢어진 틈으로 고개 빠끔히 내밀고 두리번거리던 부대 속의 오리는 인부의 억센 손에 들려 잠시 허공을 맴돌다 석회 뿌린 구덩이에 곤두박질쳤다. 하늘과 땅이 순식간에 맴돌다 처박힌 오리 위에 켜켜이 올라가는 부대들. 공포에 질린 또래들의 꽥꽥 비명 소리에 오리는 그만 넋을 잃었다. 몸이 짓눌리고 숨이 턱까지 막혀오면서 빛이 점차 사라지더니 요란한 소리를 내는 트럭이 석회 섞인 흙더미를 구덩이에 퍼부었다. 생매장된 것이다. 그러자 포클레인은 구덩이를 꾹꾹 눌려댔다. 운 좋은 닭은 아주 오래 뒤 화석으로 남을지 모른다.

 

조류독감을 철새가 옮겼다고? 살처분된 농장 근처로 날아온 청둥오리는 그 말의 의도를 의심해야 할지 모른다. 시베리아에서 한반도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날아와 지칠대로 지쳤어도 조류독감에 걸려 죽은 청둥오리는 거의 없었다.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더라도 대부분 탈 없이 날아왔고, 도착해 이것저것 먹자 이내 건강해졌다. 체력이 약한 녀석들은 중간에 떨어졌거나 아예 출발하지 못했으니 시베리아에서 얼어 죽었을 거다. 힘겹게 날아온 뒤 죽은 청둥오리 중 일부가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수 있지만 그 때문에 농장의 오리들이 떼로 죽는 건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청둥오리 사체를 집어드는 인간들은 누가 독감에 걸리기라도 하면 떼로 죽던가. 적어도 철새의 세계에서 그런 일은 없다.

 

조류독감이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는 고독성이라면 발생 농장에서 반경 3킬로미터 이내의 오리는 독감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죽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 지역에서 다시 키워낸 어떤 오리도 팔리지 않을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 가을이 깊어질 때마다 보건소 담을 따라 줄을 길게 서는 인간들은 제 몸에 독감 백신을 주사하더니 조류독감 백신까지 개발했지만 철새는 물론이고 오리에게 주사 한 방 놓지 않았다. 오로지 오리 살처분할 인간에게 주사하거나 닭이나 오리를 다룰 인간을 위해 보관할 따름이다. 그걸 오리가 탓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

 

스위스의 다국적 제약회사가 개발한 조류독감의 치료제는 상품명이 ‘타미플루’다. 그런데 아쉽게도, 타미플루가 조류독감을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할 것 같지 않다. 확보한 양과 관계없이, 타미플루가 다양한 조류독감의 변종을 모두 치료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번에 발생한 조류독감이 새로운 변종이라고 하니, 타미플루의 기대 효과는 더욱 낮을지 모른다. 문제는 인간의 독감이든 조류의 독감이든, 그 바이러스는 환경변화에 매우 민감하다는 사실이다. 어렵게 개발한 치료제라도 바이러스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돼 변종으로 바뀌면 쓸모없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몸이 극심한 병약자가 아니라면 독감에 잠시 앓던 사람은 거뜬히 일어났다. 그건 청둥오리와 같은 철새도 마찬가지다. 오리도 마찬가지였다. 한데 왜 대도시 근교의 식당들이 줄줄이 문 닫아야 할 정도로 오리는 시방 떼로 죽는가. 이유는 극도의 품종개량에서 찾아야 한다. 목적에 맞는 품종을 개발하려고 같은 배끼리 세대를 거듭하며 교배시키자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잃을 정도로 유전적 다양성이 위축된 것이다. 그래서 공장식으로 사육하는 요즘 오리들은 조류독감에 속수무책이다. 살처분은 독감으로 앓는 오리를 위한 안락사가 아니다.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인간이 정한 안전반경 이내의 오리를 남김없이 줄일 따름이다. 시간과 비용을 아끼려 잔혹하게 생매장하는 인간은 고독성 조류독감이 자신을 감염시킬까 전전긍긍한다. 부메랑이다.

 

장차 사람끼리 조류독감을 전염시키는 사태가 발생할까. 그리 된다면 치사율이 60퍼센트 넘을 거로 걱정하는 학자가 있다. 끔찍하다. 괜한 걱정이길 바란다면 오리나 닭의 유전적 다양성을 회복시키는 것은 물론, 공장식 밀집 사육을 어서 폐기해야 한다. 오리와 닭의 본성에 맞게 사육환경을 바꾸고 환경변화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부메랑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물푸레골에서, 2008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