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5. 3. 2. 00:34


입춘이 지나 그런가. 겨울 추위가 막바지에 이른 느낌이다. 경칩이 얼마 남지 않았다. 파란 하늘 아래 가로수는 가녀린 가지에 잎눈을 도드라지게 드러냈고 근린공원의 산유화는 꽃봉오리가 도톰하다. 꽃샘추위가 몇 차례 더 찾아오겠지만 마음은 벌써 봄인데, 외출옷은 여전히 두툼하다. 그래도 난방비는 줄겠지.


작년도 그랬지만 올겨울도 내복 없는 맨발로 견뎠다. 내복 입자는 캠페인이 나올 적마다 남보다 높은 체열을 핑계대지만 요사이 우리네 실내 난방은 역대 어떤 왕조 부럽지 않다. 집안에서 외투 입는 독일인은 내의 차림으로 집안일하는 한국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던데, 분명한 건, 지금과 같은 호사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된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일 게다.


예전 어른들은 간장독과 아이들은 밖에 내놓아도 얼지 않는다 했건만, 장독대와 간장독이 사라진 요즘, 아이들은 밖에 나가지 않는다. 안심하고 뛰어놀 공간이 아예 없다. 시골에 있으면 뭐하나. 아이가 거의 태어나지 않는 시골은 설이나 돼야 손주들 소리 이따금 들릴 뿐이다. 부모 따라온 아이들은 시골을 제 고향으로 여기지 않는데. 그런 아이들이 어느새 엄마아빠가 되었다. 그들의 아이에게 시골은 고향이기 어렵다.


겨우내 아파트와 학원 사이를 오갈 때 잠시 밖에 나가는 아이들의 몸은 모피가 달린 오리털 패딩점퍼에 휘감겼다. 마스크와 둘둘 감은 목도리, 양가죽 부츠와 털장갑은 추위를 느낄 시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데,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호사, 우리에게 다가온 지 얼마나 되었나. 언제까지 유효할까? 석유가 이끌어내는 난방과 오리털과 모피는 머지않아 한계를 맞을 것이다. 석유가 사라진단다.


사람들이 석유로 겨울철에 실내온도를 높이고 여름철에 낮추건, 밍크와 은여우와 토끼 들을 비좁은 철망 안에서 비윤리적으로 키우든, 오리와 거위의 앞가슴 깃털이 우악스럽게 뜯겨지든, 겨울은 봄에 바통을 넘길 것이다. 점점 짧아지는 봄이라도 꽃은 피고 새들은 짝을 찾아 울 테지.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으로 많이 혼란스러워졌어도 아직 계절 변화는 어김없는데, 오직 사람만 계절의 흐름에 순응하길 거부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자연의 동물은 체온 유지를 위해 음식과 은거지가 필요한데 사람은 옷을 더 요구한다고 직시했다. 요즘은 개에 옷을 입히지만, 사람은 옷 덕분에 서식지를 아프리카에서 온대지방과 극지방까지 성공적으로 넓혔다. 과학기술의 유별난 도입으로 우주공간에 머물고 바다 깊숙이 들어가지만 한시적 착각이다. 석유가 사라지면 우주는 물론이고 바다와 하늘에 머물기 무척 어려워진다. 추위를 막는 옷도 크게 줄어들 게 분명하다.


빙하로 뒤덮인 그린란드는 빙하가 후퇴할 때마다 자그마한 경작지를 허용한다. 그 땅에 들어온 바이킹은 유럽 방식의 의식주를 고집하다 의식주 재료가 공급되지 않자 굶주리고 말았다. 바이킹보다 훨씬 먼저 들어온 이누잇들은 달랐다. 물개 가죽을 입고 얼음집에 머물며 사냥하는 이누잇을 조롱한 바이킹의 후예는 생명을 잃었는데, 석유라는 한시적 자원을 믿고 겨울딸기를 즐기며 유행 맞춰 입는 오리털 패딩점퍼로 언제까지 체온을 유지할 수 있을까?


북극해가 얼어 단단해지면 하프바다표범은 새하얀 털이 고운 새끼를 빙원에 낳는다. 이누잇은 사냥한 성체 바다표범의 가죽과 고기로 체온을 유지했지만 공장식 축산에서 쏟아지는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연어를 넘치게 먹어 늘어난 체중을 줄여야 하는 지역의 사람들은 멋을 위해 모피를 입는다. 석유로 생산한 음식과 빙원 위의 새끼들을 때려죽여 벗긴 모피를 구입할 따름인데, 그렇게 호사스런 체온은 머지않아 한계를 만난다.


동물이 누려야 할 복지와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털을 위해 키우는 동물의 처지가 얼마나 흉악한지 고발하는 동영상이 늘어나면서 모피가 예전 같은 부러움을 받지 못한다. 그렇더라도 오리털외투의 모자에 달린 모피가 늘어나면서 동물 사육은 줄지 않는다는데, 모피 광고는 줄었어도 오리털 패딩점퍼 광고는 넘친다. 오리와 거위도 석유로 키우고, 패딩점퍼가 넘치는 한, 조류독감과 살처분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체열이 높아 내복 없이 겨울을 견뎌도 영하의 날씨를 잘 버티는 건 아니다. 겨울철을 건강하게 지내려면 역시 든든히 먹고 충분히 운동해야 한다. 충실한 동계훈련으로 한 시즌의 몸 상태와 성적을 유지하는 운동선수처럼 집안에 움츠리지 말고 틈틈이 걷거나 가까운 산을 꾸준히 오르면 한해의 건강이 꽤 보장된다. 체열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땀에 젖는 옷이야 세탁하면 그만이지만 허구헛날 입는 오리털파커는 서너 해가 지나면서 재봉선이 느슨해졌다.


원주민의 삶을 경멸했던 바이킹은 외부의 지원이 끊어지자 그린란드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이누잇은 명맥을 유지한다. 오리털 패딩점퍼와 모피와 산해진미의 고기가 없던 시절에도 우리 땅에 조상이 살았다. 그들의 삶은 어딘가 촌스러운가? 조상이라서 살갑지만 그런 복장으로 겨울을 보내고 싶지 않은가? 산업문명이 던져준 편의에 몸과 마음이 길들어졌기 때문일 텐데, 지금과 같은 삶이 유지될 가능성이 없다면 우리는 어떤 대안을 모색해야하나? 재봉선이 느슨해진 외투를 이참에 획 바꿀까?


순록을 키우며 살아가는 라플란드인들은 옷과 고기를 위해 순록을 죽일 때 고마운 마음으로 단숨에 숨을 끊었다고 한다. 자신들을 위해 사육되고 목숨까지 내 준 생명에 대한 미안함으로 숙연해하는 삶에 낭비는 없다. 이누잇도 그랬다. 그들은 땀과 땅으로 준비한 음식과 옷으로 체온을 건강하게 유지했다. 산업축산이 고기와 가죽, 모피와 오리털, 냉난방 자동 조절되는 최첨단 주택과 자동차를 즐비하게 늘리기 전까지 우리 조상도 그렇게 살았다.


요즘은 경칩이 오기 전부터 개구리가 알을 낳는다. 작년 둥지를 수선한 까치들이 벌써부터 시끄러운 들판에 부지런한 농부들은 땅을 고른다. 지구가 조금씩 더워져도 아직은 춥다. 봄도 어김없이 온다. 추위가 기운을 잃어갈 때 자라는 아이들을 스마트폰과 컴퓨터 없는 밖으로 내보내자. 움츠리게 만드는 외투로 둘둘 말지 말고 한 벌 더 끼어 입는 옷이 더 따뜻하고 활동적이다. 남은 추위를 극복하는 근사한 방법이다. (작은책, 2015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