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4. 11. 14:14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구는 무엇일까. 돌도끼?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돌도끼보다 돌이 더 오래된 도구는 아닐까. 가까이 다가온 먹잇감을 몰거나 잡을 때, 내쫓아야 할 동물을 위협할 때 요긴했을 것이다. 그런데 돌이야 소모품이지 도구라고 정의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가능하겠다. 일단 사용하면 회수하거나 수선하려하지 않는다. 아주 마음에 드는 돌이야 다르겠지만.

 

가장 간단한 도구는 무엇일까. 가장 오래된 도구 중의 하나일 텐데 지금도 사용한다. 도끼, 톱, 망치, 활…. 부품이 두개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그것으로 집짓고 밥 해먹고 옷 만들어 입었다. 한데 부품이 한개 뿐인 도구가 있다. 바늘이다. 한땀 한땀 정성을 쏟으며 사용하는 바늘이 있어야 옷은 몸에 딱 맞게 완성된다. 전방의 장병들은 여자 친구가 떠준 목도리를 신주단지처럼 보듬는다. 나중에 고무신 거꾸로 신은 친구의 뒷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볼지언정.

 

거리를 재듯 한땀 한땀 움직이는 동물이 있다. 세계적으로 12000종에 달하고 별박이자나방을 비롯해 우리나라에 200여 종 분포하는 자나방 종류의 애벌레, 자벌레다. 큰 날개를 가진 자나방의 날씬한 몸은 힘이 없어 작은 새나 개구리의 먹이가 되지만 감귤을 포함해 사과와 차나무 잎을 갉아먹고 국화와 장미, 가지와 콩의 해충으로 지목되는 자벌레는 본의 아니게 인간 세상의 詩에 들어갔다. 몸의 중간마디에 다리가 없으니 뒷다리를 들어 앞다리 뒤에 바싹 붙이고 다시 앞다리를 앞으로 쭉 뻗으며 움직이는 것이거늘, 거리를 잰다는 둥, 낮은 자세로 다닌다는 둥, 제 식으로 해석하는 인간들은 제 세상의 어지러움을 자벌레에 유비한다.

 

환경이 좋으면 1년에 서너 번 번식하는 자나방은 나무껍질 속에 천여 개의 알을 낳는다. 날씨가 따뜻하면 1주일, 좀 쌀쌀하면 2주일 후에 고물거리며 기어나온 2밀리미터의 어린 자벌레들은 꽁무니로 가는 실을 뽑고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리는데, 바람에 나부끼다 닿는 지점부터 한땀 한땀 잎사귀를 갉아 먹는다. 한 3주에서 4주일 지나면 5센티미터 가깝게 토실토실해지는데, 그때 위협을 느끼면 한 발로 지탱한 몸을 뻗은 채 꼼짝을 하지 않으니 나뭇가지로 착각한 새나 개구리는 그냥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웬걸. 언제는 제 詩에 넣고 애틋해하던 인간이 농약을 휙 뿌리는 게 아닌가. 자벌레가 먹는 농작물을 한 군데 모아 심은 게 누군데.

 

자벌레는 길을 먹어치우는가. 시인 김창균은 “자벌레는 자신이 깃들여야 할 집과 길들을 /하루 종일 먹고” “몸에서 숨쉬는 /머언 먼 조상의 말들을 생각해”보는 것이란다. 그런가? 자벌레의 집이었다가 밥이었다가 길이기도 한 뽕나무 숲이 어두워지는 순간 일렁인다는 달을 보고 달맞이꽃들은 야윈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고 김창균은 시를 마무리하는데, 자벌레는 무슨 소린지 통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한 어린이는 자벌레에 핑계를 댄다. 개망초 꽃잎을 갉아먹다 그 줄기를 오동통한 뒷발로 꼭 껴안고 시치미 떼는 고놈의 자벌레를 보다 그만 앞서가는 선생님을 놓쳤다는 김미혜의 詩, 자벌레도 흐뭇해할까.

 

눈금도 없는 줄자를 쓰는 “한심하고 무능한 측량사”라서 뛰든 걷든, 슬프든 기쁘든, 그저 한자일 따름이라는 시어로 자벌레를 해석하는 반칠환, 그는 또 “따뜻하고 유능한 측량사”라고 자벌레를 추켜세운다. “저이가 지나가면 나무뿌리는 제가 닿지 못하는 꽃망울까지의 거리를 알게 되고, 삭정이는 까맣게 잊었던 새순까지의 거리를 기억해”낸다는 게 아닌가. 자벌레는 동의할 것 같지 않다. 키요롯 키요롯 느닷없이 날아온 노랑지빠귀가 꿀꺽 삼키면 자벌레는 지빠귀의 온몸을 감도는 핏줄을 잴 것이라고 반칠환은 귀띔하지만 듣자니 어처구니없을 터. 미처 나뭇가지를 흉내내지 못했던 자벌레는 아차! 하는 순간, 별박이자나방으로 화려하게 날아올라 짝 만날 기회를 잃고 말았다.

 

2003년 3월 말부터 5월 말까지, 밑동까지 깎여나간 변산반도국립공원의 해창산에서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한 걸음에 나의 탐욕, 한 걸음에 나의 무지, 한 걸음에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하며 삼보일배를 수행한 문규현 신부와 수경스님은 전종훈 신부와 더불어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 순례단>으로 모였다. 2008년 9월 4일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해 10월 26일 계룡산 신원사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올 3월 28일 신원사 중악단을 출발해 서울 시청을 거쳐 임진각 망배단을 지나 묘향산 상악단을 행해 언제 끝날지 모를 순례의 길을 한땀 한땀 나선 것이다.

 

“현 정권의 생명 파괴, 국민 분열, 평화 훼손의 정책들, 부와 권력을 가진 자의 식지 않는 욕망들, 사람다운 삶을 박탈하는 교육정책들로 파멸적으로 노정되는 근대적 문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이 땅의 품에 안기고,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온 숨을 땅에 바치며, 땅이 베풀어 주는 기운으로” 기어서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고자 오체투지를 떠났다. 부처님께서 열어 보이신 ‘사람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는 믿음으로 위로의 길, 용기의 길, 민족의 길, 화해의 길, 희망의 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의 발로였다. 복효근의 시어처럼 “걸음걸음이 절명의 순간”인 오체투지는 자벌레가 되어 온몸으로 경전을 읽는 것이다.

 

오체투지에 나서는 성직자 앞에서 시인 신경림은 천지에서 가장 낮은 것이 되어서 우리가 염원하는 건 이 땅에 대립과 갈등이 없어지는 것이라 했다. 지성인은 지식, 장사치는 숫자, 공직자는 힘, 연예인은 인기, 종교인은 권위에 속고, 사랑에 빠진 사람은 집착에 속고 사는 세상에서 벌레처럼 느리고 형벌처럼 힘이 드는 길은 “너보다 나를 교정하기 위한 거”라고 철학자 이주향은 말했다.

 

“대지에 몸을 누여 썩어가는 씨앗처럼” 생명을 틔우고 꽃 피우는 기쁨으로 가겠다는 문규현 신부와 “공업 중생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진정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인가” 모색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바람결을 따라 눕고 물처럼 대지를 흐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기겠다는 수경스님은 우리를 초대한다. 외롭고 서러운 이들의 눈물을 씻어주고 품어주는 공동체를 꿈꾸며 희망을 가득 가득, 심고 풀고 노래하고 춤추자고 권했다. 자나방으로 깨어나려는 자벌레의 詩를 쓰면서. (물푸레골에서, 2009년 5월호)

마이클잭슨과 스미스 박사에 이어 앨고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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