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6. 9. 18. 22:19
 

 

환경원탁회의에서 주최한 이번 해외 환경시찰은 작년 중국 삼협댐에 이어 일본 가나가와 현의 요코하마로 정해졌다. 당초 몽골의 황사 진원지도 후보로 경합되었지만 황사가 진정된 여름에 가야 볼 게 없다는 중론에 밀려 요코하마로 결정된 것이다. 대학 시절 ‘부루 라이토 요코하마’라는 엥카 풍의 가요를 뜻도 모르고 흥얼거렸던 기억으로 남은 곳, 서울 옆의 인천처럼 동경 기세에 눌리는 항구도시라고 생각해오던 곳, 친환경 물의 도시로 개발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는 도시, 그 요코하마를 가게 되었다. 인천과 자주 비교되는 요코하마에 가서 눈으로 보며 들으면 챙길 성과가 있을 성싶다. 더구나 아직 억압된 공산사회의 기억이 남아 시민사회의 활동이 눈의 띄지 않는 몽골과 달리, 흔히 NPO와 NGO로 구분하며 활동이 활발한 일본의 시민단체와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다는 점에 솔깃했다.

 

몽골과 요코하마. 그 두 가지 선택지가 제시될 때, 어느 쪽이든 방문할 가치가 많겠다 싶어 중론에 따를 생각이었지만 개발 소용돌이에 빠져있을 울란바토르 시내를 들여다보고 근교에서 멀지 않았던 우리 과거와 닮은 몽골인의 생활을 엿볼 기대가 조금 더 컸다. 가면 사진을 많이 찍어 오리라 다짐했다. 발품을 많이 팔며 시민단체와 만날 기회가 주어질 요코하마도 좋은 후보지임에 틀림없지만 가깝다보니 언제고 기회를 만들 수 있겠지, 개발 소용돌이에 싸인 몽골은 지금 아니면 기회가 쉬 다가오지 않을 테니, 몽골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몽고 초원에서 툭 터진 푸른 시야를 만끽하고, 지나친 방목으로 누런 토양이 드러난 황사 발원지에서 개발의 이면을 곱씹어야지 생각했는데 요코하마로 최종 결정됐다. 요코하마에서 보고 느낄 점도 많을 것이기에 아쉬움을 접었지만, 발생하는 황사를 볼 수 없다는 이유는 좀 어색하다. 인천환경기술개발센터의 지원에 여행경비의 상당부분을 의존하는 상황에서, 예산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겨울 방학 기간에 여행 일정을 잡기 어렵다면 이해하지만, 황사가 준동하는 모래폭풍 한 가운데에서 살을 에는 고통 이외에 뭘 보고 느낀단 말인가. 어차피 요코하마로 결정된 일, 보람은 스스로 챙길 일, 몽골은 내년 여름을 기약하면 되겠지 뭐.


작년에 동행해 친근한 이미지를 남긴 본항공여행사를 인천공항에서 만나 여권과 안내 서류를 받아들고 아시아나를 탑승했다. 영국에서 테러리스트 수십 명을 사전에 체포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타전된 후 국제공항마다 비상이 걸렸다던데, 과연 인천공항도 예외가 아니다. 신발도 벗고, 착용한 금속성 물질을 검색기에 넣어야 한다. 그래도 5년 전 미국의 공항보다는 점잖다. 거긴 양말은 물론, 재수 없으면 저고리와 바지도 벗어야 했다. 보도된 영국의 테러리스트, 혹시 선거철에 북한 도발이 집중되던 과거의 우리 사례와 유사한 일종의 친위 조작은 아닐까. 부시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수상의 인기가 날로 곤두박질이라던데. 아니든 기든, 테러는 폭력으로 못 잡는다. 테러에 의존하려는 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며 협상에 나서는 편이 테러를 줄이는 가장 현명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요코하마로 출발하는 오늘은 광복절이다. 고이즈미 일본국 수상이 공개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선언한 날이기도 한데, 고이즈미 뒤를 이을 것으로 확실시되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노골적인 보수정책을 공언한다. 한일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보수화된 국가일수록 국내 또는 국제간 충돌이 잦다. 반면 진보적이 되면 관계가 편안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민족을 앞세우며 으르렁거리는 보수 단체들과 달리 환경과 생명을 이야기하는 시민단체는 찾아오는 이를 환대하며, 맞이하는 눈빛이 다정하다.

 

올 초 독일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땐 지인에게 귀띔을 받아 여행사로 미리 채식 메뉴를 부탁했다. 그러자 대한항공 측에서 완전채식 기내식을 내왔는데, 이번엔 부탁하길 참았다. 서양 채식인에 맞춘 식단이 내 입맛에 맞지 않았고, 옆 좌석의 비빔밥에 눈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시아나엔 비빔밥이 없나. 고기 넣고 볶은 고추장 튜브를 내줄 뿐, 주 요리에는 불고기가 수북하다. 아쉽지만 우유로 가공한 버터를 빵에 발라 먹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도착하자마자 점심을 먹을 테니까.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책을 여러 권 넣었다. 그 중 『신쥬쿠 시궁쥐 비둘기』는 이번 여행을 대비해 특별히 주문한 책이다. 시중 서점에 절판되었기 때문이다. 출장온 남편 따라 동경 신주쿠에 3년 살며 보고 느낀 소감을 진솔하게 펼쳐낸 에세이집의 저자인 유소림 씨는 시민단체 활동가 경력이 있는 시인이자 가정주부다. <녹색평론>에 소개되기도 한 『신쥬쿠 시궁쥐 비둘기』는 여행 중에 반드시 다 읽겠다는 소명감으로 감기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데, 이거 쉽지 않다. 사실, 오늘 새벽까지 2박3일 동안, 여러 가족이 진하게 어울렸던 동해안의 여독과 주독이 채 풀리지 않았다. 10시 출발을 위해 7시 30분까지 모이라고? 한 시간이면 충분할 텐데. 허둥대는 것보다 낫지만, 고급 액세서리 전문 면세점을 한 시간이나 하릴없이 기웃거렸다. ‘휴식’도 이번 여행의 화두로 추가하기로 한다. 저녁 후 선술집 탐색하던 버릇을 수정하기로 마음먹는데, 그게 순조로울지.

 

출발하기 전 6시, 아내 성화로 집에서 아침을 간단히 먹고, 10시 반에 기내식을 먹었는데, 입국장을 통과해 요코하마로 행하는 관광버스에서 다시 도시락을 먹는다. 그 때가 1시 반.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맛깔스러운 ‘오벤토’. 연어와 돈가스를 곁들인 3가지 밥이 인상적인 도시락은 맛이 그만이다. 과연 도시락 명품 국가답다. 먹는 것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즐거움이라던가.

 

이번 여행의 가이드는 인천공항부터 함께 출발한 박의현 씨. 일본 태생이라는데, 말투에서 동포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공항에서 뭉쳐 움직이는 사람들을 둘러보면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쉽게 파악된다. 혼자 지나는 사람도 대략 짐작이 가는데, 왜 구별이 가능한 걸까. 몇 년 전인가, 동경 신주쿠 가부키초의 밤길을 일행을 따라 두리번거리며 걷는데, 흑인 삐끼가 어눌한 우리말로 물었다. “홀딱쑈, 봤어요? 라이브쑈 있어요!” 스페인에선 유럽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는 우리보고 “사요나라”를 외치곤 했는데, 외국인에게 비치는 극동아시아 3국의 인상 차이는 무엇일까. 어떤 분위기? 분위기의 정체는 무엇인가. 자신감이나 당당함? 은연중 발산되는 우월 의식은 아닐까. 문화와 역사에 차이는 있어도 차별은 없는 법,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다면 부끄러워할 일도, 내세울 일도 아니건만.

 

박의현 씨는 공항에서 요코하마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에서 ‘오봉’이라 하는 일본의 명절과 도로 사정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하는데, 다른 관광 가이드와 같은 수선스러움이 없어 좋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음력이 양력으로 통합되면서 추석 명절인 오봉이 한여름으로 옮겨진 형국이라는 것, 그래서 전국의 직장이 며칠을 쉬고, 그때 고향 방문 인파가 도시를 빠져나가 도시의 고속도로가 비교적 한가롭단다. 덕분에 요코하마의 첫 목적지까지 빨리 도착했다. 나리타공항은 작고 고즈넉한 시골을 개발한 곳이다. 박의현 씨는 나리타공항의 역사를 그 정도로 이야기하지만, 사실 공항이 들어선 시골마을 ‘산리즈카’는 우리 새만금 이상 격렬한 반대 투쟁의 상처가 서린 곳이다. 일본의 시민과학자 타까기 진자부로는 나리타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산리즈카 시민운동에서 깨달은 바가 있어 잘 나가던 대학교수를 그만두었다.

 

제10호 태풍 ‘우쿵’은 동경을 피해갈 모양인데, 거리엔 비가 흩뿌린다. 오봉을 맞아 집에서 푹 쉴 수 있는데 우리를 위해 공항에 마중 나온 요코하마 시립대학교 사회학과 무라하시 교수가 버스에 합석했다. 작은 키에 무언가 확신에 찬 모습을 하고 있는 그는 ‘도시경관을 만드는 시민단체’와 행동을 같이하는 운동가이기도 하다. 50대 중반 쯤 돼 보이는 그는 버스에서 자신과 자신이 관심 갖는 시민운동을 우리를 소개한다. 작은 항구였던 요코하마가 개항 후 일본 굴지의 공업지역으로 성장하였지만 그런 만큼 녹지가 중요해졌다는 것, 항구기능이 줄어 시 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인구 유입을 견인할 다른 산업의 유치가 과제라는 것을 주장한다. 그가 강조하는 다른 산업은 무엇일까. 최첨단 산업이나 물류, 또는 근사한 상가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짧은 일정인 3박4일 동안 둘러보게 알게 되겠지. 인구는 고령화되고 현재 감소되는 남부처럼 30년 후엔 북부도 감소될 것을 염려하면서, 요코하마의 경우를 참조해 인천의 내일을 준비할 것을 당부한다. 무라하시 선생이 이야기하기 전, 단장으로 참석한 최중기 교수의 진행으로 이번 여행 참가자 18명이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예정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첫 견학장소인 오오카가와에 닿았다. 오오카가와는 요코하마 시를 흐르는 8개의 하천 중 하나로 계획단계부터 주민과 논의하여 사업을 시행한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개항 후 자연발생적으로 마을이 형성된 요코하마의 거리는 대형 관광버스가 주차하기 매우 불편했고 가로수를 제외하면 빗물을 완충할 녹지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간간이 내리던 비가 그치면서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강한 햇살이 뜨거운 가운데 우리를 안내할 공무원과 시민단체 회원이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다. 요코하마 시 ‘환경창조국’에서 하천을 담당하는 미야모토 씨는 관련 시민운동도 적극적이란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미야모토 씨를 비롯하여 관계 공무원이 서너 명, 오오카가와 범람 문제를 해결하는데 함께 행동한 것으로 보이는 시민단체 회원 서너 명이 휴일에도 우리를 기다리니 고맙다. 연대감을 느낀다.

 

녹지나 유수지와 같이 빗물을 완충하는 장치가 방문자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요코하마에서 홍수 대책은 지방정권에게 중요하고 또 주민에게 꽤 민감할 것 같다. 일본도 우리처럼 여름 한철에 강우의 절반 정도가 집중되지 않던가. 태평양을 마주하는 까닭에 요코하마가 인천보다 자주, 훨씬 강한 태풍을 만날 것으로 보인다. 인천보다 경사가 심해보이는 요코하마의 선택은 ‘분수로’(分水路)였다. 도시의 지하 터널로 넘치는 빗물을 바다로 내보내는 분수로는 해발이 높은 日野川에서 출발해 오오카가와를 지나 根岸灣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3.6킬로미터의 지하 터널로, 1970년부터 11년에 걸쳐 당시 166억 엔을 들여 건설했다고 한다. 이후 주변에서 홍수피해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고 담당 공무원은 설명한다.

 

오오카가와는 폭이 좁은 만큼 수량이 평상시 많지 않으며 주변의 주택지보다 10미터 정도 낮은 곳을 흐른다. 생활하수를 분리해 수질은 깨끗해 보였고 그를 증명이나 하듯 굵은 잉어들이 느긋하게 유영한다. 평소에 작은 갑문을 열어놓아 상류의 맑은 하천이 자연스레 흘러내리지만 빗물이 하천을 넘쳐 제방 위로 차오르면 분수로의 문을 열고 갑문을 막아, 초당 220톤의 빗물을 바다로 내려 보낸다. 그렇다면 오오까가와의 분수로는 생태하천과 거리가 있다. 비좁은 하천 가장자리에 초본을 식재하고 제방 위에 꽃나무를 심어 이용공간을 조성했어도 친수공간은 아니다. ‘배수로’로 설명해야 옳을 것이다. 또한 거액의 토목공사를 감당할 수 있는 요코하마이므로 분수로를 구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민의 의견을 모아 시행한 까닭에 터널이 지하로 지나는 집주인의 반대가 없었다고 답변하는 공무원은 우리의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이는 일본 특유의 시민단체(NPO) 성격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무라하시 교수는 버스에서 요코하마의 지도와 관광 안내도, 그리고 간단한 한일회화를 알려주는 책자를 나누어주었는데, NPO 관계자들은 요코하마 시와 가나가와 현에서 작성한 자료를 봉투에 담아 전해준다. 봉투 속에는 우리가 관심을 갖는 오오카가와 분수로 관련 자료, 한글로 기계 번역한 ‘사람과 자연과 강의 공존을 목표로 하는 가나가와 현의 하천사업’ 자료, 요코하마를 흐르는 하천에 분포하는 담수어류 도감이 담겨 있다. 잘 보관하면 인천의 ‘하천 살리기’에 유용하게 참고할 수 있겠다. 요코하마의 공무원이나 시민들은 오래 전부터 정성을 기울이는 생태하천 만들기에 자부심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분수로를 한 시간 정도 둘러본 일행은 오오카가와의 도심 중류에 해당하는 미마미오오카 역 근처를 찾았다. 분수로와 달리 하천의 정비는 가나가와 현에서 담당하고 있는데, 현청에서 나온 젊은 여성이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설명한다. 1980년대 하수관로 분리 이후 오오카가와가 몰라보게 맑아졌고, 휴일이면 많은 인파가 수변공간에 모인다는 걸 사진을 비교하며 이야기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가 설명하려 서 있는 지점에서 생활하수의 일부가 하천에 조금씩 유입되며 악간의 악취를 풍기고 있다. 누군가 질문을 하니, 하수처리가 100%에 달하는 요코하마에서 생활하수가 유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대답하면서도 머쓱해한다. 좁은 하천 폭이지만 나름대로 녹지대와 좁은 산책로를 만드는 성의를 볼 수 있는데, 큰 비가 흘러들면 흙탕물로 뒤덮일 것이 분명하다. 흙을 뒤집어 쓴 초본이 한쪽 방향으로 누워 있는 게 그 흔적이다.

 

가나가와 현과 요코하마 시에서 역점을 두는 하천정비는 홍수 예방에는 충분한 효과를 보이지만, 생태적 복원과 분명히 거리가 있다. 진정한 생태하천이려면 녹지대를 포함한 넓은 하폭의 물길이 지그재그로 굽이쳐 흘려야 하겠지만, 오오카가와는 그 정도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수질을 위해 분리수거를 해도, 넘치는 빗물에 하수가 하천에 섞여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악취가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다. 그래도 애를 쓰는 흔적은 역력하다. 이 정도 정비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설명을 맡은 공무원은 시민들의 성원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잊지 않는다. 19명이나 되는 일행이 소음 끊이지 않는 현장에서 일본어 설명과 통역을 모두 알아듣기 어렵다. 제대로 듣지 못한 부분은 자료에 의존하기로 하고 현장을 빠져나오다 교각 아래 ‘홈리스’의 잠자리를 본다. 일본 홈리스의 상징인 하늘색 담요가 온기를 머금은 모습이다. 도시가 커질수록 홈리스는 넘친다. 아파트가 높고 화려해지는 서울도 마찬가지. 여름밤의 서울역 광장을 접수한 노숙자는 겨울이 두려울 텐데, 요코하마는 영하로 떨어지지 않아 다행일까. 인천의 노숙자는 어떤 사정일까.

 

바다로 이어지는 오오카가와의 하류로 이동하면서 박의현 씨는 일본과 한국의 주민의견 수렴 방식을 비교한다. 주민의견을 먼저 수렴해 놓고 시행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관에서 먼저 시행을 통보하고 민원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공무원은 우리나라에서 흔한 격렬한 민원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겠다 싶다. 그런데 비영리기구, 즉 NPO라 칭하는 일본 시민단체는 왜 공무원과 잘 어울리며 활발할까. 일본은 시민단체와 갈등이 없을까. 일찍이 갈등이 없다면 시에서 재정과 인력을 지원하는 NPO는 태생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NPO라 하기보다 비정부기구, 즉 NGO에 가까운 크고 작은 시민단체도 일본에 많다. 특히 반핵단체나 유기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담당하는 시민단체는 NGO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수도 많고 연대활동도 매우 활발하다. 한데 그들은 정부 정책에 대립각을 분명히 세운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정책을 선도하거나 되도록 협력하려는 NPO와 성격이 다르다. 우경화 중인 일본에서 다 옛 이야기가 되어 기억에서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작은 농촌을 국제공항에 빼앗기는 걸 막으려던 1970년대 초의 산리즈카 운동, 그 전에 일본 대학가를 흔든 이른바 ‘전공투’는 정부에 결코 협조적이지 않았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보는 생존투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번 여행에서 일본의 NGO와 만날 기회는 없어 아쉽다. 어쩌면 강 살리기에 매달리는 NGO는 성격상 없을지 모른다.

 

관에서 민의를 미리 파악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사업 시행을 민과 함께 시작하고 마무리하며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려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사업 도중이라도 민원이 제기된다면 하던 사업을 잠시 중단하며 민원을 민주적으로 해결하려고 투명하게 논의하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생각을 더듬으며 오오카가와의 하류가 이어지는 ‘미나토미라이’에 내렸다. 오후 6시 30분이다. 미쓰비시 조선소가 있던 자리를 더 매립해 조성한 신도시 미나토미라이로 빠져나가는 오오카가와 하구는 요트 계류장으로 활용되는 수변공간으로 꾸며졌다. 계단식 관람석을 아담하게 만든 나무데크는 작은 즉석 무대가 되고, 연인들은 미나토미라이의 화려한 야간 조명을 바라보며 데이트를 즐긴다. 파도를 연상하는 고층 건물 3채, 돛대를 형상화한 호텔, 그리고 요코하마의 랜드마크 빌딩이 조화를 이룬다. 한 바퀴 도는데 15분 걸린다는 거대한 허니문카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오오카가와 하류의 나무데크 자체는 그리 크거나 화려하지 않다. 주변의 콘크리트 경관도 내 눈에 대단하게 보이지 않는다. 다만, 수변공간을 시민의 의견을 모아 조성했고 앞으로 이어질 친수공간도 시민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는 공무원의 설명에서 긍지를 느낄 따름이다.

 

나무데크에서 설명을 위해 애쓴 가나가와 현청과 요코하마 시청 공무원과 어울려 기념사진을 찍고 요코하마 시에서 운영하는 ‘시민단체지원센터’를 방문해 요코하마 시의 ‘강 살리기’ 프로그램과 관련하는 시민단체의 역할에 대한 궁금증을 풀 기회를 가졌다. 흔히 도심을 관통하는 하천을 시민단체는 ‘생태’ 또는 ‘자연형’으로 가꾸길 희망하지만 오래 전에 구획 정비된 도시에서 쉽지 않다. 대개 생태나 자연형을 빙자해 홍수 대비하는 배수에 초점을 맞춘다. 떠들썩했던 서울의 청계천도 마찬가지다. 복원이 아니라 조경을 녹색으로 치장한 배수로에 불과하다. 오오카가와 자연형 정비의 한계를 인천의 ‘강 살리기’ 운동도 공유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회색도시에서 감당하기 벅차게 내리는 빗물은 배수펌프나 지하터널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이지 않다. 앞으로는 도시를 재개발할 때 녹지공간이나 유수지를 확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도시는 도심에 녹지와 습지를 갖춘 비오톱을 의무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를 위해 환경창조국과 개발부서의 협조체제가 있는지 궁금했다. 역시 요코하마 구 도시에 녹지나 유수지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예산도 물론이지만 이미 밀집된 인구와 건축물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천변은 1980년대에 콘크리트로 싸 발라져 있고 강도 이미 직선이다. 도심은 어렵지만 시외 구간은 생태적으로 정비하고 있다고 답변하는 공무원 겸 NPO 간부는 다행히 오오카가와 상류가 ‘녹지보전법’으로 관리돼 중류를 흐르는 수량과 수질을 보전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하천의 생태계와 수질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시민단체는 2000년부터 D등급이었던 수질이 요즘은 B등급까지 개선되었다고 자랑하면서 오오카가와를 비롯하여 요코하마 시를 적시는 8개 강을 살리려 애쓰는 시 당국과 NPO의 활동을 프레젠테이션 화면으로 보여준다.

 

명치 시대인 186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바다를 매립한 까닭에 하구는 인구가 밀집된 도심지가 되고 강은 오염될 수밖에 없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초토화된 도시를 재개발해 오늘까지 온 시민들은 강에 대한 애착으로 보전운동을 전개, ‘오오카가와를 생각하는 모임’을 결성, 강에서 쓰레기를 꾸준히 제거하고 관은 생활하수와 공장폐수를 분리하면서 어느새 오오카가와는 시와 시민의 자부심으로 개과천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프레젠테이션으로 이어진다. 최근 카누 페스티벌까지 개최할 정도로 깨끗해진 오오카가와는 휴일이면 아이들의 놀이공간이 되고 시민단체는 학생들을 위해 생태학교를 개최한다고 우리에게 그 성과를 소개한다. 사라졌던 온갖 게들이 돌아오는 것은 물론, 물개 종류도 눈에 띄어 수질이 좋아진 것을 반영한다고 프레젠테이션을 마친다. 시 당국과 시민단체의 공동 노력으로 살아난 강을 후손에게 전해주려는 그들의 모습에서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인천도 강 살리기에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시민사회에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아니 대부분의 시민들은 강 만들기에 대한 내용을 거의 모른다.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할 것이다. 요코하마도 하룻밤에 성과를 이룬 게 아니다. 먼저 시민사회의 의식이 성숙되어야 한다. 예산 배정도 강을 살리는데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지만 무엇보다 시민들의 기대감을 높여야 하는데, 이는 참여로 가능하다. 똑똑한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가열찬 노력보다 깨끗해진 강에서 자부심을 느낄 시민들이 앞장설 때 강 살리기는 일과성이 아닌 지속될 소명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요코하마 시의 오오카가와는 그 사실을 잘 웅변한다.

 

요코하마 시민단체의 설명을 뒤로 우리는 요코하마 시의 주요 관광지로 알려진 중국음식점 골목을 저녁을 위해 찾았다. 중국음식은 일본에 어떻게 적응했을까. 정답은 짠 음식인가? 맥주 한잔 하고, 요코하마 역 주변 도심에 위치한 ‘요코하마 엑셀 도큐’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 주변에 선술집과 노래방이 즐비한데 젊은 일행은 요코하마 시에서 맞는 첫날밤을 그냥 넘기지 않을 터. 유혹을 물리치고 가지고 간 책을 읽다 텔레비전을 켜자 뉴스는 고이즈미 수상의 신사참배 소식으로 도배한다. 일본어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지만 중국에 비해 우리의 반응은 미지근하가 보다. 원칙적인 몇 마디에 그친 노무현 대통령에 비해 중국은 물론, 일본 야당의 비난도 매우 거센 듯하다. 내일 태풍 우쿵이 일본 열도 남쪽을 관통할 텐데, 요코하마 시의 날씨는 어떨지, 우산을 꺼내 작은 가방에 넣고 잠에 떨어졌다. ‘부루 라이토 요코하마’는 내일 볼 수 있으려나.


 

 

7시 알람 소리에 깨어 뭉그적거리다 아침 먹으러 내려간다. 밥과 두부가 보장되는 일본 호텔은 느끼한 서양 음식보다 먹을 게 많아 다행이고 맛도 괜찮다. 가지고 책을 더 읽고 9시 반에 로비로 나와 버스에 올랐는데 두 명이 지각이다. 요코하마의 밤을 진하게 즐겼나. 겸연쩍어 올라타는 일원에 대해 일행은 박수를 친다. 스스로 부끄럽게 만드는 점잖은 핀잔이다. 오늘은 요코하마의 구 도심을 걷는 날이다. 도로가 좁은 구 도심은 요코하마의 짧은 역사를 곳곳에서 반영하고 있다. 일본을 본격적으로 개항한 흔적이 특징으로 살아있는 곳이다. 중국의 상해, 우리나라의 인천과 더불어 요코하마도 개항 이후 작은 어촌이 대도시로 탈바꿈한 극동아시아의 항구도시로, 개항과 관련된 유물이 많다. 개발을 위해 쉽게 철거하는 인천과 달리 요코하마는 의미를 담아 보전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개항을 축복으로 여기는 정도는 우리보다 심해 보인다.

 

시간 당 200엔 하는 시내 주차장의 요금은 우리와 비슷한데, 군데군데 유럽에서 흔히 보았던 지저분한 낙서가 보인다. 미군이 뿌린 저질 문화의 단면일까. 개중에 예술적 표현물도 있다는데, 낙서가 보기 싫은 건물주는 일부러 벽에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가로수를 잘 배치한 거리의 녹지를 버스에서 바라보다 ‘요코하마 개항자료관’을 방문한다. 그리 넓지 않은 부지의 개항자료관 입구에는 미국 페리제독이 이끌고 온 전함을 그린 안내판이 시야를 빼앗고, 그 옆에는 특별해 보이는 나무가 서 있다. 비전공자의 무덤덤한 눈으로 대충 돌아 20분이면 충분한 자료관은 상해 동방명주 아래층에 만든 전시관보다 규모는 작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요즘 인천에서 요코하마와 상해를 비교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데, 인천도 내세울 게 있나 궁금해진다. 입구의 나무는 1854년 페리제독과 가진 개항과 화친조약식을 지켜본 증인의 후예다. 관동지진 때 타버린 나무의 종자를 찾아 복원했다고 한다. 미국에 대한 최혜국 개항을 약속한 1854년, 8척의 검은 함대를 이끌고 나타난 페리제독은 대포의 포신을 육지 쪽으로 돌렸다고 한다. 1년 전 4척으로 무력시범 보이고, 1년 후의 가부를 묻겠다며 떠날 당시보다 위력적이었다. 혼비백산한 일본은 문을 열었고, 이후 작은 어촌이던 요코하마는 급속도로 팽창했다. 그때 형성된 곳이 구 도심이고, 일본의 근대사를 웅변하는 건축물과 그 이야기가 곳곳에 산재한다.

 

개항자료관부터 우리를 종일 안내하고 친절하게 설명한 분은 60대가 훌쩍 넘어 보이는 여성으로, NPO의 하나인 ‘요코하마 시 가이드협회’의 일원이다. 몸은 가냘프지만 목소리에 힘이 넘치는 그는 개항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어 보인다. ‘요코하마개항기념관’ 방문 스탬프를 공책에 찍고 태풍 주변에 내리는 비로 추적추적한 거리로 나선다. 옛 거리의 은행나무 가로수는 독일 도시와 같이 잘 정리된 초본을 밑동에 거느리며 건강했고, 거리는 왕복 2차선이 많다. 오봉 기간이라 그런지 교통량은 많지 않은데, 시 당국은 예스러운 버스를 배차하고, 거리의 시민들은 자전거를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1923년 9월 1일에 발생한 진도 7.9의 관동대지진은 요코하마의 모습을 크게 일신하게 했다.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져 새로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실업과 사회혼란의 희생양이 필요했던 당시 일본 권부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탔다는 소문을 의도적으로 퍼뜨려 수천의 조선인이 흥분한 일본인에게 학살당하게 방조하기도 했는데, 지진이 파괴한 일본의 사회상도 그만큼 피폐했을 것이다. 요코하마 구 도심을 걸으면 건축 시기가 같은 고색창연한 건물을 쉽게 마주한다. 우리를 안내하는 분은 “저건 관동대지진 이후 지은” 하며 옛 건축물을 가리킨다. 가끔 유럽식 석조건물도 보이는데, 관동대지진 때 무사한 것이라고 한다. 1995년 1월 고베를 강타한 지진도 불이 무서웠다. 전기오븐으로 요리하는 부자나 석유곤로로 끼니 때우던 하층민보다 가스로 밥해먹던 중산층이 호되게 당했다. 수십 년 돈 모아 겨우 마련한 목조건물이 홀랑 타버린 것이다. 돌림병을 막아준 일본 최초 상하수 시설부터 일본 최초의 축대를 지나 문화회관으로 사용되는 현청홀 6층의 전망 좋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페리 제독과 조약을 맺고 무역항으로 개발된 최초의 항구는 1959년에 모습을 갖추었고, 당시 사용하던 최초의 붉은 벽돌 창고는 문화재로 보전된다. 페리 제독이 누비던 거리의 흔적을 더듬는 기분을 느껴보라는 안내자의 제안보다 구 도심을 ‘걷고 싶은 거리’로 꾸며내는 모습이 정겹다.

 

요코하마 항구가 한눈에 보이는 식당을 나와 ‘하마도리’에 승선한다. ‘요코하마 항 진흥협회’에서 관리 운영하는 하마도리는 299톤 39.8미터의 깔끔한 유람선으로 요코하마를 방문한 특별한 손님에게 무료로 개방된단다. 가이드의 마이크 소리와 더불어 여기저기 비디오 모니터에서 나오는 안내방송이 교차하는 가운데, 푹신한 카펫과 깨끗한 마루로 장식된 유람선은 거대한 크레인이 즐비한 요코하마 항의 여기저기를 한 시간 정도 스쳐 지나간다. 개발에 굶주리고 경쟁에 조바심 내는 국가나 지방의 방문객들은 하마도리에서 넋이 나가겠지. 요코하마 항의 규모와 그 움직임에 놀란 방문객은 일본식 개발에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옛 거리에서 우리를 안내한 일본 시민단체 일원도 하마도리는 처음인 모양이다. 감개무량한 표정을 보인다. 우리처럼 여기저기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기념촬영에 바쁘다. 가이드는 페리 제독이 된 느낌을 가져보라 했는데, 페리 제독은 일본의 구제주로 찾은 것은 분명 아니다. 비가 오락가락하자 우산을 내주는 선원들은 말없이 친절하다. 미나토미라이의 준수한 건물군과 발전소와 소각장과 항구를 잇는 멋진 다리들을 바라보며 돈의 위력을 새삼 절감한다.

 

하마도리에서 내려 ‘아카렌가’라 이름하는 붉은 벽돌 창고를 찾았다. 외양이 그대로 보전된 창고는 자질구레한 일상용품과 기념품, 여성들이 좋아할 액세서리, 그리고 가족과 연인들이 즐겨 찾는 식당가로 꾸며 놓았다. 오봉 기간이라 그런지, 바글바글한 인파. 가격표를 보니 세다. 모형 자동차 경주가 한창인 밖으로 나오니 2002년 거액을 들여 신축한 선착장이 가까이 보인다. 선착장 옥상에 잔디를 깔았고 시민들이 삼삼오오 올라 휴식을 즐긴다. 항만이 차단된 인천에 사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 부럽지 않을 수 없다.

 

날이 개면서 요코하마는 과연 후텁지근하다. 어제 잠시 들렸던 시민활동지원센터 쪽으로 걸으며 미나토미라이를 상징하는 건물 군을 구경한다. 아침부터 우리를 안내하는 요코하마 시 시티가이드 협회의 나이 든 여성은 목소리가 아직 낭랑하다. ‘미나토미라이 21’의 개발을 자신감 넘치게 소개한다. 그 한가운데 위치하는 컨벤션센터와 물결무늬를 연결한 3개의 건물과 호텔을 지나, 아래층에 고급 상가를 즐비하게 갖춘 랜드마크 빌딩을 외부에서 내부로 지나면서 관광지로 보전된 과거의 갑문을 건물 안에서 내려다보고, 돛이 4개나 달린 대형 범선이 정박한 내항도 본다. 그 범선은 관광객을 위해 개방돼 있다. 그런데 랜드마크 빌딩의 화려한 쇼핑공간은 인천시 서구의 가정5거리 재개발 기획 홍보 영상물에서 본 듯하다. 일본 설계자의 작품이라더니, 혹시 같은 이가 아닐까. 범선의 돛을 형상화한 문양이 눈에 띄는 296미터의 랜드마크 빌딩이 카메라 파인더 안에 꽉 차게 들어오는 지점에 시민활동지원센터의 건물이 있다. 그 건물로 들어선다. 미나토미라이 지역 개발에 얽힌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시민활동지원센터에서 ‘미나토미라이21’ 전무의 설명을 들었다. 요코하마 시의 고위 공무원 출신인 그는 이름이 기시다로 키가 큰 50대 후반이고 점잖은 인상이다. ‘미나토’는 ‘항구’라는 뜻이고, ‘미라이’는 ‘미래’다. 거기에 21세기를 붙인 ‘미나토미라이21’로, 미나토미라이 지역을 매립 조성한 후 창립한 회사 이름이다. 기시다 전무는 한국어로 된 15분 홍보 영상물을 먼저 보여준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다녀갔을까 싶고, 얼마나 많은 계약을 한국과 맺고 싶어 하는지 짐작이 간다. 녹지대가 풍부하고 기회를 창출하는 도시라고 홍보 영상물은 주장한다. 세상의 어느 홍보물이든 다 그렇겠지만, 미나토미라이를 홍보하는 영상물의 뻥도 세다. 녹지가 풍성하다니, 그 정도가 풍부한 녹지라면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본 녹지는 도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미나토미라이를 본떠 송도신도시의 녹지를 조성할까 공연히 걱정이 앞선다. 인천시 고위 공무원이 숱하게 다녀갔을 텐데.

 

현재 5만 명의 인구가 근무하는 미나토미라이 지역은 요코하마의 자립도를 향상시켰다고 홍보물은 자랑한다. 160헥타르를 차지하는 면적에 개발을 계속해 장차 17만 근무자와 1만 주거 인구를 예상하는데, 최근 개통한 지하철은 동경 도심에서 일본 최고 높이의 랜드마크 빌딩까지 30분이면 족하다고 한다. 영상물은 동경 시민들의 지갑이 랜드마크의 호화 쇼핑센터에 와서 확 풀리기를 학수고대한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미나토미라이에 입주하는 기업에 세금을 경감해준다는 영상물은 테니스와 축구장을 조성한 체육공원을 보여주는데, 우리 인천처럼 체육공원을 빙자하는 골프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연간 500만 명의 관광객이 운집하는 미나토미라이. 과연 인천 매립지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함께 자리한 요코하마 시민활동지원센터 회원의 모습이 흐뭇한 게, 시에서 제작한 홍보 영상물이 자랑스러운 모양인데, 기시다 전무의 생각은 어떨까. 물론 마찬가지일 텐데, 그는 사업가다. 인공 시설에 대한 자부심보다 사업성에 관심이 높을 것이다.

 

미나토미라이는 40년 전에 기획, 23년 전에 개발을 착공한 계획도시다. 미나토미라이21은 요코하마 시가 최대 주주로, 공사 착공 11년 후 출범했다고 한다. 미쓰비시 조선소가 이전하면서 계획을 시작했다. 조선소 앞 바다를 국가 지원을 받아 매립해 160헥타르의 육지를 확보, 도시를 계획하고, 정비사업을 여전히 진행하고 있다. 기반 조성은 국가의 지원을 받았고 건축은 민간이 주도하는 미나토미라이21은 이른바 ‘제3섹터’ 방식의 회사다. 요코하마의 민간기구(NPO)인 ‘마을 만들기 위원회’에서 제시하는 의견을 참조, 도시 건축물과 공원을 배치했고, 자투리에 많은 녹지를 배정하거나 도시 곳곳에 예술작품을 설치했으며, 활기찬 도시 분위기를 연출시키기 위해 건물 저층은 상업용으로, 고층은 업무용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기시다 전무는 색상과 디자인을 충분히 고려해 도시를 설계하고, 도시 미관을 위해 옥외광고물을 철저히 규제한다고 말한다. 그게 미나토미라이의 도시개념이라고 소개하는데, 송도신도시 주변의 신축 건물이 밖으로 온통 간판으로 시끄럽게 도배된 우리의 실태와 비교된다.

 

통역을 통한 설명회는 긴장감이 떨어지는 감이 있다. 홍보 영상물 뒤로 기시다 전무의 설명과 질의응답이 이어진다. 한국 방문객을 상대로 비슷한 설명을 많이 했을 전무는 시종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고, 그래도 무언가 해답을 얻으려는 우리는 자세가 비교적 진지한데, 그렇다고 갑론을박이 긴박할 분위기는 아니다. 아직 매립을 고집하는 갯벌의 면적이 많이 남은 송도신도시의 개발과 요코하마의 미나토미라이21을 비교해 우리가 얻을 게 전혀 없지 않겠지만, 획기적인 기대는 불필요하다 싶다. 얻어갈 것을 찾기 위해 사생결단할 필요도 없지 싶다. 송도신도시 개발계획에 우리와 같은 시민단체의 참여가 보장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인천시가 주장하는 추가 매립의 당위성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다만 인천보다 경제규모와 운영능력이 월등한 요코하마에서 송도신도시 부지보다 면적이 훨씬 좁은 미나타미라이의 개발을 어떻게 실패하지 않고 이어갔는지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송도신도시의 분별없는 개발을 억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측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기시다 전무는 차분히 설명을 잇는다. 40년 전에 기획해 23년 전에 착공하고, 착공한 지 11년 후 제3섹터인 ‘미나토미라이21’이 회사로 공식 출범했다는 것, 미쓰비시 조선소 자리를 포함하고 중앙 정부의 1200억 엔 지원으로 조선소 앞 바다를 추가 매립해 모두 160헥타르 넓이의 공간을 확보, 도시계획과 정비사업에 들어갔다는 것, 요코하마 시는 700억 엔을 들여 도로와 녹지공간을 조성했고, 건축은 민간이 주도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해마다 100억 엔의 재산세가 들어와 요코하마 시는 투자비를 모두 건졌고, 이제 이익을 걷어들인다는 걸 담담하게 전하는 전무는 절반 정도 남은 지역은 앞으로 20년 이상 개발할 예정이라고 덧붙인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초호화 쇼핑센터를 동경 시내와 연결시켰으므로 지금보다 더 성공할 것이라 기대하는 기시다 전무의 희망은 절반의 성공일지 모른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 남아 있으므로. 인천 송도의 매립지는 미나토미라이 지역에 비해 계획 면적이 대략 30배에 달한다. 그 거대한 면적을 조기 개발하려 인천시는 꽤 조급하다. 해외 투자가 밀려드는 것처럼 선전하지만 그 실적은 실제 미미하고, 연세대학교가 당장 들어설 것처럼 선전하지만 그 과정과 실체가 미심쩍다. 무엇보다 개발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이 전혀 수렴되지 않는다. 인천의 송도신도시 개발에 대한 충고를 부탁하니 이미 숱한 인천시 공무원과 만나 이야기 나누었을 기시다 전무는 웃으며 사양한다. 그는 인천시의 계획을 무모하다 여길까. 모를 일이다.

 

직원이 30명 정도에 불과한 미나토미라이21에는 공무원이 없다고 한다. 공무원은 사임 후 취업한다고 전하는 기시다 전무는 회사 내 ‘마을 만들기 협의회’를 두고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시민 참여 여부를 묻는 우리 질문에 답한다. 건축물 배치나 자투리 녹지 활용, 거리에 예술작품을 설치하는 데 시민들의 의견이 존중된 듯하다. 8명에서 현재 40명으로 증가한 ‘마을 만들기 협의회’는 앞으로 인원을 두 배 이상 확충할 예정이라는데, 개발 초창기부터 협의하기로 한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어 충돌이 없었다고 뿌듯해한다. 도시 재개발을 놓고 주민들 사이, 주민과 사업자 사이, 주민과 공무원과 갈등이 난무하는 우리와 다른 모습인데, 어쩌면 일본 특유의 NPO의 성격과 무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미나토미라이21 내의 마을 만들기 협의회는 계획 단계에서 사업에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뿐, 사업자체에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계획을 중간에 수정할 때 시민이나 시민들이 추천하는 관련 전문가들을 소집해 의견을 수렴하지만 아직까지 충돌은 없는 모양이다. 앞으로도 필요할 때에 협의회의 의견을 청취하겠지만, 특별한 문제제기는 없을 것으로 전무는 확신하는 듯하다. 기시다 전무와 반갑게 인사하는 일본 시민단체 일원들은 흐뭇한 표정이 역력하다. 아마 전무의 설명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전문가나 시민들의 문제제기는 없었을까. 없는 게 이상한 것 아닐까.

 

기시다 전무의 설명을 뒤로, 선물을 준 우리 일행은 요코하마 시민활동지원센터의 실무자와 자원활동가들과 교류회를 가졌다. 일본 특유의 초밥과 두부와 어묵요리들이 가지런히 차려진 테이블 주위에 빙 둘러선 일행은 서로 소개와 인사를 하고 녹차 음료수를 들어 건배와 식사 시간을 가졌다. 공항에 마중 나와 첫날부터 우리를 안내한 무라하시 선생은 요코하마 시의 시민활동지원센터를 우리에게 설명한다. 이때 통역은 일본 측에서 맡았는데, 우리가 흔히 조총련계라고 지칭하는 제일조선인 동포 여성이었다. 무라하시 선생은 5년 전 요코하마 시에서 NPO를 위해 건물을 지원했고, 작년부터 직원과 활동가와 시 담당직원이 모이는 위원회를 구성해 권한을 강화했다고 이야기한다. 대략 200에서 300평 정도로 보이는 7층 건물 중 5층과 7층을 공동사무실로 활용하는데, 여러 목적을 가진 NPO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하면 함께 행동한다고 한다. 여기 저기 시민들이 모여 진행하는 회의가 진지해 보이는 센터 건물은 아닌 게 아니라 많은 단체의 알록달록한 전단이 여기저기 배열돼 있고, 칸을 낮게 막은 여러 사무공간마다 활동가들이 바삐 움직인다. 요코하마에서 활동하는 크고 작은 NPO들은 형편에 따라 책상만 사용하거나, 크고 작은 사무공간을 임대하는데 그 비용은 한 달에 8천에서 2만4천 엔에 불과하단다.

 

오늘 아침부터 우리를 안내한 요코하마 시티 가이드협회와 헤어지면서 감사인사하자, 보여주고 싶은 곳이 아주 많다고, 다음에 꼭 다시 와 달라고 당부한다. 인천처럼 비록 외세에 의해 개방된 곳이라고 하지만, 왜 보여줄 곳이 적겠는가. 설명이 필요한 역사와 문화공간은 아주 많을 것이다. 우리가 보고 싶은 도시 녹지도 곳곳에 잘 조성했을 것이다. 아쉬움 속에 지속적 교류를 다짐하며 건물을 빠져나왔는데, 언제 다시 찾을지. 단체 사진을 함께 촬영하고, 우리가 묵는 호텔 주변의 선술집을 찾는다. 교류회 때 차려진 음식을 충분히 먹지 못한 일행은 저녁을 보충해야 하고, 나머지는 일본 특유의 곡주, ‘사케’를 마시고 싶은 게다. 동갑내기인 재일조선인을 억지로 앞세워 손님들로 꽉 찬 선술집에서 요행히 자리를 잡는다. 일본 정종과 맥주를 거푸 들이키며 요코하마 두 번째 밤을 이야기로 맞는다. 동포인 배안 씨는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조총련에 대해 자신의 소회를 피력한다. 그들은 북한도 남한도 아닌 일본에서 자존심 잃지 않고 사는 ‘조선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덕분에 우경화된 일본인들의 차별과 이지매를 견디면서도 우리의 말과 글과 문화를 잊지 않을 수 있었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남한이 고향인 그도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으로 입국하기 불가능했다고 한다.

 

선술집에서 나와 아주 피곤하지 않은 일행의 일부는 따로 무리 지어 일본 젊은이 삐끼를 따라 일인당 1500엔 하는 노래방에 들어가서 한 시간 목청 가다듬으며 무료 맥주도 들이킨다. 노래방의 책엔 일본 가요 다음으로 한국 노래가 압도적이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찾을까. 혹시 이것도 한류? 우리나라 최근 유행곡이 구비되어 일본 같지 않다. 소리를 얼마나 지르며 노래를 불렀는지 목이 컬컬한 가운데 호텔로 들어서니 피곤하다. 이내 곯아 떨어졌다.


 

 

3일 째 되는 날. 8월 17일이다. 하늘은 쾌청한데, 일기예보는 비올 확률을 30퍼센트로 잡는다. 우산을 챙길까. 이번엔 큰 가방도 관광버스에 실어야 하는데, 우산을 들고 나서기 귀찮다. 오늘은 ‘가나자와 산업단지’에서 쓰레기나 하수에서 에너지를 활용하는 소각장과 하수처리장을 들릴 예정이다. 버스에서 멀리 떨어질 일이 없을 것 같아 우산을 큰 가방에 넣었다. 박수를 받으며 버스에 오른 이가 오늘은 없다. 다행이다.

 

일본은 공업단지라 하는 우리와 달리 산업단지라고 말한다. 해안 매립지에 위치한 산업단지는 모노레일이 대중교통을 도맡는데, 버스 크기의 5-6량이 버스 속도로 움직인다. 지하철보다 건설비용이 저렴하다고 가이드는 전한다. 태풍은 일본 남쪽을 관통할 예정이라는데, 바람은 없고 가는 비가 오락가락한다. 산업단지는 숲에 가까운 녹지를 잘 조성했고, 공장마다 근사하게 단장한 조경이 우리네와 비교돼 부럽다. 특히 우리가 방문한 가네자와 청소공장의 조경이 수려하다.

 

생활 쓰레기 소각장을 청소공장이라 말하는 요코하마 시는 모두 6기의 청소공장을 관리 운영한다. 출렁이는 바다의 물결을 형상한 외관을 자랑하는 가나자와 청소공장은 최근에 건설했고, 하루 400톤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소각로 3기를 가진다. 우리를 안내한 요코하마 시 자원순환국 소속 공무원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세분화한 분리수거를 철저하게 시행해 5년에 비해 수거되는 생활 쓰레기의 양이 3분의1로 감소되었고, 덕분에 33년 가동한 청소공장 1곳의 운전을 정지, 해체할 예정이라고 전한다. 앞으로 계속 청소공장의 수를 줄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인다. OHP와 일반 서류는 물론, 정지화면과 동영상을 모두 처리하는 프레젠테이션 시스템은 벽걸이 초대형 모니터에 여러 화면을 즉각 출력하는데, 그 시스템은 우리 뿐 아니라 수많은 국가와 지역의 방문자의 궁금증을 효과적으로 풀어주는데 그치지 않을 것 같다. 단순한 부러움을 사는 것은 물론,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고 싶은 충동이 정책결정력을 가진 방문자 단장의 뇌리를 자극하게 되리라. 가네자와 산업공단에서 배출되는 산업폐기물의 유입을 철저히 방지하는 청소공장은 대기오염 배출 기준치가 우리와 큰 차이가 없고, 외양이 근사하다는 점도 별반 다르지 않다. 참고로 유럽의 소각장들은 외양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쓸데없는 예산낭비라 여기는 까닭인데, 그만큼 민원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은 왜 우리나 일본과 같은 민원이 없을까. 아마 신뢰를 바탕으로 계획, 설계, 운전되는 데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아무튼, 발생되는 바닥 재의 3분의1을 용융해 주로 구리 성분이 많은 일부를 재활용하고 나머지는 도로포장재로 반출하는 나네자와 청소공장은 발생하는 열로 전기를 생산하는 특징이 독특하다. 우리가 찾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발생하는 쓰레기 재를 전량 매립하고 소각로에서 발생한 열을 지역난방에 활용하려는 우리와 다른 점인데, 그 점이 김성중 교수를 자극한다.

 

일행 중 김성중 교수가 질문의 먼저 포문을 연다. 전공이 같으니 송곳 질문이 가능할 것이다. 음식 쓰레기를 전량 소각하는 일본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김성중 교수는 발전보다 열을 직접 활용하는 편을 지지한다. 다이옥신 처리 장치가 없어도 기준치 이하로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데 왜 불필요한 장치를 비경제적으로 설치했는가 묻자, 처리 장치를 달아 기준치인 0.1나노그램에 훨씬 못 미치는 0.00045나노그램이 배출된다면서도 안내자는 김성중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는 눈치다. 처리 장치 없어도 안전 농도 이하로 충분히 배출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귀띔한 김성중 교수는 전문가의 과학적 설득이 민원을 이해시킬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일본도 어쩌면 우리와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유해물질을 함유하는 비산 재의 용융이라면 몰라도 바닥 재 용융에 회의적인 김성중 교수는 용융로의 효율을 묻는다. 김성중 교수의 생각에 동의하는 안내자는 불필요한 시설일 가능성이 있어 일본에도 유일한 용융로를 3기 소각로 중 1기만 시험으로 가동하는데, 결과가 좋아야 확장할 예정이라고 답한다. 정책 결정자가 아닌 안내자는 자신의 대답에 자신이 없는 모습이다. 비산 재는 시멘트로 고형화하여 매립하는 가네자와 청소공장은 시간 당 35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해 에너지의 15%를 회수한다고 전하고, 김성중 교수는 열과 증기 활용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의견을 밝힌다. 그러면서 1인 당 하루에 450그램 정도인 일본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쓰레기를 배출하는 우리의 생활을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옳은 말이다. 일본보다 개인 소득도 적은데 왜 이리 버리는 게 많은지, 원.

 

냄새는 물론, 먼지 하나 보이지 않는 복도로 청소공장의 여기저기를 이동하면서 창문을 통해 인근의 풍력발전용 대형 풍차 한 기를 본다. 미쓰비시 중공업의 시설로 시간 당 2500킬로와트를 생산한다고 한다. 이 청소공장은 방문자의 동선을 실내로 유도한다. 복도에 관련 미니어처와 사진과 처리물을 전시해 놓아 설명만으로 모자랐던 방문자의 이해를 도와준다. 하수오니와 음식 쓰레기까지 소각하는 청소공장에서 용융해 얻은 단단한 재는 도로포장에 활용하는데 요코하마 필요량의 10%를 충당한다고 한다. 물론 무료로 공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도로포장재의 값과 맞추었을 것이다. 매우 비경제적으로. 우리를 안내한 공무원은 18년 동안 같은 일을 맡고 있다. 그는 그 방면의 전문가일 것이다. 우리 사정은 어떨지. 그와 정문에서 기념촬영을 할 때, 일사병이 염려될 정도로 볕이 강하다. 일본 동경 주변의 무더위를 다 같이 실감한다.

 

주변 식당에서 점심을 들었다. 노동자를 위해 저렴한 가격으로 운영하는 듯 보이는데, 일본인으로 착각한 종업원이 묻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쉽게 라면과 밥을 주문해 먹었다. 일본 라면은 처음인데, 맵지 않은 게 오히려 먹을 만하다. 정세국 인천녹색소비자연대 전 공동대표가 선심을 써 나누어주는 아이스바를 입에 물고 버스에 오르면서 기사에게 미안하다. 그런데 기사도 같은 아이스바를 입에 물고 있다. 덥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제 생활하수, 즉 바이오메스로 전기를 생산하는 도시형 하수처리장, 요코하마 환경창조국의 남부 오니자원화센터를 방문할 순서다.

 

마르고 키가 큰 편인 안내자 역시 공무원이다. 천장에서 에어컨이 나오는 게 분명하지만 섭씨 28도에 맞춰 더운 실내에서 비디오를 먼저 시청하고, 현장을 돌며 대화를 나누었다. 18년 된 시설에는 구형 하수처리 시설이 늘어섰는데, 하수처리 시설에서 발생하는 메탄을 농축, 정화해 70%는 발전에, 나머지는 최종 오니를 건조하는데 활용한다. 발전한 전기는 전량 자체 소비하는데, 소비 전력의 5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가네자와 청소공장에서 생산한 전기를 받는다고 한다. 발생하는 오니의 거의 전부를 바다에 투기하는 우리와 달리 요코하마는 안전하게 처리해 시멘트 원료로 활용하는데, 얼마 전까지 연간 100만 개의 벽돌로 가공해 시중 벽돌 값으로 처분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벽돌 가공설비가 멈춰 있다. 개당 생산원가가 400엔인 벽돌을 78엔으로 판매해도 기존 벽돌에 비해 경쟁력이 없어 추가 생산을 포기한 모양이다. 공장 한 컨에 수북이 쌓여있는 벽돌의 모양은 꽤 예쁘다. 벽돌을 만드는 거대한 설비는 앞으로 어떻게 할까. 혹시 우리나라에 옮겨지는 건 아닐까. 무더위에도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에어컨을 조절하는 공장에서, 우리를 안내한 시몬구라 씨는 물론, 현장을 오가는 사원 모두 예외 없이 헬멧을 쓰고 있는데, 더위에 지친 우리만 제공된 헬멧을 벗어 들고 다닌다. 좀 계면쩍다.

 

아침 관광버스부터 우리와 동참한 요코하마 시립대학교의 사사키 이치로 교수가 짧은 시간 강연을 한다. 아시아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사키 교수는 자원순환형 에너지 개발과 이용을 위해 연구하는 전문가로, 그 필요성을 인식시키려 우리 국회에 와서 증언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몽골의 황사 진원지에 나무심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는 사사키 교수는 1990년 이후 서울과 인천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면서 우리에게 깊은 연대와 관심을 표명한다. 오봉 기간에도 일부러 시간을 내었는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해 서로 아쉬움이 크다. 요코하마 시 자원순환 연구 책임을 맡으면서 지구온난화 방지 대책의 모델지구로 지정된 요코하마에서 생활하수와 쓰레기를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 고갈되는 화석연료의 대안 찾기에 골몰하는 전문가의 자세를 읽을 수 있다. 사사키 교수는 1배럴에 100달러로 원유 값이 치솟을 것을 예측하며 일본은 대안을 모색한다고 전한다. 한데 일본과 달리 우리는 무사태평이다. 햇빛발전이나 풍력을 대안으로 모색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기물에서 메탄을 뽑아 활용해야 한다고 사사키 교수는 역설하면서 아직 절박한 자세를 취하지 않는 한국의 느긋함에 안타까워한다. 답답한 마음을 일본에 와서 공유하자니 더 답답하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시민사회도 참여하는 에너지 대책기구를 설립해 국제적 협력을 기울이자고 제안하는 그는 함께 노력하자고 다짐한다. 에너지 소비 증가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도 정신 차려야 하는데, 걱정이다.

 

사사키 이치로 교수가 아쉬움 속에 버스에서 내리고, 오후 3시가 되었다. 이제 공부 끝이다. 이제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는 동경으로 향한다.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아직 오봉 연휴라 고속도로는 덜 혼잡하다지만, 동경의 도심 가까이 가면서 꽉 막힌다. 동경 도시 고속도로는 이리저리 휘면서 오르락내리락한다. 1964년 동경올림픽 팡파르에 완공시기를 맞춰 기존 도심을 유지하며 건설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어째, 우리와 비슷한 면이 많다는 느낌이다.

 

다섯 문의 대포가 있던 섬을 매립해 조성한 ‘오다이바 해양공원’에 잠시 내려 수교 100주년에 미국이 기중한 금색 자유의 여신상을 거들떠 본 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버스에 오른다. 지하 공기유압장치로 쓰레기를 중앙에서 수거한다는 동경도 강동구 청소공장을 차창으로 본다. 송도 신도시의 쓰레기 수거도 고기유압식일 예정이라던데, 고장 나면 골치 무척 아프다는데, 에너지와 예산낭비는 아닐지. 여기도 모노레일을 대중교통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한국 관광객이 주요 고객인 시내 면세점에 잠시 들려 자질구레한 선물을 구입하고, 동경도청사의 전망대에 올라 회색 동경을 둘러본 후, 한식당으로 가 며칠 만에 김치가 놓은 저녁상을 마주한다. 일인 당 2000엔이면 비싼 듯한데, 과식했다. 한국인이 많이 투숙하는 신주쿠 시내의 고층 호텔(메트로폴리탄)에 집을 풀고, 인천 구월서초등학교를 모범적인 푸른 교정으로 바꾸는데 크게 애를 쓴 오창길 선생을 만나 근처 선술집을 찾았다. 그는 생태도시를 현장과 이론으로 1년간 공부하려 관련 대학이 있는 동경에 올 초에 왔다. 교육부 지원이라고 하는데, 일 년 더 공부하려 연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가 자랑스러울 뿐 아니라 더 없이 고맙다. 덕분에 저렴하면서 친절하고, 맛도 그만인 선술집을 인천환경운동연합 조강희 사무처장과 인천녹색연합 한승우 사무처장과 인천도시환경연대회의 이희환 집행위원장과 가톨릭환경연대 권창식 사무처장과 더불어 즐겁게 체험할 수 있었다. 호텔에서 선술집으로 가기 전, 비가 갑자기 퍼부어 로비에서 머무적거리니, 어떻게 마음을 알았는지 호텔 종업원이 우산을 들고 나온다. 잠시 생경했지만, 마음에 닿는 친절에 고마움을 느꼈다. 선술집에서 방으로 돌아와 가지고 간 『신쥬쿠 시궁쥐 비둘기』를 마저 읽고, 잠을 청한다.


 

 

8월 18일, 마지막 날이다. 커튼을 펼치니 하늘이 아주 맑다. 한국 투숙객이 유난히 많은 호텔에서 메뉴가 다양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짐 정리 마친 가방을 끌며 로비로 나온다. 오늘 일정은 별 게 없다. 메이지 신궁을 본 후 점심 먹고 공항으로 가는 게 다다. 제10호 태풍은 예보대로 일본 남부를 관통해 많은 비를 뿌리며 큰 피해를 남겼고, 이제 한반도 동남쪽을 스쳐 소멸할 모양이다. 우리가 탈 비행기를 방해할 진로는 아니다.

 

단체 서양 관광객이 많은 메이지 신궁의 나무와 숲을 눈여겨보며 얼른 한 바퀴 돈다. 햇볕이 강해 그늘로 걸었는데, 그늘과 볕의 더위는 확연히 다르다. 공항과 가까운 식당에서 뷔페식 점심을 거나하게 먹고, 주변 양판점에 잠시 들려 퀼트 소품 몇 가지 구입하다 그만 버스에 늦게 올랐다. 고맙게도 기다리던 일행들이 박수를 치지 않는다. 공항에서 참기름을 구입하니 한 푼도 쓰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준비했던 알량한 일본 돈이 소진되고 말았다. 외국 다녀오면 가족과 가방 푸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핑계를 위안 삼고 비행기에 올라, 고기 덮인 기내식의 메인접시를 무시한다. 배가 꽤 부른 탓이지만, 고기를 피하기 위해서 그랬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주안의 한 식당으로 직행, 인천환경운동 식구들을 만날 때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도착하지마자 술부터 마시고 집에 돌아간 가장을 졸린 눈 비비며 기다린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맙다. 어렵사리 방문한 일본 요코하마 여행은 이렇게 3박4일의 일정을 아쉬움 속에 마쳤다.

 

우리와 여러모로 비슷한 요코하마, 짧은 일정 속에서 유사성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다른 면이 더 많다. 무엇보다 시민들과 기획 단계부터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지방정부의 자세다. 일본도 과거에는 밀어붙였다. 그래서 민원이 들끓었고, 그로 인한 상처도 깊었다. 그런데 타산지석을 시금석으로 여겨야 할 우리는 아직 구식을 답습한다. 아니 더 교활하다. 환경을 생각하는 듯 앞에서 아양을 떨고, 뒤에서 생태계를 파괴하는 개발이 횡행한다. 이른바 ‘신개발주의’다. 이번 요코하마 시 방문이 함부로 폭주하는 신개발주의를 멈추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행에 참석한 일행의 면면이라면 충분히 그를 위한 행동에 나설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있으므로. (요코하마 방문 소감문, 2006년 9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