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4. 22. 01:10

 

한 경제학자는 재개발로 멀쩡한 건물이 사방에서 무너지는 서울을 벗어나야겠다고 푸념했다. 아이와 함께 살 수 없다고 여긴 거였다. 사방에서 먼지가 날리는 곳은 서울만이 아니다. 주택경기가 좋던 나쁘던 인천도 재개발이 벌어지지 않는 동네를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건물이 무너지며 미세먼지가 풀풀 날리는 곳이 집 주위 2킬로미터 이내에 있다면 당장 떠나라고 그 경제학자는 외쳤건만, 대체 어디로 갈까나. 미세먼지가 허파꽈리에 박혀 수명이 단축되는 거야 바라지 않지만, 그 학자의 말대로 먼지가 일지 않는 동네를 도무지 찾을 수 없는 걸.

 

저녁 무렵 종로를 지날 일이 있으면 피맛골에 가야 했다. 허기진 채 인천행 지하철을 타기보다 피맛골의 생선구이집에서 삼치 반 토막으로 저녁을 해결하거나 일행과 열차집으로 몰려가 한잔 술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거들먹거리는 양반이 탄 말을 피하고 싶은 백성들이 다녔다는 피맛골. 그 피맛골에 문을 연 식당에 가면 맛보다 편안함이 있다. 나와 친구의 땀 냄새가 배어 있는 듯, 반가움이 인다. 그런데 지금 피맛골에 가지 않는다. 아니 갈 수가 없다. 종로의 오랜 문화와 역사와 전설이 서린 피맛골마저 최첨단을 지향하는 재개발로 먼지투성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데 어라! 어울리지 않는 곳에 피맛골이 새로 생겼다. 피맛골 일부를 헐어내고 휘황찬란하게 솟아오른 거대한 건물의 1층 로비에 피맛골이란 간판이 버젓이 달려있는 게 아닌가. 대리석 바닥의 식당가 이름이 피맛골이라. 예전의 피맛골을 앵벌이 삼는 그 건물에 전혀 들어가고 싶지 않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이전한 열차집의 간판이 인사동 어귀의 건물 위에 빛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도 그다지 찾고 싶지 않다. 주방장이 바뀌지 않았다면 맛이야 예전과 비슷할 테지만, 분위기가 영 아닐 것이다. 비 내리면 질척대는 길바닥에서 주당들이 흐느적거리던 그 골목이 아니지 않은가.

 

자유로에서 보이던 은평구의 언덕에 올라섰던 한양주택은 지금 그 자리에 없다. 은평뉴타운의 높은 아파트 숲에 가린 탓이 아니다. 고층아파트들이 아예 깔고 앉았다. 한양주택에 살던 주민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74남북성명 이후 남측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보여주려고 급히 만들어 날림이었지만 한마음으로 집을 수선하면서 함께 화단을 가꾸고 밭도 일구던 이웃들은 한양주택에서 따뜻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서울에서 몇 안 되는 공동체였기에 서울시장이 아름다운 마을이라며 상도 주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다. 다소 불편해도 이웃 사이에 돈독했던 한양주택 주민들은 재개발을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오순도순 살던 주민들은 뿌리가 뽑혔는데, 가끔 시내에서 만나 회포라도 풀까. 피맛골은 사라졌는데.

 

용산 재개발 현장, 푸른 망루와 그 주변에서 강제 철거를 반대하던 주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재개발 업자들이 장담한 대로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서 더 잘 꾸민 가게를 열어 시방 큰돈을 벌고 있을까. 하지만 그들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한때 뜨거웠던 언론도 주목하지 않자 그들은 투명인간이 되었다. 통 보이지 않는다. 100층 넘는 초고층빌딩을 포함하여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빌딩숲으로 용산 일대가 개과천선하면 사람들은 용산이 원래 그렇게 생겼을 거로 믿게 될지 모르지만 생각해보자. 희생자를 밟고 올라간 건물군은 화려하고 거대할수록 다른 희생자를 요구한다.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도, 멕시코의 칸쿤도 그렇다. 희생자가 없는 탐욕이 어디 존재한 적 있다던가.

 

한강대교 중간에 한쪽 어깨를 걸친 노들섬에는 맹꽁이가 산다. 하필 오페라하우스와 청소년 야외 음악당이 예정된 노들섬에. 물론 서울시는 노들섬의 맹꽁이와 사전에 설계 방안을 논의하지 않았다. 환경단체가 펼침막을 들고 항의하지 않았다면 맹꽁이는 건설 중장비 바퀴에 짓밟혔거나 콘크리트 아래 매몰되었을 건데, 다행히 대체서식지로 옮겨갈 수 있었다. 시설이 들어선 뒤 다시 데려올 것을 환경단체에게 철석같이 약속한 서울시는 옮겨간 곳이 “더 좋은 환경”이라고 했다. 더 좋은 환경이라, 맹꽁이에게 동의를 구한 걸까. 4대강의 모래와 자갈을 퍼올리고 강을 파헤치면 물고기들은 터전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환경단체와 생태학자들이 주장하니, 정부는 염려 말란다. “더 좋은 대체서식지를 확보할 거”라며. 하지만 토목공사 이전에 누구도 4대강 본류의 어떤 물고기가 어떤 생태 조건에서 어떤 생물들과 어떻게 어우러져 살고 있는지, 그들은 어떻게 이동했다 어떻게 다시 돌아오는지 조사한 사실이 전혀 없다.

 

송도11공구가 결국 메워지려는가.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에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저어새가 찾아왔는데, 그들은 어이할꼬. 그들이 악취 심할 뿐 아니라 자동차 소음이 진동하는 남동산업단지 유수지를 거듭 찾은 건 알에서 독립할 때까지 새끼들을 먹일 먹이를 송도11공구의 갯벌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들도 더 좋은 환경으로 내몰리게 되는 건 아닐까. 2000여 마리만 남아 세계적인 관심사로 보호되는 저어새는 인천시가 철새보호지역이라며 확보하려는 ‘더 좋은 습지’로 새끼들을 데리고 갈 것인가. 안정된 갯벌을 기필코 매립하고 철새가 외면하는 고층빌딩 인근의 습지를 내주면 인간을 혐오하는 저어새가 진정 감읍해 할 것인지, 인천시는 물론 사전에 파악한 바 없다.

 

멸종위기종으로 법으로 보호되는 맹꽁이와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에 대한 대우가 그런데, 다른 생물종의 처지는 어떨 것인지. 굳이 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까짓 동물들 없다고 인간사 별 문제없을 거라 단정할 테니까. 하지만 당하는 동물의 처지에서 조금만 생각해보자. 그처럼 끔찍한 일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어떤가. 물론 용산과 은평구 한양주택의 가난뱅이들 몇 가구를 몰아냈다고 대도시의 면모에 금이 가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시민들도 세금 잘 내고 버틸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아무도 쫓겨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럴싸한 더 좋은 대체 서식지를 앞세우는 탐욕 앞에 시민들은 무시해도 되는 부스러기에 불과할 테니. 시민이 무시되는 도시의 장래는 시민의 행복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을 테고.

 

강화 인근의 무인도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던 저어새가 하필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에 나타난 건 불가사이가 아니다. 오죽하면 게까지 왔을지 우린 고민해야 한다. 달리 방법이 없었던 건 노들섬의 맹꽁이도 마찬가지고 4대강의 강바닥에 사는 우리 민물고기도 그렇다. 용산에 가게를 마련했던 이웃도, 은평구의 한양주택 주민도 뿌리내린 바로 그 터전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게가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모든 생물에게 더 좋은 환경이란 없다. 조상의 역사와 문화의 터전인 피맛골을 탐욕을 위해 헐어버리는 우리에게 허용될 대체서식지는 장차 어디일까. 우주복 입고 뒤뚱거리며 외출해야 할 화성인가. (인천in, 2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