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3. 12. 14. 09:10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 백승우 외 4인 지음, 시금치, 2013.

 

 

손님은 왕이다? 그런 현상은 양판점에 들어갈 때마다 느낀다. 낯모르는 이가 그저 손님이므로 큰 소리로 꾸벅 인사한다. 박제된 인사가 싫어 딴청 부리거나 다른 손님에게 인사할 때 슬며시 들어가려해도 소용없다. 등을 대고 목청껏 인사한다. 누가 인사하는지 감시하는 모양이다. 문을 열자마자 은행이나 대형 서점에 들어가도 그런 인사를 받는다. 손님이 왕이라 그러는 걸까? 그런 착각을 즐기는 손님이 있긴 있겠지.


이거 맛있어요?” “그럼요. 맛없으면 바꿔드릴게요.”


손님을 왕으로 모시는 척하는 식품점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다. 하지만 적어도 생활협동조합이라면, 그런 대화는 어울리지 않는다. 농약 뿌리면 손쉽다는 걸 알면서 땅과 내일의 생태계를 살리고자 손으로 잡초 뽑으며 힘겹게 농사짓는 생산자, 그리고 유기농산물로 가족과 이웃의 건강을 도모하려는 소비자를 신뢰로 이어주는 협동조합은 손님을 왕으로 모시는 태도를 연출하면 안 된다. 하지만 외형이 날로 성장하는 생활협동조합 중에서 초심 잃는 경우가 있다. 왕이라서가 아니라 생떼 쓰는 소비자와 다투기 싫어, 냉큼 바꿔준다. 소비자 교육이 아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소비자가 왕이라고? ! 유기농을 하는 농사꾼들이 왕이라기에, 그 틈에 슬쩍 끼어 보려고 입문했던 백승우는 굳이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4명의 공동저자와 더불어 써야했다. 산업이라기보다 생태적 각성을 촉구하며 새로운 문명을 예지하는 사회운동이므로 유기농업은 자존심이 크다. 자존심 넘치는 농산물은 아무에게 함부로 내놓지 않았다. 따라서 생활협동조합이 첫발을 땔 때 유기농사꾼은 소비자 앞에 어엿한 왕이었는데, “이런 젠장, 시나브로 또 졸이 되었다한탄하는 한 농사꾼 백승우의 하소연은 무엇인가.


유기농업은 농약을 거부한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는 국제유기심사원 유병덕은 유기농산물이 어떻게 재배되고 소비자의 손에 오는지 주목한다. 귀농을 희망했던 그는 유기농업을 지원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는다. 유기농산물은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농약대신 농민의 땀이 스몄기 때문만이 아니다. 감성적 편견보다 과학적 사실에서 이유를 찾는 안병덕은 잘 나가는 직장을 일찌감치 그만두고 귀농을 선택했다. 최근 텃밭보급소라는 협동조합을 설립한 안철환은 도시농업하면 생각나는 대표적 인물이다. 정토회의 에코붓다운동으로 귀농을 지원하고생명평화의 가치를 전하는 유정길과 더불어 권말에 유기농업으로 이끄는 도시농업과 자급자족의 가치를 덧붙인다.


손님은 왕이라 믿으며 매장에 들어와 자기 식구들이 좋은 농작물 먹기 위해 이리 뒤적 저리 뒤적거리며 유기농산물 사가는 소비자에게 백승우는 웬만하면 유기농산물을 먹지 말라고 권한다. 그런 소비자는 먹다 남은 사과가 들어간 박스를 가져와 바꿔달라고 생떼 쓰는 경우가 많다. 농가소득은 보장하되 곡식 가격을 낮춰야 가공식품의 재료가 되고, 그래야 소비자와 농민이 두루 건강해진다고 주장하는 백승우는 강원도 화천군 비탈의 작은 밭에서 고추와 애호박으로 소득을 올리는 유기농부다. 스스로 얼치기라 말하는 그는 애호박 주산지에 들어와 처음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곤죽이 되었다. 이후 남들처럼, 하지만 유기농업으로 애호박에 주력하자, 이웃과 살가워질 수 있었다.


한 상자에 20만원에서 500원까지 오르내리는 애호박은 천 평에서 많으면 하루 400, 적으면 서너 개로 만족해야 한다는데, 우리나라가 애호박을 가장 많이 먹는 국가이고, 그 까닭에 애호박 재배 기술이 가장 앞선 나라라는 말, 부치든 지지든 무치든, 애호박을 그리 좋아하면서도 백승우에게 처음 들었다. 수확해서 소비자의 입까지, 아무리 길어도 닷새 안에 해결되어야 한다는 애호박도 생물이다. 크기가 제각각이고 열리는 시기도 알정하지만 소비자는 언제 어디서나 보기 좋고 먹기 좋은 것만 찾는다. 자식 먹여살려야 하는 농민은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일 수밖에 없다. 반듯하고 적당히 통통하며 적당히 큰 상등품 이상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사시사철 뼈 빠져야 한다.


비닐하우스를 만들자 고온다습하고 폭염이 낀 장마철에도, 사시나무 떨어야 하는 한겨울에서 애호박은 나온다. 그렇게 남들보다 돈을 더 벌자 너나없이 도전했고, 기술은 개선되었지만 점차 보편화되고, 받는 돈도 같아졌다. 농민만 더 힘겨워졌다. 생산원가만 상승했다. 코팅처럼 비닐이 얇게 씌워진 호박을 보고 참 재주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농민의 고통이었다는 걸 백승우가 알려주었다. 유통기한이 다소 길어져 수입이 잠시 좋아졌지만 금방 보편화가 되었고 수입의 차별도 사라졌다. 어린 호박에 비닐튜브 끼우는 일만 늘어났다.


산지와 최종 소비자 가격 차이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중간상인이 농민과 상인, 그리고 소비자에게 고마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거,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를 읽고 비로소 알았다. 그런데 사실, 두어 세대만 거슬러 가면 우리의 모든 농사가 유기농이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단순함이 아니다. 누가 무슨 종자를 어떻게 재배한 농작물인지 알고 서로 나눴다. 따라서 크니 작으니, 반듯하니 아니니 따지지 않았고, 제철이 아니면 찾지 않았다. 이제 누구의 농간이었는지, 손님이 왕이 되면서 사정이 달라져야 했다. 철없는 농작물을 공산품처럼 허구헛날 찾다보니 석유가 왕창 들어가는 화학농업으로 바뀌고 말았다.


마스크 하고 보호복 입어도 농약을 치면 소비자가 아니라 농민에게 가장 큰 피해가 간다. 땅이 죽으면 후손의 삶이 위태로워진다. 농약 없는 유기농이 농약 친 관행농과 비교해 성분과 영양분의 차이가 거의 없어도 가치는 다르다. 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점을 유병덕이 지적하고,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 뿌리내려 살아가면서 타고난 성분을 합성하는 유기농이 합성농약으로 천적을 제거하고 온실에서 보육되는 관행농산물과 같을 리 없다는 걸 안병덕이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에서 강조한다. 상식이 지식으로 승천하는 순간에 안철환과 유정길은 도시 소비자에게 한마디 거든다. 직접 농사 지어보며 유기농 생산자에게 고마워하라고. 유기농을 망치게 하지 말라고. (우리와다음, 2013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