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16. 4. 1. 20:36


녹색평론사가 2005년 펴낸 아담을 기다리며의 저자 마사 베크는 유전병이 있는 뱃속의 아기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썼다. 낙태하지 않은 대학원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크게 질책하는 지도교수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건 뱃속의 아기가 자신에게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라 저자는 믿는다. 만일 자궁 착상에 앞서 병을 가진 유전자를 정상으로 바꾸는 기술이 보급된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크리스퍼라고 하는 유전자 가위가 등장했다. 크리스퍼 덕분에 원하는 유전자를 아주 정교하게 자르고 붙일 수 있으므로 병이 아니라 유전자를 치료하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견한다. 이상이 있는 DNA 가닥을 정상 가닥으로 바꿔준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건데, 우리는 이미 사람의 모든 DNA 서열을 밝혔고, 유전자 지도를 완성할 날도 머지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필코 유전병을 발본색원하게 되는 걸까?


DNA 가닥을 바꾸려면 수정란이 자궁에 저절로 착상하면 안 된다. 시험관에서 수정시킨 뒤 난자 세포가 4개 정도로 분열했을 때 중단시키고 그 중 세포 하나를 떼어내 유전자 서열을 조사해야 한다. 유전병이 보인다면 문제의 DNA 가닥을 크리스퍼로 잘라내 정상 가닥으로 바꾸겠지. DNA 가닥이 정상으로 바뀐 난자의 세포를 다시 분열시키고, 자궁에 착상하면 유전병이 치료된 아기가 태어날 것이다.


유전병은 왜 생길까? 아기에게 잘못은 없다. 물론 유전병 가진 아기를 잉태한 부모에게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과거 언제일지, 돌연변이가 있었다. 유전자 복제를 불안하게 하는 어떤 원인에 의해 생겼을 것이다. 방사능이나 몸에 좋지 않은 음식 속의 첨가물, 농약을 포함해 십만 가지가 넘는 독성화학물질은 발암물질이자 돌연변이 원인물질이다. 그래서 요즘 유전병은 늘어난다.


키가 작으면 질병인가? 그리 규정하면 병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 성형외과는 분명 정상인을 받아 환자로 만든다. DNA 가닥을 동시에 여러 군데 바꾸는 세상이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아기의 눈동자 색을 바꾸고 싶은 부모는 머리카락과 피부의 색도 동시에 바꿔달라고 주문하는 시대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그런 시대에 180센티미터 이하인 남성은 루저! 인생의 실패자로 낙인찍힐 수 있겠다.


1998리메이킹 에덴에서 생명공학자 리 실버는 유전자를 좋게 바꾼 보강된 유전자 계층이 등장할 것으로 예견했다. 그런 현상을 막을 수 없을 거라 주장했는데, 이제 그 가능성이 어슴푸레 보인다. 지능을 높이는 유전자 수술이 영리병원에서 시술된다면? 세칭 송중기 또는 김태희 유전자가 고가로 팔리는 시대가 될 테지. 당뇨병과 치매에 들지 않도록 유전자를 교환해주겠다는 병원이 요란하게 광고하겠군.


키가 크면 좋은 걸까? 어떤 얼굴이 잘 생긴 걸까? 지능이 높으면 행복할까? 우리는 좋거나 나쁘다는 기준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편견이고 그 편견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 유전자는 환경이 맞아야 발현된다. 환경이 바뀌면 우성이던 유전자가 열성으로 변하기도 한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이 심해지는 이때 유전자 치료?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겠다. (한살림 소식지, 20164월호)

 
 
 

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16. 2. 25. 12:16


여학생이 많은 대학의 정문에 의료진처럼 하얀 가운을 입은 이들이 좌판을 깔았다. 자궁경부암 백신을 홍보하는 자리였다. 성관계 이전이라면 두 차례, 이후라면 세 차례 접종해야 항체가 충분히 형성된다는데, 주로 미국계 다국적 제약회사가 판매하는 그 백신의 가격은 20만 원이 훌쩍 넘는다. 보조금이 없다면 대학생이 엄두내기 어렵다.


우리나라 여성암 발생률 5위인 자궁경부암 걱정을 백신으로 없앤다면 비용이 아깝지 않을 수 있겠다. 이른 나이에 성관계를 시작하거나 성관계 상대가 많을수록 감염되기 쉽다는 인유두종 바이러스’(HPV)는 남녀 생식기나 항문 주변에 흔히 기생하는 까닭에 남성의 접종도 권장한다. 그 백신은 투여한 여성의 80퍼센트 이상 자궁경부암 발생을 예방하고 효과는 20년을 보장한다는데, 백신을 접종했어도 자궁경부암이 발생한다면 운 나쁜 20퍼센트이거나 상대 남성을 의심해야 하는 걸까?


2012년부터 자궁경부암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 지원사업에 포함해 13세에서 16세 여성에게 처방해온 일본은 이듬해 접종을 권장하지 말라는 지침을 지방자치단체에 내렸다. 550만 건 접종 결과 1968건의 부작용이 발생한 이후의 일이다. 팔과 다리의 마비에서 간질까지 다양하고 심각한 부작용이 일본에 한정할 리 없다.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운동장애와 떨림증상과 같은 부작용이 14건 발생했다고 2015년 국회에 보고했지만 우리나라 여성의 자궁경부암 백신의 정확한 접종 실적은 제시하지 않았다.


많은 연구로 밝힌 자궁경부암은 HPV가 원인인 건 분명하겠지만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으므로 반드시 암으로 이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떨어지면서 암으로 진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자궁암백신 접종보다 면역력을 높이는 생활습관이 더 중요할 텐데, 일본이나 우리나 사후 처방에 주력한다. 자본의 이익을 깨알처럼 챙기려는 습관의 발로라고 평한다면 지나친 걸까?


우리나라 60대 여성에게 특히 많다는 관절염을 생명공학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 윤리적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는 심의회의에서 연구자는 자신에게 충분한 연구비를 지속 제공한다면 관절염 유전자를 찾아낼 테니, 이후 연구자들이 발본색원할 것으로 확신했다. 그런데 과문한 탓일까? 그 관절염 유전자를 찾아냈다거나 관련 치료 방법이나 의약품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여태 듣지 못했다.


문제의 관절염 유전자는 여성에게 국한할까? 그렇다면 그 유전자는 X염색체에 위치해야 맞다. X염색체가 아니라면 남성도 비슷한 관절염이 여성만큼 발생해야하는데 아닌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나라의 60대 이상 여성에게 관절염이 많을 걸까? 유전자가 문제라면 더 젊은 여성이나 남성에게 동일한 증세가 눈에 띌 정도는 있어야하는데, 왜 드문 걸까? 연구비 신청자는 그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지만, 윤리적 문제가 없는 연구라고 판단한 심의의원들이 연구비 수령을 허용했고 우리나라 여성들은 관절염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


작년 중국의 증산대학에서 최근 개발된 유전자 편집 기술로 지중해성 빈혈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편집해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한 연구였는데, 윤리와 안전의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은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연구 중단을 호소했지만 획기적 질병 치료를 앞당기기 위한 연구 촉진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교차했다. 유전자 편집으로 인류는 진정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중국 연구진은 생육이 불가능한 배아를 사용해 빈혈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바꿔치기하는데 성공했다지만 돈벌이에 몰두하는 세상의 과학연구는 그 단계에서 그칠 리 없다. 장차 아기로 태어날 배아의 유전자를 교환하는 기술로 이어질 가능성을 크게 높였고, 드디어 영국은 지난 21, 시험관 아기와 동물복제 연구의 선두주자답게 연구를 허용하고 나섰다.


영국은 일단 유산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인간 수정란 단계에서 밝히기 위한 유전자 편집 연구를 허용하는데 그쳤지만 그 연구는 어디로 이어질까? 유전자 편집에 사용한 수정란이 태아로 자라는 걸 금지했다지만 그 연구가 성공한다면 서슬 퍼런 금지 조항이 느슨해지지 않을까? 유전자를 교환하면 애초 불임이던 임산부의 몇 퍼센트가 임신이 가능하게 될 것으로 추정하는 광고가 뒤따를 수 있는데. 그 단계에서 그치지도 않을 것이다. 이미 호사가들은 유전자 증강을 예고한다.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아기를 원하는가? 지능이 빼어날 아기는?


시작 단계인 중국의 연구 정확도는 불충분했다. 시도한 연구 중 일부만 성공했고 엉뚱한 부위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했다니 안전성도 확보된 상태가 아니다. 유전자 편집에 대한 윤리적 논의와 사회적 합의는 불충분하므로 양식 있는 의학자들은 정확도와 반복되어도 같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임상에 적용하는 걸 반대한다. 당연한데, 생명공학의 숱한 경험을 미루어, 자본이 치료효과를 광고할 때까지 연구비는 하염없이 들어갈 게 거의 틀림없겠다. 그 연구비는 대부분 세금일 테고.


무조건 좋거나 나쁜 유전자는 없다. 현재 환경에 불리한 유전자라도 바뀐 환경에서 유리한 경우가 많은데 당장 나쁘다고 바꾼다면 나중에 위험을 초래하거나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수정란이나 배아일 때 장래 유리할 거라 믿고 편집한 유전자가 태어난 뒤 해가 된다면 치료와 보상이 요원해질 수 있다. 문제는 유전자의 상호관계다. 환경과 상호관계가 있지만 유전자 사이의 상호관계도 있을 텐데, 관련해 신뢰할만한 연구 결과는 전혀 없는 실정이다. 하나의 유전자를 바꾼다고 인생이 펴거나 유전병이 치유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는 거다.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는 대부분 환경에 따라 발현이 좌우된다.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환경에 부딪히거나 면역이 약해지면서 질병에 들었을 때 유전자가 발현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유전자를 함부로 편집하기보다 현재 우리가 잘 적응하고 있는 환경을 보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절벽 아래 최첨단 병원을 준비하는 거보다 절벽에 떨어지지 않도록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설과 추석이 지날 때마다 관절이 아픈 우리나라 여성들, 과연 유전자 때문일까? (작은책, 20163월호)